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 남자 - 제138회 나오키 상 수상작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8년 12월
평점 :
“구사리노 준고는 내 양아버지다. 그가 나를 키우기 시작한 것은 15년 전. 나는 지진 때문에 가족을 한꺼번에 잃은 초등학교 4학년짜리 꼬마였다. 아주 먼 친척인 준고는 복잡한 몇 가지 절차를 거쳐 내 양아버지가 되었다. 8년 전, 준고가 서른네 살 때 우리는 도쿄로 올라왔다. 그렇게 나는 스물여섯 살이 되었고, 이제 내일이면 결혼을 한다. 그때 준고는 왜 어린 여자 아이를 굳이 맡으려 했을까. 준고라는 남자가 과거에 한 선택과 앞으로 할 행동에 대해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 다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비 냄새 같은 체취를 풍기는 이 양아버지가 바로 내 남자라는 것뿐이다.” (p12~13에서 발췌)
읽은 지 10년도 훌쩍 넘은 작품이지만 당시 느꼈던 당혹감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남녀의 15년에 걸친 사랑의 행적을 그려낸 소설”이라는 평범한 소개글에도 불구하고 나오키 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읽었던 작품인데, 초반 몇 페이지만에 남녀 주인공이 실은 불과 16살 차이인 양아버지와 양녀라는 점, 그리고 그들의 관계가 단순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아니라 어둡고 음습하고 시한폭탄처럼 위험한 것임을 눈치 채곤 큰 충격에 빠졌던 겁니다. 잠시나마 플라토닉 러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라는 근거 없는 기대와 짐작을 해봤지만 두 번째 챕터가 시작되자마자 이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달콤하면서 관능적이고 불길하며 퇴폐적인 느낌”인지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양아버지 준고가 42살, 양녀 하나가 26살인 첫 챕터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점점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며 두 사람이 처음 만난 27살과 11살 시절, 그러니까 15년 전에 시작된, 난폭하면서도 애틋하고 납득하기 어려우면서도 동시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기이한 사랑을 그려냅니다.
“반도덕적, 반사회적이며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소설이다. 이것을 세상에 내놓고 한 번 묻고 싶었다.”라는 나오키 상 심사위원의 평뿐 아니라 “상식을 가볍게 짓이기며 전개되는 가장 위험한 러브 스토리”, “더러운 늪에서만 피는 아름다운 꽃과 같은 소설”이라는 세간의 평대로 ‘내 남자’는 상식의 잣대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그들만의 사랑’을 그리고 있습니다.
애초 이런 사랑이 어떻게 싹을 틔울 수 있었던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작가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두 사람 사이에 아주 천천히, 하지만 누구도 깨부술 수 없는 공고한 관계가 형성되는 과정을 농밀하게 묘사하며 독자를 설득합니다. 각기 다른 이유로 가족을 잃은 뒤 양부녀가 된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가족 혹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충족하려 했고, 그 감정이 점차 고양되어 서로의 몸을 탐하게 됐을 때에도 두 사람의 관계는 남녀의 그것이라기보다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서로에게 가지를 뻗쳐 얽히려고 하는 연리지(連理枝)와 다름없었습니다.
그 사랑을 부정하고 손가락질하는 자를 가차 없이 살해한 뒤로 두 사람의 인생은 살얼음판 위를 걷게 됐고, 한편으론 서로에게서 도망치고 싶으면서도 또 한편으론 뼈가 되어서도 함께 하고 싶은 복잡한 감정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끝내 찾아온 파국 - 양녀 하나의 결혼 - 의 날, 두 사람은 속내를 감춘 채 비오는 거리에서 서로를 지켜봅니다.
독자에 따라 불쾌함과 욕지기를 견디지 못하고 책을 덮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저처럼 두 사람의 감정을 100% 이해하진 못해도 씁쓸하고 애틋한 여운에 사로잡힌 채 이야기의 주 무대 중 한 곳인 오호츠크 해의 검푸른 바다 앞에 홀로 서있는 듯한 황량한 느낌을 받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선과 악, 도덕과 패륜, 인간과 비인간의 구분이 모호한 이야기라 논란의 여지가 많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지만, 바로 그 점이 ‘내 남자’의 가장 큰 미덕이자 매력이라는 생각입니다.
그 여운이 너무나도 강렬하고 인상 깊었던 탓에 10년도 훌쩍 넘은 이제 와서 서평을 써보겠다며 다시 읽었지만, ‘내 남자’는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 꼭 한 번 다시 읽고 싶은 작품입니다. 모르긴 해도 과거와 현재와는 또 다른 인상과 여운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10년쯤 후엔 과연 어떤 눈빛으로 준고와 하나를 지켜보게 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