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진 님의 저작들의 첫인상은, 많이 겹친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유는 충분히 있어보인다. 대부분 책들을 구입했고, 이들 책들을 살펴보자.


<몸의 연대기>에서는 춘추시대부터 시작된 고대 중국의 세계관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어떤 것들이 쌓여왔는지, 이 흐름 자체가 추상적인 서양 전통과는 달라 보인다. 엄정하고 엄밀한 추상성을 추구하는 서양의 세계관과는 달리, 감응을 매개로 하는 고대 중국의 감응 모델들은, 스스로가 흐르는 느낌이다. 춘추시대, 전국시대, 진한시대, 위진남북조, 수당 ,, 계속 감응 하지만, 감응의 이유가 조금씩 바껴 간다. 정치 영역, 의학영역, 수행영역 등 각 영역의 필요성에 따라 감응 포인트가 달라지는 흐름이다.


이 변하는 감응양상 들을 포괄할 수 있는 카테고리가 음양, 오행, 주역의 8괘 등이고, 그 시초는 '기' 다. 이는 수행과 의학분야의 변천을 보면 뚜렷이 드러난다. 그래서 이들 패턴을 어떤 절대적인 기준으로 여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동아시아 신체관은 생명 즉 기가 담긴 그릇이고>> 하늘 기운이 들어오는 심장>> 심장에 들어온 기가 넘쳐흘러, 심장밖 몸에 기가 퍼진다>> 오행론을 도입해 심장을 오장으로 확장하다 >> 곡식에 담긴 '기'를 추출하는 6부를 도입하여, 그 기를 5장까지 보내다 >>
















경맥체계가 어떻게 12경맥까지 오게 되었는가도 5장 6부 확정까지의 과정과 다르지 않다. 















감응 을 바라보는 글쓰기는 바쁘다. 우선 감응을 전제로 하지 않은, 그렇지만 감응과 가까운 관점들을 감응과 어떻게 다른지 해결해야 한다. 대표적인 예들이 서양교육을 받은 중국학학자들이 찾아낸 도구들이다. 
















고대 동아시아 철학자들의 목적은 기하학같은 추상성이 아니고,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을 장려하는데 있다. 이를 '양생'이라 부를만하고, 다양한 '양생들'이 있었다.
















이처럼 동아시아 세계관을, 동아시아 세계관 자체로 풀어내려하는 의도와 시도 때문에, 정우진 님의 글들은 겹쳐 보이게 된다. 어떻게 '감응'을 통했는지를 밝히면서, 고대 동아시아 철학자, 의학자, 수행자들의 의도와 진면목을 드러내 보인다.


그리고 <노자>, <장자> 를 풍부하게 해석한 원전 읽기와 <황정경> 을 오염과 왜곡을 줄여 시도한 원전 읽기가 있고, <황제내경>이나 <포박자> 등을 다룬, 공동저자나 공동번역자로 참여한 책들이 있다.


그리고 서양의학과 동아시아 의학의 전연 다른 시작을 다루기 위해, 이들 의학들이 기대고 있는 가치관들의 차이에 주목하여, 의사와 공동번역한 <몸의 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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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읽기는 무척 흥미롭다. 사기나 그후 역사가들에 의하면, 한나라뿐 아니라 당나라까지 장자 의 원형이 보존되어 있을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남은 문헌은 곽상 편집본 뿐 이다. 노자는 그렇게 많은 발굴문헌이 끊이지 않고 나오는데, 장자는 거의 나오지 않는거 같아서 슬프다. 기껏해야 돈황본 조각문헌으로 조금 나온거 뿐이라니, 장자를 누른 사정이 있지않나 싶다.

게다가 곽상이 편집하면서 장자의 취지를 적지 않게 왜곡시켰음은 분명하다.

그러하니 장자 해석은 노자보다 스펙트럼이 넓을 수 밖에 없다. 장자 책중에 곽상을 존중하면서 하는 해석도 있다.















그 반대편에는, 수행자로서 일자, 천 을 돌아보는 장자를 해석하는 후쿠나가 미츠지의 장자가 있다.















이러한 고대중국 춘추전국시대 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풀어주는 정우진의 양생과 장자 도 있다.
















주역 공부하시는 김상섭 님과 고대중국 정신세계 탐구하시는 정우진님은 제일 좋아하는 저자 2인이다. 본격적인 연구서들이 뜸해서 목빼고 기다립니다. 해피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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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자료가 없는 시기인, 상나라은허시기 이전은, 거의 고고학의 도움이 절실하다. 하지만 거꾸로 고고학관점으로는 도무지 보기 힘든 영역도 적지 않은거 같다.

그래도 고고학으로 그동안 억측이나 문자전승에만 기댔던 미지의 영역이 몇몇은 뚜렷해져 보인다. 문자전승에 따라 하상주 삼대 중 하나라라고 중국측에서 주장하는 중국 초기국가와 상나라 후기 이전 초기 중기 상나라에 관한 고고학자들의 주장이 다음 책들에 잘 정리되어 있다.















<중국고고학>에서는 얼리타우, 얼리강 문화 속 초기국가의 문화 복잡도가 주변 지역을 압도한다고 보고 있다. 신석기 시대부터 수십개의 문화가 얼리타우 지역 포함 중국 지역 에서 자생하고 있었지만, 국가급의 복잡도가 등장한 것은 얼리강 문화가 처음이라고 한다.

중국고고학에서 문화복잡도는 최고위층이 주도하는 제사와 의례용품(고급 청동기) 제조에 관련된 것, 제조에 필요한 자원수집, 일상용품(일상 청동기, 자기) 제조, 자연자원(소금) 채취 등에 따라 나뉘는 거 같다. 수도, 지역중심지, 거점지역 그 일들을 나눠서 한다.

그리고 청동기나 합금의 비율로도 문화를 볼 수 있다. 청동기 서역기원설도 있었지만, 청동기 합금 비율이 중국중원 기원과 유라시아초원 지역은 차이가 커, 오히려 상나라 영향권인지, 유라시아초원 영향권인지 구별을 준다.

상나라 중심으로 문화력을 기술하면, 상나라 초기 주변 문화에 비하여 우위에 서서 주변지역으로 확장해 들어갔고(문화적 영토상 모두), 상나라 중기가 되면 이러한 우위는 힘을 잃어 수도나 지역중심지에 방어시설이 크게 늘고 문화적 전파는 줄게 된다. 은허시기인 상나라 후기에서는 조금 회복하는 정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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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 노하우>도 3강의로 이루어져 분량이 많지 않지만, <자기생성과 인지>도 만만치 않다. 그도 그럴것이 논문 2개를 한책으로 구성했기 때문이다. 분량은 그렇지만, 그래도 파급력은 만만치 않다.















그리고 <몸의 인지과학>에서 당연하게 전제하고 주장하고 설득하던 적지 않은 내용이 여기 <자기 생성과 인지>에 많이 담겨 있다. 공동저자 마뚜라나 는 서문에서  '자기생성'을 주장하게된 경위를 마치 화두를 잡은듯이 생생하게 기술한다.

첫번째 논문은 '인지생물학' 이고, 둘째가 '자기생성: 살아있음의 조직'이다. 읽다보면 불현듯 <몸의 인지과학> 역자가 이 논문을 잘 녹여 번역한 건지 아주 작은 의문이 들기는 했다. 제목 'the embodied mind: cognitive science and human experience' 를 '몸의 인지과학'으로 번역한 부분이, 저 인지와 생물학과 심리와 자아 등 사이의 긴장감을 못잡아 주는 거 같았다. 어쨌든 그건 작은 흠이고, 두 논문, 두 책 모두 매우 매우 새로운 시선을 보여준다.

이책의 부제인 '살아있음과 인지'가 훨씬 '내용을 잘 관통하는 요약인거 같고, <몸의 인지과학>에서 이 '살아있음'과 '인지' 사이를 지관같은 불교입장에서 잘 보여주는 거 같다.


이처럼 생물학과 인지를 오가는 대담한 주장은, 그 나름의 한계도 갖게 되는데, 번역자의 후기에 잘 그려져 있다. 대담하고 뛰어나다고 생각되는 부분인 '살아있음=인지' 에 대한 해석과 관련 학계 수용양상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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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인지과학>을 처음 읽었을 때는 감흥이 크지 않았다. 불교전통을 너무나 가볍게 취하는 몇몇 서양저자들의 글쓰기에 실망을 겪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원하는 관점과 시선을 취하고 금방 흥미를 잃어버리는 어린아이들처럼 구는 모습이 종종 보였다. 그래서 아시아 불교전통을 언급하는 것을 보고, 조금 인용하고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말겠구나 하고 책을 덮었다. 그러고 한참 후에 책을 열었다.















다시 책을 읽다가 저자들이 인용하는 책들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게 된다. 이 심상치 않음은, 몇몇 요소들로 구성되는데, 우선 내가 재밌게 본 책들이 연달아 출현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궁금하고 관심은 있지만 높은 문턱으로 못들여다본 전문영역의 지식기술과 인용들이 있다는점, 


심신문제, 불교수행의 대상, 아비달마 철학의 대상 을 그 책들에서 기술하는 것을 


특히 불교에 관한 접근은, 수행자인지 여부가 매우 큰 차이를 준다. 명상같은 수행을 통해 체험한 교설과 지식으로 접한 교설은 매우 다르다. 이는 고대 중국 사상도 같다. 제자백가들은 일반인보다는 수행자의 입장에서 다룬 사상들이다. 


인지과학 학문의 특이성을 잘 짚어내고, 그 변천사를 잘 풀어준다. 특히 인지과학 초기 형성기의 집단들과 문제의식 이 재밌다. 요새 AI 교과서 앞부분에 조금 언급하고마는 사이버네틱스 운동의 등장이 인상깊다. 정신현상의 연구를 철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의 손에 맡기는게 과연 타당한가 라는 문제의식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서양 철학 전통에서 인간경험에 대한 철학은, 현상학에서 시작한다. 후설의 현상학은 경험과 사상자체로 향하고자 했고, 하이데거의 현상학은 현상학을 실존적 방식으로 접근했지만, 그 지향과 달리 이론적 반성에 그쳤다. 그뒤 이성적 영역을 넘어 비이성영역을 끌어온 정신분석이 등장한다.


이 책의 진짜 묘미는 이제 시작이다. 앞서 언급한 것들의 한계를 짚으면서, 필요한 골조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물론, 그와 같은 관심을 가진 이들의 책들을 인용하면서, 조심스럽고 생기있게 만들어 간다. 이런 즈음에는, 어떤 긍정적인 논리를 따라, 긍정적인 희망회로를 짜볼려고 하는 시도는 많이 목격하는데, 계속 저자가 언급하는 불교전통의 지관명상 속에서 어떤 지혜를 발견하는 거처럼, 




그리고 책의 출판시점이 이미 몇십년 전이어서 분야에 따라서는 out of date 도 보인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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