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 합평할 때의 일이었다. 어떤 선배가 써 간 소설을 읽고 소설가 선생께서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하루키는 하루키 스타일이 있는 거니까. 그걸 따라 하는 게 무의미해. 하루키가 아니면 쓸 수 없다니까. 그 선배는 하루키를 좋아해 하루키만 읽었고 생활 스타일도 그대로 따라 했다. 술자리 같은데 가면 남들은 먹지 못하는 비싼 맥주를 시켰다. 부엌 천장에 하루키 소설을 꽂아 두고 읽었다. 전부 기억은 안 나는데 그 소설에는 하루키 아류의 문장들이 가득했다. 온갖 상표를 나열했고 여자와 맥주가 나오는 장면이 나왔다. 분위기조차 흉내 내지 못한 그 소설은 수업 시간 내내 까였다.

그런가. 소설의 스타일을 흉내 낼 정도로 그가 그렇게 좋은가. 누구라도 읽을 수 있는 간결하고 경쾌한 문체로 소설을 써서 좋다는 느낌만 있었다. 읽는 건 쉬운데 읽고 나서가 문제인 것이다, 하루키 소설은. 하루키 월드에 입성한 독자들은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것처럼 소설의 상징과 비유를 해석한다. 하루키에 열광하고 환호한다. 심지어 한때 한국에는 하루키 스타일의 분위기를 묘하게 베낀 소설들이 출몰했다가 사라졌었다. 읽을 때 기분 좋으면 그만인 것이다. 소설은. 과잉으로 해석할 필요도 추종할 이유도 없다.

에세이만은 다르게 읽는다. 소설을 가볍게 읽고 의미를 찾아내는 것에 무의미를 느낀다면 에세이는 다르다. 국내에 번역된 하루키의 에세이는 거의 구해서 읽었다. 절판된 책도 몇 권 있어서 중고책으로 읽기도 했다. 소설과는 다르게(소설과는 다르지. 물론.) 에세이에서는 생활인 하루키의 모습을 마음껏 만날 수 있었다. 고양이를 기르고 음반을 모으고 달리기를 꾸준히 하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한가한 동네 아저씨 같은 생활을 볼 수 있다. 열성으로 가르치고 깨우침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일찍 일어나서 책을 읽고 원고를 쓰고 식사를 해 먹는다. 신문을 구독해 읽지는 않고 신문이 있으면 읽기는 한다. 오페라를 좋아하고 염소자리와 천칭자리 별자리를 가진 부부 생활의 비애를 들려준다.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은 다소 늦게 도착한 에세이다. 1983년부터 1988까지 쓰인 에세이를 모은 책으로 젊은 시절의 하루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오래전 이야기라고 해서 고리타분하고 식상하다고 여기면 안된다. 그점에서 하루키 팬들이라면 좋아할 책이다. 여자 쌍둥이와 파티에 참석하고 싶다는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을 이야기한다. 헛된 망상이니까 공상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니 쌍둥이와 데이트할 때 좋은 점과 안타까운 점을 들려준다.

세상에는 갖가지 사람이 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좋은 점도 있거니와 나쁜 점도 있다. 잘하는 것도 있거니와 못하는 것도 있다. 여자를 꼬드기는 데 유능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요일에 집안일을 척척해내는 사람도 있다. 외판이 특기인 사람도 있거니와 묵묵히 소설 쓰는 일에 적합한 사람도 있다. 우리는 나 아닌 다른 인간이 될 수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中에서)

외국인에게 길을 가르쳐 주기 위해 영어 공부하는 일에 불필요를 이야기하면서 들려주는 저 말에 나는 감동했다. 본인은 번역을 하는 일을 하는데도 영어 회화를 능숙하게 잘하지 못한다고 밝힌다. 일본어로 말하는 것도 힘든데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라고 하는 겸손에서 용기를 얻는 것이다. 목적 없이 영어를 공부하려고 했었다. 나중에 도움이 될까 봐 혹은 현대인으로서 영어는 필수라는 광고성 발언에 현혹되었거나 해서 영어 책을 사서 앞장만 들쳐 보고 던지기를 반복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있고 말은 통하는데 묘하게 마음이 맞지 않는 외국에서의 경험을 들려주며 나다운 나를 강조하는 담백함이라니. 주말에 읽는 하루키의 에세이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은 위로가 되어 편안한 낮잠에 빠지게 한다. 80년대 중반에 쓰인 에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모던하고 엘레강스하고 스무스하고 나이브하다. 더 쓰고 싶은데 한계다. 일본과 외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살았던 경험으로 일본에서 벌어지는 우스꽝스러운 일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들려준다. 시간을 건너와 2019년에 읽어도 어색하지 않는 나이스한 하루키를 만날 수 있다.(그나저나 영어 회화도 못하면서 기초 중학 영단어로 가득한 문장을 남발하고 있네요.)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하루키의 표현대로 일요일에 집안일을 척척, 까지는 아니고 그런대로 해 내는 사람이다. 옷장 정리를 하고 싱크대를 닦고 책을 읽는다. 로렌스 블록의 번역되지 않은 책을 읽으려고 영어 공부를 하려고 했지만 번역된 다른 작가의 책도 재미있는 게 많잖아 하면서 스티븐 킹의 책을 읽는 사람이다. 처음에는 나약한 나 자신이 못나 보여서 괴로웠는데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의 이야기 대로 이것도 나의 모습이라는 생각으로 주말 오후에 집안일을 마치고 충실하게 번역된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는 기쁨을 만끽한다. 제목 때문일까. 읽다가 낮잠을 때려 자고 다시 일어나 나머지를 읽었다.

하루키 선생님, 고마워요. 영어 공부해서 원서 읽겠다는 욕심을 깨끗이 날려줘서. 한국의 번역가들이 세계 최고임을 다시 환기시켜줘서. 그분들의 노고에 힘입어 저는 편하게 독서를 할 수 있어요. 아직까지 한국어로 쓰고 읽는 데는 문제가 없거든요. 최근에 『문예춘추』에 기고한 글 「고양이를 버리다-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내가 말하는 이야기」도 조만간 한국어로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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