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
강지희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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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의 점심은 이랬다. 반찬집에서 사 온 3,000원짜리 반찬 서너 개. 월급 받거나 기분 좋은 날에는 5,000원짜리 반찬도 샀다. 집에서 왕창 해온 밥. 물 한 컵. 묵언수행하는 사람들처럼 밥을 먹었다. 신속하게 먹었다. 10분 이내로. 정말 정말 끔찍했다. 처음엔 무슨 말이라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그마저도 쓸모없는 짓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의 에너지를 여기에 쓰면 안 되겠구나, 깊은 현타가 찾아왔다.


물건을 챙겨 나오면서 잊지 않고 밥통도 챙겼다. 반찬은 놔두고 왔다. 알아서 하라지. 지금은 이야기를 나눈다. 반찬은 사지 않는다. 반찬을 사려면 그 동네로 가야 한다. 트라우마. 한동안 그쪽으로는 가지 못할 것 같다. 생각만 해도 숨이 가빠 오고 심장이 두근댄다. 대신 제일 잘하는 김치볶음밥을 싸 간다. 파리바게뜨에서 샐러드를 사가기도 한다. 같이 먹으려고 맥모닝을 사 오기도 해서 고맙다고 여러 번 말했다.


이야기를 한다. 점심을 먹으면서. 듣기와 말하기의 비율을 적당히 조절해가면서. 어디를 가도 똑같다고 말한 그 입을 때리고 싶을 정도로 여기는 괜찮다. 똑같지 않고 더 좋을 수 있다는 걸 지금 괴롭고 힘든 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참지 말고 버티지 말고 아닌 건 아니라고 나를 설득하면서 나오기를. 처음이라 일을 많이 주지 않으려고 하는 게 느껴진다. 시간이 지나면 업무량은 많아지겠지만 일단 해보는 거다. 이야기가 있는 점심을 위해서.


산문집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은 작가들의 점심 단상을 모아놓았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먹는 점심. 회사 업무를 하다가 먹는 점심. 급하게 먹어야 하는 점심. 산책을 하기 위한 워밍업으로의 점심. 누군가들의 점심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한 시간의 점심시간. 급하게 밥을 먹고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어깨가 무지 아팠다. 등도. 벌칙의 시간인 것처럼 느껴지던 점심시간이었다. 여유도 온기도 없는 점심시간을 가졌었다.


책에서는 다양한 점심시간의 이야기가 나온다. 구내식당을 사랑하고 집에서 정성 들여 먹기도 한다. 여러 형태의 점심시간의 모습이었지만 나는 그 시간에서 쓸쓸함을 느꼈다. 일을 하기 위해 먹는 밥인데 먹어야 일을 할 수 있으니까 먹는 밥인데 점심시간은 노동 시간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 어떤 곳은 중식비가 나오지 않기도 한다. 분명 둘이 먹는 점심인데 내내 혼자 먹는 지독한 외로움의 시간이었다.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을 읽으며 힘이 나길 바랐다.


나만 이상한 게 아니라는 따뜻한 시선이 필요했다. 솔직함에 대해 생각한다. 요즘 나는 산문집을 주로 읽는다.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솔직함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쉽게 드러낼 수 없었던 과거의 어떤 기억을 꺼내 놓는 걸 보면서 나의 과거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눈가가 촉촉해지지 않고도) 말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기대한다. 유통기한이 지난 비비고 전복죽을 용기 내어 끓였다. 다행히 상하지 않았다. 조금 짜서 밥을 더 부었다. 3분의 2는 먹고 나머지는 반찬통에 옮겨 담았다. 다음 주 어느 하루의 점심을 위해서.


밥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찾아온다면. 점심시간인데도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할 것 같은 시간을 겪고 있다면. 과감히도 아니고 그냥 담담한 마음이 되어 나왔으면 한다. 그곳이 최선이 아니라는 신호를 수신해야 한다. 힘이 나지 않을 땐 힘을 내려고 하지 말고. 영화 《벌새》의 영지쌤 말대로 손가락 하나를 움직여보기를. 손에 잡히는 리모컨이나 휴대전화에 깔려 있는 배달 앱을 눌러 보기를. 이상하게도 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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