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적 낙관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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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유일하게 살아 있는 생물이란 스투키 화분 하나이다. 기억을 더듬어 가보자면 2021년 봄 집 앞에 있는 화원에서 데려왔다. 선인장도 죽이는 사람이라 무얼 들여놓기가 어려웠다. 오래 살 수 있는 걸로 추천해 주세요. 사장님은 스투키를 권했다. 과습 때문에 죽는 아이라 잎을 만져보고 홀쭉해져 있으면 물을 주면 된다고 했다. 


처음에는 나름 신경을 쓴다고 일정 간격으로 물을 줬다. 잘못이었다. 잎이 노랗게 변해버렸다. 가지치기 그런 것도 모르고 그냥 잎을 잘라버렸다. 그 후로 방치. 다섯 개의 잎으로 지금까지 살아있다. 살아있, 는 게 맞을까. 아무튼 잎은 초록색이다. 선인장처럼 대우해 주고 있다. 키우고 돌보는 건 어렵다. 마음을 쓰는 일에는 재능이 없다. 


김금희의 산문집 『식물적 낙관』은 식물 하는 사람의 마음의 온기가 적당해 손에 자꾸만 쥐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책은 이상하다. 책은 이해할 수 없던 시간과 기억을 불러와 끝끝내 나를 이해시키고 만다. 형편이 안 좋았음에도 화분 하나씩을 들여와 물을 주고 꽃이 피는 걸 좋아했던 장면이 있었다. 곧 시들어 버리는 비싼 꽃다발은 사지 않았다. 대신 높은 곳에 걸어 두면 아래로 잎을 축복하듯 떨구어 주던 화분들을 샀더랬다. 


그런 낡고 헤진 기억들이 있었다. 무해한 것만을 취하는 꽃과 나무들. 약간의 돌봄만 더해준다면 좀 커다란 기쁨을 선사해 준 것이리라. 뜻대로 되지 않던 일에 치이고 화원 앞을 지나다 그중에 저렴한 화분을 하나씩 사서 집으로 돌아왔으리라. 그건 뜻대로 되던 일이리라. 『식물적 낙관』에 등장하는 식물들의 이름 중 베고니아, 제라늄, 유칼립투스는 반가웠다. 아는 만큼 보인다. 어떤 날들에 그 이름을 가진 식물들과 함께였다.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으로 이어지는 계절에서 식물들은 자라거나 생장을 멈추기도 한다. 누군가의 발코니에서 자라나는 식물들의 사계절을 책으로 만나는 행운을 누린다. 그 애들의 성장을 보다 보면 세상 무수한 복잡한 일도 별것 아닌 것이라 여기는 '식물적 낙관'의 근육이 생긴다. 공기, 햇빛, 물, 바람만으로도 살아가는 식물의 생태계 안으로 인간도 한 발 들어가 함께 하면 어떨까. 그런 마음이 『식물적 낙관』에 곳곳에 놓여 있다.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식물에게 주고 싶은 마음에는 관심과 사랑이다. 스투키 화분에는 이름을 쓸 수 있는 하트 목걸이가 달려 있었다. 이름을 붙여주자.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 꽃이 되고 의미가 되니까. 견딜 수 없는 날들에 무얼 해야 할까. 우리에겐 마스크를 써야 밖으로 나갈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눈으로만 소통을 해야 했고 코가 간지러워 재채기를 하면 눈치가 보였다. 작가는 그 시기를 식물을 가꾸는 일로 살아갔다.


주먹을 쥐면 손등에 선명한 기미가 보인다. 어느덧 힘들었을 시간을 견딘 그이와 같은 나이가 되어 가고 있다. 화가 나고 슬퍼지는 순간을 돌보고 아끼는 마음으로 대체할 수 있다. 아프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물 주기와 햇빛 쪽으로 옮겨 놓기라는 행동으로 바꾼다. 절망을 낙관으로 바꾸는 것으로 세계는 무해한 식물로 가득해진다. 공기는 정화되고 배경 이미지는 녹색으로 우리는 다른 별로 이주를 꿈꾸지 않아도 된다. 다 잘 될 거야 하는 터무니없는 낙관의 마음을 가진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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