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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한 사람
이승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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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참 책을 읽던 중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너는 신중하기 때문에'라는 전제로 무언가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찾기를 원했다. 나는 그런 말을 처음 들어봤다. 그가 내게 왜 신중하다는 표현을 하는지 고민을 해보며, 나는 신중하다는 표현 대신 '생각이 더럽게 많다'는 말이 더 내게 어울릴 것 같다고, 만약 신중하다는 말이 생각이 더럽게 많다라는 말과 같은 뜻이라면 그 말을 인정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에도 나는 그 순간 조금 불쾌해졌다. 그리고 그 불쾌함의 이유를 찾아보자 책상 옆에 노랗게 놓인 이 책이 있었다.

 

 나는 이승우라는 소설가를 이번 소설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따라서 그의 소설은 이 단편집의 첫번째 순서를 맡고 있는 <리모콘이 필요해>이 처음이었다. 제목에 드러나는 '필요'는 곧 대상을 향한 욕구이며 의지의 표현이다. 하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제목과 달리 자신의 의지가 무엇인지조차 잘 알지 못한다. 오히려 주위의 욕구와 변명에 하릴없이 끌려다닐 뿐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진짜 속내는 감추고 그 속을 가리고 있는 1차적인 (쓸데없는) 욕망, 리모콘에 집착을 하며 리모콘만 있으면 숨어있는 불분명한 욕구까지 해소될 수 있을거란 신중하지 못한 결론에 다다르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온몸을 내던지듯 달려드는 사람들에게 나는 불편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의 세상에대한 적극적인 태도와 과감하고 거침없는 움직임을 거북해하는 것 같다. 그들이 곧 과감하고 거침없이 나에게 무언가를 들이밀고 대들 것 같아 무섭다고 해야할까. 나에게 친절을 베풀려고 애쓰는 선배가 왜 거북한지, 왜 그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지 알 것 같아졌다. (34p)

 

 이 소설 속 인물의 심리상태를 가장 잘 드러내는 문단이라고 생각한다. 짧은 문단에서 '같다'라는 말이 무한히 반복되어 나온다. '같다'는 자신의 의견에 대한 책임을 한발자국 뒤로 내빼는 말로, 적극적인 주장이 필요한 논술에서는 가차없이 빼버려야하는 서술어 중 하나이다. 선배에게 끌려다니는 것을 끊임없이 끔찍해하고 싫어하면서도 결국에는 술집에까지 끌려와 덩그러니 앉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인물을 시작으로 이 단편집은 유사한 형태의 '신중한 사람'을 소개한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신중한 사람>은 표제작인만큼, 작가가 말하는 '신중한 사람'의 정의를 꽤 강력하게 드러내고 있다.

 

신중한 자는 저지르거나 부수거나 걷어차지 못한다. 신중한 자는 보수주의자여서가 아니라 신중하기 때문에 현상을 유지하며 산다. 현상이 유지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현상을 유지하지 않으려 할 때 생길 수 있는 시끄러움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현상을 받아들이고, 그 때문에 때때로 비겁해진다. 그럴 때는 먹은 것이 얹힌 듯 가슴이 답답해서 가끔 쿵쿵 소리 나게 가슴을 때렸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신중했으므로, 그는 완전하고 완벽한 자기 세계에 대한 꿈을 유보하는 편을 택했다.(46-47)

 

 <리모콘이 필요해>에 나오는 인물이 제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조차 드러내지 않았다면, <신중한 사람>의 인물은 제가 원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가족의 요구에 따라 뒤로 물리고 안으로 삭히고 또 삭힌다. 그렇기때문에 전편을 읽으며 품었던 '같다'반복의 답답함이 한층 더 심화되어 읽는 독자의 가슴마저 쿵쿵 때리게 만든다. (이 시점에서 나는 '신중한'이라는 수식을 '답답한'이라는 수식으로 바꾸기 시작했고 누군가 나에게 '신중하다'라고 말을 했을 때, '나를 답답한 사람으로 보는구나'라는 억지 자괴감에 들고 말았다.)

 상대적으로 서술자의 단상보다 서사가 살아있는 <어디에도 없는>과 <딥 오리진> 역시 말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전편들 보다는 말을 조금 줄여 사건 자체가 나타내는 의미에 대해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왜? 그래서 어떻게? 를 꼬리물게 되는 흥미로운 사건 덕에 상념만 반복된다면 지루해 덮어버릴 수 있었던 단편집의 호흡을 잘 조절했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끊임없는 상념의 완결은 역시나 책의 마지막 편이자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있는 <하지않은 일>에서 줄줄이 이어진다. 하지 않은 일에 대해 해명하는 것은 '하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것 밖에 없다는 주장을 4페이지 넘게 설명하고 있으며, 지겨워질 때쯤 '당신'이 겪은 하지않은 일에 대한 억울한 사건들을 풀어내며 그 주장을 강화한다. 결국 소설이란 단순한 주장을 그럴듯한 이야기와 문장으로 길게 풀어 써낸 것이라 할 수 있을테다.

 너무도 신중하여 뱉어내는 말은 적지만, 그만큼 안에서 맴도는 문장들은 어마어마하게 불어나 세상이 기우뚱해지는 사람들. 타이트한 삶을 살아가는 시대 속에 이처럼 느린 화면으로 늘어지는 이 소설이 가지는 가치는 심도 깊다. 책을 읽고 나자 이승우의 문체(혹은 이 책에서 고집하고자하는 문체)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한문장이라도 쉽게 내버려두지않고, 그 문장의 까닭을 쉼없이 꼬집으며 상념을 줄줄이 풀어내지만, 그 상념을 따라 읽어내다보면 처음에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나중이 되어서는 '뭐 이렇게 말이 많아'라는 불평이 일게 되는, 따라서 호불호가 갈리기 쉬운 문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중하기 때문에 생각이 많고, 생각이 많기 때문에 할 말이 많은 이 소설집의 인물은 닮고 싶지 않았으나 이 소설을 쓴 작가는 존경할만 하다. 그 누가 쓸데없음을 이토록 가치있게 풀어낼 수 있을까. 

 누군가 내게 다시 한번 '신중한 사람'이라는 말을 한다면 꽤 좋은 쪽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책에 나오는 인물보다는 좀 더 확고한 생각을 가진 사람인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는 편이며, 그렇게 '생각'이라도 해야지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결정 역시 부담 없이 해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라며 머무르는 생각을 입에 내뱉을 때는 '같다'라는 말을 뺄 수 있도록 답답하지 않은 '신중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럴듯한 교훈이 남겨진 소설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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