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닐 세스의 '내가 된다는 것'의 리뷰를 오래전 쓰다가 다 못써서, 이어본다.
















아닐 세스는 의식에 관한 선행 연구를 풍부하게 깔끔하게 잘 정리한 다음, 자신이 관심을 주는 방법론을 소개한다. 이를 위하여 의식을 측정하는 기준과 방법을 제시하고, 의식의 수준을 구별한다(혼수상태, 마취상태, 렘꿈상태 등등). 

그리고 의식의 내용물, 특히 의식적 자기가 된다는 것 을 여러모로 살핀다.


특히 저자는 의식은 제어된 환각이라는 주장을 제기한다.


이 주장을 전제하면, 그 유명한 '의식의 상관물' 이론의 한계를 알 수 있다. 똑같은 의식상태에 대하여 똑같은 신체(혹은 물리)가 대응한다는 논리가 어느정도 조금은 무너진다. 그래서 의식의 상관물 이론과는 다른 자신의 방법론을 제시한다.


그러나 선행연구를 잘 정리한 거에 비하여, 그리고 나름의 방법론을 제시한 것에 비하여, 어떤 깊이있는 이해를 만들었는지는 의문이다(특히 일반 독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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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탑은 주로 사리를 모신, 사리탑으로 많이 인식된다. 그래서 석가 가 죽은지 수백년이 지나, 후대 대승불교로 전파된 우리 불교전통에서는 어떤 의례의 흐름속에서 인식되기보다는, 기물에 가깝게 보는 거 같다.

본토에서는, 불탑은 석가 가 죽은 후 시신 수습과정에서 곧바로 일어난 문제고, 의례였다. 그때 인도 전통 의례측면에서 접근이 있고, 불교특유의 영역이 있다.
















석가의 시신 수습 후 사리를 불탑에 모셨다라고만 알고 있고, 그 중에 아주 일부가 우리나라나 중국의 불탑속에도 모셔졌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그것은 최종의 최종의 결과 일뿐, 상세한 과정은 처음 듣는 부분이 많았다. 그 과정속 재밌는 사정을 <인도불탑>의 저자가 살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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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에는 손행자의 활극이 춤을 춘다. 불교 세계관에서 최대한의 모험극이 서유기 이기도 하다. 

흔히 서유기의 저자로 알려진 오승환 은 저자가 아니다.

서유기는 단일 저자의 작품이 아니라, 여러 쟝르(  )에서 계속해서 변주되고 다듬어진 작품들이 이루어낸 결과물이다.


여러모로 우리에게 익숙치 않은 서유기의 면모를 보여 주는 책이 <서유기의 비밀> 이다.















영화나 만화로 접한 서유기는, 우선 '신밧드의 모험'처럼 어린이와 젊은이에게 다양한 만남과 넓은 세상으로 떠날 것을 권유하거나, 권선징악의 윤리적 성격이 짙었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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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이전 신석기, 구석기 시대 중국 땅에서 벌어진 인간의 자취는, 우리나라 땅에서 일어난 일만큼, 항상 재밌다.

연속성

비연속적인, 그때그때 자료들로 들여다보는 추론으로, 잃어버린 고리 들을 

후대 진한 이후는 비교적 여러 교양서들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인데 비하여
















베이징 원인이 호모 에렉투스 이고, 지역만 가리킬 뿐, 호모 사피엔스 인 고대중국인과는 연속성을 알 수 없다는  점, 

여러 신석기 문화

상나라 갑골문자에 담긴 이러저러한 내용들

농업에 진심인 주나라 문화, 주나라 성립 이전, 서주 시대 이야기


그리고 또다른 잃어버린 고리들에, 문헌에 남아 있지 않은, 청동기 유물에서 발견되는 내용들이 있다. 서주시대와 춘추시대, 전국시대 그리고 진나라 형성 얘기도 흥미롭다.















중국 학자들이 일부는 민족색이 너무 진한 해석을 가해서, 재미없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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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글들은 여러모로 대담하게 보인다. 많은 것들의 '발생'을 탐구하기 때문에, 생물학적 발생, 개념의 발생, 의미의 발생, 철학의 발생... 수많은 영역을 휘젓고 다니고, 그 대담성이 과감을 넘어 성급하거나 과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그가 주장하는 영역과 주장들을, 표현하려면 달리 어떻게 하겠는가? 표현할 수 없는 것은 내버려둬야 할까? 가능한 수준을 계속 확장하고 도전해서 시도해야 할까?


의심스러운 영역들은 

기의와 기표를 포함한 언어학 영역

미분을 다루는 수학

생물의 발생을 다루는 생물영역


철학을 다루는 글쓰기에 충실한 글들과 다른 결을 보인다. 왜냐하면 그가 다루고자하는 대상, 즉 발생은 다양한 층위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는 보통 가장 높은 층위에 있는, 즉 현재에서 우리들이 접할 수 있는 결과물들로 시작해서, 그 직전 층위를 언급하고, 결국 맨처음 층위까지 도달한다. 그러고는 그 발생을 그 과정을 치밀하게 다룬다.

이렇게 나뉜 층위들은 여러 타당성과 효용을 갖게 되지만, 발생이라는 목적에 가장 잘 부합하고 그때 효과들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러니 들뢰즈 글들의 과감성을 탓하기 어렵게 되고, 그런 생성의 원리가 갖는 파급효과를 실감하면서 그의 글들이 긍정적으로 범상치 않아 보이고 슬슬 반하게 되는 거 같다.



<차이와 반복>에서 잠재적인 것, 바탕, ... 물질적인 것과 이념적인 것 사이에 관련성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의미의 논리>에서 '의미'의 자리를 인상적으로 잘 기술하면서 그 관련성이 좀더 이해하기 쉽게 다가왔다.


의미의 자리 말고도, <의미의 논리>에서는 '의식' 혹 '자아'의 자리도 인상적으로 기술한다. 말그대로 의식의 발생을 정신분석학을 이용하여, 그러니까 정신분석학의 용어를 빌어 기술하고, 설득력이 느껴진다.


<의미의 논리>를 보는 큰 재미는 들뢰즈가 다양한 방식과 층위로 의미를 소개하는 점이다.의미에 매달려 있는 수많은 영역들을 발생이라는 관점으로 거의 완전히 새롭고 깊이있게, 어느정도는 확인불가능을 깔지만, 독자에게 던져 준다. 인문학, 언어학, 심리철학... 그 동안 간간히 읽어왔던 이들 분야에 다시 읽으면 다른 의미를 충분히 줄 정도로 흥미로운 관점이다.


루이스 캐롤의 앨리스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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