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쉐친 의 책들은 현장성과 흥미롭고 깊이있는 탐구와 창의성이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들이 많았다.
<중국 청동기의 신비>, 마치 복식사처럼, 청동기사 도록이라 할만큼, 우리에게 상식적인 청동기의 이미지에 추가해야할 다양한 청동기 구별과 분별을 정리해 보여준다.
<잃어버린 고리>, 우리에게 전해져 보존된 고문헌들의 가치를, 발굴을 통해 밝히고, 우리에게 잊혀진 고리 까지 언급하며, 과거문헌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만들어준다.
<고문자학첫걸음>, 고문자학을 처음 접한 이들에게 도움을 줄 의도로 작성했지만, 마치 현역학자들의 요약노트 처럼, 가치있게 정리된 기본서다.
세권 모두 독자를 잘 설정하고, 독자에게 친절한 안내와 함께 예상치 못한 지적인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래서 리쉐친의 다른 책들이 보고 싶어졌고, 얼른 번역되었으면 바라게 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의고시대를 걸어 나오며>는 조금은 달라 보였다..
'의고시대'에 관한 저자의 관심과 관점을, 강연하는 구어체로 잘 열고 있지만, 이 서두를 지나고 나면 흥미로운 글들이 그리 보이지 않는다. 주역연구에 관한 글이 하나 눈에 띄었지만, 이미 김상섭의 여러 주역연구책에서 접한 내용을, 짧게 소개만 해서 아쉬웠다.
그외는 진지한 고고학 책에 실릴, 높은 전문성으로 시야가 한정된 짧은 논문같은 글들이 많다. 그러니까 위 3권에 비해, 저자가 설정한 독자층이 훨씬 전문가들로 제한된 인상이다. 그리고 리쉐친의 반짝반짝 빛나는 깊고 창의적인 해석보다는, '신고'에 초점을 맞춘 약간 중화민족주의에 기운 해석들이 보인다.
옥기, 도철, 옛날 창, 인신공양, 의례용 용기인 뇌와 화, 파촉, 중화민족 시조신화와 중원이외 지역에 신화전파 등은, 나로서는 정보의 나열정도로만 들리고, 그렇게 다가오지 않았다. 괵국, 춘추시대 금기와 옥기 얘기도 그정도였다.
이러면서 내가 가진 고대중국에 관한 배경지식이 대부분 문헌에 한정되었다는 것을 진짜 알게 되었다. 제자백가, 갑골문조금, 역경, 선진시대 역사서 몇 권이 전부기 때문에 이 범위를 벗어나면, 내게는 전문가의 영역이 되고 그 연구들의 흥미로움이 빛이 바래지는 거 같다.
그 문헌과 고고학 사이에서 문헌에 가까운 얘기들이, 리쉐친 의 글들에서 내게는 빛나 보였던 거였다. 그래도 흥미로웠던 몇몇 지점들은 있었다: 서주시기 복골과 상대 복골의 복사를 비교해 놓은 글은 눈에 잘 들어왔고, 문헌기록으로 남지 않은 서주중기 청동기 얘기도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