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몸의 시간 - 서유미 에세이
서유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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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미의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는 아이를 낳고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 있는 동안 카페에 그녀 말대로 출근을 해서 다양한 곳에 이력서를 보낸다. 계획은 육아 휴직 후에 직장에 돌아가는 것이었다.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고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유치원에 갈 때 울지 않고 엄마 손을 덜 타는 시점이 되자 주인공 경주는 구직 활동을 시작했다.


책을 다 읽고 든 감정은 서글픔이었다. 면접의 기회조차 쉽지 않은 경주의 일상을 보면서 안타깝기도 했다. 채널예스에 실린 서유미 소설가의 인터뷰를 보다가 에세이가 나왔다는 걸 알았다. 소설만큼이나 즐겨 읽는 게 에세이다. 요즘엔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자주 읽는 듯. 비교적 힘이 덜 들어가 있는 글(힘이 덜 들어간다고 썼지만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모든 글은 힘이 들겠지.)인 에세이를 읽으면 괜한 힘이 빠지면서 마음이 편해진다.


『한 몸의 시간』은 소설가 서유미가 아닌 엄마 서유미의 입장에서 쓰인 책이다. 결혼할 때부터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옆 사람과 합의도 했다. 계획은 그러했다. 세상만사 계획한 대로 흘러만 간다면 왜 근심, 걱정이 생기겠는가. 어느 날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소설가의 일상은 차츰 변모한다. 엄마가 되는 일. 걱정이 앞서고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그럴 때 소설가는 글을 썼다. 소설가와 엄마라는 자아의 경계에서 흔들릴 때 잡아준 건 글이었다. 두렵고 막막하고 불안한 나날을 글로 옮겼다. 배 속의 아이와 한 몸으로 지내는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해 둔 것이다. 『한 몸의 시간』은 서문에서 밝히듯이 육아 지침서나 태교에 관한 글은 아니다. 소중하게 찾아온 인연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엄마로서 살아갈 날에 대한 의지를 다룬 책이다.


『한 몸의 시간』에서 출발한 서사가 소설 『우리가 잃어버린 것』으로 도착했구나를 느꼈다.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일부터가 쉽지 않았다고 밝힌다. 커피를 좋아했는데 입덧이 시작되면서 커피의 고소함을 느낄 수가 없었다. 몸이 붓고 배가 무거워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힘들었다. 경험해 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불편함은 타인의 고통을 비로소 바로 보게 해주었다.


아이를 가졌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자 많은 축하가 따라왔다. 심지어는 글쓰기 수업에서 공부하는 학생(엄마이자 학생들이었다)들이 육아 용품을 나누어 주겠다고 했다. 소설이 전부라고 여겼던 삶에 자식이라는 카테고리가 생기면서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은 넓어진다. 의사의 권유대로 수술로 아이를 낳았다. 그 후 시련이 시간이 있었지만 사랑과 다정함으로 이겨 나간다.


불안을 불안으로 놔두지 않는 현명함이 돋보이는 책이다. 글이란 우리를 훌륭한 어른까지는 아니지만 훌륭한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져다준다는 걸 『한 몸의 시간』을 통해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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