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 보이스 문지 푸른 문학
황선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이를 먹어도 먹지 않아도 사람 사귀는 일은 어렵다. 학교 다닐 때는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아 만남이 쉽다고는 하나 그럼에도 어렵고 막막했다. 새 학기가 되는 첫날 긴장 상태로 들어갔다. 빨리 파악해야 한다.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어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기존에 친한 아이들이 모인다. 중심을 파고 들어가는 것은 어려웠다. 전학이라도 다니면 한동안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지내야 했다. 누군가 와서 말을 걸어주는 일은 흔치 않았다. 적응하기. 학교 다닐 때의 기억은 애틋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황선미의 소설 『틈새 보이스』는 학교가 아니어도 친구를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학교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인기 있는 그룹에 끼지 않아도 친구를 만나고 사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열일곱 아이들의 방황과 꿈을 향한 용기를 경쾌하게 그려 나간다. 성은 김이고 이름은 무인 '나'가 만난 아이들의 시간을 그리며 절망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다독인다. 무는 엄마와 살아가는 소년이다. 어느 날 엄마가 텔레비전에 나온 의사를 보고 괴로워한다. 무는 직감적으로 그가 자신의 아버지일 수도 있음을 알아차린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병원 근처의 분식집에서 기다린다. 제일 분식이라는 버젓한 이름이 있지만 건물과 건물 사이의 비좁은 틈새에 겨우 자리 잡고 있어 무는 그곳을 틈새라고 부른다. 밖을 잘 보기 위해서 앉은 원탁에서 도진, 윤, 기하, 해리와 만난다. 아버지라고 추측되는 남자에게 접근하려고 화실 비용을 엄마 몰래 피트니스센터에 냈다. 무는 자신을 세상에 내보내고 모른척한 그 남자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무는 어두운 과거를 마주 보고 몸과 마음에 난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무를 응원하며 소설을 읽어 나갔다.

단문과 명사형으로 반복되는 문장으로 쓰인 소설은 읽는 재미가 있다. 무의 일상에 찾아온 모험을 따라가면서 부디 틈새에서 만난 친구들이 각자의 꿈을 간직하며 살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도 누군가와 마음을 터놓는 것은 힘들다고 인생의 스포일러를 남발하고 싶지만 현재를 충실하게 사는 것 또한 가치가 있는 일임을 알기에 힘내라고 외친다. 소설을 읽는 이유 중 하나는 인물들의 감정을 따라가며 나의 오늘을 안심하기 위함이다. 우리 모두 힘들게 어제를 지나왔다. 투렛 증후군을 앓는 윤과 유학 생활에 실패한 도진, 비밀스러운 일에 몸담고 있는 기하, 극복하기 힘든 유년을 보낸 해리. 자신이라는 존재의 근원을 찾기 시작한 무.

그들에게 보내는 작가 황선미의 온기가 『틈새 보이스』에 가득하다. 번듯한 어느 건물이 아니었다. 좁은 틈새에서 만난 친구들은 모두 아름다운 내일이라는 자격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스팔트의 작은 틈으로도 고개를 내미는 민들레의 강인한 생명력은 우리에게 봄의 시간을 선사했다. 틈새에서 만나 싸우고 화해하고 격려한다.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희망을 품어 보는 것이다. 규율과 원칙, 타인의 시선을 강요하는 교실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는 친구들을 만나러 가보자. 일단 들이받고 깨져보는 것이다. 『틈새 보이스』는 친구가 없어서 외롭고 우울하다고 느껴지는 너에게 바치는 소설이다. 친구는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지 않은 우리가 있을 뿐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