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현우의 <로쟈의 저공비행>과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를 읽으면서 책읽기의 폭이 넓어져 혼자 환호하고 있다. 두 책이 밝혀주는 다양한 문학과 인문학의 지도들을 들고 우선 무신론과 관련된 나의 관심을 바탕으로 존재론과 진화이론을 읽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관심의 근저에는 무엇보다 미국에 와서 한국 사람들의 강한 종교적 경향에 이젠 정말 지겨워져서 많은 시간을 혼자 지내게 된 내 최근 일상이 있을 것이다. 기독교계 사립 초등학교를 다닐 때 받은 세뇌(?)로 잠시 신의 존재를 인정했던 때를 제외하곤 철나면서 내내 신은 없고 종교는 사람에게 필수 요소가 아니라 비타민이나 수면제 같은 일상의 보조제로 생각해 온 것 같다. 그렇다고 아직까지 한번도 다윈의 진화론을 열심히 읽거나 공부해 본 적도 없고 인기 폭발의 저자 리차드 도킨스의 책을 읽은 적도 없었으니 시간 여유가 있는 지금 이들을 통해 홀로 공부의 깊이와 재미를 느껴보면 어떨까 싶은 거다.

그래서 잡은 책이 리차드 도킨스다. 꼼지가 구입하여 읽은 저자의 저작 두 권, The God Delusion 과 The Blind Watchmaker 가 있기 하지만 리차드 도킨스의 적지 않은 목록을 거꾸로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에 관한 독서 첫 책으로 The Greatest Show on Earth 를 Barnes & Noble 서점에 가서 덥석 구입하고 읽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도킨스의 책이 왜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는지 대번 느낄 수 있을 만큼, 가늠할 수 없을만큼 방대한 그의 지식이 거대한 실타래에서 가는 실가락이 술술 풀려 나오듯 글의 흐름이 좋고 편안했다.

The Greatest 를 읽으면서 도서관에서 함께 읽어 보면 좋을 것 같아 A Devil's Chaplain 을 도서관에서 대출했다. The Greatest 는 그가 서문에 밝힌 대로 다윈의 진화론을 증거하는 실례들을 마치 사진을 펼쳐 놓고 구경하며 수다떨듯 이야기 하는 책이라면 A Devil's Chaplain 은 그의 사상과 견해들을 현실의 다양한 논의에 적용한 에세이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A Devil's 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제목은 "A prayer for my daughter" 였다. 이미 청소년이 되었지만 그의 딸이 열 살일 때 우연한 기회로 겸사 겸사 쓰게 된 이 편지형식의 글은 열 살 열 두 살인 번개와 호빵에게도 나중에 읽어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

이 편지의 내용이 어떠할 거라는 건 다음의 이야기를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I had always been scrupulously careful to avoid the smallest suggestion of infant indoctrination, which I think is ultimately responsible for much of the evil in the world. Others, less close to her, showed no such scruples, which upset me, as I very much wanted her, as I want all children, to make up her own mind freely when she became old enough to do so. I would encourage her to think, without telling her what to think.

아무 것도 모르는 백지 같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증명되지 않은 '믿음'을 전하면서 그들에게 얼마나 잘못된 시각과 편견과 믿음을 줄 수 있는가. 사회 전체가 그걸 방임하는 동안 아이들은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사실이 아닌지를 가리는 '비판적 사고' 능력을 제대로 키울 수는 없을테다. 그런 비판적 사고 능력을 키우지 않고 어떻게 사람 종이 미래에 더 나은 진화를 맞이 할 수 있을까 하는 게 저자의 딸을 보며 느낀 안타까움이 아니었을까.

그의 딸에게 들려 주는 이야기는 그가 The Greatest 의 첫부분에서 강조하는 '사실'과 '믿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이다. 그가 설명하는 사실과 믿음의 차이에 대해 간단히 말하자면, 그건 증명된 모든 사실은 믿을 수 있되, 모든 믿음이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과학은 우리가 믿고 진리로 여길 수 있는 '사실'이지만 종교나 전통 등은 사실 또는 진리가 될 수 없는 단순한 '믿음'이라는 말이다.

종교나 전통에 대한 그의 시각은 '만들어진 전통' 이나 에드워드 새드가 지적하는 문화라는 이름 아래 권위적 조직들이 전파하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경고와도 통한다.

People believe things simply because people have believed the same thing over centuries. That's tradition.  ... If you make up a story that isn't true, handing it down over any number of centuries doesn't make it any truer! (p.243)

전통은 정당한 논리와 증거를 포함한 사실, 진리, 또는 진실이 아니다. 그저 누구라도 이야기를 만들어 몇 세대를 거쳐 전하게 되면 그게 마치 사실인양 많은 사람들이 믿고 따르며 때론 거역할 수 없는 전통이 된다고 리차드 도킨스는 말한다. 위의 인용구에서 보듯, 그건 처음부터 사실이나 진리가 아니었고 영원히 참이 될 수는 없는 만들어낸 이야기일 뿐이라고 강조하면서.

종종 사람들이 계시나 직감으로 자신의 믿음이 사실임을 주장하는 것도 되짚는다.

People sometimes say that you must believe in feelings deep inside, otherwise you'd never be confident of things like 'My wife loves me'. But this is a bad argument. There can be plenty of evidence that somebody loves you. All through the day when you are with somebody who loves you, you see and hear lots of little titbits of evidence, and they all add up. It isn't a purely inside feeling, like the feeling that priests call revelation. (p.246)

그가 전통이나 신념이나 직감 같은 것들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동물들이 생존의 본능(관습 또는 관행)을 따라 살듯이 사람도 그렇다. 사람도 동물이니까. 전통은 사람이 살아가는 (생존해 가는) 모습 그 자체이기도 한거다. 하지만...

I want to try to explain why tradition is so important to us. All animals are built (by the process called evolution) to survive in the normal place in which their kind live. Lions are built to be good at surviving on the plains of Africa. Crayfish are built to be good at surviving in fresh water, while lobsters are built to be good at surviving in the salt sea. People are animals too, and we are built to be good at surviving in a world full of ... other people. .... We 'swim' through a 'sea of people.' Just as a fish needs gills to survive in water,r people need brains that make them able to deal with other people. Just as the sea is full of salt water, the sea of people is full of difficult things to learn. (p.246)

위에서 인용한 문단을 소리내서 읽어 보면 도킨스의 설명은 시적이고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딸에게 하는 말이라 더욱 그런가 싶게....  "사람은 사람의 바다 속에서 헤엄치는 동물이란다" 라는 그의 말에서는 거칠고 너른 사람의 바다 속에서 우리의 종(사람)이 잘 살아 남으려면 서로 더욱 협력하고 윤리적이 되어야 한다는 깊은 울림이 퍼져 나온다.

우리는 이 '사람의 바다에서 잘 헤엄치기' 위하여 각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배운다고 그는 말한다. 각각의 언어나 문화가 진리여서 믿고 따르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건 단지 '전통'으로서 잘 생존하기 위한 수단이나 도구 같은 거라고.

... they (children) are likely to believe anything the grown-ups tell them is true and based on evidence, or at least sensible. But if some of it is false, silly or even wicked, there is nothing to stop the children believing that too. .... Well, of course, they tell it to the next generation of children. So, once something gets itself strongly believed  - even if it is completely untrue and there never was any reason to believe it in the first place - it can go on forever.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종교적 믿음을 갖고 그 차이 때문에 수없는 생명을 죽이며 싸운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믿음의 실체라는 것은 그저 그들이 어릴때부터 듣고 또 들어온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며 그에 대한 믿도 끝도 없는 신뢰가 때론 우리의 종을 위기에 빠지게 한다는 점을 저자는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 it can't be true that different religions are right in their own countries, because different religions claim that opposite things are true.

그러니까 그에게 fact, evidence, science 같은 것들은 사람이란 종의 바람직한 진화를 위해 사람 사회에서 belief, tradition, authority, revelation 보다 위에 놓여야 하는 하는 단어들인 것이다.

이 글의 마지막 문단은 다음과 같다.

And next time somebody tells you that something is true, why not say to them: 'What kind of evidence is there for that?' And if they can't give you a good answer, I hope you'll think very carefully before you believe a word they say.

Your loving
Daddy

번개와 호빵과 이 글을 함께 다시 읽어 보려고 한다. 나 역시 리차드 도킨스와 똑같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I want all children, to make up her own mind freely when she became old enough to do so. I would encourage her to think, without telling her what to 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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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므느와르 2010-03-31 0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꼼미님, 아침에 자료 찾으러 알라딘 들렀다가 안부 물어요. 님 리뷰는 잘 못 읽은 상태에서 님 소식 궁금해서 들러 봤어요. 많이 바쁘신가 봐요.

꼼미 2010-04-02 01:25   좋아요 0 | URL
바쁜 건 아닌데, 난 왜 그냥 살지 못하고 블로그질(?)인가 하는 생각이 또 엄습해서 좀 멀리하고 있었죠.^^ 아이폰으로 들어온 팜므님 댓글 보았을 때 너무나 반갑고 좋았어요. 가슴이 울컥할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