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에 이르는 병
구시키 리우 지음, 현정수 옮김 / 에이치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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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그 여자는 내가 죽이지 않았어.

누명을 벗겨줘!"

억울하다는 살인범의 한 마디.


이 책을 읽기 전 떠오른 티비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다루었던 한국 연쇄살인범 - 유영철, 강호순, 이춘재, 정두영, 정남규, 조두순-에 대해 분석을 했었는데 온몸에 소름을 일으키며 잔인하고도 끔찍한 그들이 또다시 이 책을 만나게 되면서 소름이 났었습니다.

과연 이 연쇄살인마의 진실은 무엇일지 궁금하였습니다.

사형에 이르는 병

 

"야, 가케이." - page 13

대학에서 '아싸(아웃사이더)'라고 부르며 조롱당하는 그, ​마사야.

어느날 현관에 봉투 하나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겉에 적힌 주소는 아버지의 글씨였고 봉투를 뜯어보니 안에는 또 한 통의 봉투가 들어 있었습니다.

- 누구지? - page 25

마사야는 다른 면회 희망자와 함께 서늘한 긴 복도를 걷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걷는, 구치소 복도.

벤치가 늘어서 있고 위쪽에는 배지 번호를 알리는 전광판이 있었습니다.

금속 탐지기에 걸릴 만한 휴대전화나 금속으로 된 물건들은 미리 로커에 맡겨둔 채 벤치에 앉아서 기다립니다.

그리곤 안내를 받아 면회실 의자에 앉습니다.

파이프 의자에 앉은 그 사람.

너무나 평범해 보였습니다.

차분한 태도의 온화해 보이는 이 남자, 다름아닌 '하이무라 야마토'.

엽기살인범, 연쇄살인귀, 질서형 살인범, 연기성 인격자아애자, 귀축, 시리얼킬러, 정신이상자, 괴물 등등. - page 28

아크릴판 너머의 하이무라는 문득 길게 찢어진 눈을 가느라닳게 뜨더니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 합니다.

"오래간만이네. 마 군." - page 28

 

 

그런 하이무라가 마사야에게 이야기합니다.

"그, 아홉 번째 살인."

그는 힘이 실린 어조로 단숨에 고했다.

"스물세 살의 여성이 교살당하고, 깊은 산속에 유기된 사건. 그건 내가 저지른 범행이 아니야. 그 여자는 내 타깃과는 달라. 수법도 다르고. 그 한 건만큼은 난 누명을 쓰고 있어." - page 36

자신이 몇 사람을 죽였는지 다 기억하지는 못해도 하지 않은 죄까지 뒤집어쓰기 싫다고 말하는 그.

다음 편지에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저라는 인간이 법을 근거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에 불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틀림없는 사회 정의이기 때문입니다.

이상한 이야기입니다만, 저는 이 세상에 반드시 정의는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법률도 중시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질서란 법으로써 유지되기 때문에 건전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의 기준에서는, 기억에도 없는 아홉 번째의 살인까지 떠맡아서 교수형을 받는 것은 정의에 반하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정작 중요한 진범이 죄에서 벗어나 아직도 당당히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생각을 당신에게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어디까지나 당신 개인의 기준을 가지고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의 주장을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그것뿐입니다.

당신이 좀 더 나은 판단을 내려주시기를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 page 41 ~ 42


괜한 참견일 듯, 이미 판결이 난 사건에 그의 부탁을 거절하려 하지만 왠지모를 이끌림에 결국 그는 살인범의 요청을 수락하여 그 주변 인물과 사건 관계인들을 만나가면서 나름의 조사를 하기 시작합니다.


하이무라의 어린 시절.

처참한 환경 속에서 불행히 살았습니다.

잠시 침묵한 뒤, 마사야가 물었다.

"하이무라는 자기 어머니를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으음, 나라오카는 낮게 신음하고는 대답했다.

"복잡하지요. 뭐랄까, 양면적이었던 모양입니다. 사랑하지만, 동시에 어쩔 도리가 없는 답답함도 느꼈죠. 남자를 계속 갈아치우는 모습에 혐오감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자기가 버릴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취직해서 효도하고 싶다는 말도 자주 했어요. 하지만 어머니가 덧없이 사고로 죽어버려서, 결국 그것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 page 96


사생아, 열악한 성장 환경, 책임감도 능력도 없는 어머니.

주위의 멸시, 괴롭힘, 양아버지에 의한 신체적, 성적 학대. 바랐지만 받을 수 없었던 교육, 성사 직전에 취소된 입양.

주위의 편견이나 멸시, 관공서의 일손 부족이나 어머니의 무지 같은 것들이 수없이 쌓여서 지금의 그가 존재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연쇄살인마로......


그의 인생을 추적하면서 발견하게되는 한 장의 사진.

그 속에 마사야의 엄마 에리코가 있었습니다.

혼란스러운 마사야.

과연 에리코와 하이무라, 마사야 사이엔 어떤 진실이 있는 것일까?

그의 아홉 번째의 살인의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


이 소설 속 연쇄살인범의 모습은 우리가 마주하였던 연쇄살인범과도 닮아있었기에 쉬이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소설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현실같은, 한편의 웰메이드 범죄 다큐멘터리를 감상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말이 적합하였습니다.


마사야와 하이무라가 나눈 대화 중 인상적이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마사야는 입을 열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자신을 싫어했습니다. 너무 싫어서, 자신이 아닌 뭔가가 되고 싶었죠. 자신의 형태를 이루는 것들, 환경이나 주위의 인간, 부모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그런 나의 응석을 받아주고, 치켜세워주고, 일시적으로 꿈을 보여주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동화되는 것이 기분 좋았습니다."

하이무라가 미소를 지었다.

"인간은 모두 그런 법이야. 현재 상황에 완전히 만족하는 일은 없어. 언제나 '여기 아닌 어딘가'를 바라지. 우리에게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야." - page 351


한 통의 편지로 시작된 이 소설.

소설 속에서 아마 이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주위의 편견, 멸시, 사회적 무책임.

'악인'을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한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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