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소설
기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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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열어 환기를 했다. 아직은 차가운 공기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하늘은 파랬고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호박 고구마를 데워서 우유에 먹고 책상에 앉았다. 어젯밤에 읽은 기준영의 소설집 『연애소설』의 장면을 떠올려 본다. 일곱 편의 소설을 읽어가며 내일은 맑은 하늘을 기대했다. 창문을 잠시 열어둘 정도로 날씨는 맑고 화창했다.

표제작 「연애소설」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 하나.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안부를 직접 묻는 대신 친구들에게 연락해 물어보는 장면이었다. 친구는 스물세 살이 많은 남자와 살고 있다는 뜻밖의 이야기를 꺼낸다. 글을 쓰는 나는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다. 친구는 네가 글을 쓰니 내 이야기를 털어놓아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이 애가 왜 이러나. 그간의 사정을 물어볼 만도 한데 화자인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친구를 따라 걷고 심술 맞은 친구의 동생을 일별하고 걷는 동안 발의 따끔한 통증을 느끼지만 모른척한다. 결국 친구의 나이 많은 애인에게 업혀 병원에 가서 발을 꿰맨다. 이상하고 낯선 동행의 끝에서 나는 소설을 쓰려는 시도를 한다. 바로 이어지는 소설 「시네마」에서도 기이한 동행은 계속된다. 이별을 통보받은 나는 애인의 친동생의 연락을 받는다. 사랑 얘길 쓰고 싶은데 여자에 대해 모르니 좀 알려달라는 부탁. 거절을 하지만 거절은 거절당한다.

「아마도 악마가」에서 펼쳐지는 희망은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결핵 진단을 받고 요양 차 내려간 곳에서 목격한 죽음은 삶의 이중성을 드러낸다. 「의식」에서 일탈은 「파티피플」의 작은 용기로 변주 된다. 「B캠」의 사람들은 파괴적인 충동을 가지는데 「제니」에서 보여주는 일주일 치의 절망은 이 세계의 슬픔이 계속되리라 예감하게 한다. 『연애소설』이라는 통속적인 제목에 기대 기준영은 낯설고 기이한 연애를 그려낸다.

패배감에 휩싸이지 않도록 일상의 적정 온도를 맞추는 게 중요해졌다. 폭력은 도처에 있었다. 보이지 않았을 뿐이었다. 『연애소설』의 인물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다. 사랑을 하고 있을 때는 모르던 사실이었다. 그들이 헤어지고 시간을 두고 과거를 회상했을 때야 드러나는 상처였다, 절망이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겨진 건 그것뿐이었을까.

다만 절망이었어도 내일을 가능하게 하는 열망 정도는 남아 있다고 『연애소설』은 말한다. 그거면 된 거 아니냐고도. 오늘의 안부를 전하기 위해 내일이 필요하다. 그 정도면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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