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손보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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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지만 그 책은 없었다. 부지런한 누군가가 나보다 한발 앞서 빌려 간 것이다. 어제까지는 있었는데 오늘은 없는 책, 은 잊어버리고 시내에 새로 생긴 카페에 갔다. 북적북적한 그곳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좀 더 널찍한 자리가 나기를 기다려 옮겼다. 손보미의 소설집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을 들고 갔지만 읽지는 않았다. 커피를 옆에 놓아두고 책 사진만을 찍었다.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탁자 위에는 커피 얼룩이 있었다. 책의 제목대로 우아하게 찍을 순 없었을까. 우아함과는 거리를 둔 채 우아해지기를 바라며 제목에 우아함이 들어간 책을 읽는 것으로 만족하는 하루를 보냈다.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에 실린 소설은 대부분 화자가 잠이 드는 것으로 끝난다. 아버지의 밤 산책을 못마땅해하는 「산책」의 그녀. 「임시교사」로 한평생을 살아온 P 부인. 가볍게 한 이야기였는데 현실로 찾아와버린 「상자 사나이」를 만나는 나. 그들은 실재가 아닌 환상 속을 거니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손보미는 그들에게 잠을 선사한다. 잠이란 무엇인가. 하루를 힘겹게 견디고 버틴 이들에게 주는 천사의 선물이다. 악인도 선인도 하루를 끝내기 위해서는 잠이 들어야 한다. 잠이 들면 꿈을 꾸든지 다시 깨어 끝없이 눈물을 흘리든지 각자의 몫이지만 일단 자야 한다. 그래야 내일을 맞이할 수 있다. 


  소설집에 실린 열 편의 소설의 공통점은 오늘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안심을 하는 화자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화자의 목소리는 손보미의 마음이다. 소설가 손보미는 각기 다른 화자의 목소리로 등장해 불안에 떠는 우리를 향해 괜찮아, 당신들의 하루는 무사할 거야라고 말한다. 도시의 중심에 있는 호텔이 불에 타도(「대관람차」) 이혼 후 혼자 살고 있는 아버지가 거짓인지 실제인지 모를 이야기를 하게 놔두어도(「산책」) 마치 자고 나면 잠만 자면 내일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소설을 마무리 한다. 헤어진 연인의 집에 가서 무단 침입해 들어온 고양이를 마주하고 나서야 자신이 고양이를 무척이나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이야기 「무단 침입한 고양이들」 같은 짧은 소설에서도 어차피 오늘도 내일도 당신들의 삶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무심하게 말한다.


  어떤 하루의 꿈속은 「죽은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일생에 한 번만 만날 수 있다는 「상자 사나이」를 만나기도 한다. 잠들기 위해 눈을 감는 건, 생각보다는 언제나 쉬운 일이었다. 「임시교사」의 마지막 문장처럼 하루 중에서 가장 쉬운 일은 잠이 드는 것이다. 어느 날부터 눈물이 줄줄 흘러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시간에서도(「고양이의 보은-눈물의 씨앗」) 잠이 들면 눈물은 흐르지 않는다. 고통이 존재한다면 우리 안에 불안이 자라고 있다면 그저 잠들어 버리는 것이 어떤가라고 말하는 손보미의 소설집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을 읽다가 나 역시 잠이 들었다. 


  열 편의 소설을 읽는 내내 나의 오늘은 얼마나 무사한가, 실감할 수 있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생의 한 지점에서 만나는 굴절로 인해 좌절하고 꿈이 꺾이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울음을 터뜨린다. 그런 인물들의 시간에 비해 나는 기껏 빌리러 간 책이 없거나 비좁은 탁자를 차려 놓고 장사를 하겠다는 카페에서 꾸역꾸역 커피를 마신 것 밖에는 없었다. 불탄 건물을 보지 않아도 되고 햇빛에 눈이 부셔 눈물이 흐르면 휴지를 꺼내 닦으면 그만인 것이다. 다른 세계에서 나 대신 하루 종일 눈물을 흘리고 있을 또 다른 나에게 안부 인사를 전해본다. 고마워, 매일 울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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