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 철학은 차이의 철학, 긍정의 철학으로 이름높다. 저자문헌이 국내에 번역된 책들도 많고, 외국인 연구자들의 들뢰즈 연구서들도 많이 번역되어 있고, 국내 연구자들의 연구서들도 많다.


내게는 그 시작이 대학교때까지 올라간다. 수강했던 교양강의 선생님이 따로여신 철학강좌에서 들뢰즈 를 다뤘고, 선생님의 의도는 새로운 관점의 철학의 맛을 조금이라도 보여주시려고 했던 거 같다. 이해가 안가더라도 적당한 문제제기를 통해 들뢰즈 주요 저작인 <천개의 고원><안티 오이디푸스> 등의 아이디어들을 조금씩이라도 보여주려 하셨다.

이어지는 강좌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이나 해체주의, 정신분석 등 을 만나,어지럽고 강렬하고 색다른 멋을 구경했던 거 같다. 그치만 일회독이나 2회독을 통해 읽어도, 남는 이해는 보잘것 없고 정말 좋은 풍경을 멀리서 구경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냥 관련된 책들을 조금씩 수집하는 정도로 그쳤다.


그사이 내 독서는,  알고 싶은 영역의 입문서 읽기와 결별하고, 저자의 전문적인 관심을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에게도 잘 전달하는, 그러면서 내 취향의 영역의 몇몇 저자들로 바꼈다. 그 안에는 구중회, 강우방, 김상섭, 정우진, 칼 융, 피터 드러커, 김재권 등이 있다. 그리고 최근 유식학 책을 조금씩 보면서, 번역가 박인성 의 책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 안에 이 조 휴즈의 들뢰즈 책이 있었다.















그리고 이 <들뢰즈와 재현의 발생> 책 안에는, 들뢰즈의 대작들인 <의미의 논리>, <안티 오이디푸스>, <차이와 반복>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전달하고 불러 일으키는 논증이 잘 기술되어 있었다. 물론 깊은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 들뢰즈의 그 책들을 여러번 읽으며, 조 휴즈의 글들이 얼마큼 가치가 있는 건지 확인을 병행하며, '맞네, 그렇구나, 과연 그럴까 ' 말들을 뱉으며 읽어 가야 한다. 서머리 하면서 읽는건 당연하고, 들뢰즈 특유의 '발생'에 관한 정밀한 기술들을 유심히 점검하면서 따라 가야 한다.

들뢰즈의 차이의 철학은 '발생'의 기술에 큰 공을 기울여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기 때문에, 조 휴즈의 들뢰즈 소개도 그 점을 주로 짚어주고, 여러번 읽어 본 결과, 성공적으로 잘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들뢰즈의 발생에 관한 정밀한 기술은 현상학 책들을 떠올리게 한다. 오히려 그들보다 더 진전된 대담하고 엄밀한 기술들을 볼 수 있다. 이런 점들은 박인성의 역자 후기에도 잘 나와있는데, 박인성은 이러한 들뢰즈의 접근을 통해 불교의 선문답의 의미를 파악해보려는 시도를 해왔다고 한다.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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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의 교학 아비담마 나, 부파불교(설일체유부, 경량부) 세친의 구사론 은 욕계, 색계, 무색계; 심소

처음 보기에는, 대승불교 교학인 유식학 도 소승불교 교학보다 범주들이 좀 늘어난 것으로 느껴졌지만, 

박인성 님의 책들이 유식학 읽을 길을 밝혀준다. 유식삼십론송 을 곧바로 파고든 <유식삼십송풀이>, 유식학의 많은 
















동아시아 한문 문화권에서 인도불교 유식학 을 연구한 중국의 법상종은, 중국에서도 우리나라에도 그 명맥이 끊기게 되지만, 일본에서는 그 빛이 지지 않고 유식학 연구가 살아 있었다. 그리하여 인도대승불교 교학 최고성과를 현장법사가 인도에 가서 사사받아 오고, 이를 제자 규기, 다시 그제자 혜소 를 통해 이어지고, 그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유식학의 깨달음들은 디그나가, 다르마끼르띠 까지 이른다.













유식학은 부파불교의 아비달마와 여러모로 공통점이 많다. 부파불교들은 거의 비슷한 경장을 공유하지만, 논장(아비달마)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차이가 커지기 시작한다. 부파불교들의 차이가 생기는 지점에서, 유식불교는 그 내용을 자양분으로 삼으며, 자신만의 문제의식을 들고서 

그래서 유식불교책을 보려면 생각보다 많은 아비달마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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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진 님의 저작들의 첫인상은, 많이 겹친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유는 충분히 있어보인다. 대부분 책들을 구입했고, 이들 책들을 살펴보자.


<몸의 연대기>에서는 춘추시대부터 시작된 고대 중국의 세계관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어떤 것들이 쌓여왔는지, 이 흐름 자체가 추상적인 서양 전통과는 달라 보인다. 엄정하고 엄밀한 추상성을 추구하는 서양의 세계관과는 달리, 감응을 매개로 하는 고대 중국의 감응 모델들은, 스스로가 흐르는 느낌이다. 춘추시대, 전국시대, 진한시대, 위진남북조, 수당 ,, 계속 감응 하지만, 감응의 이유가 조금씩 바껴 간다. 정치 영역, 의학영역, 수행영역 등 각 영역의 필요성에 따라 감응 포인트가 달라지는 흐름이다.


이 변하는 감응양상 들을 포괄할 수 있는 카테고리가 음양, 오행, 주역의 8괘 등이고, 그 시초는 '기' 다. 이는 수행과 의학분야의 변천을 보면 뚜렷이 드러난다. 그래서 이들 패턴을 어떤 절대적인 기준으로 여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동아시아 신체관은 생명 즉 기가 담긴 그릇이고>> 하늘 기운이 들어오는 심장>> 심장에 들어온 기가 넘쳐흘러, 심장밖 몸에 기가 퍼진다>> 오행론을 도입해 심장을 오장으로 확장하다 >> 곡식에 담긴 '기'를 추출하는 6부를 도입하여, 그 기를 5장까지 보내다 >>
















경맥체계가 어떻게 12경맥까지 오게 되었는가도 5장 6부 확정까지의 과정과 다르지 않다. 















감응 을 바라보는 글쓰기는 바쁘다. 우선 감응을 전제로 하지 않은, 그렇지만 감응과 가까운 관점들을 감응과 어떻게 다른지 해결해야 한다. 대표적인 예들이 서양교육을 받은 중국학학자들이 찾아낸 도구들이다. 
















고대 동아시아 철학자들의 목적은 기하학같은 추상성이 아니고,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을 장려하는데 있다. 이를 '양생'이라 부를만하고, 다양한 '양생들'이 있었다.
















이처럼 동아시아 세계관을, 동아시아 세계관 자체로 풀어내려하는 의도와 시도 때문에, 정우진 님의 글들은 겹쳐 보이게 된다. 어떻게 '감응'을 통했는지를 밝히면서, 고대 동아시아 철학자, 의학자, 수행자들의 의도와 진면목을 드러내 보인다.


그리고 <노자>, <장자> 를 풍부하게 해석한 원전 읽기와 <황정경> 을 오염과 왜곡을 줄여 시도한 원전 읽기가 있고, <황제내경>이나 <포박자> 등을 다룬, 공동저자나 공동번역자로 참여한 책들이 있다.


그리고 서양의학과 동아시아 의학의 전연 다른 시작을 다루기 위해, 이들 의학들이 기대고 있는 가치관들의 차이에 주목하여, 의사와 공동번역한 <몸의 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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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읽기는 무척 흥미롭다. 사기나 그후 역사가들에 의하면, 한나라뿐 아니라 당나라까지 장자 의 원형이 보존되어 있을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남은 문헌은 곽상 편집본 뿐 이다. 노자는 그렇게 많은 발굴문헌이 끊이지 않고 나오는데, 장자는 거의 나오지 않는거 같아서 슬프다. 기껏해야 돈황본 조각문헌으로 조금 나온거 뿐이라니, 장자를 누른 사정이 있지않나 싶다.

게다가 곽상이 편집하면서 장자의 취지를 적지 않게 왜곡시켰음은 분명하다.

그러하니 장자 해석은 노자보다 스펙트럼이 넓을 수 밖에 없다. 장자 책중에 곽상을 존중하면서 하는 해석도 있다.















그 반대편에는, 수행자로서 일자, 천 을 돌아보는 장자를 해석하는 후쿠나가 미츠지의 장자가 있다.















이러한 고대중국 춘추전국시대 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풀어주는 정우진의 양생과 장자 도 있다.
















주역 공부하시는 김상섭 님과 고대중국 정신세계 탐구하시는 정우진님은 제일 좋아하는 저자 2인이다. 본격적인 연구서들이 뜸해서 목빼고 기다립니다. 해피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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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자료가 없는 시기인, 상나라은허시기 이전은, 거의 고고학의 도움이 절실하다. 하지만 거꾸로 고고학관점으로는 도무지 보기 힘든 영역도 적지 않은거 같다.

그래도 고고학으로 그동안 억측이나 문자전승에만 기댔던 미지의 영역이 몇몇은 뚜렷해져 보인다. 문자전승에 따라 하상주 삼대 중 하나라라고 중국측에서 주장하는 중국 초기국가와 상나라 후기 이전 초기 중기 상나라에 관한 고고학자들의 주장이 다음 책들에 잘 정리되어 있다.















<중국고고학>에서는 얼리타우, 얼리강 문화 속 초기국가의 문화 복잡도가 주변 지역을 압도한다고 보고 있다. 신석기 시대부터 수십개의 문화가 얼리타우 지역 포함 중국 지역 에서 자생하고 있었지만, 국가급의 복잡도가 등장한 것은 얼리강 문화가 처음이라고 한다.

중국고고학에서 문화복잡도는 최고위층이 주도하는 제사와 의례용품(고급 청동기) 제조에 관련된 것, 제조에 필요한 자원수집, 일상용품(일상 청동기, 자기) 제조, 자연자원(소금) 채취 등에 따라 나뉘는 거 같다. 수도, 지역중심지, 거점지역 그 일들을 나눠서 한다.

그리고 청동기나 합금의 비율로도 문화를 볼 수 있다. 청동기 서역기원설도 있었지만, 청동기 합금 비율이 중국중원 기원과 유라시아초원 지역은 차이가 커, 오히려 상나라 영향권인지, 유라시아초원 영향권인지 구별을 준다.

상나라 중심으로 문화력을 기술하면, 상나라 초기 주변 문화에 비하여 우위에 서서 주변지역으로 확장해 들어갔고(문화적 영토상 모두), 상나라 중기가 되면 이러한 우위는 힘을 잃어 수도나 지역중심지에 방어시설이 크게 늘고 문화적 전파는 줄게 된다. 은허시기인 상나라 후기에서는 조금 회복하는 정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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