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기담집 (하나레이 에디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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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세상은 이상한 일들 투성이다. 이상한 일의 원인을 알지 못한 채 흘려보냈다. 『도쿄 기담집』을 읽고 나면 이상하고 낯선 일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다섯 편의 단편을 통해 일상의 곳곳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우연이란 결코 우연으로 치부될 수 없는 일의 성격임을 드러내는 이야기 「우연 여행자」를 시작으로 누구라도 한 번쯤은 겪었을 그러나 말하지 못한 현상을 다룬다. 재즈 피아니스트가 자신이 원하는 두 곡을 쳐준다든지 원하는 앨범을 손에 넣었을 때 제목과 시간이 일치한다는 일. 너무 사소한 우연이어서 털어놓을 곳도 마땅치 않아 숨겨 둔 이야기를 끄집어 낸다.

「하나레이 해변」의 주인공 사치코는 상어에게 다리가 물어 뜯긴 채 익사한 아들을 매년 추모하러 해변으로 달려간다. 뒤늦게 발견한 피아노의 재능을 버리지 않은 채 살면서 아들의 기일에 맞춰 비행기를 타고 광포한 자연으로 둘러싸인 해변으로 가는 것이다. 그곳에서 만난 젊은이와 그들이 들려주는 낯설고 신비한 이야기를 간직한다. 「어디가 됐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는 특별하지만 별것 아닌 사연을 들려준다. 26층에 사는 남자가 어느 날 신경증에 걸린 어머니를 보러 갔다가 사라진다. 남자는 24층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아침을 먹겠다고 준비를 해달라고 한다. 그 뒤로 사라져 버렸다. 24층과 26층 사이에서 말이다.

이쯤 되면 이상한 일을 다룬 소설집 『도쿄 기담집』이 특별해진다. 당신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해 오는 순간을 맞는 것이다. 형태를 정할 수 없는 문을 찾는 사람이 어딘가에는 존재하면서 돈도 받지 않고 사라진 사람을 찾아다닌다. 그들이 사라진 지점을 매일 찾아가는 방식으로 말이다. 「날마다 이동하는 콩팥 모양의 돌」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 세 명의 여자를 만나기 위해 애쓰는 한 남자가 나온다. 그가 쓰는 소설에 등장하는 콩팥 모양의 돌을 가진 의사의 내일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시시때때로 이름을 잊어버려 난감한 상황에 빠지는 여자의 이야기 「시나가와 원숭이」를 끝으로 기이한 소설의 여정은 끝이 난다. 질투를 느껴본 적 없는 사람의 비밀은 어둡고 외면하고 싶은 성질의 것이었다. 이름을 훔치는 원숭이의 설정은 현실감이 떨어지지만 결말로 나아갈수록 어색함은 사라진다. 어느 날 나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것 빼곤 완벽하다. 이름만이 사라진 것이다. 알고 보면 이름과 함께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어두움도 가져가는 원숭이. 산에서 만난다면 이름은 놔두고 외면하려 한 비밀만 가져가길 바란다.

죽은 이를 본다든지 가만히 놔둔 물건이 움직인다든지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사라지는 일은 흔하게 일어나서 놀랍지 않다. 단지 그것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게 놀라운 일이다. 다들 그러려니 넘어간다. 우연으로 넘기고 다가올 필연에 기대는 것이다. 우리의 간절함이 이상한 사건을 불러온다. 평범한 하루를 살다가 이름을 잊어버리는 사람은 과거를 바라보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 해변에서 죽은 아들이 외다리로 서 있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라도 계속 살아가야 한다. 무섭고 두려운 일이 아니었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 그렇게 찾아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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