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에 속삭이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5
임철우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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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가보지 못했다. 어느 여름 며칠의 휴일을 받아들고 그곳에 가리라 생각해 본 적이 있을 뿐이었다. 섬의 곳곳을 알 수 있는 종이 지도를 신청해서 받아들고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어느 곳으로 가볼까. 결국 게으름이 호기심을 이겼다. 지도는 책 사이에 끼워 놓고 한동안 그곳을 잊고 지냈다. 안다. 그곳은 여행지라고 부르기엔 아픈 역사가 있는 곳이라는걸. 호기심과 여유로 그 섬을 소비하기엔 우리는 사무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걸.

유행가의 가사처럼 바다를 볼 수 있는 창문이 있는 곳일까. 사진에서 본 그대로의 풍경이 있을까. 임철우의 소설 『돌담에 속삭이는』에서 아직 서천꽃밭 섬으로 가지 못한 어린 영혼을 만나는 것으로 그 섬의 그리움을 달래고자 한다. 몽희, 몽구, 몽선. 세 아이의 이름을 부르고 잊지 않는 것으로 말이다. 소설은 1948년 12월 18일의 시간을 그린다. 강경 진압의 일환으로 마을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 놓고 총을 쏘아 죽였다. 몽희, 몽구, 몽선도 그 자리에 있었다.

엄마는 몽희의 얼굴을 가리며 보지 말라고 했다. 너무 많은 죽음을 본 사람은 장차 세상을 온전히 살아갈 수 없다며. 며칠 후에 돌아온 아버지는 다시 사라졌고 엄마 역시 끌려가 돌아오지 않았다. 금방 돌아올 테니 망월리 고모네 집에 가 있으라고 했다. 몽희는 오빠와 동생을 데리고 고모 집으로 갔다. 그곳 역시 너무 많은 죽음이 널려 있었다. 『돌담에 속삭이는』는 아픔을 들여다보는 눈에 관한 소설이다.

소설은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들의 시선으로 서사를 끌고 간다. 당신은 우리를 볼 수 없지만 우리는 당신을 볼 수 있으며 이 섬에 들어온 이상 우리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밝힌다. 집요하게 당신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이 소설에 담겨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우리를 볼 수 없을까. 시선이 마주쳐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을까. 주인공 한민우는 점점 자신을 향한 시선에 눈을 맞춘다. 그가 그럴 수 있는 이유는 한 가지 밖에 없다. 그 역시 역사의 혼란에서 아픔을 가진 채 살아가는 자이기 때문이다.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악마로 살기로 작정한 그들이 저지른 만행에서 겨우 살아난 이가 전하는 참혹의 시간들을 한민우는 확인한다. 섬에 갇힌 나약하고 외로운 영혼을 응시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임철우는 제주의 돌담길에서 숲에서 마주한 섬의 아픔을 받아들인다. 곧 돌아오겠다는 엄마의 약속이 거짓말이 되지 않도록 소설로써 이루어준다. 내 마음은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샘물같이 부끄럼같이 물결같이 빛날 것이다. 억울하게 사라져간 우리들의 마음을 고요히 들여다보는 눈을 가질 것이다.

몽희, 몽구, 몽선아. 너희를 꽃섬으로 보내기 위한 여기 이곳에 소설이 존재한단다. 바다는 하늘은 숲과 나무는 새와 강아지도 나도 너희를 이제는 기억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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