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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시사인 만화 - 신세기 시사 전설 굽시니스트의 본격 시사인 만화 1
굽시니스트 지음 / 시사IN북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웃어야할지, 울어야 할지...'


'신세기 시사 전설' 굽시니스트의 <본격 시사인 만화>를 몇 페이지 넘겨보다 문득 떠오른 소감이었다. 아주 오래전 두팔을 벌려야 다 펼쳐질 만큼 커다란 신문의 한켠에서 4컷짜리 세방살이하듯 숨죽여 말해왔던 옛날 시사/풍자 만화들을 추억해 본다면 올컬러에 널찍한 지면을 차지하며 이런 소리 저런 소리 빵빵 해대는 요즘의(이 책의 표현대로라면 '신세기'의) 만화에서는 속시원한 웃음이 터져나올법도 한데 어째 웃음보는 이리도 비싸게 구는 것인지...

이것은 책의 내용탓이 아니다. 세상 참 좋아졌다는 소리가 흔해진지 오래되었으나 아직도 이렇게 씹을 것과 비틀 것이 많으니 정말 '제대로' 좋은 세상은 언제 오려나 하는 한탄(?)이 밀려오는 탓이다. 물론 우리보다 정치가 더 발달한 나라에서도 사회를 풍자하고 권력자와 관련인물들을 비판하는 만화들은 여전히 존재하며 앞으로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겠지만 문제는 이런 만화들이 상당한 관심과 호응과 지지를 받는다는데 있다. 정치문제에 관심이 많은 나라일수록 정치적 후진국이라는 나의 얄팍한 상식에 비춰본다면 정치에 대한 신뢰가 견고해지기까지는 아직 먼 길로만 보여 톡쏘는 이 책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마음이 씁쓸하다.

저자의 필명인 '굽시니스트'만 봐도 그렇다. 할 말 다 하는 것 같아도 퇴짜맞은 원고였다는 사실을 '못다한 이야기'에 밝히는 것을 보면 여전히 언론은 제재받고, 따라서 삼켜야 할 말이 있으며, 스스로 (정권에 혹은 데스크에) 굽신거린다 자조하기 위해 지은 필명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자조할 수 밖에 없는 날들도 꽤나 있었을 것이다.

아직 현실은 언론에 대해 진정한 자유를 허락할 만큼 관용을 갖추진 못했지만 굽시니스트는 그 사이를 굽이굽이 통과하며 (그래서 굽시니스트일까?) 지난 2년 남짓 작업해 온 주옥같은 이야기들을 한권의 책으로, 못다한 이야기들까지 덧붙여 우리 앞에 내놓았다. 그리고 그 못다한 이야기들에 적힌 진지한 단상들 탓인지 단순한 시사 만화라기 보다는 한 편의 짧은 칼럼과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고, 이 부분을 통해 그림에 사용된 이미지나 관련 정황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주고 있어 훨씬 더 작가의 교감이 수월해진다. 만일 MB를 스크루지로 묘사한 <크리스마스 캐롤>편에서 디킨스가 가졌던 산업혁명기의 빈곤문제와 21세기 한국의 상황을 비견하려는 의도가 담겨있음을 은근히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그저 잘 어울리는 이야기로 재미있게 표현했다는 느낌에서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이면에 담긴 저자의 의도를 깨닫는 순간 독자들은 표면적인 교훈을 너머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인식하게 되고 문득 더 넓은 사유의 장(場)으로 나아가게 된다.

굽시니스트의 만화가 즐겁고도 친근하게 읽히는 까닭은 단연 그의 탁월한 패러디 능력으로 꼽고싶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영화는 물론이고, 소설, 시, 가요, 연예인 등을 절묘하게 활용해 빵터지는 은유와 심지있는 대사들을 풀어놓은 장면들은 감탄과 더불어 감동을 자아낸다. 특히 절묘하다 생각되었던 것은 한때 인문학의 돌풍을 몰고왔던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의 표지를 패러디해 과도한 인사정책을 비판한 <성의란 무엇인가>, 가요 <마법의 성>의 가사를 십분 활용해 박근혜와의 협상시도를 묘사한 세종시 문제, 레이디 가가의 분장을 통해 MB를 희화한 레이디 가카(여기서는 사디즘이 등장하는 수위 높은 그림이 슬쩍 비친다) 등인데, 이슈와 패러디가 유연하게 어우러지고 20~30대의 젊은 감각이 돗보여 과연 굽본좌라 부를만하다. 한편, 가장 찡한 감동을 자아냈던 장면은 김수영의 시 <풀>이 주는 감성으로 민심이 대세를 결정한다는 교훈을 남긴 '바람과 민초'편을 꼽겠다. 역시...가장 연약한 것 같지만 가장 힘이 있는 것은 민심, 그러나 민심을 공유하지 못하고 바람만 일으키려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는 구절은 매우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본격 시사인 만화>에는 의외로 박통이나 5공시절과 같은 현대사 속의 이야기들이 간혹 등장한다. 그래서 정치와 시사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단편적인 내용은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의 유머나 깊은 부분까지 충분히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굽시니스트의 만화에서 제맛을 느끼려면 아무래도 관련 상식이 어느 정도 필요한 것 같다. 정치/시사만 잘 알아서도 안되고, 대중문화만 잘 알아서도 안된다. 비록 친절한 뒷설명이 종종 더해진다 해도 곳곳에 숨은 유머까지 읽어내려면 두 가지 지식이 겸비되어야 하니, 신세기의 만화를 위해서는 독자들도 부단히 진화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앞으로 굽시니스트가 시사만화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세대를 이끌어갈지 모르겠지만 한 회 한 회가 더 예리하고 소재 가득한 내용, 세련되고 여운을 남기는 풍자로 가득하길 바라며, 그의 활약을 통해 못다한 이야기들이 점점 줄어드는 사회, 비난받을 일 보다는 발전을 위한 쟁점들이 포착되는 사회로 성장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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