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깨진 청자를 품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나, 깨진 청자를 품다 - 자유와 욕망의 갈림길, 청자 가마터 기행
이기영 지음 / 효형출판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온통 깨어진 청자 뿐이었다. 지금까지 청자라하면 적어도 교과서나 도록에 실린 국보급 청자들로 오묘한 빛과 우아한 곡선이라는 설명이 곁들여진 '완제품'들이었는데, 전형적인 대표 작품 몇 점 외에는 한 번도 제대로 구경해 보지 못한 청자를, 이런 청자 저런 청자 감상하기도 전에 모조리 깨어진 사금파리들만 만나고 말았으니 이를 어쩔까나! 앞표지부터 뒷표지까지 시종일관 깨진 청자로 가득 메운 이 책이 적잖이 당혹스러운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것은 실망에 의한 당혹스러움이 아니라 깨진 청자가 오히려 우리 청자의 진실을 담고 있다는 놀라움에 의한 당혹스러움이었다.

도대체 저자는 무엇을 위해 깨진 청자를 향한 고행아닌 고행길에 나선것일까? 유럽 도자 기행이 무산된 이후 청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청자가 단순한 예술작품이 아닌 역사의 블랙박스라는 사실을 발견한 탓에 청자의 발전사와 땀내 배인 도공들의 삶을 추적해 나갔다지만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도자기에 대한 열정, 그리고 깨진 청자 속에 담긴 조상들의 혼으로부터 힘겨운 마음을 다잡고자 하는 한 고뇌 어린 도공의 독백이었다.

영암 구림을 첫 걸음으로 시작하여 강진, 해남, 장흥, 용인, 서산, 양주, 그리고 다시 강진에서 맺으며 약 20여개에 달하는 가마터를 찾아가는 이 순례기에는 역사를 한창 거슬러 올라 청자가 걸음마를 시작할 삼국시대 무렵부터 다양한 청자가 생산되었던 고려시대까지의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그러나 제작기술 중심이 아닌 생산규모 중심으로 청자를 추적한 탓인지 흔히 기대할 수 있는 최상의 기술을 구가하던 시대의 가마터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책은 청자의 아름다움과 한국의 미에 대한 관록이 주가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위해 물건을 생산하고 사업을 확장하며 정치적 세력이 팽팽히 맞서고 부역하는 백성들의 고통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도예산업의 이면을 담은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내겐) 놀랍게도 장보고였다.

우리에게 해상왕으로 잘 알려진 장보고는 해외 무역을 위해 우리나라 자체에서 도자기를 생산하여 수출하는 원대한 계획을 구상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도자기 기술의 씨앗을 심기 위해 중국의 기술을 비밀리에 유입해 왔다. 비록 장보고는 자신의 산업이 확장되고 커나가는 것을 보지 못하고 염장에 의해 살해되지만 그가 뿌린 씨앗은 자라 1세대의 실험청자를 거쳐 점차 성장했으며 다양한 가마가 제작되고 다양한 청자 제품들이 생산되는 5세대에 이르기까지 그의 뜻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저자가 가마터에서 발견하고 우리에게 보여주는 청자들도 충분히 건조시키지 않았던 것이라든지, 유약을 너무 바른 것이라든지, 가마 흙덩이가 떨어져 실패한 것 등 뼈아픈 도공들의 실험과 숙련과정들을 담고 있다. 청자들도 모두 녹색이 도는 것이 아니라 적색, 흑색이 도는 청자로부터 시작해 점차 청색이 도는 청자들도 보이며 백자가 함께 생산되었던 시절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때로 백자가 조각이 나타나기도 한다. 뿐만아니라 가마에서 청자를 구울 때 사용했던 갑발이나 도지미라는 보조물들도 소개되어 청자 생산의 현장이 매우 생생하게 전달된다.

깨진 청자이지만 이를 통해 청자의 상태와 당시의 상황, 도공의 솜씨와 성품, 그가 느꼈던 마음까지 모조리 읽어내는 저자의 관록에 감탄하며 마치 그가 도공의 동료이거나 선생님인 듯한 느낌마져 들었다. 이렇게 깨어진 청자에서 마음을 읽고 그것과 한 마음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될까? 저자도 걱정하는 바이지만 우리는 너무나 우리의 청자에 대해 무관심하다. 골프장에 밀려나는 가마터들, 어디있는지 찾기 힘들고, 접근하기 조차 어려운 가마터들...그곳에 깨어진 사금파리들이 다시 희망을 꿈꾸며 지금까지 숨쉬고 있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저자가 우리나라 청자의 보고인 강진에서 보여줬던 가마 분포도가 생각난다. 강진에는 188기에 달하는 청자 가마터가 밀집해 있었는데, 붉은 점으로 촘촘하게 표시한 그 지도를 보며 땅바닥에 어지러진 벚꽃잎들이 떠올렸다. 이미 저버린 전성기이지만 또 다른 봄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저자는 여행 끝에서 자신을 옭아매던 집착과 욕망을 버리고 자유함을 얻었다고 했다. 무명의 도공들을 기리며 그들에게서 희망을 배우기도 했다. 그런데 왠지 나는 그것이 다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만의 생각이긴 하지만 깨어진 청자 속에 담겨진 장보고의 원대한 계획을 다시 이 시대에 펼쳐보리라는 희망을, 장보고처럼 살아 생전 보지 못한다 해도 이후에 다시 살아날 청자의 전성시대를 꿈꾸며 그 씨앗이 되는 마음으로 무명 도공을 찾는 겸허함을 엿본 것 같다. 비록 청자에 대해서는 일자도 알지 못하는 문외한이지만 우리의 청자가 생활과 더 가까와져 다시 밥그릇으로도 오르고, 종지로도 오르는 날을 기대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