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미녀들 1~2 세트 - 전2권
스티븐 킹.오언 킹 지음, 이은선 외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잠자는 미녀들』을 읽는 나흘 동안 신기하게도 피곤하지 않았다. 심지어 졸리지도 않았다. 대개 책을 읽다 보면 잠이 오게 마련이고 잠을 자려고 책을 읽는 탓도 있고 해서 머리맡에 대충 책을 펼쳐둔 채 잠의 나라로 빠지기 마련인데. 책상에 앉아서 독서대도 펼쳐 놓고 정자세로 읽었다. 스티븐 킹이 책에 각성제라도 뿌려 놓은 거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로 잠이 오지 않았다. 잠시 생각에 빠져 보니 피곤하지도 졸리지도 않은 이유가 있긴 있다.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인 근로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안한 게 아니라 못한 게 되고 말았지만. 힘들고 걱정스러운 이야기는 굳이 해서 누군갈 피곤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으니 패스하고. 아무튼 1200페이지 넘는 소설 『잠자는 미녀들』을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읽었다. 한 번 더 생각에 빠져 보니 소설의 내용이 잠에 빠지면 안된다는 설정 이어서 무한으로 감정 몰입이 된 탓도 있다.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스티븐 킹 미친 거 아냐라는 거였다. 확실히 스티븐 킹은 미쳤다. 미치지 않고서야 사람을 이렇게 미치게 만든단 말인가.


그의 아들 오언 킹과 함께 쓴 『잠자는 미녀들』은 여자들이 잠에 빠지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애팔래치아산맥의 도시를 중심으로 현란하고 폭력적이며 과격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느 날 오로라 병이라고 불리는 수면병이 창궐한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 나오는 그 오로라. 파티에 초대 받지 못해 악의 요정이 건 저주에 빠져 잠만 자는 그 오로라. 오로라 병은 여자들만 걸린다. 여자들이 잠에 빠지면 누에고치 같은 실이 온몸에 퍼진다. 곧 실에 몸이 감싸인다.


당황한 사람들이 실을 걷으면 잠에서 깬 여자들이 폭력적으로 변한다. 괴물 같은 힘으로 주변 사람을 물어뜯고 죽인다. 전 세계에서 그 일이 일어난다. 잠에 빠지면 안 된다! 여성 교도소를 배경으로 『잠자는 미녀들』은 시작한다. 사각형의 창문으로 겨우 들어오는 햇빛에는 관심 없는 저넷. 다양한 죄목으로 교도소에서 살아가는 여자들. 그 안에서도 폭력은 멈추지 않는다. 성폭력을 일삼는 돈 피터스 교도관. 교묘하게 자신의 죄에서 빠져나간다. 정신과 의사 클린트. 그는 재소자들 편에서 편의를 봐주려는 의사이다.


숲 근처 트레일러에서 약쟁이들이 약을 하려는 그때 이비라는 여자가 등장한다. 티파니는 그녀가 혼자 남자 둘을 죽였다고 신고한다. 벽에 던지고 얼굴을 들이 받았다는 것이다. 클린트의 부인이기도 한 라일라는 현장으로 출동한다. 현장 주변에서 피 묻은 옷을 입고 있는 이비를 발견하고 경찰차에 태운다. 이비가 이상하다는 점을 깨닫고 정신 감정을 받기 위해 클린트가 있는 교도소로 데리고 간다. 이비는 묘한 웃음을 짓는다.


점점 여자들이 잠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혼란이 찾아온다. 실에 감기고 그걸 모르고 걷어 냈다가 죽임을 당한다. 곧이어 인터넷에는 잠든 여자들을 불에 태워야 병을 잠재울 수 있다는 가짜 뉴스가 퍼진다. 교도소에서도 여자들이 잠이 든다. 이비는 클린트에게 자신을 일정 시간 보호해 줄 것을 부탁한다. 잠을 자지 않아야 한다는 사명 아래 라일라와 교도소장 재니스, 교도관 바네사가 모인다.


교도소 안에서 이비는 잠이 든다. 그리고 멀쩡하게 눈을 뜬다.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잠에 빠져 깨어나지 못하는데도. 이비의 소문이 돌기 시작하고 딸이 잠에 빠져 분노에 빡친 동물 관리인 프랭크는 경찰관들을 모아 교도소로 들어가자고 한다. 이비를 지켜야 오로라 병에 걸린 여자들을 구할 수 있다고 믿는 클린트는 어떤 작전을 실시할까. 한 번 읽으면 멈출 수 없고 잠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여자들의 고군분투 때문에 읽는 사람마저도 잠을 잘 수 없게 만드는 마법 같은 책, 『잠자는 미녀들』.


여자들이 없는 세상은 어떤 시간의 흐름으로 흘러갈까. 여자 대 남자의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쓰인 책이 아니다. 혼란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여성, 남성의 구분은 무의미한 짓이다. 잠에 빠진 여자들이 넘어가는 세상은 인류가 멸망한 곳이었다. 여성이 사라지고 남성만 남은 곳에서는 파괴만이 있을 뿐이었다. 각각의 개성 강한 인물들을 만들어 내는 힘. 이야기를 막판까지 몰고 가는 추진력. 킹 부자는 신나게 자판을 두드렸을 것 같다.


이상하게도 『잠자는 미녀들』을 다 읽고 나자 피곤이 몰려왔다. 독자를 안심하게 하면서 씁쓸함을 느끼게 하는 결말 때문일까. 현실이 소설을 압도해서 일까. 킹 부자가 그리는 소설 속 현실 보다 책을 읽고 있는 나의 현실이 더 공포적이고 스릴러 같기도 한 기분. 책을 읽으며 킹이 그려내는 긴박한 이야기 안에서 서성이다 보면 현실을 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완벽하게 불안과 염려를 잊을 수 있었다. 킹 쵝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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