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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크백 마운틴
애니 프루 지음, 조동섭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로버트 알트만의 <숏컷>이 개봉했을 때, 개봉과 발맞추어 당연스레 레이먼드 카버 단편선집이 출간되었다. 영화 <숏컷>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들을 적적히 배치해, 여러 인물들의 삶이 도처에서 어떤 나비효과를 부르는가를 목도할 수 있었던 유쾌하면서 씁쓸한...
원작의 명성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 명감독의 연출과 스타캐스팅으로도, B급 영화 속에나 보여지는 아기자기한 팀플레이 때문에 두고두고 회자 될 만한 영화로 남았다.
그러나 국내에서 재조명될 기회를 잡은(사실, 이런 경우 카버를 재조명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재조명 따윈, 이슈화 되지 않아도 오히려 자신의 영역에서 열심히 추구되던 작가 아닌가) 카버는 조금 요란한 옷을 입게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여러 번 자신의 수필집에서 언급한 것처럼(<슬픈 외국어>?) 하루키는 레이먼드 카버, 레이먼드 챈들러, 트루먼 카포티, 존 어빙, 커트 보네커트...등에 매혹되어 왔고, 또 몇몇은 자신이 직접 일본 내에 번역하기도 했다.
<숏컷> 즈음에 국내에 '다시' 출간된 <레이먼드 카버 단편선>은 띠지로 둘러싼 로버트 알트만과 무라카미 하루키로 화려하게 서가에 등장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작품론을 쓰고, 굳이 그것을 맨 앞 장에 배치해서 얻을 시류를 이용하려는 출판사의 저의가 이해되기는 했지만, 불쾌한 기억으로 두고두고 남았다. 오히려 대중적으로 읽히지 않기에 평단과 독자들에게 내 살 같은 느낌을 주며 진정으로 찬사를 받는 작품들도 있는 것이다.
애니 프루는 한국 내에서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뭐라 생각할까?
그리고 그 관심이 대다수의 독자들에 의해, "영화보다 별로였다"로 일갈되는 상황에서라면.
애니 프루의 진가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 출판사 측의 재빠른 출간에 찬사만을 보낼 수 없는 이유는 작품의 성향이 아닌, 독자가 시류에 편승해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잘못된 타이틀 선정,
아니 그 모든 것을 고려해, <브로크백 마운틴>을 타이틀로 달고 출판될 수 밖에 없었을 숙명에 있다고 해야 하나?
나처럼 애니 프루를 이 책으로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책을 읽는 내내 자신의 산만함을 재발견하게될 지도 모르겠다. <나니아 연대기>를 읽었을 때보다 더 오래 걸렸다. 장르의 차이에서가 아니라 분량에서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도저히 11편의 이야기를 한 번에 쓰윽 훑어내릴 수 없게 만드는 코너에 밀려 식은땀을 흘리게 되는 다신 겪고 싶지 않을... 그런 경험이었다.
순전히 개인적인 성향의 한 단면을 고백하자면, 나는 서부에는 별 매력을 못 느낀다.
몇 년 전까지, 해마다 그래미에서 가스 브룩스가 2~3개의 컨트리 부분을 석권하는 것을 볼 때마다 느끼던 싫증.
황량한 초원이며, 박차 달린 웨스턴 부츠며, 마초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카우보이며... 텍사스에서는 24시간 나온다는 컨트리송, 피를 머금은 초대형 레이어 스테이크까지... 난 죄다 비호감이었다!
애니 프루의 단편집은 집요할 정도로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인생의 피로한 단면, 파멸밖에는 남지 않은 거친 삶들을 속사포처럼 쏘아붙인다. 도망칠 수도 없는 나는... 정말 힘들었다.
와이오밍?
서부를 떠올릴 때 조차 낯선 주였다. 구구절절 이야기 하지 않아도 그 불모의 땅에서 거칠게 살아가는 악다구니들의 이야기는 참으로 생경한 경험의 장이 되었다. 애니 프루는 삶을 포장할 줄 모른다. 아니, 오히려 가장 최악의 것을 더 악화시켜 사실이기에 더 선정적인 기사거리 삼아 독자에게 던져주고 있다. 문장에 마음껏 메스를 들이대고, 자신의 의도에 맞는 걸러진 단어들만을 가지고 짧은 이야기 안에 파괴적인 메시지를 담을 줄 아는 작가라는 찬사를 보낼 만 하다. 내가 싫은 것은 카우보이적인 마초성이지 애니 프루가 아니다. 그리고 애니 프루가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 바로 자신이 가장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라는 애초에 맞지 않는 조합일 뿐이었지만, 진정으로... 이 단편선은 멋진 작품이었다. 도망치지 않고 그 생들을 전부 목도한 내가 조금은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해낸 듯 뿌듯했다.
와이오밍에서는 그 삶의 방식 말고는 다른 어떤 시도조차 생각할 수 없기에 목장의 삶이 영속화된다. 겨우내 죽어나간 가 살아남은 가축의 수를 냉정하게 파악하기 무섭게, 봄이라는 계절에 만나게 되는 우박, 강풍,뒤 늦은 폭설, 올해 첫 토네이도 때문에 좀처럼 활기를 느껴볼 수가 없다. 그런데도 암소는 교미를 하고, 새끼를 낳고, 소 값은 바닥을 친다. 세금 때문에 목장을 빼앗기기 전까지 밑도 끝도 없이 그 시지프스적인 노동에 매달려야 한다.
그 와중에 동물의 생식에만 자연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 아버지의 여자를 훔쳐 달아났다가 평생을 고향을 등지고 살아온 남자가 귀향길에 길을 잃는 아이러니, 로데오에 뼈를 바친 카우보이가 끝을 향해 갈 수 밖에 없는 이야기, 9명의 아들을 줄줄이 낳다가 힘이 빠져 죽어버린 아내, 가장 친한 친구와 바람이 나 나를 내치고 도망친 아내를 비틀리게 원망하는 남자, 목장 소유주면서 소 사육에 반대하는 무리에 동조해서 이웃의 울타리 철조망을 몰래 끊다가 비명횡사하는 남자, 100살이 육박하는 언제 죽어도 늦은 게 아닌가 싶은 노인네가 아들이 죽고나자 "모든 건 지구력의 문제지"하며 미소짓는 가족사... 그리고 더는 이야기하지 않아도 차고 넘치는 '브로크백 마운틴'까지...
절대 쉽게 읽혀지지 않는 풀포기조차 오롯이 자라지 않는 그 척박한 땅은 휴머니즘이 끼어들 사치를 애초에 허락하지 않는 탓에, 살아내는 그 무리들의 어떠한 죄악조차 '모든 건 본인의 문제'로 귀결된다.
<브로크백 마운틴>이라는 예고된 타이틀 말고, <<애니 프루 단편선집>>, 또는 <<벌거숭이 소>>, <<진창>> 정도를 내세웠다면 안팎으로 좋은 느낌으로 남을 수 있었을 텐데, 두고두고 괘씸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가장 마지막 장에(기다리다 지쳐, 읽어내는 과정에서 책 한번 던져놓았다가 불쑥 뒷장부터 펼치고 마는 독자들이여, 그나마 '브로크백 마운틴'부터 읽어버렸다면, 정말... 힘드셨겠군요!!!) 붙어있는 '브로크백 마운틴' 또한 영화와는 전혀 다른 포스로, 누추함과 비릿함과 궁색함으로 무장하고 있는 탓에, 영화의 연장선상으로 책을 선택했다면, 쓰라린 경험이 되어 줄 것이다. 오히려 솔직하게 영화의 후광을 원한다면 <브로크백 마운틴 스크린플레이>정도면 딱 일 것이다.
애니 프루를 이렇게라도 만날 수 있게 해주었던 영화의 명성에 잠시 감사하며,
카우보이에 대한 온갖 편견과 무관심이 뒤흔들리는 경험에 잠시 휘청거리며,
미디어 2.0이라는 출판사가 제대로 내세웠지만, 작품에 대한 바른 평에는 조금도 기여하지 않는 타이틀에는 오래 분노하면서...
내 나름의 타이틀을 붙힌다.
<<애니 프루 단편선 : 와이오밍 카우보이 크로니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