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 슬픔

김용락


뜨락에 서 있는 나무를 보면서
문득 세월이 흐르고 한 두 살씩
나이를 더 먹는 것이 슬픈 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잎이 청정한 나무처럼
우리가 푸르고 높은 하늘을 향해
희망과 사랑을 한껏 펼 수 없을 만큼
기력이 쇠잔하고 영혼이 늙어서가 아니다.
또한 죽음 그림자를 더 가까이 느껴서도 아니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내가 마음속 깊이 믿었던 사람의
돌아서는 뒷모습을 어쩔 수 없이 지켜봐야 하는
쓸쓸함 때문이다.
무심히 그냥 흘려 보내는 평범한 일상에서나
혹은 그 반대의 강고한 운동의 전선에서
잠시나마 정을 나누었던 친구나
존경을 바쳤던 옛 스승들이 돌연히 등을 돌리고 떠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것은
나이를 먹기 전에는 모르던 일이었다.
돌아서는 자의 야윈 등짝을 바라보며
아니다 그런 게 아닐 것이다 하며
세상살이의 깊이를 탓해 보기도 하지만
나이 먹는 슬픔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벽처럼
오늘도 나를 가두고 있다.




역시나 오래된 공책에 베껴진 시다. 나는 그때도 (내가 떠났거나 나를 떠난 사람들이 별로 없었을 그 시절) 더 이상 만나지 않을 길로 향하게 된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던가. 그 사람에 대한 신뢰를 버린 게 나였는지 그 사람이었는지 지금은 모르겠다. 그게 누구였든 우리가 가졌던 서로에 대한 신뢰는 더이상 온전하지 않다는 것만 분명할 뿐. 사람이란 다 각자의 길을 갈 뿐인데 사랑하고 믿었을 땐 우리가 다른 길에 있어도 그 사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으나 그 사랑과 믿음에 금이 갔을 땐 그 사람을 떠올리는 순간마다 아픔이 느껴졌다.

현상으론 달라진게 없어도 관계의 내용은 산자와 죽은자 사이의 거리만큼 허망해졌다. 살면서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이 되돌릴 수 있는 것만큼이나 많다는 걸 뼈저리게 맛보게 된거다. 우린 더이상 가까워 질 수 없나보다 생각하게 되는 것, 그게 나이를 먹는 일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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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0-01-28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로에 대한 신뢰는 더이상 온전하지 않다>는 말 넘 공감되고 가슴 아파요. 더이상 온전하지 않은 신뢰를 힘겹게 지탱하는 것,도 숱한 만남 중의 한 부분이더라구요. <산자와 죽은자 사이의 거리만큼 허망>해져서는 안 되도록 노력하고 싶어요. 내 맘이 불편하니...

꼼미 2010-01-28 09:42   좋아요 0 | URL
꼭 사건의 구체적 내용을 알고 얘기 하시는 것 같아 신기하네요... 우리 같은 일 경험한 건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