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은 과학의 깃발 아래서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과학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의학을 할 수 있을까? 의학분야에서 과학의 역할은 자연과학이나 공학 분야와는 결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수학의 도움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 순서는 거칠게, 물리> 화학> 생물> 의학 순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분야 뒤를 든든하게 뒷받치는 수학은, 대표적으로 영원불멸하는 추상적 보편자라고 할 수 있다.


쪼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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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과학에 대비되는 동아시아의 자산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은, 수많은 사람들이 제기하고 답을 제시하려던 질문이다. '과학'이라는 필터로 동아시아 자산을 열심히 훑어본 사람도 있었고, '철학'이라는 필터로 훑어본 이도 있었고, 다양한 관점과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성과가 있었지만, 아직도 남겨진 부분이 적지 않다고 느껴진다. 

그래도 처음 접했을 때는 신선하고 깊이있는 이해에 감탄이 적지 않았다. 사라 알란은 식지 않는 열정으로, 신선한 깊이있는 동아시아 자산의 이해를 보여주었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동아시아 사유는 어떤 것일까를 알아가려고, 구조주의, 은유, 환유 등의 적절한 사용으로 가려져 있던 의미를 탐구하고 찾아낸다. 이외에도 거의 고전의 반열에 오른 앵거스 찰스 그레이엄의 <도의 논쟁자들>, 조지프 니담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같은, 중국을 탐구했던 멋진 서양관점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 객관적인 입장은 적지않게 서양 과학 정신이 내포된 시선으로, 보려는 대상에따라서는 그 의미가 가려지는 점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고대 중국인을 보는 후대 근대 현대 중국인들의 시선은 어떨까? 특유의 시선이 있다고 느껴지지만, 고대 중국을 보는 이 시선을 다시 음미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역시 풍부한 이해는, 그 시점에서 그들이 어떻게 보고 이해했는가를 직접 알아보려 할 때 생기는 거 같다. 수많은 시도가 있었던 거 같은데, 결국 학제간 연구가 필수적인 영역이라 무르익을 시간이 필요했던 거 같다. 최근에 읽은 정우진 님의 책이 엄청났다. <감응의 철학>이다.
















특히 초기도교와 한의학분야에서 깊은 연구를 하시는 저자의 역량이 돋보인다. 신선하지만 완성되기는 힘들거 같은 '객관적인' 관점의 연구들과는 결을 달리하는, 이런 방향으로 가야 완결을 볼 수 있을 거 같은, 고대 중국의 가치관에 관한 연구다.

돋보이는 지점들이 무척 많았다. 

다른 제자백가 속에 묻혀 있으면 그렇게 도드라지 않아보이는 '장자'에 관한 흥미로운 추론들이 인상적이고, 서양문화의 저변에 깔린 추상적인 존재론과 대비되는 인식론에 집중한 동아시아 세계관의 설명도 근사하고, 오늘날 홀대받는 음양오행론, 주역 64괘 같은 동아시아 인식론의 틀에 대한 진지하면서 일반인도 수긍할 설명을 준다.

지금까지 시도된 동아시아 가치관에 대한 이해들을 정리하면서, 각 이해들의 한계를, 트집잡기가 아닌, 자연스럽게 잘 보여준다.


과학의 뒤에는 신과 같이 영원불멸할 듯한 추상적 보편자 들을 전제하는 가치관이 있다. 객관적이라고 불리는 영역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런 시선도 잘 보지 못하는 영역이 있고, 동아시아인들이 자신들도 설명을 잘 못하지만, 너무나도 당연히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영역 곳곳에 객관적인 관점과는 다른 관점이 생생하게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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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쌍갑포차는 무척 흥미롭다. 우선 무당의 시선이 굉장히 많이 담겨있다는 점이다. 등장인물이 무당인 경우도 많고, 주인공으로 무당의 삶을 거의 자서전격으로 희노애락을 모두 담아 보여준 편도 있고, 꼭 무당이 아니더라도 무당의 시선을 닮은 유사한 인물들(그세상이나 저세상 인물들)로 표현한 경우도 많았다. 무당과 무당을 찾아온 사람 사이의 대화도 흥미를 끄는데, 신의 대리인에 대한 고백이자 자신의 억울함이나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들어주는 대화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얼마전 <태백산맥>의 조정래 님 인터뷰가 떠올랐는데, 새로운 작품으로 해방시기 우리나라 상황을 담은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는 얘기와, 젊은 작가들에게 80년대 학생운동에 관한 작품을 권하면서 매우 흥미로운 소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생각났다. 마찬가지로 세상에 대한 흥미로운 시선을 보유한 무당도 그런 거 같다.

 

386세대이전 혹은 훨씬 이전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 시대의 염원을 담아 그세상, 저세상까지 포함시켜 입체적으로 그려내 즐거웠다. 물론, 거의 해피엔딩으로 끝난다거나, 거의 괜찮긴하지만 권선징악이 조금 지나쳐 잔소리느낌이 날때가 있는건 옥의 티긴 하지만, 정말 재밌었고, 깊이 공감할만한 내용도 많았다.


그림이나 선도 어디서 많이 봤던 전통적인 선인데, 그럼에도 신선함이 적지않게 배여나왔다.


다음 웹툰에서 열심히 보다가 너무 빨리 유료로 전환되서 아쉬웠는데, 인상적인 편이 있었던 3권과 4권을 구입했다.
















(드라마 쌍갑포차는 거의 실패였다. 엄청난 인간이해의 결정체인, 그런 무당의 시선을 황정음이라는 배우가 표현하기에는 정말 무리였다.아무리 가볍게 즐거운 드라마를 지향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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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day1120zz 2020-09-03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보단 별루 였지만..소재가 재미있었던...^^
 

삼국지 무대가 끝나고 중국은 극심한 혼란의 시기로 접어들게 된다. 수많은 나라들이 생기고 진 것은 물론이고 정말 많은 방면에서 급격하고 엄청난 변화와 충격을 겪게 된다. 그런 시기이니만큼 양상은 무척 복잡해지고, 지금까지 정돈되지 않은채 알아온 지식들을, 두서없이 여기저기서 듣고 읽은 내용을 한번쯤 정리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선 아마도 일반적으로 중국인을 가르키는 한족과 관련된 민족 이야기가 이 시기에 일어난일이다. 진시황제가 성취한 통일국가는 단순히 짧은 시기 존재한 나라뿐임이 아니라, 이어지는 한나라까지 포함하여 한족이라는 중국인의 정체성을 형성시킨 토대다. 한나라가 끝나고 수나라가 올때까지 400년 동안 북쪽 이민족 지배층의 지배를 받고 극강의 혼란을 겪으며 한족의 정체성은 극대화되었을 것이다. 이 혼란기가 끝나고 온 수와 당도 북쪽 이민족 출신 황제와 지배층으로 나라를 이끌었다. '한족'의 정체성이 수당을 거치면서 송에는 어떻게 자리잡았는지는 무척 관심이 가는 주제다.


유럽의 게르만족이동에 비견되는 북쪽 이민족의 출현은 중국인들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이민족 지배층이 가져온 변화는 어마어마했다. 싸움에 능한 유목민들은 군인 황제를 중심으로 신속하고 잔인한 제압과 관리를 추구했다. 이런 경향은 후계자를 정할때도 장자계승이 아니고 남은 무리들 중 가장 실력있는 자에게 넘어가게 되었는데, 경쟁자들 사이에 빈번하고 피폐한 견제와 결과를 낳게 했다. 


삼국의 최종승자 조조의 위나라도 진에게 넘어가고, 이 진나라를 기준으로 삼아(남쪽의 동진에 대비하여 서진이라고 부른다), 보통 화북과 강남의 상황을 얘기한다. 이 진나라가 약해지는 것과 함께 북쪽 이민족 5호(흉노, 갈, 저, 강, 선비)가 화북지방으로 내려오면서 그 유명한 5호 16국 시대가 시작되고, 진나라의 일족이 강남으로 내려가 동진을 연다. 동진과 이름이 비슷한 전진은 강북에 있었던 5호 중 티베트계 저족인 부씨정권이다. 동진도 끝이나고, 그 뒤를 송제양진 이 잇는다. 진나라를 기준으로 서진이 끝난후 5호 16국시대를 북조라고 하고, 동진이 끝난 후부터 송제양진을 남조라고 한다.


우리나라 삼국시대 불교의 도입이 위에서부터 시작된 귀족불교가 먼저였던 것처럼, 중국 불교도 귀족불교로 시작한다. 한나라때부터 조금씩 들어왔던 불교였지만, 본격적이 된 시기는 바로 위진남북조 시대부터다. 잔악한 살육을 벌였던 일부 이민족 황제들이 적극적으로 불교를 수용하거나,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도교에 심취한 결과가 귀족불교와 귀족도교로 이어진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삼국과 교류한, 북조의 전진의 불교는 세련됨이 덜한 북방계 불교고, 남조 동진의 불교는 한족귀족층의 세련된 경향을 갖았다.


이러한 배경속에서 위진남북조시대에 일어난 다양한 활동과 변화들을 좀더 진하게 음미할 수 있을거 같다.


참조한 책은 다음 두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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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유명한 작품이 나오면 따라붙는 반론을 묶어놓은, 유명세 같은 책인줄 알았는데, 원책 보다 훨씬 깊고 사려많고 원숙하고 지적인 답답함을 많이 해소해준 책이 생겼다. 스티브 핑커의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해 그 책이 어떤 책인지 정말 확 보여주는 책이다. 제리 포더의 <마음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이다.















스티브 핑커의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마음에 관련된, 처음 접한 지식과 증거와 이론에 감탄스럽게 당황하게 된 경험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번에 다 이해하기 어려우니까, 재독 삼독하면서 요약을 해보게되면, 하나씩 엉성함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저자가 쓴 글이 무슨 내용일까 시간을 들여 음미하니까, 결론적으로, 마음영역에서 화제성이 있는 최신 내용을 체계성없이 모아 놓은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제대로 보려면 어떤 체계나 메타관점이 필요한지 혹은 별다른 설명없이 기술해놓은 언어학이나 심리학분야의 배경지식들이 어떤 것들인지 알기는 쉽지 않았다.

스티브 핑커의 다른 책들도 비슷하게 기술된 것으로 보이고, 특히 핑커의 관점을 상당부분 공유한 '진화심리학' 책들도 그렇게 보였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신선한 관점이지만 뭔가 찜찜한 느낌이었다.

제리 포더의 이 책은, 제목은 스티프 핑커의 책에 직접 대응하는 식으로 정한 것 같지만, 훨씬 '일반적인 마음'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래서 반론을 펼치는 대상은 핑커의 한 책이 아니라, 핑커 외에도 플롯킨 같은 계산주의 선천론자들의 견해(신종합설)를 가르킨다. 플롯킨의 책은 <Evolution in Mind> 이다.

















포더는 이들 저자의 지나친 낙관주의를 문제삼고, 심리영역에서 얼마나 많은 영역이 위 신종합설로 거의 해결할 수 없는지를 설명한다.

하지만 심리철학을 다루는 다른 많은 저자들이, 이런 설명을 우리에게 안겨주지 못하는 이유를 포더의 책을 읽기 시작하면 바로 알 수 있다. 생각이나 심리에 관련된 철학, 논리학, 언어학, 심리학 등 설명에 꼭 필요한 원칙이나 원리를 쉽게 놓기 어려운 분야의 특성들 속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고 논지를 전개할지(결론은 신종합설의 섣부른 낙관)를 딱 보여준다.

그 중 하나는 촘스키의 견해를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할지에 관해서다. 보통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는 보편문법 정도로만 얘기해서는 도움을 받기 어려운데, 포더는 그 점을 딱 보여준다.

그리고 인공지능 같은 철학보다는 컴퓨터과학에 가까워보이는 계산주의 인지심리도 정리해 보여준다. 이 계산주의 인지심리가 심적 과정에 관한 튜링의 통사론적 설명을 전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네트워크이론(망이론)이나 모듈을 둘러싼 논의도 잘 정리해서 전달해주고, 그 결론도 명료하게 거의 가망없이 망해가는 중이라고 말한다. 

진화심리학에 대해서도 어떤 점이 부족한지 마지막 한 챕터를 할애해 찬찬히 설명을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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