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시트
황선미 지음 / 비룡소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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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소설이다. 독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소설이어서 차라리 다행인 걸까. 소설은 허구니까. 꾸며낸 거짓말의 세계니까. 아니다. 소설은 사실성을 기반으로 하는데. 어디까지고 현실이고 허구인지 가려내는 건 독자의 몫이지만 너무 했다. 황선미의 『엑시트』는 한 번 잡으면 멈출 수 없으면서도 눈을 감으며 책을 덮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이다. 어쩌자고 이렇게 독한 이야기를 써 낸 걸까. 찾아보니 황선미 작가는 입양이란 주제에서 10년을 붙들려 있었다고 한다.


주인공 장미는 열여덟이다. 성은 노. 성과 이름이 함께 불리는 걸 싫어한다. 꽃 중의 꽃이라는 장미. 그 이름을 자신에게 붙인 부모가 밉다. 책임질 것도 아니면서 세상에 나오게 했고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 조롱거리로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할머니 손에 키워졌고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고모 집으로 들어갔다. 고모 집에서 눈치가 보여 주말에는 백화점 수선실에서 일을 했다. 돈을 벌어서 친구들이 다니는 학원에 다니고 어울려 놀고 싶었다.


친구 세희의 남자친구인 J에게 반해버렸다. 생애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마음을 품었다. 사랑과 관심이 고픈 장미였다. J는 장미를 이용하기만 했다. 좋아한다고 고백했지만 돌아온 건 폭력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장미를 불러내 괴롭혔다. 어느 날 고모는 장미의 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챘다. 고모의 말에 장미는 집을 나왔다. 보호소에 들어갔고 하티를 낳았다. 그곳에서 같은 처지인 진주도 만났다.


어른들 모두 장미에게 하티를 입양 보내라고 했다. 그게 최선이라고. 아무도 하티와 장미가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모성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장미는 출생 신고를 할 수 없는 아이, 하티를 그러나 포기할 순 없었다. 대단한 모성이 우러나와서도 아니었다. 그저 하티를 머나먼 나라로 보낼 순 없었다. 보호소에서 도망쳐 나왔다. 하티의 물건과 원장의 돈을 훔쳐서. 진주의 반지하 방에 얹혀살면서 장미는 사진관에서 일을 했다.


진주가 하티를 돌보는 건 아니었다. 그저 방치 수준이었지만 하티와 함께 할 수 있음에. 월급을 받아 분유와 기저귀를 사서 돌아갈 집이 있음에. 안도했다. 『엑시트』는 입양의 문제를 건드린다. 입양 기관과 협력해서 도움을 주는 사진관 사장의 오지랖을 통해 입양아들의 현재를 장미는 바라본다. 하티를 보낸다면. 자신은 모든 걸 잊고 열여덟의 나이로 돌아갈 수 있다. 하티를 보낸다면 말이다. 자신의 뿌리를 찾아온 해외 입양아의 슬픔을 장미는 무시하지 못한다.


『엑시트』는 장미가 겪어내야 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처절할 정도여서 제발 그만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장미 곁에 다정한 조언과 위로를 해주는 어른은 없었다. 장미가 겪은 일에 대해 한심해 하거나 그럴 줄 알았다는 냉정한 판단만을 했다. 소설의 결말로 나아갈 때까지 장미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피가 섞이지 않은 타인이 취하는 형식적인 친절이 전부였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장미를 불쌍해 할 수도 있다.


『엑시트』는 놀랍고 경이로운 기적을 장미에게 선사한다. 결코 불쌍하고 한심한 장미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 장미는 선택을 할 수 없었다. 강요만이 있을 뿐이었다. 폭력으로 가장된 해결책을 집어던지고 장미는 세상 밖으로 나온다. 자신을 나쁘다고 생각하는 장미. 나빠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장미. 그런 장미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단 한 사람이 걸어온다.


내 삶의 비상구가 되어줄 누군가를 만나는 기적이 모두에게 찾아오길 기대한다. 고통으로 삶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판단이 옳았는지 끊임없이 의문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기를. '몇 개월 아이' 이후의 시간도 살아낼 장미의 손을 잡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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