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로레스 클레이본 스티븐 킹 걸작선 4
스티븐 킹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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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뉴잉글랜드의 작은 섬 리틀톨에서 대저택에 홀로 살던 자산가 베라 도노반이 계단에서 추락해 사망합니다. 수십 년간 그녀를 모셔왔던 60대 여성 돌로레스 클레이본은 그 죽음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살해용의자로 지목당합니다. 경찰에 출두한 돌로레스는 괴팍하기 짝이 없는 주인마님이자 말년엔 중풍 때문에 대소변까지 받아내야 했던 베라와의 오랜 애증의 역사는 물론 29년 전 개기일식이 벌어지던 날 남편 조를 살해한 일까지 포함하여 길고도 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언젠가는 읽어야지, 마음만 먹고 있던 스티븐 킹의 돌로레스 클레이본을 드디어 읽었습니다. 캐시 베이츠 주연의 영화도 보고 싶었지만 소설을 먼저 읽은 뒤로 미뤘는데, 영화도 잘 만들어졌다고들 하지만 아무래도 원작의 힘을 따라가기는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호러 킹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킹이지만 돌로레스 클레이본은 그가 얼마나 뛰어난 이야기꾼인지, 복잡다단한 인간의 내면과 심리를 얼마나 소름 끼칠 정도로 섬세하게 그려내는 작가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수십 년에 걸친 악연과 애증이 기어이 두 여자 돌로레스와 베라를 하나로 묶어주는 휴먼드라마이자 가끔은 살아남기 위해서 거만하고 못된 년이 되어야 해.”라는 교훈에 따라 가부장적이고 거만하고 폭력적인 남편을 통쾌하게 단죄하는 서스펜스 스릴러이기도 합니다. 자식들을 지켜내기 위해 분투하는 돌로레스의 처절한 모성애라든가 극악스런 겉모습과 달리 새카맣게 탄 속으로 수십 년을 버텨온 베라의 고통스런 인생 역정도 독자의 눈길을 끄는 대목입니다.

 

물론 킹의 주 무기인 호러라는 양념도 아쉽지 않을 정도로 곳곳에 뿌려져있습니다. 지극히 사실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개기일식이라는 기묘한 우주현상, 사람의 얼굴을 닮은 먼지덩어리 유령, 소름끼치는 비명과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난무하는 악몽 등 킹 특유의 생생한 호러 코드가 위화감 없이 자연스럽게 녹아있어서 이야기의 볼륨감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줍니다.

 

한 사람은 남편에게 물려받은 어마어마한 재산을 지닌 자산가이고, 또 한 사람은 주정뱅이에 폭력적인 남편에게 시달리며 평생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가정부 겸 하녀 신세지만 베라와 돌로레스의 삶은 실은 데칼코마니에 가깝습니다. 특히 기쁨이나 행복보다는 절망과 고통에 잠식된 시간이 훨씬 많았다는 점까지 닮은 탓에 두 여자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것은 무척이나 무겁고 편치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흥분, 분노, 욕지거리, 폭소, 비애가 모두 뒤섞인 변화무쌍한 태도로 두 명의 경찰과 한 명의 속기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돌로레스 덕분에 독자 역시 롤러코스터를 탄 듯 다양한 감정에 휩싸이며 책장을 넘길 수 있습니다. 웃고 있지만 눈물이 나고, 눈물이 나지만 피식 웃음이 나오고 마는, 그런 특별한 책읽기라고 할까요?

 

가끔 별난 간식을 챙기듯 스티븐 킹의 초중기 작품들을 읽곤 하는데, ‘돌로레스 클레이본은 그중에서도 좀더 특별한 맛을 만끽한 작품입니다. 조만간 캐시 베이츠가 열연한 영화를 볼 생각인데, 원작을 떠올리며 영화를 보면 그 맛이 더욱 깊고 진하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킹의 팬이 아니더라도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읽어볼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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