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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천명관 지음 / 창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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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이란 작가의 책을 왜 이제서야 읽었을까. 책을 읽으며 계속해서 아쉬워했다. 천명관 작가라 하면 <고래>라는 책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 나에게 고래의 이미지란 묵직하고도 묵직해 나는 자연스레 천명관 작가를 가벼이 만나기가 어려웠다. <고래>라는 책 속의 문체가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 노동자>와는 조금 다를 것이란 생각이 들긴하지만, 어찌됐든 천명관의 매력에 빠졌으니 빠른 시일 내에 읽어야 겠단 독서욕이 오랜만에 치민다.

 

아무 데도 갈 데가 없었다

하지만 어디로든 가야 했다.

 

나는 책을 읽을 때 항상 책 표지에 인용된 문구 부터 먼저 읽는다. 저번 달 대상도서였던 <신중한 사람> 역시 책 뒤에 나와있던 "가끔 기우뚱했지만 그럴 때면 몸을 반대로 약간 기울여서 중심을 잡았다"라는 문장에 홀리듯이 책장을 열었는데 이번 역시 마찬가지였다. 갈 데가 없으나 어디로든 가야만한다는 아이러니한 문장에 묵직한 공감을 느꼈던 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도 자주 그런 모순된 상황들과 마주하기 때문이다.

 

 유머스럽고 시니컬한 대사와 문장들에 이야기가 술술 읽혔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작품마다 작중 인물의 개성이 확연히 드러나는 문체를 골라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 었다. 특히나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의 경구와 <동백꽃>의 유자가 가장 맛깔나는 문체를 소유한 인물들이었다. 작품마다 통통 튀는 개성있는 인물들이 등장해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상황만큼은 그리 재밌지 않다. 우스꽝스럽게 인물들을 묘사하고는 있지만, 그들이 처한 아이러니는 개인만의 비극이었지만, 그들이 속한 무리를 확장하여 사회 전반적인 이야기로도 풀어 읽을 수 있어 좋았다.

 

 

 또 재수없는 새끼를 만나면 칠면조로 실컷 패주리라, 마음먹으며 경구는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130)

 하지만 그에겐 졸피뎀이 몇알 남아 있었다. 수면제를 먹고 푹 자고 일어나면 그의 휑한 방엔 풍성한 여자의 살냄새가 가득 차 있을 것이다.(180)

 

 살인을 마주한 두 인물은 신기할 정도로 아무렇지않게 갈 곳 없는 곳을 달리고 있다. 살인을 저질렀다는 죄책감이 아니라, 트럭을 몰았다면 제 삶이 이리되지않았을거란 억울함으로 광기어린 질주를 하는 경구의 모습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들이 기대는 '무기'가 고작 칠면조와 졸피뎀이라는 것이 우수꽝스러울만큼 약하게 느껴지지만, 그럴수 밖에 없는 그들의 처지가 더 극대화되어 다가오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우이동의 봄>과 <파충류의 밤>처럼 비교적 차분한 문체의 작품들이 적절하게 섞여 배치되어 구성적으로도 강약조절이 잘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장례식장을 배경으로 한 <봄, 사자의 서>라는 '죽음의 시간'을 말하는 작품을 시작으로, 까짓거 거칠게 한판 살다가는거다. 라는 삶의 무책임한 대사로 나아가는 표제작. 가벼운 대사들과 유머 속에 담겨있는 묵직한 철학이 툭, 하고 던져지는 기분이다. 마치 <핑크>의 마지막 대사의 반전 처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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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날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1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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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레미제라블>을 영화관에서 두 번 봤다. Do you hear the people sing?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가 쌓여 영화관 전체를 울리는 함성소리로 커져나가는 장면에서, 나는 눈물이 났다. 영화의 제목처럼 그들을 '불쌍한 사람들' 이라 보며 흘린 동정의 눈물은 아니었다. 그 노래를 듣기 위해 다시 한 번 영화관을 찾았고 또 울었으며 요즘도 종종 그 노래를 찾아듣는다. 도저히 변할 것 같지않은 세상에, 개인이 맞서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한 세상에, 목소리들이 한데 뭉쳐져 큰 울림을 준다는 것에 희망과 희열을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프랑스 혁명은 그들이 원하던 성과를 이뤄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영화 속에 혁명의 피가 물든 바닥을 청소하며 아낙네들은 그들을 기억하며, 그들이 바라던 세상을 마음 속에 담는다.

 

 제르미날을 읽으며 가장 인상깊었던 메타포는 '싹'이었다. 제르미날은 '파종의 달, 싹트는 달'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germinal' 에서 'germer' 싹이 튼다는 의미이며, 'mine' 탄광, 'al' 공화력을 나타난다. (해설 398p 참조)  제목에서부터 작가가 책에 담으려했던 메시지들이 드러난다. 탄광이라는 장소에서 사람들이 모여 이루어낸 혁명의 싹. 에밀 졸라는 제목을 짓기 위해 꽤 많은 고심을 했다고 한다. 거대한 서사를 담아내는 데 그 어떤 것보다 탁월한 제목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득한 지평선 그 어디에도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았고, 어둠의 바다가 일으킨 물보라가 시야를 가리는 가운데 방파제처럼 보이는 직선도로만 길게 뻗어있었다. (10p)

 

 책의 첫문단에 있는 문장이다. 나무 한 그루 없었던 피폐한 지평선을 바라보며 에티엔의 여정이 시작된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문단을 보면 이 책의 시작과 끝이 대비됨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복수를 꿈꾸는 검은 군대가 발고랑에서 서서히 싹을 틔워 다가올 세기의 수확을 위해 자라나고 있었다.그리하여 머지않아 그 싹이 대지를 뚫고 나올 것이었다. (370p)

 

 800페이지를 넘는 방대한 분량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흡수시켜 전달하는 듯 했다. 탄광의 혁명은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에티엔이 사랑하던 카르텐마저 숨진 이 비극적인 상황에서 에티엔은 '싹을 틔워 다가올 세기의 수확'을 기대한다. 소용없어 보였던 일의 가치를 부여하는 일, 그리고 그 시간들을 또 다른 혁명의 잠재성, 씨앗으로 바라보는 일. 어찌보면 너무도 현실적인 결말에서 에밀 졸라는 희망을 그려낸다.

 

 책을 읽으며 굳이 맑스의 자본론과 사회주의 이론들을 떠올리지않으려 했다. 그저 서사를 따라가고 인물들의 대화와 시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만으로, 굳이 '이론'을 따지지않더라도 이들의 삶이 지녀야마땅했을 권리들을 생각할 수 있었다. 내 안에서 확립된 생각으로 싹을 틔우기엔 아직 책이 소화되지 않은 것일수도 있다. "빵을 달라! 빵을 달라!". 하지만 책을 덮고도 잊혀지지않는 단순한 대사를 담아두며 언젠가 이 책을 다시 한번 곱씹고 싶다. "제르미날! 제르미날!"에밀 졸라의 장례식날 울려퍼졌다던 함성을 떠올리며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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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한 사람
이승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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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참 책을 읽던 중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너는 신중하기 때문에'라는 전제로 무언가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찾기를 원했다. 나는 그런 말을 처음 들어봤다. 그가 내게 왜 신중하다는 표현을 하는지 고민을 해보며, 나는 신중하다는 표현 대신 '생각이 더럽게 많다'는 말이 더 내게 어울릴 것 같다고, 만약 신중하다는 말이 생각이 더럽게 많다라는 말과 같은 뜻이라면 그 말을 인정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에도 나는 그 순간 조금 불쾌해졌다. 그리고 그 불쾌함의 이유를 찾아보자 책상 옆에 노랗게 놓인 이 책이 있었다.

 

 나는 이승우라는 소설가를 이번 소설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따라서 그의 소설은 이 단편집의 첫번째 순서를 맡고 있는 <리모콘이 필요해>이 처음이었다. 제목에 드러나는 '필요'는 곧 대상을 향한 욕구이며 의지의 표현이다. 하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제목과 달리 자신의 의지가 무엇인지조차 잘 알지 못한다. 오히려 주위의 욕구와 변명에 하릴없이 끌려다닐 뿐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진짜 속내는 감추고 그 속을 가리고 있는 1차적인 (쓸데없는) 욕망, 리모콘에 집착을 하며 리모콘만 있으면 숨어있는 불분명한 욕구까지 해소될 수 있을거란 신중하지 못한 결론에 다다르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온몸을 내던지듯 달려드는 사람들에게 나는 불편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의 세상에대한 적극적인 태도와 과감하고 거침없는 움직임을 거북해하는 것 같다. 그들이 곧 과감하고 거침없이 나에게 무언가를 들이밀고 대들 것 같아 무섭다고 해야할까. 나에게 친절을 베풀려고 애쓰는 선배가 왜 거북한지, 왜 그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지 알 것 같아졌다. (34p)

 

 이 소설 속 인물의 심리상태를 가장 잘 드러내는 문단이라고 생각한다. 짧은 문단에서 '같다'라는 말이 무한히 반복되어 나온다. '같다'는 자신의 의견에 대한 책임을 한발자국 뒤로 내빼는 말로, 적극적인 주장이 필요한 논술에서는 가차없이 빼버려야하는 서술어 중 하나이다. 선배에게 끌려다니는 것을 끊임없이 끔찍해하고 싫어하면서도 결국에는 술집에까지 끌려와 덩그러니 앉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인물을 시작으로 이 단편집은 유사한 형태의 '신중한 사람'을 소개한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신중한 사람>은 표제작인만큼, 작가가 말하는 '신중한 사람'의 정의를 꽤 강력하게 드러내고 있다.

 

신중한 자는 저지르거나 부수거나 걷어차지 못한다. 신중한 자는 보수주의자여서가 아니라 신중하기 때문에 현상을 유지하며 산다. 현상이 유지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현상을 유지하지 않으려 할 때 생길 수 있는 시끄러움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현상을 받아들이고, 그 때문에 때때로 비겁해진다. 그럴 때는 먹은 것이 얹힌 듯 가슴이 답답해서 가끔 쿵쿵 소리 나게 가슴을 때렸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신중했으므로, 그는 완전하고 완벽한 자기 세계에 대한 꿈을 유보하는 편을 택했다.(46-47)

 

 <리모콘이 필요해>에 나오는 인물이 제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조차 드러내지 않았다면, <신중한 사람>의 인물은 제가 원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가족의 요구에 따라 뒤로 물리고 안으로 삭히고 또 삭힌다. 그렇기때문에 전편을 읽으며 품었던 '같다'반복의 답답함이 한층 더 심화되어 읽는 독자의 가슴마저 쿵쿵 때리게 만든다. (이 시점에서 나는 '신중한'이라는 수식을 '답답한'이라는 수식으로 바꾸기 시작했고 누군가 나에게 '신중하다'라고 말을 했을 때, '나를 답답한 사람으로 보는구나'라는 억지 자괴감에 들고 말았다.)

 상대적으로 서술자의 단상보다 서사가 살아있는 <어디에도 없는>과 <딥 오리진> 역시 말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전편들 보다는 말을 조금 줄여 사건 자체가 나타내는 의미에 대해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왜? 그래서 어떻게? 를 꼬리물게 되는 흥미로운 사건 덕에 상념만 반복된다면 지루해 덮어버릴 수 있었던 단편집의 호흡을 잘 조절했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끊임없는 상념의 완결은 역시나 책의 마지막 편이자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있는 <하지않은 일>에서 줄줄이 이어진다. 하지 않은 일에 대해 해명하는 것은 '하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것 밖에 없다는 주장을 4페이지 넘게 설명하고 있으며, 지겨워질 때쯤 '당신'이 겪은 하지않은 일에 대한 억울한 사건들을 풀어내며 그 주장을 강화한다. 결국 소설이란 단순한 주장을 그럴듯한 이야기와 문장으로 길게 풀어 써낸 것이라 할 수 있을테다.

 너무도 신중하여 뱉어내는 말은 적지만, 그만큼 안에서 맴도는 문장들은 어마어마하게 불어나 세상이 기우뚱해지는 사람들. 타이트한 삶을 살아가는 시대 속에 이처럼 느린 화면으로 늘어지는 이 소설이 가지는 가치는 심도 깊다. 책을 읽고 나자 이승우의 문체(혹은 이 책에서 고집하고자하는 문체)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한문장이라도 쉽게 내버려두지않고, 그 문장의 까닭을 쉼없이 꼬집으며 상념을 줄줄이 풀어내지만, 그 상념을 따라 읽어내다보면 처음에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나중이 되어서는 '뭐 이렇게 말이 많아'라는 불평이 일게 되는, 따라서 호불호가 갈리기 쉬운 문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중하기 때문에 생각이 많고, 생각이 많기 때문에 할 말이 많은 이 소설집의 인물은 닮고 싶지 않았으나 이 소설을 쓴 작가는 존경할만 하다. 그 누가 쓸데없음을 이토록 가치있게 풀어낼 수 있을까. 

 누군가 내게 다시 한번 '신중한 사람'이라는 말을 한다면 꽤 좋은 쪽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책에 나오는 인물보다는 좀 더 확고한 생각을 가진 사람인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는 편이며, 그렇게 '생각'이라도 해야지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결정 역시 부담 없이 해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라며 머무르는 생각을 입에 내뱉을 때는 '같다'라는 말을 뺄 수 있도록 답답하지 않은 '신중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럴듯한 교훈이 남겨진 소설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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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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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 처음 도착했을 때, 얇고 가벼운 책의 무게를 느끼며, 짧은 페이지로 묶여있는 장들을 대충 훑으며, '금방 읽겠거니'하며 읽는 날을 미뤘다. 읽어야겠다는 마음을 잡고 지하철에서나 강의실에서 이 책을 펼쳤지만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가볍기만 했던 책은 책장 하나를 넘기기기에도 버거웠다. 어느 순간부터는 한장 한장 읽어내기를 포기하고 일단은 책장을 끝까지 넘기기로 했다. 그리고 책을 덮었다. 남은 것이 있을까 생각했다. 의미를 얻지 못한 문장들만 머릿 속에 둥둥 떠다녔다.


 지금 쓰고 있는 글은 책을 읽은 것이 아닌, 책 읽기를 실패한 자의 변명이나 한숨의 기록이라 할 것이다. '알랭, 칼리방, 샤를, 라몽' 이 네 사람의 이름에 익숙해지는 것 조차도 힘겨웠다. 그들이 하는 말을 이해해보려하는 순간 문단은 끝나 금방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고 나는 당황해하며 자꾸만 뒤를 돌려봤지만 성질만 부리며 덮어버렸다.


 프랑스의 르몽드지는 이 책에 대하여 '쿤데라가 독자들을 위해 열어 준 지혜의 축제. 보다 높이 날아오르기 위한 가벼움'이라고 말했다. 축제는 기존의 엄숙하고 권위적인 주류 문화에 대한 저항에 따라 모든 질서가 전복되고 일탈이 허용되는 순간이다. 축제를 진정으로 줄기기 위해선 '권위적인 주류 문화'의 존재를 의식하며 주류 문화가 가지는 부조리에 대한 의식 또한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쿤데라가 열어준 '무의미의 축제'에 몸을 던지기 위해 알아내야 할 거대한 '무의미' 혹은 '의미'의 대상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그의 소설을 한번도 읽지 못했다는 이유가 제일 클 것이다. <무의미의 축제>를 말하며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전작 <농담>을 언급한다. 두 소설 모두 농담이 농담으로 받아들여지지않는 순간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의미 없는 말을 의미 있는 말로 해석하여 농담을 던진 사람의 삶 전체를 그 '유의미의 말'로 점철시켜 버리는 것이다. 여기서 <무의미의 축제>라는 소설이 가지는 '의미'를 흐릿하게나마 잡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농담>을 읽지 못했기에 남들이 쓴 의미만을 좇는 것일 뿐이다.


 그나마 이 책에서 내게 가장 의미있게 남은 장면은 알랭의 엄마가 자살을 하려다 누군가를 살해한 대목이다. 내가 죽기 위해 누군가를 죽여버린 아이러니, 그리고 죽기 위해 누군가를 죽인 순간 삶에 대한 갈망이 숨차게 밀려온 그 아이러니. 뒷통수를 강타하는 강렬한 모순에서 이어지는 알랭의 '사과쟁이'에 대한 부정적인 단상들이 묘하게 얽혀 어떤 '의미'를 일렁이게 만든다.


"나 자신한테 화가 나서 그래. 나는 왜 틈만 나면 죄책감을 느끼는 걸까?"

"사과를 하는 건 자기 잘못이라고 밝히는 거라고. 그리고 자기 잘못이라고 밝힌다는 건 상대방이 너한테 계속 욕을 퍼붓고 네가 죽을 때까지 만천하에 너를 고발하라고 부추기는 거야. 이게 바로 먼저 사과하는 것의 치명적인 결과야."(57,58 p)

 알랭은 '사과'는 미안함을 전달하는 목적만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환심을 사기 위한 행동이며 곧 지금 벌어진 일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인정하는 꼴이라며 의미를 덧붙인다. 결국 알랭 역시 길거리에 어깨가 부딪힌 여자에게 사과를 던지고 자책하고 마는 '사과쟁이'인 셈이다. 그가 사과쟁이가 되어버린 이유는 물에 빠진 남자의 생명을 죽이고 자신의 삶이 태어났다는 자신의 존재성부터가 '죄'의 시작이었다고 의미지어 버리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생은 그저 생일 뿐이다. 잉태했기 때문에 태어났으며,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갈 뿐이다. 자식을 낳느냐 마느냐 선택하는 부모에게는 어떠한 '목적'이 있을 수 있지만, 마냥 태어나는 아이는 그저 태어나는 일만 하는 것이다. 의미를 붙여 사과쟁이가 될 필요가 없다.


 이런식으로 슬그머니 내가 읽어낸 장면에 의미를 덧대는 일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을 완벽히 읽어내며, 작가의 의도를 완벽히 파악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드는 모든 생각과 문장들은 결국 내 마음대로 의미를 붙여 내게 의미를 남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 역시 그처럼 마음대로 의미를 만들어 기억해도 될 일이다. 하지만 의미를 담아내는 것이 재미가 아닌 억지처럼 느껴질 때는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다.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의미를 둘 수 없다는 것에 안타까워 하지 말고, 무의미 그 자체를 사랑하라. 어쩌면 이 책에 대한 의미 찾기를 포기하는 일이 작가가 바라는 것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담 없이 책을 다시 한 번 읽고 싶다. 그가 전하고자 하는 진정한 '무의미의 축제' 그리고 그 속의 철학이 무엇인지 사랑할 수 있도록. 무의미를 찾기 위해 의미를 되짚는다. 무의미를 찾기 위해 의미를 죽인다. 그 순간 의미가 살아난다. 모순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 또한 이 책을 사랑하는 법을 찾는 과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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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9월이다. 잠깐 눈을 감아 양치질을 하고 있다보면 오늘이 화요일인지 수요일인지도 잘 모르겠다. 오늘이 3월 4일이라고 말하더라도 믿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시간 감각. 날짜 감각. 그만큼이나 흘러가는 시간이 실감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슬슬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이불을 끌어당겨 더위가 아닌 따뜻함을 느끼게 될 '가을'이 찾아오면, 제대로된 계절감과 시기감을 실감할 수 있을까. 어찌됐든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 그리고 독서의 계절. 읽어야 할 책이 산더미지만, 역시나 오늘도 쏟아져나오는 신간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작품 몇개를 골라본다.

 

 

 

 

 

1. 여자 없는 남자들 ㅣ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의 소설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단편은 접해본 적이 없어 단편에서 만나는 하루키의 문체는 또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하다. 홍보 차 단편에서 한문장씩 뽑아놓은 글귀를 보니 전체적인 글의 맥락이 흐릿하게 뭉쳐졌다 흩어진다. 늘 읽고 나면 묘한 우울함과 박탈감에 젖게 만드는 하루키의 소설을 읽기란 꽤 큰 마음다짐이 필요하긴하지만 하루키의 신작은 그 부담에도 불구하고 꼭 '읽어줘야만하는' 필요성과 가치가 있다.

 

 

 

 

 

 

 2. 자살의 전설 ㅣ 데이비드 밴

 

  제목이 끌렸다. 자살의 전설이라. 데이비드 밴이라는 작가는 처음 들어보지만, 제목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포스가 느껴진다. 5편으로 이어지는 연작소설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연작소설은 한편 한편 읽어나가면서 색색깔 실뭉텅이를 바늘로 꿰매는 재미가 있기 때문에 더 끌린다. 책에서 뽑힌 몇 문장을 읽어보니, 그렇게 어렵지 않지만 뼈가 서려있는 문장들이라 맘에 든다. '기억이 삶 또는 자아를 세우는 기반인 한, 귀향은 삶과 자아를 제거하는 행위일 수밖에 없다.' 책을 펴보고 싶다.

  

 

 

 

 

 3. 디저트 월드 ㅣ 김이환

 

 최근에 성석제의 소설 '투명인간'을 아주 인상깊게 읽은 터라, 성석제가 기대하고 애정한다는 작가의 소설이라고 하니 저절로 눈길이 갔다. 재기발랄한 표지와 달콤한 소제목들. 온갖 디저트들이 나열되는 문장들에 구미가 당긴다. 환상적 요소가 가미되어 모호한 시공간을 넘나드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고 한다. 어떻게보면 동화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4.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 ㅣ

 

 세대 간의 갈등. 병든 가족의 이야기. 어떻게 보면 흔한 소재라할 수 있지만 그만큼 지금 사회에 계속해서 대두되어야 할 화제이기도 하다. 간단한 줄거리들을 살펴보면, 가족 속에서 유령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런 그들이 신체를 얻을 때, 라는 시기를 제목으로 하고 있는 이 소설은, 그리고 박민정이라는 신인작가는  어떤 시선으로 우리의 가족을 바라보고 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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