침입자들
정혁용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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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종이 울립니다.

"택배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문 앞엔 택배상자들이 하나둘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택배들.

이 택배물품들을 전달하는 '택배기사'님들의 수고에 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이 장르소설도 주인공이 평범한 '택배기사'라고 하였습니다.

하! 지! 만!!


"택배가 도착하는 순간,

인생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이 문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택배로 인해 인생까지?!


과거를 덮으려는 자, 잃어버린 자, 잊으려는 자...

의문의 남자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숨 막히는 이야기


침입자들

 


소설의 시작은 이러했습니다.


나의 일상은 사막이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이 나의 일이고, 습기 한 점 없이 건조한 바람이 나의 시간이며, 끝없이 펼쳐진 모래가 나의 하루다. 먼 육지의 친구에게는 사막으로 집을 지으러 간 이의 소식으로 전해질 거다. - page 11


무엇 때문에 과거의 자신에게 이별을 고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자신이 흘러갈지 모른 채 사막 한 가운데 정처없이 서 있는 것 같은 그.

그의 이야기는 그해 여름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여벌의 옷이 든 가방, 9만 8천 원이 든 지갑, 마흔다섯의 나이와 텅 빈 시간만을 가지고 있는 그는 구인란 '택배기사 구함'이란 문구에 이끌려, '숙소제공'이란 말에 어느덧 그의 손은 구직란의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

몇 가지 질문과 답으로 그는 택배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숙소는 컨테이너.

그가 앞으로 택배일을 하게 될, 동료들에게 불리게 될 이름 '행운동'.

그렇게 그의 택배일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다른이와 얽히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일하는 곳에서도 아침에 눈인사가 고작.

택배일을 하게 된 것도 사람과 마주할 일이 없기 때문에 시작을 하였지만 그의 주변은 그를 그냥 놓아주지 않습니다.

아니, 그에겐 뭔가 알 수 없는 이끌림이 있기에 그의 주변에 사람들이 얽히게 되는데......


모든 직업에는 귀천이 없듯이 '택배기사'라는 직업 역시도 우리가 존중해야할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불쾌한 태도를 보이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전한 행운동의 이야기는 '갑질'하는 우리 사회의 무분별한 이들을 향한 따끔한 충고였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서비스업의 정의는 간단하다. 나는 고객에게 불친절하지 않을 의무가 있고(친절까지는 의무가 아니다) 고객은 나에게 불친절할 권리가 없다(내가 먼저 불친절하지 않는 이상). 그뿐이다. 물론 일반 직자아이라면 직장에 다니는 것조차 위태롭겠지만 다행히 택배는 그렇지 않다. 욕설을 하지 않는 이상, 물건의 분실이나 파손이 아닌 이상 내가 손해 볼 것은 없다.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활용하고 살아야 한다. 난 노동을 팔러 온 것이지 감정을 팔러온 것이 아니니까. 굳이 팔라고 하면 못 팔 것도 없겠지만, 그럼 자본주의의 윤리에 맞게 대가를 주든가. 하지만 감정노동에 대한 대가 따위는 없다. 이런 걸 착취라 하고, 눈 뜨고 당하고 있는 걸 바보라고 한다. 가난하게는 살 순 있어도 바보로 사는 건 싫다. - page 75 ~ 76


사실 요즘같은 불경기일 때 청년들에게 '꿈'이라든지 '희망'이라는 단어는 용기를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고문'과도 같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나 이 이야기를 읽을 때......

 


우리의 모습이기에 이 씁쓸함을 달랠 수 없는 현실에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행운동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상처를 가리고 가리면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은 사람들과의 어울림 속에서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줄 수 있음을 엿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

'행운동'과 같은 사람이 내 주위에도 있다면......

나 역시도 한 줌의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도 남곤 하였습니다.


결국 행운동은 다시 가방을 들쳐 메고 길을 나서게 됩니다.

그때 울리는 친구의 전화.


"아직도 사막에서 집을 짓고 있나?"

"그러려고 했죠."

"이봐, K. 우리는 지옥에 빠진 인간들이야. 지옥에는 입구만 있지 출구는 없어."

...

"이제 돌아올 건가?" - page 337 ~ 338


더럽게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행운동은, 아니 K의 발걸음은 어디로 향하게 될지......

그의 조용하지만 진한 향기만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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