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약국의 딸들 - 박경리 장편소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채널예스에서 연재하는 장강명의 칼럼을 읽었다. 긴 글을 쓰기 위해서는 고정 수입과 자신만의 공간 필요하다는 글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은 토지문학관에 입주 신청을 한다. 『토지』를 읽지는 못했지만 『김약국의 딸들』을 인상 깊게 읽었다고 했다. 앞부분의 나오는 김약국의 어머니 일화가 기억에 남으니 읽어보라고 권했다. 곧바로 읽어보리라.


추석 연휴 동안 조금씩 읽었다. 많이 읽지 못한 이유는 밀린 잠을 자느라고. 자도 자도 피곤. 개피곤. 넘나 피곤. 지금도 피곤. 지난 금요일에는 백신 1차 접종을 했다. 많이 먹어야 한다기에 일단 먹었다. 팔이 욱신거리고 허기가 지는 것 외에는 별다른 증상은 없다. 《유미의 세포들》 식으로 말하자면 감옥에 가둬놨던 출출이 세포가 백신 한 방에 탈옥을 했다. D.P 조를 풀어서 잡으러 가야 하는데 귀찮아서 내버려 두고 있다.


왜 박경리, 박경리 하는 줄 알겠다. 문장이 정확하고 읽는 사람의 마음을 짐작하는 듯 흡입력 있게 서사를 풀어 놓는다. 장강명이 인상 깊게 기억하는 김약국의 어머니 일화는 초반에 나온다.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이런 시대를 우리가 살았단 말이지.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우리는 여성에게 가혹한 과거를 가지고 살았었다. 조선의 나폴리라고 불리는 통영 묘사를 시작으로 소설은 김약국이라고 불리는 가문의 일대기를 이야기한다.


결혼을 해도 잊지 못해 숙정을 찾아온 욱은 숙정의 남편에게 죽임을 당한다. 숙정은 그날 밤 비상을 먹고 자결한다. 그의 남편 봉룡은 형세가 불리해짐을 깨닫고 도망간다. 둘 사이에는 어린 아기가 있었다. 이름은 성수였다. 죽은 어머니를 잊지 못해 옛집에 찾아와 있기를 즐겨 한다. 후에 성수는 큰아버지 봉제의 뒤를 이어 김약국의 후계자가 된다.


좋아하는 여인이 있지만 차마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김약국은 다른 이와 결혼을 한다. 딸 다섯을 두었다. 과부 용숙, 공부 잘하는 용빈, 얼굴 예쁜 용란, 살림 잘하는 용옥, 귀염둥이 막내 용혜. 『김약국의 딸들』에서 다섯 딸의 운명은 각자 다른 생김새의 모습대로 별나게 흘러간다. 소설의 배경은 일제 강점기이다. 통영이라는 항구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채로운 인생 모습이 마음을 누른다.


다섯 딸의 인생은 어머니 한실의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여자는 시집을 잘 가야지 팔자가 핀다는 사고방식이 유효한 시점에 쓰인 『김약국의 딸들』이었다. 소설은 허구라 하지만 있음 직함 일을 그리는 문학이라. 읽고 나서도 이런 일이 허다하게 있었겠지. 그러니 작가가 소설로 썼겠지라는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그만큼 다섯 딸의 삶이 기막히고도 허무했다.


김약국의 딸들의 삶의 비극은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하는 단순한 이유에서 출발한다. 봉건 제도가 남아 있는 시대라 그렇겠지만 근대화가 시작되는 시기였다. 딸이 좋아하는 이가 집에서 부리는 머슴이어서. 상대 집안의 신분과 가세가 탐탁지 않아서. 딸들의 결혼은 그런 저런 이유들로 성사가 되지 않았다. 지금이라고 달라졌을까. 소설은 쓰인 지 50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지금 시대를 반영한다.


맥락 없이 결혼은 왜 안 하냐고 질문하는 통에 처음엔 그러려니 넘겼지만 자꾸 듣다 보니 이걸 가지고 나를 놀리나 하는 마음이 뾰족해지는 게 어쩔 수 없는 요즘이다. 한 번만 더 그런 말을 업무 시간에 한다면(제발, 업무 시간에는 업무에 대한 이야기만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만 된다면 컴퓨터에 숨겨 놓은 사직서 파일을 떠올리지 않을 텐데.) 그러는 너 님은 왜 그거 하셨어요? 말할까 보다.


결혼이 여성이 가지는 궁극적인 목표인 것처럼 말을 하는 시대착오적인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길 수 있는 건 『김약국의 딸들』을 읽었기 때문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마음에도 없는 결혼들을 해서 몸과 마음고생하는 딸들의 인생사를 그렸지만 마지막에 박경리는 희망을 남긴다. 그 결혼이 뭐라고.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고 결정한 용빈의 심사를 이어받아 사람 많은 곳은 피해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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