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습지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4
이혜경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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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에 있다는 베트남 쌀국수 집에 갔다. 베트남에서 온 사람이 직접 운영하는 곳이라고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신발을 벗고 바로 앉아야 하는 구조였다. 다닥다닥 붙은 테이블이 서너 개 있고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다. 인기 메뉴를 시켰다. 친절하게 음식 먹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어쩐지 더 맛있게 먹어야 할 것 같아서(원래 뭐든 맛있게 먹는다) 열심히 먹었다. 먹고 있는 중에 친구가 놀러 왔다. 이국의 말이 배경음악으로 들리고 포장 손님 한 명이 있을 뿐이었다. 장사가 잘 됐으면 좋겠다. 메뉴에 있는 베트남 젤리를 사고 싶었는데 지금은 안 만든다고 했다.

길을 가다 버스에 앉아 있다가 간혹 아이의 손을 잡은 이국의 여성들과 만난다. 보이지 않는 삶까지 추측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버스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를 듣는다. 대화의 주제가 시시하고 별거 아니겠지 하는 정도로만 넘기려고 한다. 그 정도다. 내가 알고 겪은 이야기는. 솔직하게 모른다. 타국에 와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가게를 차려서 사는 삶의 무늬를 헤아리기 힘들다는 뜻이다. 접점이 없다. 이혜경의 소설 『기억의 습지』의 첫 문장은 이렇다. '베트남에서 온 새댁의 가족은 추위를 탔다.'

『기억의 습지』는 한국으로 시집온 베트남 여성과 베트남 전쟁에 파병된 남성, 북파 간첩으로 이용당한 김의 시선으로 쓰인다. 소설의 시작을 읽자마자 베트남 여성이 죽었다는 것을 알려 주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군에 입대했다가 줄도 백도 없어 베트남으로 차출된 그의 과거는 오늘이 되고 마는 역설을 보여준다. 역사는 반복된다. 그 일을 인간이 한다. 국가를 위해 행했던 자신의 과거가 부정당한 채 살아가가는 두 남자의 삶을 보여주는 이유다. 먹고 살 일이 막막해 서울로 올라왔다가 직업소개소에서 설악산으로 향한 김 역시 자신의 의지가 포함되지 않는 삶을 살았다.

한국에 가면 드라마에 나오는 다정한 남자가 있고 케이팝이 있고 한국말을 배워 돈을 벌면 고국에 있는 부모에게 집을 사드릴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 스무 살이나 차이 나는 남자와 결혼한 이유였다. 스스로의 선택이라고 하지만 거기에는 자신의 의지와 신념은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떠밀려 가는 삶이다. 소설은 의지와 선택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의 비통한 최후를 보여준다. 연민과 동정 없이 잔혹한 결말로 나아가길 주저하지 않는다. 동화 속 결말인 그리하여 그들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 사라져야 한다.

『기억의 습지』는 인간이 살아감에 따라 가질 수밖에 없는 기억의 저편을 꺼내 놓는다. 할 수 있다면 숨기고 싶었던 기억이었다. 어둡고 축축한 그곳에서 건져 올린 기억 때문에 현재는 망가졌다. 한 여성의 죽음은 개인과 시대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었다. 역사라는 이름하에 자행된 수많은 잘못과 감추어진 개인의 기록을 들추는 일을 소설이 한다. 현실에서 다가가지 못하고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여성의 이야기를 소설에서 만난다. 고수가 가득한 쌀국수는 맛있었다. 뜨거운 고기튀김은 고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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