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 나비클럽 소설선
김세화 지음 / 나비클럽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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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가 내리는 가운데 K대 교수가 피습당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단순 퍽치기로 여겨졌지만 한 달 후 K대 운동장에서 한 변호사가 살해당하면서 상황은 급변합니다. 두 사람 모두 다문화교류연구원과 관련 있으며 인근의 이슬람사원 건립 당시 반대여론에 맞섰다는 공통점이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언론이 종교 갈등에 초점을 맞춰 사태를 악화시키는 가운데 형사과장 오지영은 두 피해자 사이의 연관성을 찾기 위해 분투합니다. 하지만 수사는 답보 상태에 빠지고 비가 오는 날마다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이는 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언론과 여론의 비난이 폭주하고 경찰 내부의 압력까지 거세지지만 오지영은 자신이 믿는 방향으로 수사를 이어갑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단서를 통해 일련의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물을 찾아냅니다.


 

김세화의 첫 장편 기억의 저편은 기대에 비해 아쉬움이 컸던 작품이라 이후 관심작가 목록에서 그의 이름을 지웠던 게 사실입니다. ‘타오를 읽기로 한 건 ‘2024 한국추리문학상 대상이라는 수상 이력과 독자들의 호평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제가 좋아하는 사회파 미스터리였기 때문입니다. 최근 한국 미스터리가 급격한 성장을 이뤄내고 있지만 사회파 미스터리에 관한 한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아직은 청소년기정도에 그치고 있어서 타오처럼 한국형 사회파 미스터리의 새로운 작법을 제시했다.”라는 띠지를 두른 작품이라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주인공인 형사과장 오지영은 계간 미스터리 2021 겨울호에 수록된 단편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를 통해 만난 적 있습니다. 여전히 남성중심사회인 경찰 조직에서 뛰어난 수사 능력을 인정받아 형사과장에 오른 40대 여성으로 막내형사보다 더 열심히 현장을 누비고 다니는가 하면 경찰서장에게도 당당히 맞서는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타오에선 언론과 여론에게 무능한 경찰로 낙인찍혀 십자포화를 맞기도 하고 보신과 회피에 급급한 상부에 의해 문책 위기에 빠지기도 하지만 오지영은 그 모든 난관을 홀로 견뎌내며 사건의 진상을 파악해냅니다.

 

비이성적인 혐오 프레임과 저열한 선동에 휘둘리며 문제의 본질을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는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들은 어떤 폭력에 노출되는가?” (출판사 소개글 )

 

종교 갈등 또는 다문화 혐오로 몰아가는 언론과 달리 오지영은 범인의 행태에 주목하며 숨겨진 범행동기를 찾는 데 주력합니다. 그리고 연이은 피해자가 발생하는 가운데 집요한 단서 추적을 통해 모든 사건에 연관돼있는 한 인물을 찾아냄으로써 자신의 추리가 옳았음을 입증합니다. 하지만 진상을 파악하면 할수록 오지영의 마음은 참담해집니다. 사회적 약자라 할 수 있는 그 인물에게 가해진 온갖 유무형의 폭력들이 낱낱이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부와 명예와 권력을 가진 자들의 폭력은 때론 노골적으로 때론 은근한 방법으로 자행됐고 결국 어디에도 기댈 곳 없던 약자는 참혹한 비극을 맞이한 것입니다. 사회파 미스터리에서 경찰 혹은 탐정 역할을 맡은 주인공들이 늘 그렇듯 오지영 역시 범인을 밝혀내기 위해 분투하면서도 씁쓸함과 안타까움이란 마음속 누름돌에 고통스러워합니다.

 

주제와 서사 모두 사회파 미스터리에 잘 어울리게 구축됐고, 한국의 사회적 문제들을 연쇄살인 미스터리 속에 잘 녹여내서 마지막 장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야기의 전개 방식이 너무 정직해서 긴장감이 떨어진 점, 몇몇 대목(초반부 오지영이 사방에서 십자포화를 맞는 장면들, 심각한 왜곡까지 저질러가며 선정적인 뉴스를 양산하는 언론의 폐해,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 반복될 뿐인 관련자 탐문 등)에 필요 이상의 분량을 할애해서 중반부쯤 지루함을 느끼게 한 점, 그리고 경찰 쪽 인물이 너무 많다 보니 주인공 오지영의 캐릭터가 역할에 비해 덜 빛났던 점 등은 무척 아쉬웠습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앞으로 오지영 시리즈가 계속 이어질 것 같은데, ‘경찰‘40대 여성이란 두 캐릭터 모두 매력이 충분해서 미스터리 서사가 잘 받쳐준다면 앞으로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아직 김세화를 관심작가 목록에 넣을지 여부는 결정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오지영 시리즈를 한두 편 정도는 더 지켜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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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산가옥의 유령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4
조예은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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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 후 일본에서 지내던 현운주는 서른 살이 되어 외증조모 박준영이 유산으로 남긴 적산가옥 붉은담장집으로 돌아옵니다. 박준영이 유언장을 통해 서른 살이 된 해, 1년 동안 이 집에서 살아야 한다.”라는 조건을 걸고 자신에게 그 집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박준영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던 현운주는 붉은담장집의 기괴한 사연을 잘 알고 있었기에 썩 내키진 않았지만 1년 후 게스트하우스로 리모델링할 것을 계획하며 남편 우현민과 함께 붉은담장집에서의 생활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첫날부터 현운주는 유령임에 분명한 소년을 발견하곤 기겁합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현운주는 현실에서는 환시와 환청에 시달리기 시작하고, 꿈에선 외증조모 박준영의 시점으로 80년 전 붉은담장집에서 벌어진 참극을 직접 목도하게 됩니다.


 

집은 자신의 벽에 깃든 모든 역사를 기억한다. 안에 살던 사람은 죽어도 집은 남는다. 오히려 죽음으로써 그 집의 일부로 영원히 귀속된다.” (p10)

 

작품 속 현운주가 물려받은 붉은담장집의 모델인 군산시 신흥동 히로쓰 가옥을 방문했을 때 저도 모르게 호러의 무대로 딱 알맞은 공간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식민지 수탈의 상징이자 일본가옥 특유의 괴괴함을 발산하는 그곳에서 어쩌면 온갖 비극과 참극이 벌어졌을지도 모르며, 패망 후 일본인 집주인이 도망친 뒤엔 곳곳에 한이 서린 폐가가 되어 괴괴함의 농도가 한층 더 짙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불쑥 솟아올랐기 때문입니다. 끔찍하면서도 애틋하기 짝이 없는 호러 스토리인 조예은의 적산가옥의 유령은 저의 그 상상이 완벽하게 구현된 이야기라 마지막 장까지 남다른 느낌으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2020년대 붉은담장집을 물려받은 현운주가 유령 소년을 목격하곤 공포에 사로잡혀 나날이 피폐해져가는 이야기와 1940년대 박준영이 붉은담장집에 입주간호사로 들어와 15살 소년 유타카의 치료를 맡으며 겪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번갈아 전개됩니다.

현운주의 이야기가 유령소년을 목격한 이후 겪게 된 환청과 환시와 악몽의 연속이라면, 박준영의 이야기는 80년 전 붉은담장집에서 벌어진 참극의 세세한 내용과 함께 후일 현운주 앞에 유령으로 나타나게 될 소년 유타카의 비극적인 일생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왜 대를 건너뛰어 증손녀 현운주에게 붉은담장집을 물려준 건지, 왜 굳이 서른 살이 됐을 때 1년 동안 이 집에 머물라는 유언장을 남긴 건지, 또 왜 유타카의 유령이 현운주 앞에 나타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담담하게 서술합니다.

 

200여 페이지에 불과한 분량이지만 마치 600페이지에 육박하는 스티븐 킹의 호러물을 읽은 듯한 느낌입니다. 몇 안 되는 등장인물에도 불구하고 갖가지 호러 코드와 미스터리 서사가 빈틈없이 직조된 데다 독자의 예상을 뛰어넘는 반전이 잇따라 벌어지기 때문에 체감되는 이야기의 밀도와 농도가 그만큼 높고 진하다는 뜻입니다.

특히 스티븐 킹의 샤이닝에 등장하는 호텔 오버룩을 연상시키는 적산가옥 붉은담장집의 매력 역시 분량 대비 고밀도의 이유 중 하나인데, 박준영과 현운주가 80년의 시차를 두고 겪는 서로 다른 색깔의 공포도 흥미롭지만 호러의 원천이자 살아 숨 쉬는 괴물과도 같은 붉은담장집이 내뿜는 기괴함은 주인공들 못잖게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80년의 간극을 둔 괴담과 공포와 유령의 이야기는 막판에 이르러 현실의 사건과 접점을 갖게 됩니다. 환청과 환시와 악몽에 시달리던 현운주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벗어나는 과정과 함께 여러 가지 미스터리도 밝혀집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호러 코드가 깔끔하게 현실적으로설명되는 것은 아닙니다. 호러는 호러대로, 미스터리는 미스터리대로 나름의 여운을 남기면서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색깔은 전혀 다르지만 미쓰다 신조의 도조 겐야 시리즈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조예은은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직접 읽은 작품이라곤 앤솔로지 도시, 청년, 호러에 수록된 단편 보증금 돌려받기밖에 없었습니다. 제목에 이끌려 읽은 적산가옥의 유령덕분에 그녀의 진가를 만끽하게 됐는데, 전부는 아니더라도 낯익은 제목의 작품들만이라도 찾아 읽어보려고 합니다. “오직 호러만이 죽은 자가 죽은 입으로 자신의 소리를 낸다. (실체 없는 유령들은) 육체가 사라졌어도 집요하게 남아 말을 건다. 나는 그 지독함과 애달픔이 좋다.”라는 작가의 말이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입니다.

 

사족으로... 인터넷서점의 소개글을 보면 나름 이 작품의 스포일러라 할 만한 내용들이 꽤 많이 공개돼있습니다. 막판에 밝혀지는 결정적인 반전까지 담겨 있어서 이래도 되나?”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아직 이 작품을 읽지 않은 독자라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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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실의 악마
최필원 지음 / 북오션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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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중석 스릴러클럽버티고 시리즈등을 기획했으며 네이버 카페 러니의 스릴러 월드운영자이자 영미권 스릴러 번역가로 활동 중인 최필원의 소설집입니다. 실은 고해실의 악마가 최필원의 첫 소설집이라고 짐작했는데, 책날개의 소개글을 보니 2000년대 초반에 이미 여러 편의 소설을 발표한 적 있으며, ‘고해실의 악마에 수록된 단편들 가운데 일부는 계간 미스터리를 비롯한 다양한 공모에 당선된 작품들이었습니다.

모두 15편이 수록돼있는데 그중 4편은 한 작품(표제작인 고해실의 악마’)이나 마찬가지여서 실제 수록작은 12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표제작을 제외하곤 한 작품 당 평균 20~30페이지 분량이지만 제일 짧은 건 4페이지에 불과한 경우도 있고, 소재도 살인, 이라크전쟁, 복수, 사이코패스, 스너프필름, 가정폭력 등 무척 다채로워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고해실의 악마를 표제작으로 선정한 이유는 아마도 다른 수록작들에 비해 압도적인 서사와 분량 때문으로 보이는데, 개인적으론 (모든 수록작을 아우르는) 이 소설집에 가장 잘 어울리는 제목 역시 악마가 아닐까 싶습니다. 복수에 눈이 멀어 스스로 악마의 길을 자처한 인물도 있고, 악마의 피가 온몸에 흐르는 타고난 사이코패스도 있는 반면, 사소한 다툼을 벌이다가 순간적으로 악마의 기질이 폭발하는 인물도 등장합니다. 말하자면 다양한 스펙트럼의 악마가 이끄는 이야기라고 할까요?

 

표제작인 고해실의 악마10년 전 끔찍한 사고 이후 신부의 길을 걷게 된 한 남자가 우연히 고해성사를 통해 10년 전 사고의 진실을 알게 된 뒤 벌어지는 참극을 다루고 있어서 비극적인 미스터리와 오컬트 호러의 냄새를 진하게 맛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아무런 공통점도 없지만 최필원 본인이 번역했던 폴링 엔젤이 문득 떠오르기도 했는데, 단편영화로 만든다면 괜찮은 호러영화가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외에 초단편이지만 반전의 맛이 짜릿했던 시스터즈’, 뜻밖의 사이코패스 캐릭터가 흥미진진했던 작가의 여자비명’, 잔인한 블랙코미디 풍의 아들의 취미’, 악마라는 테마와는 무관했지만 불쑥 소름이 돋았던 태동등이 눈길을 끈 작품들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수록작에 살인과 폭력이 등장하고 그 수위 역시 만만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담담하고 간결한 문장들 때문에 읽는 동안엔 머릿속에 잔혹한 이야기로 입력되지 않았는데, 다 읽은 뒤 각 수록작의 줄거리를 요약하면서 이거, 진짜 센 이야기였네.”라고 뒤늦게 놀란 경우가 꽤 많았습니다. 그래선지 개인적으론 담담하고 간결한 문장들 대신 작가 자신이 번역했던 독한 영미권 스릴러 스타일로 쓰였다면 좀더 독자들에게 강하게 어필할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일부 작품에서 반전이 쉽게 예상된 점이나 너무 정직한 구성 때문에 재미가 반감된 점도 아쉬움으로 남았는데, 이는 어쩌면 취향의 차이 탓일 수도 있어서 나중에 다른 독자들의 서평도 찾아보려고 합니다.

 

인터넷서점의 작가 소개글에 따르면 틈틈이 신작 소설 재스퍼마계촌을 집필 중이라고 하는데, 제목만 봐선 전혀 다른 장르(스릴러 vs SF호러?)의 작품일 것 같아서 궁금증이 일기도 합니다. ‘고해실의 악마가 좋은 반응을 얻어서 집필 중인 신작 소설들도 머잖아 독자들과 만나게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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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라토 : 거세당한 자
표창원 지음 / &(앤드)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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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금요일 밤마다 도심 한복판 곳곳에서 절단된 남성 신체의 일부가 발견됩니다. 자극적인 언론에 의해 카스트라토 사건이란 이름까지 붙은 가운데 피해자들이 성범죄자였다는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여론은 들끓기 시작합니다. 단서 하나 못 잡아 궁지에 몰린 경찰은 결국 강력사건 수사역량 강화를 위해 특별히 설치된 ACAT까지 동원하며 각 분야의 전문가와 베테랑을 투입합니다. 하지만 밝혀진 거라곤 범인이 여러 명이라는 점, 성범죄자를 노린 주도면밀한 사적 복수라는 점, 피해자들의 생사가 불확실하다는 점뿐입니다. 첫 사건을 맡았던 인왕경찰서 강력5팀장이자 프로파일러 이맥은 ACAT와의 협업을 통해 조금씩 사건의 진상을 파악해내는데, 문제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과거 속 불편한 사실들과 자꾸만 마주치게 된다는 점입니다.


 

카스트라토(변성기 이전에 거세되어 고음역대를 소화할 수 있게 된 남성 가수)라는 소재 자체도 눈길을 끌었지만,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프로파일러 표창원의 첫 소설이라 관심을 갖게 된 작품입니다. 의사가 쓴 메디컬 소설이나 변호사가 쓴 법정물처럼 좀더 전문적인 묘사와 꼼꼼한 디테일을 접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프로파일러의 활약이나 사적 복수 모두 좋아하는 소재들이라 주인공 이맥의 행보도, 범인들의 정체와 범행 전반에 관한 묘사도 무척 기대가 됐습니다. 특히 거세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성범죄자를 사적으로 응징하는 범인들에게 곧바로 이입이 되어 응원하는(?) 마음까지 들면서 과연 이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더불어 적잖은 분량을 통해 소개되는 이맥의 불행했던 과거들이 카스트라토 사건과 어떤 식으로 접점을 갖게 될지도 호기심을 자극한 요인 중 하나입니다.

 

나름 여러 면에서 기대를 가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꽤 야박한 평점을 주고 말았는데, 첫 번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인 프로파일러 표창원의 전문적인 묘사와 꼼꼼한 디테일입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소설이 아니라 프로파일러 개론을 강의하는 교수의 강의노트를 읽는 듯한 느낌을 여러 곳에서 받았다는 뜻입니다. 전문성도 디테일도 좋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할 정도로 과도했던 탓에 스킵하듯 건너 뛴 페이지가 적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는 이맥의 과거와 현재의 사건 사이의 접점이 다소 억지스러울 정도의 우연들로 채워진 점입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사건에 연루된 적잖은 인물들이 이맥의 과거에 한번쯤은 등장했던 자들이며, 그야말로 오랜만에 그것도 난데없이 이맥 앞에 나타나곤 합니다. 클라이맥스와 엔딩에 이르면 이 억지스러운 우연들이 반드시 필요했던 설정이란 걸 알게 되긴 하지만, 독자조차 매번 ?”라며 의아하게 여길 그 우연들을 정작 당사자인 이맥이 눈치 채지 못한 점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세 번째는 이맥과 ACAT가 용의자를 선정하는 과정이 어이없을 정도로 쉽고 단순하다는 점입니다. 드넓은 모래사장에서 별 어려움 없이 작은 바늘 하나를 찾아낸 느낌이랄까요? 심지어 사건 자체와 아무 연관 없는 특정인물을 오로지 감 때문에용의선상에 올리는 대목에선 웃음이 날 정도였습니다. 이어지는 수사 과정 역시 곳곳에서 허술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비약으로 채워져 있어서 긴장감을 오히려 떨어뜨리곤 했습니다.

 

여러 이유를 대긴 했지만 야박한 평점의 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소설로서의 재미와 완성도가 떨어진다.”입니다. 확실하게 기억에 남은 건 프로파일러 개론뿐이고, 주인공 이맥의 캐릭터나 사적 복수극의 긴장감이나 범죄스릴러 서사의 매력은 그다지 와 닿지 않았습니다. 특히 이맥의 경우 불행했던 과거사 외에는 단편적인 정보들만 산발적으로 소개돼서(가령 이맥의 지독한 우울증은 초반에 딱 한 줄만 언급된 뒤론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생생한 인물상을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작가의 말을 보면 이맥을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를 구상 중인 것 같은데, 다음 작품에선 프로파일러 표창원의 전문적인 묘사와 꼼꼼한 디테일보다는 이야기 자체에 좀더 공을 들였으면 좋겠습니다. 겉모습과 스펙은 완벽하지만 인간미보다는 인공미가 더 강해 보였던 이맥에 대해서도 좀더 많은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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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시체를 부탁해
한새마 지음 / 바른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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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미스터리 잔혹범죄전담팀 라플레시아걸로 처음 만났던 한새마의 미스터리 단편집입니다. 여러 편의 앤솔로지나 수상작품집에서 자주 이름을 목격했던 터라 큰 기대를 갖고 읽었던 잔혹범죄전담팀 라플레시아걸은 여러 면에서 다소 아쉬움이 남았었는데, 그에 반해 엄마, 시체를 부탁해는 단편 미스터리의 미덕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어서 자칫 모르고 지나칠 뻔했던 한새마의 내공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모두 일곱 편의 작품이 수록돼있는데, 여러 장르의 미스터리와 스릴러(도메스틱, SF, 호러, 본격+사회파 등)를 맛볼 수 있습니다. 여성노숙자, 10대의 집단 괴롭힘과 성매매, 이식용 장기 배양, 산후우울증, 간병살인, 소시오패스에 가까운 관종 등 다양한 소재도 눈길을 끌지만 서사와 주제도 묵직하고 문장의 깊이와 찰진 맛도 매력적이어서 잔혹범죄전담팀 라플레시아걸의 서평 때 묘사가 가볍거나 수박 겉핥기식으로 듬성듬성 이뤄지는 미스터리라고 지적했던 일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웠던 건 표제작인 엄마, 시체를 부탁해를 비롯하여 거의 모든 작품에 극과 극에 달할 정도로 캐릭터가 상반된 엄마들이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폭력과 불행에 굴복한 채 어린 딸에게 환상을 강요한 엄마, 명탐정 못잖은 추리력과 대범함을 지닌 엄마, 모성이 파괴된 상태에서도 끝까지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엄마, 욕망과 탐욕에 찌들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 엄마 등 다소 파격적인 인물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일부 작품에서 엄마의 영향을 받은 이 태연한 얼굴로 누군가의 목숨을 가볍게 훔치는 소시오패스로 그려진 점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인상 깊게 읽은 작품들을 간단하게 요약해보면...

낮달은 정유정의 ‘28’을 연상시키는 디스토피아로 막을 연 뒤 참혹한 현실 이야기로 마무리되면서 깊은 여운을 남겼고, ‘마더 머더 쇼크는 반전을 품은 도메스틱 스릴러의 찐맛을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시점을 바꿔가며 전개되는 엄마이자 살인자의 이야기입니다.(수록작 가운데 저의 원픽입니다) 자살로 종결된 사건이 한 기자의 집요한 탐문을 통해 뜻밖의 진상을 드러내며 타살로 입증되는 과정을 그린 어떤 자살은 형식과 내용 모두 독특해서 좋았고, 사고 후 기억을 잃은 여자가 조금씩 진실을 눈치 채가는 이야기를 다룬 잠든 사이에 누군가는 단편만의 매력과 짜릿한 반전이 일품인 스릴러입니다.

 

잔혹범죄전담팀 라플레시아걸의 아쉬움 때문에 읽을까 말까 주저했던 게 사실인데, ‘엄마, 시체를 부탁해는 기대 이상의 만족감과 함께 단편에서만이 가능한 작지만 알찬 미스터리의 힘과 미덕을 맛볼 수 있게 해줬습니다. 아직 한새마와 만난 적 없는 독자라면, 또 탄탄한 한국 단편 미스터리를 찾는 독자라면 엄마, 시체를 부탁해를 읽어볼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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