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아저씨 개조계획
가키야 미우 지음, 이연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유명 대학을 나오고 일류 기업에서 정년을 맞이한 쇼지 씨. 퇴직을 하면 아내와 여행을 다니고 여유로운 노년을 보낼 생각이었다. 웬걸.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다. 아내는 자신을 피하고 같이 사는 딸은 자신에게 냉랭하다. 차 한 잔 가져달라고 했을 뿐인데. 가키야 미우의 『정년 아저씨 개조계획』은 여성에게 가지고 있는 편견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신랄한 소설이다. 퇴직을 맞이한 쇼지 씨의 일상을 촘촘히 들여다본다.


장마가 끝나고 연일 폭염이다. 임시 공휴일에 드러누워(함부로 앉지 않는다) 책을 읽어 나갔다. 쇼지 씨의 신념은 이렇다. 여자와 남자가 할 일은 따로 있다.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모성 본능을 가지고 있다. 엄마는 자식을 잘 길러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어린아이가 있는데 일을 나가는 며느리를 이해할 수 없다. 아내가 임대하는 원룸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찾아가서 밥을 먹자고 한다.


더운데 더 더워진다. 이런 이야기를 읽어나가면. 제목을 다시 보자. 『정년 아저씨 개조계획』이니까. 쇼지 씨를 개조할 계획이구나. 더 읽어보자. 집에 있게 된 쇼지 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른다. 퇴직하고 촉탁직으로 일을 했지만 회사가 도산해 버렸다. 도서관에 가서 신문을 보고 산책을 하지만 제일 많이 하는 건 텔레비전 보기다. 그마저도 재미없다.


아내는 후겐병이란다. 딸이 말해주었다. 후겐병은 '남편이 원인이 되어 생기는 병'이다. 쇼지 씨는 그 말의 뜻을 몰랐었다. 딸의 비판이 섞인 이야기를 통해 아내의 병이 자신 때문이라는 걸 알아간다.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건실하게 일을 다니고 월급을 가져다주었다. 보증을 서서 집을 날리지 않았고 불륜을 저지르지도 않았다. 끝까지 회사에 다니며 가정을 지켰다.


그런 그가 왜 아내를 아프게 하는 것일까. 『정년 아저씨 개조계획』은 여성에게 가지는 신화 같은 고정관념을 쇼지 씨를 통해 탈피하는 노력을 보여준다. 손주를 돌보면서 쇼지 씨는 가사노동의 어려움을 알게 된다.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 집.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가사 노동이 결코 당연하지 않음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아내가 왜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 하지 않는지 본인에게 잘못이 있었음을 인정한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신념을 부수기란 알을 깨고 나오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소설은 쇼지 씨가 조금씩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끝이 난다. 꽉 막혀 있던 쇼지 씨. 과연 어떻게 바뀔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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