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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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그저 제목만으로 끌렸습니다.

뭔가 새콤달콤한 느낌일 것 같았지만 실상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레몬


저자 '권여선'씨는 익히 알고만 있었습니다.

『안녕 주정뱅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있었고 그녀가 건네는 인사말이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있기에 결코 뗄레야 뗄 수 없다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그녀의 작품 하나 읽어보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다 이번에 만나게 된 건 그냥 마음의 이끌림이었는데 결국 이 책을 계기로 그녀의 작품들이 궁금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무덤덤하게 그려내지만 알고보면 이보다 더 구구절절하게 우리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음에......


첫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오래전 어느 경찰서 조사실에서 있었던 장면을 상상한다. 상상한다고 해서 꾸며내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직접 본 젓도 아니니,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 page 9

2002년.

'미모의 여고생 살인사건'에 대한 취조실에서의 소년의 이야기로 시작되었습니다.

하안만우우우우 이 세사아앙 야속한안 임아, 하는 식으로.

그런 별명을 가진 이, '한만우'.

그의 취조실에서의 모습으로 이야기는 시작되었습니다.


취조에 대한 질문, 대답, 그리고 강요 아닌 강요.

반복되는 취조실의 상황에서 그는 얼떨결에 그와 같이 있었던 여학생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범인이라 생각되는 '신정준'을 짝사랑하던 소녀, '태림'.


그리고 이야기는 미모의 여고생의 동생인 '다언'의 시선을 따라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예뻤던 언니, '해언'.

그녀와는 달리 평범했던, 아니 오히려 언니와 비교되었던 동생 '다언'.


하지만 언니의 부재는 동생 다언에겐 삶의 방향성마저 달리 만들었습니다.

어느 순간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모든 소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언니의 부재를 가능한 한 덜 느끼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공간으로 옮겨왔지만 그 낯선 공간이 우리의 신경을 끊임없이 자극했고, 이하의 원인이 된 끔찍한 사건을 더 시시각각 소름 돋도록 환기했다. 머릿속에 물방울만 하게 맺혀 있던 공백이 풍선처럼 훅훅 부풀어올랐다. 세상이 점점 멀어지고 흐릿해지다 아예 사라져버리는 일이 생겨났다. 엄마와 나는 순식간에 추락했다. - page 72


사건의 용의자일 것 같지만 알리바이가 증명되어 풀린 '신정준'.

그리고 목격자 '한만우'.

한만우 오토바이 뒤에 두 손을 허리에 꼭 잡았던 그녀 '윤태림'.

사건의 진실을 향해가는 이, '다언'.

과연 사건의 미해결에서 해결로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민우'를 좇던 '다언'으로부터 우리의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했습니다.

어떤 삶은 이유 없이 가혹한데, 그 속에서 우리는 가련한 벌레처럼 가혹한 줄도 모르고 살아간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식당 주방에서 일한다는 그들 남매의 엄마는 난쟁이였다. 선우를 좀더 가혹하게 눌러놓은 것처럼 작았다. 그 엄마를 보자 이상하게도 내가 앞으로 어디를 찾아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가 분명해졌다. 내가 살아갈 방향도 정해졌다. 일단 엄마에게서 독립할 것이다. 엄마는 어떤 일에도 연루되어선 안된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다시 엄마에게 돌아갈 것이다. - page 145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이야기.

결국 죽음 은 죽은 자와 산 자들 사이에 명료한 선을 긋는 사건이에요,라고 다언은 진지하게 말했다. 죽은 자는 저쪽, 나머지는 이쪽, 이런 식으로. 위대하든 초라하든, 한 인간의 죽음은 죽은 그 사람과 나머지 전인류 사이에 무섭도록 단호한 선을 긋는다는 점에선 마찬가지라고, 탄생이 나 좀 끼워달라는 식의 본의 아닌 비굴한 합류라면 죽음은 너희들이 나가라는 위력적인 배제라고, 그래서 모든 걸 돌이킬 수 없도록 단절시키는 죽음이야말로 모든 지속을 출발시키는 탄생보다 공평무사하고 숭고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다언은 책을 읽듯이 담담하게 말했다. - page 179


'레몬'은 실로 샛노란 색을 지닌, 새콤한 과일이었습니다.

다언의 언니 '해언'이 죽기 전에 입었던 원피스의 색이자 사건 후 남겨진 이들에게 남겨진 진한 새콤한 여운, '복수'의 다른 의미였습니다.

다언은 범인을 찾을 수 있었을까......!


이 소설의 마지막에 도달했을 때 '다언'은 이렇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나는 궁금하다. 우리 삶에는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는걸까. 아무리 찾으려 해도, 지어내려 해도, 없는 건 없는걸까. 그저 한만 남기는 세상인가. 혹시라도 살아 있다는 것, 희열과 공포가 교차하고 평온과 위험이 뒤섞이는 생명 속에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의미일 수는 없을까.

...

이제 그들은 죽고 없다. 한만우의 죽음을 경유함으로써 나는 비로소 언니의 죽음을 애도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삶과 마찬가지로 언니의 삶 또한 고통스럽게 파괴되었다는 것을, 완벽한 미의 형식이 아니라 생생한 삶의 내용이 파괴되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죽었고, 나는 살아 있다. 살아 있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면 그밖의 것은 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살아 있고 하루하루 살아간다. 엄마와 어린 혜은, 아무도 모를 죄책감과 기나긴 고독이 내 곁에 있다. - page 198 ~ 199

 


짧은 이야기 속의 긴 여운.

자꾸만 책장을 들춰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마도 이는 '소설'로의 허구가 아닌, 마치 '현실'과도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이 무엇일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누군가의 부재.

나의 믿음과는 다른 진실.

그 속에서 나는 방황하지 않을 수 있을지에 대해, 아니 좀더 나아가 내 삶을 이끌어 나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봅니다.


왠지 이 책을 읽고나니 '노란' 레몬의 의미보다는 '새콤한' 레몬의 의미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인식된 노란색의 리본도 떠올랐습니다.

숙연해지는 느낌......

그렇게 모든 이들에게 노란 리본처럼 저 또한 바래어봅니다.

저마다 잠든 그곳에서 평온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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