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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시사인 만화 - 신세기 시사 전설 굽시니스트의 본격 시사인 만화 1
굽시니스트 지음 / 시사IN북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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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야할지, 울어야 할지...'


'신세기 시사 전설' 굽시니스트의 <본격 시사인 만화>를 몇 페이지 넘겨보다 문득 떠오른 소감이었다. 아주 오래전 두팔을 벌려야 다 펼쳐질 만큼 커다란 신문의 한켠에서 4컷짜리 세방살이하듯 숨죽여 말해왔던 옛날 시사/풍자 만화들을 추억해 본다면 올컬러에 널찍한 지면을 차지하며 이런 소리 저런 소리 빵빵 해대는 요즘의(이 책의 표현대로라면 '신세기'의) 만화에서는 속시원한 웃음이 터져나올법도 한데 어째 웃음보는 이리도 비싸게 구는 것인지...

이것은 책의 내용탓이 아니다. 세상 참 좋아졌다는 소리가 흔해진지 오래되었으나 아직도 이렇게 씹을 것과 비틀 것이 많으니 정말 '제대로' 좋은 세상은 언제 오려나 하는 한탄(?)이 밀려오는 탓이다. 물론 우리보다 정치가 더 발달한 나라에서도 사회를 풍자하고 권력자와 관련인물들을 비판하는 만화들은 여전히 존재하며 앞으로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겠지만 문제는 이런 만화들이 상당한 관심과 호응과 지지를 받는다는데 있다. 정치문제에 관심이 많은 나라일수록 정치적 후진국이라는 나의 얄팍한 상식에 비춰본다면 정치에 대한 신뢰가 견고해지기까지는 아직 먼 길로만 보여 톡쏘는 이 책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마음이 씁쓸하다.

저자의 필명인 '굽시니스트'만 봐도 그렇다. 할 말 다 하는 것 같아도 퇴짜맞은 원고였다는 사실을 '못다한 이야기'에 밝히는 것을 보면 여전히 언론은 제재받고, 따라서 삼켜야 할 말이 있으며, 스스로 (정권에 혹은 데스크에) 굽신거린다 자조하기 위해 지은 필명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자조할 수 밖에 없는 날들도 꽤나 있었을 것이다.

아직 현실은 언론에 대해 진정한 자유를 허락할 만큼 관용을 갖추진 못했지만 굽시니스트는 그 사이를 굽이굽이 통과하며 (그래서 굽시니스트일까?) 지난 2년 남짓 작업해 온 주옥같은 이야기들을 한권의 책으로, 못다한 이야기들까지 덧붙여 우리 앞에 내놓았다. 그리고 그 못다한 이야기들에 적힌 진지한 단상들 탓인지 단순한 시사 만화라기 보다는 한 편의 짧은 칼럼과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고, 이 부분을 통해 그림에 사용된 이미지나 관련 정황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주고 있어 훨씬 더 작가의 교감이 수월해진다. 만일 MB를 스크루지로 묘사한 <크리스마스 캐롤>편에서 디킨스가 가졌던 산업혁명기의 빈곤문제와 21세기 한국의 상황을 비견하려는 의도가 담겨있음을 은근히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그저 잘 어울리는 이야기로 재미있게 표현했다는 느낌에서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이면에 담긴 저자의 의도를 깨닫는 순간 독자들은 표면적인 교훈을 너머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인식하게 되고 문득 더 넓은 사유의 장(場)으로 나아가게 된다.

굽시니스트의 만화가 즐겁고도 친근하게 읽히는 까닭은 단연 그의 탁월한 패러디 능력으로 꼽고싶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영화는 물론이고, 소설, 시, 가요, 연예인 등을 절묘하게 활용해 빵터지는 은유와 심지있는 대사들을 풀어놓은 장면들은 감탄과 더불어 감동을 자아낸다. 특히 절묘하다 생각되었던 것은 한때 인문학의 돌풍을 몰고왔던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의 표지를 패러디해 과도한 인사정책을 비판한 <성의란 무엇인가>, 가요 <마법의 성>의 가사를 십분 활용해 박근혜와의 협상시도를 묘사한 세종시 문제, 레이디 가가의 분장을 통해 MB를 희화한 레이디 가카(여기서는 사디즘이 등장하는 수위 높은 그림이 슬쩍 비친다) 등인데, 이슈와 패러디가 유연하게 어우러지고 20~30대의 젊은 감각이 돗보여 과연 굽본좌라 부를만하다. 한편, 가장 찡한 감동을 자아냈던 장면은 김수영의 시 <풀>이 주는 감성으로 민심이 대세를 결정한다는 교훈을 남긴 '바람과 민초'편을 꼽겠다. 역시...가장 연약한 것 같지만 가장 힘이 있는 것은 민심, 그러나 민심을 공유하지 못하고 바람만 일으키려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는 구절은 매우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본격 시사인 만화>에는 의외로 박통이나 5공시절과 같은 현대사 속의 이야기들이 간혹 등장한다. 그래서 정치와 시사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단편적인 내용은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의 유머나 깊은 부분까지 충분히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굽시니스트의 만화에서 제맛을 느끼려면 아무래도 관련 상식이 어느 정도 필요한 것 같다. 정치/시사만 잘 알아서도 안되고, 대중문화만 잘 알아서도 안된다. 비록 친절한 뒷설명이 종종 더해진다 해도 곳곳에 숨은 유머까지 읽어내려면 두 가지 지식이 겸비되어야 하니, 신세기의 만화를 위해서는 독자들도 부단히 진화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앞으로 굽시니스트가 시사만화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세대를 이끌어갈지 모르겠지만 한 회 한 회가 더 예리하고 소재 가득한 내용, 세련되고 여운을 남기는 풍자로 가득하길 바라며, 그의 활약을 통해 못다한 이야기들이 점점 줄어드는 사회, 비난받을 일 보다는 발전을 위한 쟁점들이 포착되는 사회로 성장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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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명의 화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101명의 화가 - 2page로 보는 畵家 이야기 디자인 그림책 3
하야사카 유코 지음, 염혜은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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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을 감상하는데 있어 화가의 생애를 아는 것이 중요한 일인가, 중요하다면 얼마나 중요하며 어떤 면에서 중요한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 로뎅이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에콜 드 보자르에 세번이나 낙방했던 사실이 <생각하는 사람>을 감상하는데 영향을 미칠까? 폴록이 시케이로스(멕시코 화가)의 벽화작업에서 액션페인팅을 착안했다는 사실이 현란하게 춤추는 <가을 리듬>을 감상하는데 도움이 될까? 쇠라가 인상파전에서 감동을 받아 빛과 색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다는 것을 알고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감상하는 것과 모르고 감상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실상 미술가들의 작품을 개별적으로 감상할 때에는 그들의 생애나 성격에 대한 지식이 크게 영향을 미치치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물론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한 그림이나 정치적 성향을 띤 그림 등에서는 미술가에 대해 아는 바가 있어야 더 충실히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작품 자체의 감상에 화가 개인의 생애가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반면 한 사람의 미술가가 가지고 있는 작품세계를 전체적으로 바라보고 작품 변화의 계기와 요소, 반영된 관념이나 심리적 상태 등을 추적해 보다 심도있게 연구하고자 할 때에는 그 삶의 흔적이 무척 소중한 자료가 된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사건이나 일화와 그렇지 않은 것들이 구분되며, 대체적으로 미술사조나 역사적 배경 속에서 활약한 내용을 그의 생애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2페이지 속에 담긴 각 화가들의 대표적 특징과 다양하고 사소한 이야기는 그들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더욱이 감상할 수 있는 작품 사이즈가 작게는 우표에서 크게는 명함판 사진 정도의 크기라면 이 책을 통해 그림을 '감상'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단적으로 말해 그렇지 않았다. 축소될대로 축소되 빽빽한 만화 틈새에 배치된 그림들은 화가의 일대기 속에 등장하는 조연으로 비춰졌으며, 대략 이런 것을 그렸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을 정도이지 결코 감상용 이미지가 아니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미술보다는 인물분야로 먼저 분류되어야 적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제목도 <101점의 그림>이 아니라 <101명의 화가>가 아니였던가!

책 속에 소개된 화가들의 인생은 (당연하겠지만) 십인십색, 백인백색이라 할 수 있다. 물질적인 고통을 겪은 사람도 있고, 정신적인 고통을 겪은 사람도 있으며, 불같은 사랑을 한 사람, 아쉽게 절명한 사람, 특이하고 개성적인 사람, 그리고 별다르지 않은 평이한 삶을 산 사람까지 모두 미술사를 빼곡히 채워온 인물들이었으며 그 안에 살았던 흔적을 남겼다. 이것은 단지 인생 그 자체뿐만 아니라 작품세계나 화가의 성향 면에서도 여러가지 사람들로 나눠질 수 있었는데, 그것이 충분히 나타나지 못하고 수많은 색채의 화가들이 가나다 순으로 묻혀진 것은 매우 안타까운 점이다. 또한 특정한 의도 없는 가나다순 배열과 만화로 풀어간 형식, 매우 기술적인 일대기의 묘사는 주입식 미술교육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만화 학습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한 사람의 화가 이야기를 두 페이지에 담는다는 것에는 극과 극의 경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한 인물과 그의 작품을 심도있게 이해한 바탕위에 저자만의 관점과 통찰력을 담아 가장 간결하게 표현하는 고도의 경지이며, 다른 하나는 다양한 정보 중에서 중요한 사건을 뽑아 나열하고 배치하는 매우 손쉽고 일반적인 경지이다. 그런데 <101명의 화가>는 전자보다는 후자의 성격이 더 강한 책이라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잘 파악이 되지 않았다.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중학생에게 밀레에 관해 A4 한 장으로 조사해 오라는 숙제를 내준다 해도 이 책의 2페이지에 담긴 내용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결론이다. 물론 화가의 생애를 중심으로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일화와 작품활동에 대해 간략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이 책을 통해 잘 알지 못했던 화가의 생애에 대해 새롭게 만나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유익했지만 '놓칠 수 없는 최고의 추천 작품'을 찾느라 작은 글씨와 다닥다닥 붙은 그림 사이를 헤매야 했던 어려움과 끝내 그것이 두 페이지 안에서 발견되지 않는(찾다 포기한 것이 아닌, 애초부터 삽입되지 않았다는 의미) 당혹스러움이 종종 발생해 결국 아쉬움을 더하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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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중문화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지난 1년 몇개월 동안 거의 음악을 듣지 않고 지냈던 탓인지 '짐 모리슨'과 '커트 코베인', 그리고 지난달에 이어 다시 보이는 '음악과 삶'이라는 주제가 유독 눈에 뜨인다. 물론, 추천도서에는 이 책들을 꼽지 않았지만 음악 아니면 죽고 못살던 시절을 떠올리기에는 충분한 자극이었다. 전영혁의 25시(이후 '전영혁의 음악세계'로 타이틀이 바뀌었다)의 시그널 뮤직을 손꼽아 기다리던 그 때, 잠들기 직전까지 음악을 들어야 직성이 풀리던 그 때, 눈보라가 휘날리는 겨울일지라도 음반 하나 사기 위해 아무도 없는 길거리를 헤메던 그 때... 봄을 타나? 다시 음악이 그리워지는 듯하다.

무튼, 이제 서점에서 뒤져본 책들을 추천할 차례.  



 

<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 

며칠 전 추천도서 목록에서 한 권을 빼고 이 책을 추천한다. 사실 도면들이 많이 수록되었다는 설명을 보고 전공교재까지는 아니여도 부교재나 참고도서(전공자를 위한)쯤 되리라 생각해서 아무도 추천하지 않을거라 예상했는데, 그래서 추천하고 싶었지만 그냥 삼켜버리고 말았는데, 지금 보니 많은 분들이 선뜻 이 책을 추천하시는 것을 보고 용기(?)를 얻어 함께 밀어본다.^^ 

한국 건축의 공간, 형식, 구조 등 기초부터 차근차근 모두 살펴볼 수 있는 엄청 기대되는 책이다.




 

<사유속의 영화>


이 달에 가장 보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을 읽게 된다면 5월에는 평가단에서 딱 한권만 선정된다 해도 상관없을 것 같다. 영화 이론에 대해 이렇게 알차게 모아놓은 책이 또 있을까? 물론 각 학자의 이론에 대해 심도 있게 다가가려면 먼 길이며 영화에 국한된다기 보다는 예술, 인문에 두루 걸치는 방대한 지식임을 간과할 수 없지만 이렇게 한 권으로 영화를 둘러싼 주요 담론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정말 행운이다.





 

<퍼블릭 인티머시>


미디어 아트를 통해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확장되고 예술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몸에서 영화적 요소들과의 관련성을 발견해 내고, 그것을 방이라는 공간적 개념으로 확장할 수 있는 신묘한 세계가 미디어 아트라면 한번쯤 푹 빠져 그 방들 사이의 여행에 동참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결국, 음악>


이젠 새 세대의 음악 이야기를 들어야 겠다. 1980년대부터 시작하는 음악 이야기이니 80년대가 가장 오래된 시간이고 따라서 오늘날과 가깝다면 가까울 수 있는 90년대의 음악 이야기도 많이 들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TV 생방송에 등장하던 '서태지와 아이들'을 오늘의 아이돌 스타가 아닌 음악사 속의 아티스트로 만나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스타로 주목받지 않았더라도 묵묵히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했던 인디밴드들은 지난 30년간 음악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많은 것들이 궁금해지는 책이다.
 


 

<에디토리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미술잡지 <월간미술>의 편집장 이건수의 글을 모은 책이다. 15년간 한결같이 <월간미술>을 지켜왔다는 것 만으로도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의 내공을 기대하며 이 책을 선뜻 택해본다. 또한 에디토리얼에는 미술계의 각종 이슈에 관한 사색들이 더 두드러지는 편이라 지난 우리 미술계의 대소사를 통해 미술과 사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책소개에서 '신정아 사건'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인데, 이 책의 내용이 그 사건과는 무관하길 바란다(좀 전 내게 유일하게 남아있는 <월간미술> 2007년 8월호를 펼쳐 보았다. 헛! 그런데 그때의 에티토리얼 제목은 '진실게임'...이건 신정아 사건에 관한 이야기였다...ㅠ.ㅠ).
 


그밖에도 4월에는 한 명의 아티스트의 작품과 생애를 집중해서 다룬 책들이 눈에 뜨였다. <반역의 시인, 랭보와 짐 모리슨>은 아주 오래 전 반쯤 읽었던 짐 모리슨의 전기 <Doors>(혹은 <도어스>였을 수도 있다)가 떠올랐다. 물론 이 책은 단순히 짐 모리슨의 전기는 아니고 랭보와 모리슨에서 발견되는 공통성을 주제로 쓰여진 책인데, 두 사람을 비교한 점이 흥미로워 읽고싶긴 했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커트 코베인>의 경우 전적으로 그의 전기이다. 미스테리한 죽음은 항상 의문과 관심을 남기는 법. 아기가 헤엄치는 너바나의 앨범 표지가 눈 앞에 아른거리며 그의 부고를 알리는 소식을 듣던 때를 생각해 본다. 저 세상에서는 새로운 영으로 태어났을까? <앤서니 브라운의 나의 상상 미술관>은 영국 최고의 동화작가라 인정받는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세계를 담고 있다. 사실 동화와는 크게 상관이 없지만 그의 ‘모양 상상 놀이(Playing the Shape Game)’ 이라는 것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은데...(사실 이것은 <마술연필>이나 <마술연필을 가진 꼬마곰>을 보면 약간 엿볼 수 있다. 덧붙이자면,나는 조카 덕에 엿봤다) 마지막으로 <프랭크 게리와의 대화>는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의 작품세계와 지금까지의 생애를 다룬 책이다. 물론 이와 비슷한 책들이 많긴 하지만 가장 최근 것이니 게리에 대해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선택해 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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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기 활동 종료 페이퍼

작년 처음으로 신간평가단에 도전해 이달까지 활동을 하면서 정말 즐거웠습니다. 책 읽는 즐거움도 즐거움이지만 이번 달에는 어떤 책이 나왔을까 기대하고, 또 이 많은 책들 중 과연 어떤 책이 선정될까 궁금해하는 과정이 즐거움을 더해준 것 같네요. 그동안, 총 6개월에 걸쳐 모두 12권의 책을 만났습니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니 참 다양한 예술분야를 두루두루 읽었군요. 여기서 3권을 꼽으라면 저는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1>, <그림, 문학에 취하다>, <예술의 정신>을 꼽겠습니다. 



<유홍준의 한국 미술사 강의1>은 우리나라의 미술에 맞게 새로이 뼈대를 구성한 점도 마음에 들었고, 오래전 배우고 잊어버린 빗살무늬 토기에서부터 찬란했던 삼국시대의 불교문화에 이르기까지 차근차근 되돌아볼 수 있어 무척 의미있었습니다. 특히 살아가느라 관심밖으로 빌려나 버린 죽음의 공간(고분미술)을 상기해 볼 수 있었던 점과 드물게 남아있는 삼국시대의 건축물에 대해 조금이나마 지식을 얻을 수 있었던 점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그리고 '강의'답게 관련자료와 미술론을 요약한 부분은 예기치 못한 선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림, 문학에 취하다>는 우리나라 대표 화가의 작품뿐만 아니라 흔히 접할 수 없는 다양한 그림들이 소개된 점이 매력이었고, 그림과 문학 모두 깊이있게 설명해 주고 있어 무척 뿌듯한 독서였습니다. 그림에서 문자향을 느낀다는 것이 이런 것인지 처음 맛보았는데, 전부 다 헤아릴만한 혜안은 없지만 감탄하고 또 감탄하며 나중에 두고두고 다시 읽고싶어지는 책이라 생각이 들더군요.  

 


<예술의 정신>은 마음에 의지가 되는 좋은 선생님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가슴이 뛰기도 하고, 반성이 되기도 하고, 간과하고 있던 것에 새삼 찔리는 것이 마음의 재무장이 되네요. 비록 20세기 초 서양미술의 거장의 가르침이지만 오늘 우리들에게도 깊이 왕 닿는 공감대가 있어 참 좋았습니다.

 



건의할 사항은 별로 생각나지 않네요. 설 연휴 이후 일정이 좀 불규칙했던 것 정도?  
전체적으로 크게 문제가 있거나 불편한 점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모두 수고 많으셨고, 마지막으로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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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깨진 청자를 품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나, 깨진 청자를 품다 - 자유와 욕망의 갈림길, 청자 가마터 기행
이기영 지음 / 효형출판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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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깨어진 청자 뿐이었다. 지금까지 청자라하면 적어도 교과서나 도록에 실린 국보급 청자들로 오묘한 빛과 우아한 곡선이라는 설명이 곁들여진 '완제품'들이었는데, 전형적인 대표 작품 몇 점 외에는 한 번도 제대로 구경해 보지 못한 청자를, 이런 청자 저런 청자 감상하기도 전에 모조리 깨어진 사금파리들만 만나고 말았으니 이를 어쩔까나! 앞표지부터 뒷표지까지 시종일관 깨진 청자로 가득 메운 이 책이 적잖이 당혹스러운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것은 실망에 의한 당혹스러움이 아니라 깨진 청자가 오히려 우리 청자의 진실을 담고 있다는 놀라움에 의한 당혹스러움이었다.

도대체 저자는 무엇을 위해 깨진 청자를 향한 고행아닌 고행길에 나선것일까? 유럽 도자 기행이 무산된 이후 청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청자가 단순한 예술작품이 아닌 역사의 블랙박스라는 사실을 발견한 탓에 청자의 발전사와 땀내 배인 도공들의 삶을 추적해 나갔다지만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도자기에 대한 열정, 그리고 깨진 청자 속에 담긴 조상들의 혼으로부터 힘겨운 마음을 다잡고자 하는 한 고뇌 어린 도공의 독백이었다.

영암 구림을 첫 걸음으로 시작하여 강진, 해남, 장흥, 용인, 서산, 양주, 그리고 다시 강진에서 맺으며 약 20여개에 달하는 가마터를 찾아가는 이 순례기에는 역사를 한창 거슬러 올라 청자가 걸음마를 시작할 삼국시대 무렵부터 다양한 청자가 생산되었던 고려시대까지의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그러나 제작기술 중심이 아닌 생산규모 중심으로 청자를 추적한 탓인지 흔히 기대할 수 있는 최상의 기술을 구가하던 시대의 가마터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책은 청자의 아름다움과 한국의 미에 대한 관록이 주가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위해 물건을 생산하고 사업을 확장하며 정치적 세력이 팽팽히 맞서고 부역하는 백성들의 고통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도예산업의 이면을 담은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내겐) 놀랍게도 장보고였다.

우리에게 해상왕으로 잘 알려진 장보고는 해외 무역을 위해 우리나라 자체에서 도자기를 생산하여 수출하는 원대한 계획을 구상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도자기 기술의 씨앗을 심기 위해 중국의 기술을 비밀리에 유입해 왔다. 비록 장보고는 자신의 산업이 확장되고 커나가는 것을 보지 못하고 염장에 의해 살해되지만 그가 뿌린 씨앗은 자라 1세대의 실험청자를 거쳐 점차 성장했으며 다양한 가마가 제작되고 다양한 청자 제품들이 생산되는 5세대에 이르기까지 그의 뜻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저자가 가마터에서 발견하고 우리에게 보여주는 청자들도 충분히 건조시키지 않았던 것이라든지, 유약을 너무 바른 것이라든지, 가마 흙덩이가 떨어져 실패한 것 등 뼈아픈 도공들의 실험과 숙련과정들을 담고 있다. 청자들도 모두 녹색이 도는 것이 아니라 적색, 흑색이 도는 청자로부터 시작해 점차 청색이 도는 청자들도 보이며 백자가 함께 생산되었던 시절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때로 백자가 조각이 나타나기도 한다. 뿐만아니라 가마에서 청자를 구울 때 사용했던 갑발이나 도지미라는 보조물들도 소개되어 청자 생산의 현장이 매우 생생하게 전달된다.

깨진 청자이지만 이를 통해 청자의 상태와 당시의 상황, 도공의 솜씨와 성품, 그가 느꼈던 마음까지 모조리 읽어내는 저자의 관록에 감탄하며 마치 그가 도공의 동료이거나 선생님인 듯한 느낌마져 들었다. 이렇게 깨어진 청자에서 마음을 읽고 그것과 한 마음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될까? 저자도 걱정하는 바이지만 우리는 너무나 우리의 청자에 대해 무관심하다. 골프장에 밀려나는 가마터들, 어디있는지 찾기 힘들고, 접근하기 조차 어려운 가마터들...그곳에 깨어진 사금파리들이 다시 희망을 꿈꾸며 지금까지 숨쉬고 있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저자가 우리나라 청자의 보고인 강진에서 보여줬던 가마 분포도가 생각난다. 강진에는 188기에 달하는 청자 가마터가 밀집해 있었는데, 붉은 점으로 촘촘하게 표시한 그 지도를 보며 땅바닥에 어지러진 벚꽃잎들이 떠올렸다. 이미 저버린 전성기이지만 또 다른 봄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저자는 여행 끝에서 자신을 옭아매던 집착과 욕망을 버리고 자유함을 얻었다고 했다. 무명의 도공들을 기리며 그들에게서 희망을 배우기도 했다. 그런데 왠지 나는 그것이 다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만의 생각이긴 하지만 깨어진 청자 속에 담겨진 장보고의 원대한 계획을 다시 이 시대에 펼쳐보리라는 희망을, 장보고처럼 살아 생전 보지 못한다 해도 이후에 다시 살아날 청자의 전성시대를 꿈꾸며 그 씨앗이 되는 마음으로 무명 도공을 찾는 겸허함을 엿본 것 같다. 비록 청자에 대해서는 일자도 알지 못하는 문외한이지만 우리의 청자가 생활과 더 가까와져 다시 밥그릇으로도 오르고, 종지로도 오르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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