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이주윤 지음 / 한빛비즈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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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비혼 남녀 여러분들 이번 설은 무사히 보내셨습니까? 혹시 잔소리에 지쳐 조용히 전을 부치다 집을 나오시지는 않으셨는지요. 공원에 앉아 지나가는 커플을 쳐다보며 한숨을 푹푹 쉬지는 않으셨는지요. 아니면 너 님은 말하세요, 나는 안 들을 테니라는 포즈로 소파에서 떨어지지 않으셨는지요. 결혼은 언제 할 거냐. 얼마 버냐. 선 자리 있는데 어때 생각 있니. 이런 말을 들으며 산적과 동태전과 육전을 입속으로 욱여넣으셨나요. 그래도 맛있지요? 원래 명절 음식은 살이 안 찐답니다. 살은 내가 찌는 거지요.

대체 휴일이 있었지만 대체 연휴는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지. 출근 날이 되어 버스를 기다리며 잔뜩 부분 뱃살을 만지작거리며 우울해했나요. 조카들 용돈 주느라 얇아진 지갑을 쓰다듬으며 속상해했나요. 자 자 그러지 말고 이 책 한 번 읽어봅시다. 전직 간호사에 일러스트레이터에 소설가 지망생 그리고 지금은 프리랜서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누워 있는 걸 좋아하고 누워 있는 걸 좋아하는 이주윤의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입니다.

원래 그렇습니다. 책을 고르는 기준이라는 게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 이걸 읽어라 저걸 읽어라 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재밌다고 해도 상대는 난 재미없는 데라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추천하기가 상당히 조심스럽지요. 나는 상행선. 너는 하행선. 노래 가사대로 각자 살고 각자 가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책 꼭 읽어보세요. 그러니까 당신. 명절 때 들은 잔소리로 스트레스 지수가 팍팍 올라간 당신. 결혼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당신.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를 추천합니다.

처음 알게 된 작가 이주윤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그녀의 말발과 드립력에 감탄하고 맙니다. 참으로 즐겁고 세상을 무한대로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제가 현실에서 사람 만나는 걸 즐겨 하진 않는데 책을 읽으며 사람들이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는지 알아가는 걸 낙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주윤 작가는 저와 비슷한 점이 많기도 하고 제가 가지고 있지 않은 유머력이 있어 이후에 나올 책들을 기대하게 합니다. 비혼 주의자로서 살아가는 일상의 단면이 즐겁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주윤 작가의 아버지, 어머니는 선 자리를 알아봐 놓고 결혼을 종용합니다. 어머니는 매일 전화를 걸어와 안부를 묻습니다. 부모님은 평택에 살고 그녀는 서울에 삽니다. 명절 날 전 부치러 가는 에피소드는 가히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웃기고 슬프고. 웃기고 슬프고를 번갈아 하면서 현실 웃음을 짓게 만듭니다. 선 보는 자리에 서강준 닮은 이가 나타나 설레었다가 이내 멸치남이 등장합니다. 평소 그녀의 성격대로 화끈하게 대했겠지요. 멸치남은 그런 그녀에게 "자기주장이 굉장히 강하시네요."라고 합니다. 주윤은 '알아, 안다고. 아니까 닥쳐!"라고 속으로 말합니다.

글로 읽지만 말로 들립니다. 입말이라고 하지요. 명절을 보내고 다음날이 출근이라는 게 믿기지 않아서 집어 든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를 읽으며 배를 두드리며 웃었습니다. 평소 느끼던 삶의 부조리를 쉽고 재미있게 표현해주니 웃지 않을 수가 있나요. 노처녀라고 합디다, 세상은. 주윤 작가의 아버지 말에 의하면 여자는 서른이 넘으면 '쭈그렁방탱이'라고 하네요. 하. 한숨. 하하하. 이것은 웃음. 노처녀라고 하면 어떻고 쭈그렁방탱이라고 하면 어떻습니까.

늦잠 자고 일어나 낮잠 자고 그러다 늦잠 자는 주윤. 광화문에 있는 교보 문고에 가는 걸 좋아하고 형부가 하는 카페에 앉아 글을 쓰는 주윤. 혼자 지내니 시간을 온전히 자기에게 쓸 수 있어서 즐거워하는 주윤.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다양한 사람들만큼이나 삶의 다양성도 존재해야 합니다. 그걸 무시하며 자신들이 정해 놓은 기준 안에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이중적인 세상의 규칙을 주윤은 가볍게 무시해 버립니다.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는 결혼을 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이런 삶도 있으니 너도 괜찮고 나도 괜찮다고 말하는 책입니다. 광화문에 집을 살 수는 없으나 카페는 언제든지 갈 수 있고 불의와 무책임 앞에서는 유머 삼단 콤보를 날리며 스스로를 웃게 만들 수 있으니 주윤의 삶은 행복해 보여요. 자신만의 기준으로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용기가 생깁니다. 명절 잔소리를 이겨낸 그대들에게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를 바칩니다. 부디 받아주시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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