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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천명관 지음 / 창비 / 2014년 8월
평점 :
천명관이란 작가의 책을 왜 이제서야 읽었을까. 책을 읽으며 계속해서 아쉬워했다. 천명관 작가라 하면 <고래>라는 책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 나에게 고래의 이미지란 묵직하고도 묵직해 나는 자연스레 천명관 작가를 가벼이 만나기가 어려웠다. <고래>라는 책 속의 문체가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 노동자>와는 조금 다를 것이란 생각이 들긴하지만, 어찌됐든 천명관의 매력에 빠졌으니 빠른 시일 내에 읽어야 겠단 독서욕이 오랜만에 치민다.
아무 데도 갈 데가 없었다
하지만 어디로든 가야 했다.
나는 책을 읽을 때 항상 책 표지에 인용된 문구 부터 먼저 읽는다. 저번 달 대상도서였던 <신중한 사람> 역시 책 뒤에 나와있던 "가끔 기우뚱했지만 그럴 때면 몸을 반대로 약간 기울여서 중심을 잡았다"라는 문장에 홀리듯이 책장을 열었는데 이번 역시 마찬가지였다. 갈 데가 없으나 어디로든 가야만한다는 아이러니한 문장에 묵직한 공감을 느꼈던 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도 자주 그런 모순된 상황들과 마주하기 때문이다.
유머스럽고 시니컬한 대사와 문장들에 이야기가 술술 읽혔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작품마다 작중 인물의 개성이 확연히 드러나는 문체를 골라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 었다. 특히나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의 경구와 <동백꽃>의 유자가 가장 맛깔나는 문체를 소유한 인물들이었다. 작품마다 통통 튀는 개성있는 인물들이 등장해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상황만큼은 그리 재밌지 않다. 우스꽝스럽게 인물들을 묘사하고는 있지만, 그들이 처한 아이러니는 개인만의 비극이었지만, 그들이 속한 무리를 확장하여 사회 전반적인 이야기로도 풀어 읽을 수 있어 좋았다.
또 재수없는 새끼를 만나면 칠면조로 실컷 패주리라, 마음먹으며 경구는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130)
하지만 그에겐 졸피뎀이 몇알 남아 있었다. 수면제를 먹고 푹 자고 일어나면 그의 휑한 방엔 풍성한 여자의 살냄새가 가득 차 있을 것이다.(180)
살인을 마주한 두 인물은 신기할 정도로 아무렇지않게 갈 곳 없는 곳을 달리고 있다. 살인을 저질렀다는 죄책감이 아니라, 트럭을 몰았다면 제 삶이 이리되지않았을거란 억울함으로 광기어린 질주를 하는 경구의 모습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들이 기대는 '무기'가 고작 칠면조와 졸피뎀이라는 것이 우수꽝스러울만큼 약하게 느껴지지만, 그럴수 밖에 없는 그들의 처지가 더 극대화되어 다가오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우이동의 봄>과 <파충류의 밤>처럼 비교적 차분한 문체의 작품들이 적절하게 섞여 배치되어 구성적으로도 강약조절이 잘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장례식장을 배경으로 한 <봄, 사자의 서>라는 '죽음의 시간'을 말하는 작품을 시작으로, 까짓거 거칠게 한판 살다가는거다. 라는 삶의 무책임한 대사로 나아가는 표제작. 가벼운 대사들과 유머 속에 담겨있는 묵직한 철학이 툭, 하고 던져지는 기분이다. 마치 <핑크>의 마지막 대사의 반전 처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