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왔어 우리 딸 - 나는 이렇게 은재아빠가 되었다
서효인 지음 / 난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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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몰랐어. 스스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좋아하는 걸 물으면 취향이 없어 우물쭈물하기 바빴지. 기껏 말한다는 게 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이러고 나면 그건 그냥 농담이 되는 거야. 고기는 말고도 좋아하는 어른이 아주 많거든. 나는 이제 은재 네가 좋아. 다운증후군을 가진 친구들이 좋아. 사람들이 그러더라. 우리 아이들이 바로 천사라고. 밝게 웃어주고 유머를 즐기고 참을성이 깊다고. 네가 자라면 무엇이 될까. 천사는 직업이 아니니까 직장에서는 네 정체를 숨겨야 해!
(서효인, 『잘 왔어 우리 딸』中에서)

은재는 좋겠다. 시인 아빠 서효인과 함께라서. 대학 때는 술을 마시고 당구 치는 걸 좋아했고. 좋아하는 애인이 문학을 좋아해서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문학을 더 좋아하는 척했다. 좋아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속도를 살짝 올려서 결혼을 했다. 결혼 전에 무수히 많은 난관들을 헤치면서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살게 되었다. 목포에서 올라온 엄마와 집을 보러 다니고 감자탕을 먹고. 그나마 본 집 중에서 볕이 들고 공원이 있는 집을 계약했다.

시인 아빠는 아이의 이름을 미리 지어 두었다. '사랑의 재능'이라는 뜻을 가진 은재로. 태명은 땅콩이. 조심조심 지내며 태어날 아이를 기다렸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세상의 소리는 잠시 멈췄다. 울어야 할 아이는 울지 못했다. 대신 이런 말들이 들렸다. '다운 같지? 네 그런 것 같아요. 생긴 게 그렇지? 얼른 데려가. 얼른.' 구급차를 타고 큰 병원으로 갔다. 인큐베이터 안의 은재는 작았다. 아내가 있는 병원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집을 함께 보러 다녀준 엄마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택시 운전사는 요금을 깎아 주며 아내를 잘 돌보라고 했다.

『잘 왔어 우리 딸』은 시인 서효인이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딸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아빠가 엄마를 만나기 전으로 시작해서 은재 너를 갖게 되고 태어나서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어 주기 위해 쓰였다. 다른 아이들보다 염색체가 하나 많은 은재에게 아빠는 말한다. 괜찮아, 잘 왔어, 난 네가 좋아라고. 서효인은 스스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랐다고 밝힌다. 기껏해야 고기 정도를 좋아한다고 말하던 사람이었다. 비싼 소고기보다 삼겹살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은 딸아이를 가장 좋아하는 아빠가 된다. 『잘 왔어 우리 딸』은 은재를 위한 마음과 아빠로서 더 잘하고 싶은 책임이 가득 담겼다. '은재'로 시작한 책은 '당신'으로 끝이 난다. 누구보다 용기가 필요하고 필요했을 '당신'에게 서효인은 우리가 어른이 되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다독인다. '누구의 어머니 아버지가 아닌 우리 자신으로, 동시에 부모로 가족으로 살'아 가자고 이야기한다. 천사는 직업이 될 수 없다고 아빠는 은재에게 말한다. 그러니 네 정체를 잘 숨기라고도.

문학이 아닌 바깥의 영역에서 인과 관계를 따지는 건 우스운 일이 된다. 시인 서효인은 그것을 안다.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다. 엄마 곁이 아닌 신생아 집중 치료실에서 있어야 할 은재에게 '신생아집중치료실의 보스'라고 별명을 붙여 주면서 지금 보다 괜찮아지기를 기대한다. 태어난 아이에게 조금 늦게 도착한 축복의 말을 감사하게 여긴다.

아침이를 타고 가는 긴 귀성길에도 은재는 칭얼대지 않는다. 좁은 차 안에서 힘들었을 텐데. '사랑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골고루 나누어 주는 것으로 제 몫을 다 해낸다. 잘 웃고 뒤집기를 해내며 걷고 태어날 동생을 기다리며 지구 위에서 반짝인다. 나중에 은재가 커서 『잘 왔어 우리 딸』을 읽게 된다면 이토록 가득한 사랑의 온기 속에서 태어나고 자랐음에 얼마나 황홀해할지 상상만 해도 숨이 막힌다. 좋겠다. 좋겠어. 마구 부럽다고 말해본다.

두렵고 당황했던 마음을 딛고 고기와 커피보다 좋은 마법사 은재를 만나며 시인은 그렇게 아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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