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나리는 가운데
내친구 나무에
한 무더기 새들이
날아와 앉았다.
한눈에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다시 얼어 붙고 있는 근래 들어
드문 일이다
후다닥
내친구 몸을 뒤흔들어 대면서
새들 여럿이
되날아가 갔다.
꼭대기에 한마리만 바보스레
남아 있는가 했더니
날아 갔던 새들이
다시 와
나무 위에 무리를 이루었다.
이번에도 새들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들은 다시 날아 갔고
이제는 다른 한마리가
나무의 펑퍼짐한 엉덩이 근처에 머물렀으나
전처럼 다른 새들을 불러 들이지 못했다.

남아 있던 한마리 새가
떠나가는 무리를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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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0-01-28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시건에도 눈이 많이 오겠네요. 꼼미님 때문에 미시건을 찾아 봤더니 역시 미북부에 있네요. 눈 나리는 날들이 많을 것 같아요. 공부하러 떠나신 것 같은데 좋은 소식 사진으로도 올려주세요. 님 덕분에 미시건을 떠올리는 날들도 잦아질지도... 좋은 시 써주세요. 즐감하러 올게요.

꼼미 2010-01-28 09:45   좋아요 0 | URL
눈오는거 싫어 하는 사람에겐 미안하지만, 허구 헌날 눈이 와서 좋아요. 미국 오실 일 있으면 연락 하세요. 미시건이 아니면 핑계거리 만들어 제가 찾아갈지도...^^
 




나는
나무 앞에 서 있다
나무 밑에 서 있다
나무 옆에 섰다가
나뭇 가지 사이에 섰다
나무 속에 서 있다
나무 위에 서 있다
나무 아래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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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은나무                                                              견디는나무


친구 없이 지내는 나날이고 보니 무심한 나무가 친구다.
무심한 자연을 견딜 수 없어서 사람은 신을 만들어 냈다는데.
나는 마음 나눌 친구를 만들 생각은 않고 무심한 나무와 친구가 됐다.
마루 문을 열고 나가면 매순간 다른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는 나무.
누가 자연을 무심하다고 할까.
나는 그저 얼마 후면 저 나무를 바칠 한 줌 흙이 될 뿐이다.
그러니 나무와 내가 친구인 것은 내가 나기 전부터였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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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는 슬픔

김용락


뜨락에 서 있는 나무를 보면서
문득 세월이 흐르고 한 두 살씩
나이를 더 먹는 것이 슬픈 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잎이 청정한 나무처럼
우리가 푸르고 높은 하늘을 향해
희망과 사랑을 한껏 펼 수 없을 만큼
기력이 쇠잔하고 영혼이 늙어서가 아니다.
또한 죽음 그림자를 더 가까이 느껴서도 아니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내가 마음속 깊이 믿었던 사람의
돌아서는 뒷모습을 어쩔 수 없이 지켜봐야 하는
쓸쓸함 때문이다.
무심히 그냥 흘려 보내는 평범한 일상에서나
혹은 그 반대의 강고한 운동의 전선에서
잠시나마 정을 나누었던 친구나
존경을 바쳤던 옛 스승들이 돌연히 등을 돌리고 떠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것은
나이를 먹기 전에는 모르던 일이었다.
돌아서는 자의 야윈 등짝을 바라보며
아니다 그런 게 아닐 것이다 하며
세상살이의 깊이를 탓해 보기도 하지만
나이 먹는 슬픔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벽처럼
오늘도 나를 가두고 있다.




역시나 오래된 공책에 베껴진 시다. 나는 그때도 (내가 떠났거나 나를 떠난 사람들이 별로 없었을 그 시절) 더 이상 만나지 않을 길로 향하게 된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던가. 그 사람에 대한 신뢰를 버린 게 나였는지 그 사람이었는지 지금은 모르겠다. 그게 누구였든 우리가 가졌던 서로에 대한 신뢰는 더이상 온전하지 않다는 것만 분명할 뿐. 사람이란 다 각자의 길을 갈 뿐인데 사랑하고 믿었을 땐 우리가 다른 길에 있어도 그 사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으나 그 사랑과 믿음에 금이 갔을 땐 그 사람을 떠올리는 순간마다 아픔이 느껴졌다.

현상으론 달라진게 없어도 관계의 내용은 산자와 죽은자 사이의 거리만큼 허망해졌다. 살면서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이 되돌릴 수 있는 것만큼이나 많다는 걸 뼈저리게 맛보게 된거다. 우린 더이상 가까워 질 수 없나보다 생각하게 되는 것, 그게 나이를 먹는 일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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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0-01-28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로에 대한 신뢰는 더이상 온전하지 않다>는 말 넘 공감되고 가슴 아파요. 더이상 온전하지 않은 신뢰를 힘겹게 지탱하는 것,도 숱한 만남 중의 한 부분이더라구요. <산자와 죽은자 사이의 거리만큼 허망>해져서는 안 되도록 노력하고 싶어요. 내 맘이 불편하니...

꼼미 2010-01-28 09:42   좋아요 0 | URL
꼭 사건의 구체적 내용을 알고 얘기 하시는 것 같아 신기하네요... 우리 같은 일 경험한 건 아니죠?^^
 




창밖으로 늘 낯선 바람이 불고
머물렀던 것들은
흔적도 없이 떠났다
빈 그릇에 번진
시간의 얼룩은 닦아도 닦아도
뽀얘지지 않았다
어떤 것은 세상의 경쟁에
몸을 내던져 승자가 되었다 하고
어떤 것은 세상의 경쟁 속에서
뜻없이 죽어갔다는 소식이었다
그걸 알려 준 건
저 바람이었는지
아니면
외로운 식탁 앞에 어지럼증처럼
다만 스친 꿈이었는지
눈을 뜨면 곁에 있는 건
오로지
격자 무늬 창문과
그 앞을 지나는 낯선 바람 뿐이었다



1월의 미시건에 비가 오는 날이다. 내 마음이 멍 해질 때 생각나는 건, 엄마다. 상식적인 남편과 건강한 자식 셋을 두고도 점심이건 저녁이건 무심히 혼자 밥을 먹었을 엄마. 그런 아무 것도 아니었을 엄마의 일상을 엄마가 공기가, 흙이, 되어버린 지금 하루에도 몇번씩 떠올리다니. 가족을 넉넉히 두고도 텅빈 집에서 혼자 끼니를 챙겨 먹는 여자를 생각하는 게 이렇게 가슴 아픈 일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고 고백하게 되다니.

한쪽 방에는 휴일의 한가로움을 즐기는 내 아이들이 있고 동거남은 생활의 전선을 다진다고 연구실로 나간 아무 일도 없는 아주 평범한 일요일 오후에 나는 할일없이 설거지 통에 담긴 접시 위의 얼룩들을 보면서 시간이 지날 수록 짙게 번져가는 기억들을 주어 삼킨다. 그것들 때문에 내 삶이 아픈 걸까 아님 넉넉한 걸까 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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