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그림 ㅣ 우케쓰 이상한 시리즈
우케쓰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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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내와 곧 태어날 아이에 대한 기대로 가득한 블로그.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아이를 낳던 도중 아내가 사망하고, 몇 년이 흘러 아내가 남긴 그림들의 진실을 깨달은 남편은 감당할 수 없는 충격에 블로그를 중단하고 만다. 우연히 블로그를 발견한 오컬트 동아리원 구리하라와 사사키는 이 그림들에 무시무시한 비밀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이 블로그에 숨겨진 소름 끼치는 진실에 조금씩 다가가면서 마침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다. (출판사 소개글을 인용했습니다)



일명 ‘이상한 시리즈’로 새롭고 독특한 호러 미스터리를 선보인 우케쓰의 작품입니다. 앞서 읽은 ‘이상한 집’과 ‘이상한 집 2’가 집의 평면도를 기반으로 전개된 괴담에 가까운 이야기였다면, ‘이상한 그림’은 제목대로 어딘가 기이해 보이는 네 장의 그림을 통해 오랫동안 자행되어 온 연쇄살인의 진상과 그것을 야기한 한 인간의 일그러진 욕망을 파헤칩니다.


프롤로그에 이어 모두 네 편의 연작단편이 실려 있는데, 각각 완결된 미스터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50여 년의 시간에 걸친 하나의 미스터리로 연결돼있기도 합니다. 각 단편의 첫 머리엔 평범한 듯 하지만 불온한 기운을 발산하는 그림들이 먼저 소개됩니다. 이어 가해자 또는 피해자가 그린 이 그림들을 사건 당사자 또는 제3자가 분석하고 해석하는 과정이 세밀하게 그려집니다. 그리고 각각의 그림이 그려진 사연과 그 안에 깃든 비밀들이 파헤쳐지면서 오랜 시간 동안 차곡차곡 쌓여온 참혹한 비극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마지막 장에 이르러 진실이 공개되는 순간 앞서 읽어온 이야기들이 머릿속에서 빠른 속도로 재생되는 걸 느낄 수 있는데, 빈틈없는 정교한 퍼즐이 순식간에 맞춰지는 듯한 짜릿한 쾌감과 함께 한 인간의 일그러진 욕망이 얼마나 거대한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목도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식의 구성을 무척 좋아하는데 마치 반전 한 개를 보너스처럼 제공받은 듯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한 집’이 호러 서사에 주력했다면, ‘이상한 그림’은 심리 스릴러와 본격 미스터리의 맛도 함께 곁들여져 있어서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무엇보다 글과 그림이 혼재된 독특하고 파격적인 편집은 책을 읽는다기보다 영상물을 보는 듯한 몰입감을 자극해서 더욱 인상적이었습니다. 수록작 가운데 그림 설정이 다소 과하고 억지스러운 경우도 있지만 작품 전체의 매력을 훼손할 정도는 아닙니다.


‘이상한 그림’은 책갈피를 끼워 두며 여러 번에 걸쳐 읽으면 그 맛을 제대로 만끽하기 어렵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에다 그림까지 적잖이 삽입되어 있어서 주말 한나절이면 충분히 완독할 수 있으니 한 번에 끝까지 읽을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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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1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현정수 옮김 / arte(아르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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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전3권)가 한국에 처음 소개된 건 2011~2013년입니다. 개정판(2016년)이 나올 정도로 한국 독자들에게 친숙하고 환영받은 작품이었지만 그동안 늘 관심만 가졌을 뿐 실제로 읽지 않은 이유는 ‘유머 미스터리 수사물’이 제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기 때문입니다. 살인사건이라는 잔혹한 소재를 다루는 미스터리라면 당연히 무겁고 묵직하고 어두운 톤이어야 한다는 취향 탓에 유머 혹은 코지로 분류되는 미스터리를 멀리 한 게 사실인데, 물론 그런 작품들을 아주 안 읽은 건 아니지만 왠지 제목에서부터 유머와 코지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는 좀처럼 가까이 할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겁니다.


그러다가 꽤 오랜 공백을 깨고 두 권으로 구성된 후속작이 나왔다는 소식에 귀를 기울이게 됐고, SNS에 공개된 주인공들의 캐릭터와 작품 개요를 읽어보곤 그동안 제가 이 시리즈에 대해 심하게 오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유머 미스터리 수사물’이 맞긴 하지만 그건 단지 주인공들의 코믹한 캐릭터 덕분에 붙은 타이틀일 뿐 사건과 미스터리 해법만큼은 제가 좋아하는 무겁고 묵직하고 어두운 톤을 품고 있었고, 주조연들의 면면과 관계를 살펴보니 역시 제가 좋아하는 일본 특유의 B급 정서가 진하게 녹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재벌가의 외동딸이지만 그 신분을 숨긴 채 구니타치 경찰서의 형사로 활약 중인 호쇼 레이코와, 호쇼 집안의 집사지만 형사를 능가하는 탁월한 추리력을 지닌 가게야마가 미스터리 해결사 역할을 맡습니다. 레이코가 툭하면 버럭질을 남발하는 다혈질에다 때론 대책 없는 ‘공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건을 대할 때만큼은 진심을 다하는 캐릭터라면, 가게야마는 속내를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집사라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면서도 사건에 대한 추리를 벌일 때만큼은 자신이 모시는 레이코에게 독설과 폭언을 서슴지 않는 캐릭터라서 이 둘만의 조합으로도 독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여기에 가세한 두 조연의 캐릭터도 만만치 않은데, 한 명은 중견재벌가의 아들이자 자뻑의 대가이며 무례한 말투와 성희롱을 일삼는 것은 물론 형사로서 부실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레이코로부터 전해들은 가게야마의 추리’ 덕분에 경시청 수사1과로 영전됐다가 결국 민낯이 드러나 다시 구니타치 경찰서로 좌천된 가자마쓰리 경부이고, 또 한 명은 레이코의 첫 후배이자 신참으로, 눈치라곤 전혀 없는 엉뚱함에 빵점짜리 박력과 평균치 이하의 어휘력을 지닌 와카미야 아이리입니다.


1~2권을 합쳐 모두 10편의 단편이 수록돼있는데, 기괴하고 잔혹한 사건들과 함께 밀실트릭, 알리바이 트릭, 다잉메시지 등 본격 미스터리의 다양한 장치들이 동원돼서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내내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특히 작위적인 설정이나 억지에 가까운 전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간결하면서도 선명한 추리를 통해 진상에 도달하는 방식이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습니다. 이야기를 이끄는 네 명의 주조연들은 거의 만담에 가까운 대화와 어이없는 티키타카를 주고받지만, 이 코믹한 코드들은 깔끔하고 명료한 미스터리 서사와 잘 어우러지면서 전혀 이질감 없이 흥미를 돋웁니다. 출판사 소개글대로 “지적 쾌감과 웃음을 동시에 즐기고 싶은 독자”에겐 더없이 매력적인 텍스트가 돼줄 거란 생각인데, 저처럼 ‘유머 미스터리 수사물’에 거부감을 가진 독자라도 한번쯤 도전해볼 것을 권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는 드라마와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앞서 출간된 세 권의 전작들은 물론 한국에 출간된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작품들도 찬찬히 살펴보겠지만, 우선 ‘재벌가 영애 형사’ 레이코와 ‘독설+폭언 집사’ 가게야마의 활약상을 영상으로 만나보려고 합니다. 이 독특한 캐릭터들의 케미가 어떻게 실물로 그려졌을지 너무 보고 싶어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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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 벚꽃
유즈키 유코 지음, 김지연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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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온서평단(단단한맘&레이첼)을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았습니다.


한 여대생의 죽음으로 인해 경찰이 거센 비난에 휩싸인다. 스토킹 피해를 신고했지만 경찰이 신고 접수를 미룬 사실이 한 신문사의 특종으로 알려졌기 때문. 현경 홍보과 직원 모리구치 이즈미는 자신이 무심결에 흘린 정보를 절친이자 기자인 쓰무라 지카가 멋대로 이용하여 특종을 올린 거라고 여긴다. 하지만 지카는 그 기사를 쓰지 않았다며, 다른  내막이 있을 거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얼마 후, 지카가 변사체로 발견된다. 죄책감에 사로잡힌 이즈미는 지카의 죽기 전 행적을 조사하기로 결심한다. (인터넷서점의 줄거리를 일부 수정 후 인용했습니다)



꽤 오래 전에 읽은 ‘반상의 해바라기’와 ‘달콤한 숨결’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아쉬움을 느낀 탓에 살짝 관심 밖으로 뒀던 유즈키 유코였지만, 오랜만의 신작 소식이 무척 반갑게 여겨진 건 그녀의 작품 중 가장 먼저, 또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고독한 늑대의 피’와 마찬가지로 경찰 미스터리, 특히 언론이 개입된 살인사건에, 국가와 개인의 문제까지 다룬다는 홍보글에 눈길이 훅 끌렸기 때문입니다. 

더욱 흥미를 돋운 건 주인공 모리구치 이즈미가 ‘경찰청 말단 직원’이란 점이었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그녀는 경찰이나 형사가 아니라 홍보과에 근무하는 사무직입니다. 말하자면 수사권도 없고, 수사의 ABC도 모르는 아마추어란 뜻인데, 이런 주인공이 살인사건의 진실 찾기와 함께 경찰 내부의 문제를 파헤친다는 설정이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지카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은 이즈미는 관할서 신참 형사인 이소카와와 함께 지카의 행적을 조사하며 단서를 모읍니다. 그 과정에서 홍보과장인 도가시, 수사1과장인 가지야마 등 경찰 상부에게 의심을 사기도 하지만, 나름 합리적인 추론을 내세우며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진짜 형사처럼 관련자들을 상대로 탐문을 벌이기도 합니다. 이 대목에서 ‘이즈미가 갓 부임한 초짜 형사라도 됐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는데, 아무래도 수사권 없는 사무직이란 한계 때문에 이즈미의 행보는 처음부터 제약될 수밖에 없었고, 그런 탓에 결정적인 정보수집과 수사는 다른 사람들에게 내줘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조직을 지키려 하고, 누군가는 진실을 밝히려 하며, 누군가는 국가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선택하는 인물들을 통해 ‘정의’라는 같은 단어가 얼마나 다른 얼굴을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출판사 소개글 中)


이즈미와 이소카와의 조사는 뜻밖의 성과를 냈고, 수사1과의 분투 덕분에 범인을 특정하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이 성공은 이즈미에겐 조금도 기쁜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경찰 내부의 낡고 오랜 문제를 직시하게 만들었고, 무엇이 진정한 ‘정의’인가에 대해, 또 국가와 개인을 저울에 올려놓았을 때 어느 쪽의 무게에 손을 들어줄 것인가에 대해 고통스러운 고민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 이즈미가 내린 중대한 선택은 충분히 독자의 공감을 사고도 남았는데, 일본에서 2021년에 출간된 이 작품의 후속작 ‘月下のサクラ’가 한국에도 소개된다면 이즈미의 ‘중대한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았을지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워낙 경찰소설을 좋아해서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나름 아쉬움도 남은 게 사실입니다. 간략하게 말하면, 우선 ‘반상의 해바라기’와 ‘달콤한 숨결’과 마찬가지로 없어도 무방한 부연설명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몰라도 되는 인물들의 사연은 물론 음식점이나 술집의 정경 묘사에 너무 많은 분량이 할애됐습니다. 또 독자가 이미 인지한 정보를 여러 차례에 걸쳐 반복적으로 설명한 탓에 지루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수사1과의 다소 어설픈 모습이라든가 꽤 중요한 단서와 물증에 대해 너무 쉽고 편의적으로 처리한 대목들도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아쉬운 디테일에도 불구하고 큰 서사 자체가 매력적이라 앞서 언급한 이 작품의 후속작 ‘月下のサクラ’에 대한 기대감이 커집니다. 주인공 이즈미가 어떻게 성장해있을지, 결코 해소될 수 없는 경찰 내부의 문제가 또 어떤 식으로 노정됐을지 무척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이 작품이 좋은 성과를 내서 ‘고독한 늑대의 피’의 후속작인 ‘凶犬の眼’과 ‘暴虎の牙’도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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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살인, 본격 미스터리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가타오카 쇼 지음, 김예진 옮김 / 리드비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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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고교 졸업 후 탐정이 되려던 오토후케 부우는 전설적인 추리소설가 오토리 아가사 집안의 메이드 구인 공고를 보곤 기꺼이 명탐정 꿈을 보류합니다. 하지만 우연히 밀실살인사건에 휘말린 것은 물론 오토리 가문의 장남 하루마가 미스터리 게임 플래너 야마이누에게 살인을 청부하는 장면을 엿본 탓에 본의 아니게 탐정 노릇을 떠맡게 됩니다. 살인을 막기 위해 야마이누를 찾아간 부우는 읍소와 압박을 통해 ‘아무도 죽지 않는 위장살인’으로 꾸미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지만, 오토리 가문의 네 남매와 그 가족들이 모인 무인도 저택에서 실제 살인이 벌어지고 그 직후 현장이 완벽한 밀실로 돌변하자 야마이누와 함께 진범 찾기에 나섭니다.



“이건 코미디인가? 패러디인가? 아무튼 꽤나 신나게 즐기고 있구나... 그 천진난만함을 조금 부러워하고, 동시에 약간 어이없어하며 당황한 채 읽어 내려갔다.” (아야츠지 유키토)


‘살인’이라는 무시무시한 두 글자가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코믹하고 유쾌해 보이는 제목이 단번에 눈길을 끕니다. 아야츠지 유키토의 ‘추천글’은 이 작품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텐데, 이 묘한 분위기의 일등공신은 단연 명탐정 지망생 오토후케 부우와 어딘가 수상쩍은 미스터리 게임 플래너 야마이누 콤비입니다.


양돈업자였던 부우의 부모는 돼지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딸에게 ‘꿀꿀’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어준 것은 물론 지독한 근시까지 물려주며 어려서부터 예민한 후각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부우는 자신의 이름을 자랑스레 여겼고, 이후 “호기심이 왕성하고 멧돼지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성격에 천진난만하기까지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는” 19세로 성장했습니다. 본격 미스터리의 마니아로 명탐정을 꿈꾸다가 메이드가 되고 말았지만, 운명인 듯 명탐정 역할을 맡아 밀실 연쇄살인사건을 멋지게 해결합니다.

부우와 함께 만담 커플처럼 티키타카를 이어가며 폭소 추리를 펼치는 건 미스터리 게임 플래너라는 특이한 직업의 소유자 야마이누입니다. 머더 미스터리, 즉 본격 미스터리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게임을 기획하는 게 그의 본업이지만, 오토리 가문의 장남으로부터 실제 살인을 청부받고도 태연히 수락할 정도로 기이한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럭비공 같은 부우와 한 팀이 된 것 자체가 코미디인데, 이들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연쇄살인 현장에서마저 모두를 썰렁하게 만드는 만담을 주고받곤 합니다.


제목에서 대놓고 밝혔듯 이 작품은 장르와 형식 모두 본격 미스터리지만, 그보다 더 눈길을 끄는 건 이야기의 핵심 소재와 등장인물 상당수의 ‘행동 원칙’ 자체도 본격 미스터리의 규칙을 준수한다는 점입니다. 범인은 손쉬운 방법이 널렸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본격 미스터리에 걸맞은 방식으로만 살인을 저지르고, 명탐정 역시 동일한 규칙을 전제 삼아 진범 찾기에 나섭니다. 말하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반칙 하나 없이 본격 미스터리의 규칙대로 사건들이 벌어지고, 인물들이 움직이다가 ‘본격다운 마무리’에 이른다는 뜻입니다. 발상도 기발하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작가가 얼마나 본격 미스터리에 진심인지를 여러 번 실감하게 됩니다.


애초 의뢰받은 청부살인을 위장살인으로 조작한 뒤 ‘아무도 죽지 않는, 하지만 모두가 만족하는 엔딩’을 이끌어내려 했지만, 예기치 못한 첫 살인사건에 이어 여러 사람이 끔찍한 방식으로 살해당하자 부우와 야마이누는 진범을 찾아내기 위해 분투합니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만담 추리 속에서도 조금씩 진상에 다가가던 두 사람은 뜻밖의 결말에 도달하면서 오토리 가문 후예들의 탐욕과 추악함은 물론 그들이 오랫동안 감춰온 잔혹한 비밀의 민낯까지 발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대반전이 독자 앞에 펼쳐집니다.


내용보다는 주인공 캐릭터와 이야기의 큰 틀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말았는데, 인물과 공간과 사건 모두 복잡하게 설정돼있어서 일일이 소개하는 것도 어렵고, 자칫 스포일러가 될 여지도 많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본격 미스터리의 기초부터 진수까지 골고루 맛보고 싶은 독자라면, 또 가볍고 경쾌하면서도 추리의 무게감을 견고하게 담아낸 작품을 찾는 독자라면 ‘그 살인, 본격 미스터리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는 기대 이상의 재미를 선사할 최적의 미스터리가 돼줄 거란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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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인 계획
야가미 지음, 천감재 옮김 / 반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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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미스터리 소설에 탐닉한 것은 물론 흉악한 사건을 분석하기를 즐기던 다치바나는 미스터리 소설 편집자가 되어 승승장구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좌천되며 씁쓸한 시간들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던 중 “당신을 살해하겠다”는 살인예고장이나 다름없는 익명의 미스터리 원고가 날아들자 다치바나는 묘하게 흥분하며 미스터리 편집자로서의 감각이 되살아나는 듯한 쾌감에 사로잡힙니다. 한편으론 살인예고자의 공격에 대비하면서도 다치바나는 그와의 대결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위험천만한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상황은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다치바나는 계획 자체를 전면 수정해야만 하는 위기에 처합니다.



‘대형 공포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의 작품이라는 카피를 보고 절대 평범한 미스터리는 아닐 거라고 짐작했지만, ‘나의 살인 계획’은 인물, 사건, 내용, 형식 등 모든 면에서 그 짐작을 한참 뛰어넘을 정도로 독특한 작품입니다. 또 ‘서스펜스, 심리전, 완전범죄라는 장르적 매력을 정교하게 구현한’ 것은 물론 ‘독자의 시선을 교란하는 치밀한 심리 스릴러’라는 출판사 소개글은 팩트에 가깝긴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독자에게 두통을 안길 여지가 많다는 뜻이기도 한데, 실제로 300페이지에 불과한 분량임에도 어지간히 집중하지 않으면 먼저 읽은 페이지들을 여러 번 뒤적거리는 수고를 감수해야 합니다. 


이야기의 몸통은 좌천된 편집자 다치바나가 자신을 살해하겠다고 예고한 일명 X와의 대결을 계획하다가 뜻밖의 사태에 직면하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완전범죄를 실행에 옮기는 과정입니다. 언뜻 보면 평범한 줄거리에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물도 몇 안 되는 심플한 구조지만, 작가는 챕터마다 또는 한 챕터 속에서도 수시로 ‘1인칭 화자’를 바꾸는 것은 물론 그 ‘1인칭 화자’가 누구인지조차 헷갈리게 만들며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다만 이런 의도적인 혼선은 후반부의 반전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터닦기’이긴 하지만, 독자에게 흥미를 품게 만들 수도, 짜증만 내게 할 수도 있는 양가적인 설정이란 생각입니다.

거기에다 메인 사건과는 전혀 연관 없어 보이는 인물의 이야기가 꽤 긴 분량을 차지하기도 하고, 간혹 느닷없는 도덕과 윤리와 올바름에 관한 강론이 튀어나오기도 해서 과연 이 대목들이 다치바나의 이야기와 어떻게 연결될지 궁금하게 만들곤 합니다.


신의 도움으로 완전범죄를 이룬 살인, 즉흥적인 충동에 의해 저지르는 우발적 살인, 손끝 하나 대지 않은 상태로 사회적 죽음을 유도하는 정신적 살인 등 숱한 종류의 살인이 등장하지만, 이 작품 속 ‘살인자’가 삶의 최고 희열이자 이상으로 여기는 방식은 ‘완벽하게 설계된 트릭을 통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완전범죄로서의 살인’입니다. 작가는 ‘살인자’가 어떻게 트릭을 설계하고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지를 집요할 정도로 디테일하게 그립니다. 또한 위기를 타개하고 상황을 직시하기 위해 벌이는 추리의 과정 역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듯 세세하게 묘사합니다. 그래선지 다 읽은 뒤에 어쩌면 이 작품의 미덕은 스토리나 캐릭터 자체보다 이 ‘완전범죄에 집착하는 일그러진 심리’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전형적인 미스터리와는 전혀 결이 다른, 색다른 간식을 맛본 듯한 특별한 책읽기였지만, 독자에 따라 꽤 다양하고 극단적인 반응이 나올 여지가 많아 보이는 작품입니다. 어느 분의 서평대로 이 작품만으론 야가미라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출신 작가의 진면목을 평가하기 어려워 보이는데, 두 번째 작품인 ‘臨終トーナメント(임종 토너먼트)’가 출간된다면 제 취향의 작가인지 여부를 확실히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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