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 퍼치의 여자들
유즈키 아사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부모, 친구, 애인, 친척 등 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혼자일 수 없는 사회에서 혼자라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외롭고 불안해지지 않기 위해 관계를 맺는다. 유즈키 아사코의 장편 소설 『나일 퍼치의 여자들』은 관계 맺기에 관한 작품이다. 유즈키 아사코는 탁월한 솜씨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미묘한 감정을 건드린다. 누구나 쓸 수 있는 소설 같지만 세심한 관찰력과 통찰력이 없으면 시도하지 못하는 주제를 다룬다. 


여자들의 관계. 굳이 성별을 나누고 싶지 않지만 『나일 퍼치의 여자들』은 여자들이 겪는 관계의 불안을 밀도 있게 다룬다. 명문 대학을 나와 대기업 상사에 정규직으로 다니는 시무라 에리코. 객관적으로 봤을 때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조건을 갖춘 여성이다. 회사에서는 비중 있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런 그녀는 '넙치의 불량 마나님 일기'라는 블로그의 팬이다. 다른 주부 블로거와는 다르게 넙치는 유연한 생활의 리듬을 담백하게 글로 보여주고 있다. 회사에 일찍 출근해 넙치의 블로그를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넙치가 올리는 글을 보면서 그녀가 자신과 같은 동네에 사는 것을 알았다. 슈퍼마켓 점장으로 일하는 남편을 둔 넙치의 실제 이름은 마루오 쇼코. 카페에서 블로그의 글을 서적화하자는 제안을 받는다. 에리코는 우연히 그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넙치에게 다가가 말을 건넨다. 블로그의 팬이라고 말하면서 에리코는 쇼코와 대화를 시작한다. 만남이 이루어지고 그녀들은 묘한 관계로 빠져든다. 누구나 선망의 대상인 직장에서 일하고 미모도 아름다운 시무라 에리코에게도 걱정은 있다. 


바로 여자 친구가 없다는 것이다. 어쩐 일인지 학창 시절부터 친구가 생기지 않았다. 동네에 같이 사는 게이코와 잠시 친해졌지만 에리코의 집착으로 멀어졌다. 집착. 에리코는 관계를 유지하는 힘을 집착으로 이어가고 있다. 혼자서만 그 아이를 차지해야 한다! 다른 친구와의 관계는 이해할 수 없다는 에리코의 생각은 게이코를 지치게 만들었다. 소설은 여자들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한다. 그녀들은 서먹해지지 않기 위해 취향을 숨기고 대화에 끼기 위해 험담에 동조한다. 여자 모임을 만들어 여행을 가고 맛 집에 찾아간다. 완벽한 인간관계를 가진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상대에게 싫다고 말하기를 주저한다. 


에리코와 쇼코는 진정한 우정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나일 퍼치는 외래종으로 식성이 대단해 토종 물고기를 모두 잡아먹는 어류이다. 식량으로 쓰기 위해 들여왔지만 이내 버림받고 만다. 생태계를 파괴했다는 이유로 말이다. 조화와 평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수중에서 혼자만 살아가는 나일 퍼치. 우리는 나일 퍼치가 되어 외롭게 물속을 떠돌아다니는 사람들로 살아간다. 혼자서는 살 수 없지만 혼자라도 살아가야 한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게 유유히 세계 안을 돌아다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유즈키 아사코는 에리코와 쇼코의 이야기를 번갈아 보여주면서 관계의 이중성을 파헤친다. 


『나일 퍼치의 여자들』을 읽다 보면서 내가 관계에서 느꼈던 불안의 정체를 만날 수 있었다. 표현할 수 없는 불안이었다. 성격이 이상해서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주저하면서 살아왔다. 소설을 읽으며 안심할 수 있었다. 세계와 관계에 대해서. 너만 슬프고 고독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소설, 『나일 퍼치의 여자들』. 뾰족한 감정을 숨기는 것보다 드러내놓고 이해를 원할 때 우리는 친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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