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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돌아오다
사쿠라다 도모야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5년 3월
평점 :
<이 서평은 모도(@knitting79books) 서평단 자격으로 내친구의서재(@mytomobook)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매미 돌아오다’는 자칭 곤충 애호가이자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거듭 아마추어 탐정 역할을 떠맡곤 하는 30대 남자 에리사와 센이 주인공인 미스터리 연작단편집입니다. 2017년 일본에서 출간된 ‘서치라이트와 유인등’(サーチライトと誘蛾灯)에 이은 ‘에리사와 센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인데,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과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한 덕분에 시리즈 첫 편보다 먼저 소개된 것 같습니다.
곤충 애호가라는 주인공 캐릭터에 걸맞게 다섯 편의 수록작 모두 제목에 매미, 거미, 딱정벌레, 반딧불이, 파리 등 곤충이 들어가 있는데, 실제로 각 곤충은 미스터리의 핵심이자 해결의 열쇠라는 중요한 역할을 맡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가볍고 코믹한 곤충 미스터리라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16년 전 대지진 자원봉사 활동 당시 작은 마을의 신사에서 목격한 소녀 유령의 정체를 다룬 ‘매미 돌아오다’, 교차로에서 일어난 여중생의 교통사고와 아파트에서 벌어진 주부 상해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염낭거미’, 펜션에서 만난 한 외국인과의 짧고 애틋한 인연을 그린 ‘저 너머의 딱정벌레’, 한 과학잡지 편집자가 5년 전 소식이 끊긴 곤충 작가의 행방을 쫓다가 뜻밖의 사건과 마주치는 이야기를 그린 ‘반딧불이 계획’, 아프리카에서 NGO 활동을 하던 의사가 치명적인 감염병에 맞서 싸우는 격렬하고도 가슴 아픈 사연을 다룬 ‘서브사하라의 파리’ 등 모두 다섯 편이 수록돼 있습니다.

“왓더닛(What done it)이란 무엇인가? 이 책에서 그 답을 확인할 수 있다” -노리즈키 린타로
‘매미 돌아오다’의 가장 큰 특징은 “누가?”(후더닛), “왜?”(와이더닛), “어떻게?”(하우더닛)라는 일반적인 미스터리 서사와 달리 ‘무엇’에 방점을 찍은 작품이란 점입니다. 후반부에 실린 노리즈키 린타로의 해설을 인용하자면, ‘왓더닛 미스터리’, 즉 수수께끼 자체를 찾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구조를 품고 있습니다.
수록작 가운데 중반부까지도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또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바로 이 대목에서 에리사와 센의 특별한 능력이 발휘됩니다. 그는 “스쳐 지나간 말 한마디, 무심히 던진 시선,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흔적”을 통해 숨겨진 미스터리를 발견하곤 자신만의 추리를 펼쳐 끝내 진상에 도달합니다. 말하자면 그의 첫 미션은 미스터리 자체를 ‘발견’하는 거란 뜻입니다. 후더닛과 와이더닛과 하우더닛에 익숙한 독자에겐 다소 생경한 책읽기가 될 수도 있는데, 거듭 페이지를 넘기며 에리사와 센의 사고와 추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왓더닛이 얼마나 매력적인 장르인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첫 두 편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표제작인 ‘매미 돌아오다’는 호러와 미스터리와 사회파 서사의 콜라보에다 기막힌 반전과 함께 밀려드는 진한 감동까지 만끽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염낭거미’의 경우, 에리사와 센은 ‘행인1’ 수준의 작은 비중과 역할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한 사건의 전말을 꿰뚫어 보는데, 덕분에 “이런 탐정도 있을 수 있구나!”라는 독특한 느낌을 맛볼 수 있습니다. (나머지 수록작도 모두 흥미로운데, 스타일이 모두 달라서 독자마다 선호하는 수록작이 제각각일 것 같습니다)
제목과 표지에서 연상할 수 있듯 ‘매미 돌아오다’는 자극적인 설정도 없고 뛰어난 명탐정도 없는 착하고 순한 미스터리입니다. 물론 사건과 사고로 인해 잔혹하거나 안타까운 장면들이 펼쳐지기도 하고, 부당한 관습, 외국인 혐오, 자연 파괴와 유전자 조작, 선진국이 외면한 질병 등 사회파 소재를 통해 날선 비판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면 여지없이 휴먼 드라마의 따뜻함과 뭉클함을 품은 엔딩을 선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물건입니다. 아니 정말 좋은 (추리)소설입니다.”라는 출판사 인스타그램의 한마디는 이 작품의 미덕을 잘 함축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착하고 순한 미스터리 쪽 취향이 아니더라도 에리사와 센이 펼치는 왓더닛 미스터리가 궁금한 독자라면 ‘매미 돌아오다’에 관심을 가져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