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의 노래
공선옥 지음 / 창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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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선재는 할머니에게 학교에 가는 날이라고 거짓말한 걸 두고두고 후회한다. 할머니는 선재가 같이 장에 갔으면 했다. 할머니 혼자 장에 갔고 선재는 친구 상필이 집에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도 없는 빈 집에서 계란 프라이와 볶음김치로 밥을 먹었다. 배부르게 먹고 나무 위에 올라갔다. 이장이 찾아와 할머니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전했다. 


공선옥의 소설 『선재의 노래』는 그렇게 한 사람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후회를 그린다. 몰랐지. 몰랐어. 여느 날과 같은 하루인 줄 선재는 알았을 거다. 귀여운 손주와 장에 가고 싶은 할머니의 마음을 알았지만 선재는 다음에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손수레를 끌고 장에 가는 할머니의 그 모습이 살아있는 할머니의 마지막이 될 줄이야. 몰랐다. 


명절, 생일, 어버이날 같은 기념일을 챙길걸. 전화가 오면 짜증 내지 말고 받을걸. 단 얼마라도 꾸준히 돈을 보낼걸. 하는 후회의 마음들이 매일 차곡차곡 쌓인다. 시간은 흐르지 않고 틈이 있는 빈 공간을 차지해 고여 있다. 고여 있는 시간 안에서 잘못한 기억과 그로 인한 반성의 순간을 맞이해야 한다. 너의 한심함에 대해 1,500자 내외로 서술하시오. 문제를 받아들고 빈 종이를 채워나가야 한다. 


열세 살 선재는 할머니가 떠나고 혼자가 된다. 울고 후회하고 그리워한다. 세상천지에 나 말고 아무도 없다는 외로움이 사무친다. 혼자인 선재는 어떻게 살아갈까. 할머니 없는 선재의 오늘이 걱정되어 죽을 것 같았다. 누가 선재를 돌봐주지. 다행히 동네 사람들이 먹을 걸 챙겨다 주지만 선재의 마음까지는 어쩌지를 못한다. 할머니의 유골함을 챙겨 선재는 길을 떠난다. 


『선재의 노래』는 죽음 뒤에 오는 상실의 순간을 겪어낸 모든 이들을 위로하는 소설이다. 모두 전부 죽는다. 이것만 알면 잘못도 후회도 남기지 않을 수 있다. 아직 어린 열세 살 선재라서 몰랐다. 언제나 곁에 할머니가 있을 줄 알았다. 나 역시 그랬다. 죽는다 죽는다고 해도 그 순간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라서 싸가지 없이 굴었다. 


할머니를 잘 보내주기 위해. 남은 날들에 할머니의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선재는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슬픔이 모이면 노래가 된다. 갇힌 슬픔을 풀어주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 노래는 기억이 슬픈 사람들에게 바쳐지는 제물이다. 노래 부르게 해줄 테니 울지 마. 오늘 추석 선물로 장어 세트를 받아왔다. 왜 좀 더 나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할까. 됐다. 됐어. 그런 마음 갖지 말고 노래를 부르자. 선재가 부르는 노래를 이어 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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