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감탱이

유주얼


남자친구가 살던 집에 유품을 정리하러 갔다. 그가 쓰던 이불과 옷가지를 정리하고, 손걸레로 방바닥을 닦았다. - P102

지가 나왔다. 제일 안쪽에는, 캔맥주가 들어 있었다. 500밀리리터짜리 에델바이스. 위아래에둘러진 파란 띠 가운데 하얀 바탕에 알프스가그려져 있었다. 남자친구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 P103

제로 종종 다투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왜 이 냉장고에 술이 있는 걸까. 골똘한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냉장고 문을 닫으라는 경고음이 삑삑울렸다. 움찔 놀라서 문을 닫으려는 찰나였다.
갑자기 캔맥주가 말을 걸었다.
"나를 데려가게." - P104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남자친구가 떠올랐다.
그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면도 있었지만 그래도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가 내 앞으로 낸 대출이자를 밀리지 않으려고 하나하나 중고로 내놓았던 물건들을 떠올렸다. - P104

눈물이 북받쳐 잠시 걸음을 멈추려는데 가방 속에 들어 있던 캔맥주가 말했다.
"이보게, 내 몸이 급속도로 식고 있어. 이건위험하네. 감상에 젖는 건 나중에 하고 지금은어서 집으로 가면 어떻겠나. 서둘러주게. 냉장실에 들어가야 해." - P105

다음날 일어나 냉장고를 열자 캔맥주가 인사를 했다.
"덕분에 많이 좋아졌어. 땀도 나지 않고, 이집 냉장고는 무척 쾌적하군. 고맙네."
나는 캔맥주의 말을 못 들은 척, 그릭 요거트를 꺼내고 냉장실 문을 탁 닫았다. 캔맥주는문도 안 열린 냉장고 안에서 웅웅거리며 말을했다. - P106

"자네 그거 아나? 이렇게 날씨가 더워질 적엔 낮맥도 일종의 특권이라네."
그러나 나는 만두 여덟 개를 다 먹을 때까지캔감탱이를 마시지 않았다.
그는 이제나저제나 개봉을 기다리다가 실망한 눈치였다. 그러나 다시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자존심 때문인지 입은 꾹 다문 채였다. - P107

우선순위, 신용불량 같은 단어를 조용한 골목이떠나가라 외치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꺽, 꺽,
그는 자꾸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나 그때처럼공기는 목의 상처로 새어나올 뿐이었다. - P109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캔감탱이를 꺼내 책상 앞에 앉았다. 나도 캔맥주도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침묵을 깬 건 그였다.
"자네, 그 친구가 날 자기 냉장고에 넣어놓은 이유를 알고 있나?"
"몰라. 이제 와 그런 게 무슨 소용이야."
방안은 다시 정적에 휩싸였다. 잠시 후 캔감탱이가 다시 말했다.
"그런데 자네, 그 친구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선 궁금하지 않나?"
심장이 두근거렸다. - P109

딸칵. 유리잔을 가져와 맥주를 따랐다. 냉장고에 오래 재워둔 맥주는 조밀한 거품을 산뜻하게 밀어올렸다. 크림 같은 거품은 손가락 두개를 겹친 이상적인 두께였다. 밝은 금색 맥주에 어둡게 켜놓은 수면등 불이 비쳐, 잔 속에달빛을 따라놓은 것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캔도 맥주도 나도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완벽한 정적에 어울리는, 완벽한 맥주였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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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다시금 장문을 열고 잡힐 것을 찾을 즈음에 누가 중문을 열고 들어온다. 우리는 누군가 하고 귀를 기울일 적에 밖에서,
"아씨!"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는 급히 방문을 열고 나갔다. 그는 처가에서 부리는 할멈이었다. 오늘이 장인 생신이라고 어서 오라는 말을 전한다. - P22

가난한 살림에 골몰하느라고 자기 친부의 생신까지 잊었는가 하매 아내의 정지(情地)가 더욱 측은하였다.
"오늘이 본가 아버님 생신이래요. 어서 오시라는데……."
"어서 가구려…….…."
"당신도 가셔야지요. 우리 같이 가셔요."
하고 아내는 하염없이 얼굴을 붉힌다. - P23

우리 집은 천변 배다리 곁에 있고 처가는 안국동에 있어 그 거리가 꽤 멀었다. 나는 천천히가느라고 가고 아내는 속히 오느라고 오건마는그는 늘 뒤떨어졌었다. 내가 한참 가다가 뒤를돌아보면 그는 늘 멀리 떨어져 나를 따라오려고 애를 쓰며 주춤주춤 걸어온다. 길가에 다니는 어느 여자를 보아도 거의 다 비단옷을 입고고운 신을 신었는데 아내만 당목 옷을 허술하게 차리고 청목당혜로 타박타박 걸어오는 양이나에게 얼마나 애연(然)한 생각을 일으켰는지 - P24

그 중에 제일 내게 친숙하게 인사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아내보다 삼 년 맏이인 처형이었다. 내가 어려서 장가를 들었으므로 그때 그는나를 못 견디게 시달렸다. 그때는 그가 싫기도하고 밉기도 하더니 지금 와서는 그때 그러한것이 도리어 우리를 무관하고 정답게 만들었다. - P25

아내를 형이라 하고, 처형을 아우라 하였으면아무라도 속을 것이다. 또 한 번 아내를 보며말할 수 없는 쓸쓸한 생각이 다시금 가슴을 누른다.
딴 음식은 별로 먹지도 아니하고 못 먹는 술을 넉 잔이나 마시었다. 그래도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앉아 견딜 수가 없다. - P26

나는 마지못하여 하는 듯이 부스스 일어났다. 머리가 오히려 아프며 목이 몹시 말라서 국과 물을 연해 들이켰다.
"물만 잡수셔서 어째요. 진지를 좀 잡수셔야지."
아내는 이런 근심을 하며 밥상머리에 앉아서고기도 뜯어 주고 생선뼈도 추려 주었다. - P28

어제 일이있은 후로 우리 사이에 무슨 벽이 생긴 듯하던것이 그 벽이 점점 엷어져 가는 듯하며 가엾고사랑스러운 생각이 일어났었다. 그래서 우리는정답게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오늘 장인 생신 잔치로부터 처형 눈 위에 멍든 것에 옮겨 갔다. - P29

이 말을 들으매 내 마음은 말할 수 없이 만족해지며 무슨 승리자나 된 듯이 득의양양하였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옳다, 그렇다. 이렇게 지내는 것이 행복이다.‘
하였다. - P30

"참 좋은 것인데요."
이런 말을 하다가 나는 또 쓸쓸한 생각이 일어난다. 저것을 보는 아내의 심중이 어떠할까?
하는 의문이 문득 일어남이라.
"모다 좋은 것만 골라 샀습니다그려."
아내는 인사를 차리느라고 이런 칭찬은 하나마 별로 부러워하는 기색이 없다.
나는 적이 의외의 감이 있었다. - P32

그는 근일에 드문 기쁜 소리를 치며 방바닥위에 사뿐 내려놓고 버선을 당기며 곱게 신어본다.
"어쩌면 이렇게 맞어요!"
연해 연방 감탄사를 부르짖는 그의 얼굴에 흔연한 희색이 넘쳐흐른다. - P34

"신 모양이 어때요."
"매우 이뻐!"
겉으로는 좋은 듯이 대답을 하였으나 마음은쓸쓸하였다. 내가 제게 신 한 켤레를 사주지 못하여 남에게 얻은 것으로 만족하고 기뻐하는도다…………. - P35

나는 마음을 좀 너그럽게 먹고 이런 생각을하며 아내를 보았다.
"나도 어서 출세를 하여 비단신 한 켤레쯤은사주게 되었으면 좋으련만……………"
아내가 이런 말을 듣기는 참 처음이다.
"네에?"
아내는 제 귀를 못 미더워하는 듯이 의아(疑한 눈으로 나를 보더니 얼굴에 살짝 열기가오르며,
"얼마 안 되어 그렇게 될 것이야요!" - P36

"정말 그럴 것 같소?"
나는 약간 흥분하여 반문하였다.
"그러문요, 그렇고말고요."
아직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은 무명작가인나를 다만 저 하나가 깊이깊이 인정해 준다. 그러기에 그 강한 물질에 대한 본능적 요구도 참아 가며 오늘날까지 몹시 눈살을 찌푸리지 아니하고 나를 도와 준 것이다.
‘아아, 나에게 위안을 주고 원조를 주는 천사여!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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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사람들은 라마와 메리가 부자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수백만 달러를 지닌 재산가라고 확신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것은 사실과 다를 수 있다. 사실 이들은 부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고소득은 올리는가? 그렇지도 않다. 부인도, 남편도 고소득을 올리지 못한다. 메리는 주부이고, 라마는 지방 대학의 행정 직원이다. 이부부는 긴 결혼 생활 동안 6만 달러 이상의 연소득을 올려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생활 방식은 소득 수준이 2배가 넘는사람들과 비슷하다. - P221

메리와 라마 부부는 소위 ‘성인 자녀에 대한부모의 경제적 원조EOC: economic outpatient care‘ 덕분에 그토록 사치스럽게 살 수 있는 것이다. EOC란 일부 부모들이 성인 자녀와 손자들에게베푸는 상당한 액수의 경제적 원조 및 친절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 P222

오늘날 ‘성인 자녀에 대한 경제적 원조EOC‘를 베푸는 부모들 가운데많은 사람들이 젊은 시절부터 재산 축적에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던 사람들이다. 일반적으로 이들은 자신의 소비 및 생활 습관 면에서는 매우 검소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자녀와 손자들에게 ‘친절한 경제적 원조‘를 제공하는 일에 있어서는 그만큼 검소하지 못하다. 이런 부모들은성인 자녀와 그 가족들에게 경제적 원조를 제공해야 할 의무감마저 느낀다. 이런 선심은 어떤 결과로 나타날까? 같은 나이, 소득, 직업군에속한 사람들 중에서도 EOC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자립한자녀를 둔 사람들보다 재산이 현저히 적다. 일반적으로 많은 돈을 지원받는 성인 자녀일수록 더 적은 재산을 모으게 되며, 적은 돈을 지원받을수록 재산을 더 많이 모으게 된다. - P222

EOC는 미국에서 널리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미국의 부유층가운데 46% 이상이 자녀와 손자들에게 매년 1만 5,000달러 이상의EOC를 제공한다. 부유층 가정의 35세미만 성인자녀 가운데 거의절반 정도가 부모로부터 매년 돈을 받는다는 얘기가 된다. 성인 자녀가 나이가 들면서 EOC를 제공받는 비율은 감소해 40대 중반에서 50대 중반 사이의 성인 자녀들 중 20% 정도만이 EOC를 받는다. - P223

인구가 고령화되면서 점점 더 많은 부유층부모와 조부모들이 상속세를 내야 할 나이로 접어들고 있다. 특히 배우자가 없는 과부나 홀아비의 경우에는 상속세로 전 재산의 55% 이상을 낼 수도 있다. 따라서 부유층 사람들은 나이가 듦에 따라 상속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EOC를 더 많이 내놓게 될 것이다. - P224

EOC를 제공하면 자녀들이 안전한 출발을 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더 이상의 돈이 필요하지 않게 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메리 어머니의 생각은 틀렸다. 그녀는 25년이 넘도록 특별한 형태의 EOC를 제공해 왔지만 딸의 가족은 경제적으로 의존적이다. - P226

30만 달러 이상의 주택에 살고 있는 미국 가구의 약 30%는 연간 가계 소득이 6만달러 이하이다. 그 이유가 과연 그들의 창의적인 예산 때문일까, 아니면 미국에 만연해 있는 EOC 때문일까? 대부분의 경우는 EOC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UAW들이 많기 때문이다. - P228

부유층 부모는 대개 자녀들이 집을 살 때 자금을 보조해준다. 아마도 자녀의 원활한 출발을 도우려는 의도일 것이다. 이런 부모들은 EOC가 일생에 단 한 번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어떤 부모들은 자녀에게 필요한 마지막 돈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이런 부모들은 혜택을 받은 자녀들이 가까운 장래에 자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생각한다. 그러나 거의 절반은 잘못된 생각이다. - P235

전부이건 일부이건 간에 주택 계약금을 부모가 대신 갚아주는 것은 자녀를 소비의 쳇바퀴 속으로 집어넣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EOC 의존자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수혜자의 이웃들은 대부분 부모로부터 EOC를 받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의 생활 방식에 대해 수혜자들보다 더 만족감을 느끼고, 자신감을 갖는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 있는 많은 수혜자들은 지속적인 EOC를 필요로 하게된다. 이들의 성향은 단순한 경제적 성취로부터 추가적인 EOC의 갈망쪽으로 급격히 바뀌기도 한다. 자신의 능력을 다 발휘하지 못해 소득이적은 계층 사람들은 재산 축적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 P236

대부분의 EOC 수혜자들이 자신을 재정적으로 부유하다고 생각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부모로부터 받는 보조금 때문이다. 재정적으로 부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소비적인 경향이 있다. 사실 통계에 따르면 이들은 자신을 비수혜자인 진짜 부자들만큼 부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비수혜자 소득의 91%를 벌고, 그들 재산과비교해 81%밖에 가지고 있지 못한데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 P238

추수감사절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난 후, 부모 집에서 제임스는 부모와 대화를 나누었다. 부모는 제임스에게 자신들의 상업용 부동산 가운데 일부를 그 지역 사립대학에 기증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대학에서 그 기부금을 정말 유용하게 사용할 것이라는점을 네가 이해하리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제임스의 반응을 신문의 헤드라인으로 쓴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부잣집 아들이 "그건 내 땅이기도 해요. 그 대학 사람들은 우리 마당에 들어올 수 없다고요."라고 소리쳤다. - P239

다른 많은 수혜자들과 마찬가지로 제임스는 자신을 자수성가한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다. 실제로 부모로부터 상당액의 EOC를 정기적으로 받는 성인 자녀 가운데 2/3 정도가 자신을 ‘자수성가한 인물‘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이 우리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가지고있는 재산은 한푼, 한푼이 모두 우리가 벌어들인 돈입니다."라고 말해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P240

벌과 수잔은 부모들에게 돈이 아닌 다른 중요한 것을 받았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모두 절제와 규율이 있는 집안에서 자랐다. 하지만 절제와 규율만 교육받은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역경을헤쳐 나가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이 백만장자로 성공할수 있었던 것이다. 하청업체를 운영하면서 겪은 힘든 시간들이 나약하고 비생산적인 면들을 몰아냈다. 벌과 수잔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으며, 항상 저비용과 높은 생산성으로 사업체를 운영해 왔다. 이런 점들이 그들의 사업과 가정에 모두 적용되었다. - P246

소득이 얼마이건 항상 자기 소득보다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 - P247

 "EOC가 아니라면 어떤 형태가 더 바람직할까요?" 이들은 어떻게 하면 자녀의 경제적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지 알고싶은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이들의 자녀에게 검소한 생활방식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함을 상기시킨다. 성장과정에서 그런 훈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대개 과소비적인 어른으로 자라나 청년기와 증년기 동안 EOC를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다. - P252

자녀가 경제적으로 생산성 있는 성인으로 자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무엇을 해주어야 할까? 정규 교육 외에 독립적인 생각과 행동을 중요시하고, 개인의 성취도를 소중히 여기며, 책임과 리더십을 강조하는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그렇다.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들은 대가가 없는 경우가 많다. 자녀들에게 자립적으로 살 수 있도록 가르쳐라.
그것이 경제적이기도 하거니와 장기적으로도 자녀와 부모 모두에게 가장 큰 이득이 될 것이다. - P253

많은 돈을 지원받는 성인 자녀일수록 재산을 덜 모으게 되며, 반면에 적게 지원받을수록 더 많은 재산을 모으게 된다. - P257

집을 임대하지 않고 사는 것이 젊은 기업가에게 과연 이상적인 환경일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업 자금을 대주는 것도 절대이상적이라고 할 수 없다. 성공한 사업가들은 대부분 사업 자금을 자력으로 마련한 사람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성공해야 하기 때문에 성공한다. 그것은 그들의 돈이고, 그들의 상품이며, 그들의 명성이다. 그들에게는 안전 장치가 없다. 성공하건 실패하건 간에 의지할 사람이아무도 없다. - P258

자신의 능력에 따라 보상을 받는 환경에서 일하는 데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부유층 사람들은 용기가 있다.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 증거로 어떤 것이 있는가? 대부분의 미국 부유층들은 자영업자이거나 성과급을 받는 봉급자들이다. 부모가 부자이건 아니건 간에 대부분의 미국 부유층들은 스스로 부를 이룬 사람들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이들에게는 상당한 위험 부담을 무릅쓰고 사업 기회를 선택할 용기가 있었던 것이다.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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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벌써 반이나 지났건마는 이슬을 실은듯한 밤기운이 방구석으로부터 슬금슬금 기어나와 사람에게 안기고 비가 오는 까닭인지 밤은 아직 깊지 않건만 인적조차 끊어지고 온 천지가 빈 듯이 고요한데 투닥투닥 떨어지는 빗소리가 한없는 구슬픈 생각을 자아낸다.
"빌어먹을 것 되는 대로 되어라." - P4

늦게야 점심을 마치고 내가 막 궐련[卷煙] 한개를 피워 물 적에 한성은행(漢城銀行) 다니는 T가 공일이라고 놀러 왔었다.
친척은 다 멀지 않게 살아도 가난한 꼴을 보이기도 싫고 찾아갈 적마다 무엇을 뀌어 내라고 조르지도 아니하였건만 행여나 무슨 구차한소리를 할까 봐서 미리 방패막이를 하고 눈살을 찌푸리는 듯하여 나는 발을 끊고 따라서 찾아오는 이도 없었다. 다만 이 T는 촌수가 가까운 까닭인지 자주 우리를 방문하였다. - P5

"T는 돈을 알고 위인이 진실해서 그 애는 돈섞어푼이나 모을 것이야! 그러나 K(내 이름)는 아무짝에도 못 쓸 놈이야. 그 잘난 언문서 무어라고 끄적거려 놓고 제 주제에 무슨 조선에 유명한 문학가가 된다니! 시러베아들놈!" - P6

여하간 이만하면 T의 사람됨을 가히 알 수가 있다. 그러고 그가 우리집에 올 것 같으면지어서 쾌활하게 웃으며 힘써 자미스러운 이야기를 하였다. 단둘이 고적(寂)하게 그날그날을 보내는 우리에게는 더할 수 없이 반가웠었다. - P7

"이것도 퍽 좋은데요."
이런 칭찬을 하면서 양산을 펴 들고 이리저리 홀린 듯이 들여다보고 있는 아내의 눈에는,
‘나도 이런 것을 하나 가졌으면‘ 하는 생각이역력(歷歷히 보인다. - P8

T를 보내고 책상을 향하여 짓던 소설의 결미(結尾)를 생각하고 있을 즈음에,
"여보!"
아내의 떠는 목소리가 바로 내 귀 곁에서 들린다. 핏기 없는 얼굴에 살짝 붉은빛이 돌며 어느 결에 내 곁에 바싹 다가앉았더라.
"당신도 살 도리를 좀 하셔요." - P9

"우리도 남과 같이 살아 보아야지요!"
아내가 T의 양산에 단단히 자극(刺戟)을 받은것이다. 예술가의 처 노릇을 하려는 독특(獨特)한 결심이 있는 그는 좀처럼 이런 소리를 입 밖에 내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무엇에 상당한 자극만 받으면 참고 참았던 이런 소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나도 이런 소리를 들을 적마다 ‘그럴 만도 하다‘는 동정심이 없지 아니하나 심사가 어쩐지 좋지 못하였다. - P10

나는 이런 일을 가슴에 그리며 그래도 내일아침거리를 장만하려고 옷을 찾는 아내의 심중을 생각해 보니, 말할 수 없는 슬픈 생각이 가을바람과 같이 설렁설렁 심골(心骨)을 분지르는것 같다. - P11

아내가 애써 찾던 그것도 벌써 전당포의 고운 먼지가 앉았구나! 종지 하나라도 차근차근아랑곳하는 아내가 그것을 잡혔는지 아니 잡혔는지 모르는 것을 보면 빈곤(貧困)이 얼마나 그의 정신을 물어뜯었는지 가히 알겠다. - P12

육 년 전에 (그때 나는 십육 세이고 저는 십팔 세였다)우리가 결혼한 지 얼마 아니 되어 지식에 목마른 나는 지식의 바닷물을 얻어 마시려고 표연히 집을 떠났었다. 광풍(狂風)에 나부끼는 버들잎 모양으로 오늘은 지나(支那) 내일은 일본으로 굴러다니다가 금전의 탓으로 지식의 바닷물도 흠씬 마셔 보지도 못하고 반거들충이가 되어 집에 돌아오고 말았다. - P14

처가 덕으로 집 간도 장만하고 세간도 얻어우리는 소위 살림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지내었지마는 한 푼 나는 데 없는 살림이라 한 달 가고 두 달 갈수록 점점 곤란해질따름이었다. 나는 보수() 없는 독서와 가치없는 창작으로 해가 지고 날이 새며 쌀이 있는지 나무가 있는지 망연케몰랐다. - P15

이런 고생을 하면서도 그는 나의 성공만 마음속으로 깊이깊이 믿고 빌었었다. 어느 때에는 내가 무엇을 짓다가 마음에 맞지 아니하여쓰던 것을 집어던지고 화를 낼 적에,
"왜 마음을 조급하게 잡수셔요! 저는 꼭 당신의 이름이 세상에 빛날 날이 있을 줄 믿어요.
우리가 이렇게 고생을 하는 것이 장래에 잘 될근본이야요."
하고 그는 스스로 흥분되어 눈물을 흘리며나를 위로한 적도 있었다. - P16

내가 알다시피 내가 별로 천품은 없으나 어쨌든 무슨 저작가(作)로 몸을 세워 보았으면하여 나날이 창작과 독서에 전심력을 바쳤다.
물론 아직 남에게 인정될 가치는 없는 것이다. 그 영향으로 자연 일상생활이 말유()하게 되었다.
이런 곤란에 그는 근 이 년 견디어 왔건마는나의 하는 일은 오히려 아무 보람이 없고 방 안에 놓였던 세간이 줄어 가고 장롱에 찼던 옷이거의 다 없어졌을 뿐이다. - P17

"마누라!"
하고 부르면 그는 몸을 흠칫 하고 고개를 저리로 돌리어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씻으며,
"네에?"
하고 울음에 떨리는 가는 대답을 한다. 나는등에 찬물을 끼얹는 듯 몸이 으쓱해지며 처량한 생각이 싸늘하게 가슴에 흘렀었다. 그렇지않아도 자비쉬운 마음이 더욱 심해하기지며,
‘내가 무자격한 탓이다.‘ - P18

그는 마음속으로,
‘네가 육 년 동안 내 살을 깎고 저미었구나!
이 원수야!‘
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매 그의 불같던 사랑까지 엷어져 가는 것 같았다. 아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 것 같았다. 나는 감상적으로 허둥허둥하며,
"낸들 마누라를 고생시키고 싶어 시켰겠소! - P19

그러길래 왼종일 쉬지 않고 공부를 아니하우, 남 보기에는 편편히 노는 것 같아도 실상은 그렇지 안 해! 본들 모른단 말이요."
나는 점점 강한 가면(假面)을 벗고 약한 진상(眞相)을 드러내며 이와 같은 가소로운 변명까지 하였다. - P20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린다. 뒤숭숭하던생각이 다 이 뜨거운 눈물에 봄눈 슬듯 스러지고 말았다.
한참 있다가 우리는 눈물을 씻었다. 내 속이얼마큼 시원한 듯하였다.
"용서하여 주셔요! 그렇게 생각하실 줄은 몰랐어요."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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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프 Olaf

정연주


점심식사 후 서둘러 테이크아웃해온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졸음을 쫓기 위해 연료를 충전하는 동안 이메일 확인을했다. 급한 용무가 없을 개인 이메일을 들여다보는 것이 본격적인 오후 업무 전의 루틴이었다. - P88

잘 들어가지 않던SNS 웹사이트의 우측 상단 종이비행기 모양의아이콘 옆에 숫자 1이 반짝였다. 눈사람 ‘올라프‘에게서 온 다이렉트 메시지였다.

-안녕 - P89

당시 어른들의 사정과는관계없이 스스로 조숙하다 여기던 일부 청소년들은 신물문인 PC통신에 몰두하고 있었다. 지금 관점으로는 말이 되지 않지만, 순수하게도자신의 실명과 거주지역을 그대로 공개하며 특정 가수나 장르를 추종하기도 하였다. - P90

나만의 기억 저장 공간, 요즘 IT 기술로 치면 클라우드 스토리지를 항상 이고 다닌 셈이다(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다는 건 아주 뒤늦게 깨달았다). 아, 어쩌면 나는 시시한 군중 속의 ‘스타걸‘처럼 이해받지 못하는 가엾은 존재, PC통신에서라면 어디선가 지적 허영을 떨 수 있지않을까? 재기 넘치는 나의 글을 보고 혹시 누가 나에게 관심 가져주지 않을까? 안타깝게도수백 개의 동호회에는 이미 수천의 ‘스타걸‘과 ‘스타보이‘로 가득했다. - P91

부끄럽지만 나의 남자 버전이 바로 K, K의여자 버전이 나였다. 텍스트 홍수 속에서 영혼을 복사해놓은 듯한 사람을 찾아내다니 지금돌이켜보면 완벽한 블라인드 데이팅이었다(사실 잠깐 본 얼굴도 내 취향이긴 했다). 대화는끊이지 않았다. K는 놀이공원 대관람차를 좋아한다고 했다. 이따금 밤을 새워 손끝으로 대화했다. 학교 기숙사에 있을 때면 편지를 썼다. - P92

그렇게 시간이 흘러, 급기야 그의 클라우드와 나의 클라우드는애플사의 아이튠즈처럼 점차 동기화되어갔다.
그는 생일선물로 정성껏 녹음한 믹스테이프를우체국 1호 사이즈 소포로 보내주기도 했다. - P93

올라프에게 답을 할까 말까 망설이며 올라프 그림을 눌러 그의 개인 프로필 페이지를 훑어보았다. 역시나 만화가는 아니고 결국 아버지가 바라시던 전문직을, 심지어 프로답게 잘하는 그였다. 십 년 전 그를 마지막으로 만났을때 느낀 대로 그다운 선택이었다. 지금으로부터십 년 전은, 대략 한일 월드컵의 십 년 이후이다. - P94

K를 어떻게 다시 만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뭐든 잘 참는 편이라(하긴 비슷한 성격이니 둘 다) 정말로 서로전혀 연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통의 친구J가 함께하긴 했지만, 그녀마저 오랜만에 연락이 된 것이었고, 십 년 전의 상황 역시 아무도모르는 일이었으므로 굳이 자리를 마련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알았다면 더더욱. 물론 이런 사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순수하게 반가웠다. - P95

럼 얘기했다. 우리는 소란스러운 호프집을 벗어나 걷기 시작했다. 그는 사실 최근 수년간 음악을 거의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내내 그의 생각을 했다고 말하지 못했다. 시시때때로 마음속으로 말을 걸었었다고, 이 노래를좋아했을 거라고 - P96

J와 어느 시점에 헤어졌는지는 둘 다 기억하지 못한다. 시간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둘은 쉴새없이 입과 발걸음을 놀렸다. 잊고 지내던 감각이 되살아났다. 다시 각각의 머릿속에 숨어있던 클라우드에 불이 켜졌고, 블루투스처럼연결됐다. 꽁꽁 언 호숫가를 걷다 내가 갑자기빙판 위로 뛰어들어 피겨스케이팅 시늉을 하자K는 깜짝 놀랐다. - P97

다음날 그에게 연락이 왔다. 사실은 지금의삶은 원하던 삶이 아니라고, 그간의 헛된 노력이 다 거짓이었음을 깨닫고 그녀와 정리했다고했다. 나는 잠시 너의 착각일 거라고 차분히 설득했다. 그는 왜 자신을 그냥 왔다가 떠나는 사람으로 만드느냐고 했다. 틀린 말도 아니지 않아? 마음에 없는 소리를 했지만 이번 이별의실제 사유는 건물의 벽돌 너덧 장 정도도 살 수없던 내 초라한 시급 때문이었다. - P98

업데이트했다. 내가 그를 찾은 것처럼 그도 나를 계속해서 찾고 있었다. 그동안 물어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세세한 부분들을 확인했다. 몹시 많이 걸었던 겨울날, 갖고 온 차는 결국 다음날 찾으러 다시 갔다고 했다. 너무 잘안다고 생각해서 말 못한 오해가 적지 않았다.
그게 우리의 패인이었나봐. 놓친 시간이 슬프고 서러웠다. 그러다 금세 그동안 서로가 좋아할 만한 음악과 영화와 식당을 많이 알아놓았다며 즐거워했다. - P99

-지금은 어디야?
-도쿄에 파견 나와 있어. ‘도요스‘라는 지역인데, 오다이바 근처야. 차를 타고 약간만 나가면 네가 좋아하는 바다와 대관람차도 보이지.
그런 곳에 살고 싶다고 했잖아.
잠시 정적, 올라프는 메시지를 썼다 지우길반복했다.
-내가 지금 네 쪽으로 갈게. 꼭 갈 테니 기다려야 해.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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