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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복종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지음, 심영길 외 옮김 / 생각정원 / 2015년 2월
평점 :
복종은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먼저 변화된 투쟁의 결과다. 생산물이 잉여가 되면서 인류는 욕심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는 곧 싸움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인류는 복종이라는 것을 접하게 된다.
본래 부정적인 요소는 역사의 흐름에 따라 개선되거나 또는 소멸되는 법인데 복종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부정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너와 나의 복종이 점차 커져 계급을 이루게 되었고 그 절정은 독재로 이어지게 되었다.
인류의 역사속의 독재는 왕의 존재라는 또한 그에 부합하는 존재에 의해서 지속되었고 민주주의가 도입되면서 해체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허울뿐이였다. 독재는 다른 형태의 독재가 되어 우리를 지배했다. 자본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이 책이 씌여진 것은 16세기다. 16세기의 유럽은 중세시대로 전형적인 계급이 존재하던 시대다. 저자인 라 보에시는 당시 시대를 책의 제목처럼 자발적 복종의 시대로 보았다. 상당히 깨어있는 시각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는가? 어느 누가 그 당시에 군주와 백성의 관계에서 자발적이라는 단어를 선택할 수 있었겠는가? ( 그가 살던 프랑스는 대혁명까지 20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저자는 이 책에서 군주와 신민을 적나라하게 비판한다. 특이한것은 군주를 만드는 것은 신민이라고 한다. 당시 군주 즉 왕은 천부(天賦)로 받거나 권력의 다툼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인 통념이였다.
그러나 저자는 신민이 군주를 만들고 신민의 참여에 따라 군주는 견제받을 수 있거나 독재가 가능하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신민들은 그러지 못한다. 바로 습관과 자유에 대한 망각 때문이다. 자신들의 누려왔던 자유를 군주가 억압하려고 할때 신민들은 이를 억제하거나 막아야 할 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신민들이 여기에 대한 저항의식이 없다면 이는 곧 복종이 되어 버린다.
복종이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이 복종의 깊이에 빠져든다. 바로 습관과 망각 때문이다. 습관은 내가 복종되어버리면서 다음세대 그리고 그 다음세대에는 복종이 당연시 되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런 습관으로 인해 자유라는 개념을 잊어버리게 된다. 즉 망각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민은 어떻게 대처를 해야하는가?
바로 독제에 맞서는 저항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역사에 걸쳐 이런 저항에 맞섰던 인물들은 대부분이 실패하고 말았다. 또한 그 시도조차 역사의 기록에서 몇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신민들은 저항을 포기하게 된다. 자발적으로 복종이라는 독재틀속에 갇혀버리는 것이다.
어떠한가? 이 책이 주는 메세지가 참으로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지 않는가?
16세기에 만들었던 이 책의 내용이 지금의 우리나라에 고스란히 베어 있다는 사실때문에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몇번이고 공감을 했다. 저자가 마치 지금의 대한민국을 바라보고 책을 쓴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는 참으로 서글픈 것이다.
16세기의 사회와 21세기의 사회의 부정적인 모습이 전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했던 신민들은 지금의 국민들로 바꿔도 무방하다.
나도 그런 국민들 중 하나고 이 글을 읽는 또한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그런 국민들이다.
복종이라는 개념과 지금의 대한민국, 나아가 국민의식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번쯤 읽어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