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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탄생 - 선에 대한 끝없는 투쟁
폴 카루스 지음, 이지현 옮김 / 청년정신 / 2015년 8월
평점 :
인간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된 것이 있다. 바로 믿음이다.
인간은 자연을 정면으로 맞닥뜨린다. 자연을 이용하기보다는 자연에 의존하며 그 현상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을 두려워했다. 너무나 거대했고 강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만들어냈다. 자신들이 의지할 수 있는 무언가를.. 그것은 신앙이였다.
신앙의 탄생으로 인간은 믿음을 중시했고 자신들의 감정표현을 믿음의 존재에 의존했다. 그 존재는 선(善)이 되기도 했고 악(惡)이 되기도 했다. 훗날 선의 존재는 신으로 악의 존재는 악마의 탄생으로 진행된다.
이 책은 그 중에 악마의 탄생을 다뤘다.
책 제목부터 무척 인상깊었다. 개인적으로 성악설을 믿는 사람으로 악마라는 단어는 무서운 존재, 경외의 존재보다는 호기심의 존재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책의 첫장을 넘기면서 나는 악마의 존재에 대해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이 책에는 세상의 모든 악마가 존재할 것 같았다.
신과 악마의 탄생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당연히 인간에 의해서다.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인간이 만들어낸 존재를 인간이 의지하고 인간이 만들어낸 신앙을 인간이 의지하니 말이다.
신앙을 만들어낸 인간들은 이원론을 믿었다.
이원론은 육체와 정신이 다른 차원에 존재한다는 것, 이것은 신과 악마가 인간과는 다른 차원(솔직히 말한다면 보다 고차원)에 존재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저자는 시각을 달리한다.
일원론을 믿기 때문이다.
일원론은 이원론과 반대로 육체와 영혼은 하나의 실재의 것 또는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신과 악마는 다른 차원의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겪었던 경험에 의해 탄생된 존재라 여긴다.
사실 이것이 맞는 말이다.
처음 신앙의 시작은 자연의 경외와 두려움으로 인한 인간의 감정이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정말 흥미로운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처음 인간이 경배의 대상이 신이 아닌 악마였다고 말한다. 자연의 무서움 그것이 악마라는 형이상학적 존재로 변모시켰고 이를 두려워 한 인간은 인신공양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이를 다스리려 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인듯 하다. 흔히 신앙을 위해 바쳐지는 존재를 우리는 재물이라 한다. 재물은 긍정적인 이미지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강하다.
고대로부터 재물로 불려진 존재들이 모두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과연 자연의 풍성함을 믿었다면 이들은 재물이라는 존재를 사용했을까? 아니다. 그들은 자연의 두려움(각종 자연재해, 날씨, 사냥의 기원등)을 믿었기에 재물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이런 행위는 고대라는 한정적 시대에만 적용된다고 생각되는가?
아니다. 이것은 중세에도 이어졌다. 다만 자연의 두려움이 아닌 자신들의 만들어낸 악마의 두려움으로 행위가 진행된 것이다.
그것은 마녀사냥이였다.
마녀사냥은 악마 숭배의 끝을 보여주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아무 잘못 없는 사람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악마와 연관시켜 마녀로 만들었고 잔인하게 화형시킨다. 근대까지 그 행위는 지속되었다.
현대에 넘어와서는 왕왕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것은 종교를 넘어서 사상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아는 KKK, 러시아 스킨헤드가 그 예로 들수 있겠다. 어불성설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善)을 믿고 행하였다면 다른 존재를 해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즉 형이상학존재를 믿고 벌이는 행위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라면 그것은 선이 아니고 악이 되면 나아가 악마의 존재를 믿는것으로 결론짓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무신론자보다는 종교인들이 봤으면 한다.
지금의 종교는 초기의 종교에 비해 많이 변화였고 발전되었다. 그러나 발전의 방향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종교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분류의 사람들이 봐야 한다.
그들이 단연코 선을 믿는다면 지금의 어지러워지는 행위는 그들이 믿는 선이 아닌 악마를 믿는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