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디아의 비밀 일공일삼 1
E. L. 코닉스버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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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디아 킨케이드는 4남매의 장녀로 유난히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새침한 아이다. 부모님의 부당한 대우에 견디다 못해-동생 돌보기, 집안일 하기 등등- 세상에서 가장 치밀하고 체계적이며 학구적이기까지 한 가출을 감행한다. 그냥 훌쩍 떠나 온갖 궁색함에 면목 없어지는 가출이 아니라, 최대한 문명의 이기를 누리면서 우아하게 지내다가, 남겨진 가족들 사이에서 자신의 가치가 만족스럽게 재확립되면 우아하게 귀가할 예정인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가출자금의 확보는 필수이다!

클로디아의 둘째 남동생 제이미에게 가출이란, 귀찮게 씻지 않아도 그만이고, 마음껏 지저분해지는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그러나 굳이 가출할 이유를 찾을 필요도 없을 만큼 만족스런 날들을 보내고 있는 와중에, 그만 클로디아의 가출프로젝트의 레이더망에 적정인물로 오르는 영광을 얻는다. 여러모로 자신의 가출관(?)에 반하는 누나에게 자금줄로 지목당해 덜컥 가출소년이 되어버리다니, 세상일이란 원래 그렇게 만만치 않은 법이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처럼 연일 사람들로 북적대고, 지루할 틈 없으며, 도회지의 심장부라는 허영심까지 충족시킬 수 있는 가출장소를 또 어디서 찾을까. 르네상스관의 우아한 사주식 침대에서 잠을 잘 수 있는 소녀의 로망(비록 딱딱한 커버 때문에 등이 베기고, 수백 년 묵은 곰팡내가 진동하는 약간의 불편을 감수해야하지만)과 양치하지 않고서도 잔소리 없이 자도 좋은 소년의 로망이 충족되기도 하는 짜릿함은? 일과를 정해 견학을 하고, 한정된 가출비용으로 자판기 식사를 하면서, 가출 중에도 공부를 하고, 자금줄 제이미의 수전노철학도 깊어져가고... 거기다 분수에서 목욕을 하면 부자가 되는 생활의 발견은 또 어떤가. 여기다 미술관의 미스터리까지 더해져 남매의 미술관 가출기는 날로 버라이어티 해져간다!

 

미술관 최대의 화제로 떠오른 프랭크와일러 부인이 225달러에 판 미켈란젤로의 천사상 조각을 보고, 클로디아는 그것이 진짜 미켈란젤로의 작품인지 알아내고 싶어 한다. 도서관에 가고, 직원들의 말을 엿듣고, 르네상스 실을 견학하고... 그러다 프랭크와일러 부인을 만나러 가기까지, 이렇게 학술적인 가출을 또 어디서 보겠는가.

 

클로디아와 제이미와 천사상의 원래 소유주인 프랭크와일러부인을 만나는 것은 <클로디아의 비밀>의 최대 반전이다. 진위논란을 부추기기 위해 단돈 225달러에 천사상을 팔아버리고,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비밀을 단단히 틀어쥐고 있는 괴짜 미망인인 프랭크와일러부인과 클로디아의 자존심을 건 거래장면에서 두 사람이 동류의 인간형임을 짐작할 수 있다. 젠체하고, 우아한 사치를 즐기고, 무료한 일상에 뭔가 특별한 탈출구를 갈망하는 스테레오에 묶이고 싶어 하지 않는 자신을 특별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허영심까지. 거기다 도박과 속임수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해득실 면에서까지 제이미를 압도해버리는 이 부인은 지금까지 알아온 어떠한 어른과도 닮지 않았으면서도 가장 잘 통한다. 아이들이 가출 중에 만난, 아니 평생토록 만나게 될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독보적으로 비밀스러운 사람이다. 프랭크와일러부인의 복잡한 서류파일(원제:From the Mixed-up Files of Mrs. Basil E. Frankweiler)은 평생에 걸쳐 부인이 추구해온, 인생의 무료함에 대항하여 몰개성의 평범함에 질식하지 않을 수 있는 자기선언이다. 클로디아와 제이미를 부인에게 이끌어주고,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주는 가장 중요한 코드인 미켈란젤로가 아이들에게 유산으로 전해지는 것은 얼마나 의미심장한가!

 

코닉스버그는 <클로디아의 비밀> 내내, 한 번도 교훈을 전하려하지 않는다. 가출을 통해 자신들의 어리석음에 죄를 뉘우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인생을 주시하고, 성공과 실패와 여운을 겪으며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단 한 뼘의 성장통을 통해 제자리를 찾아가는 아이들을 한없이 믿어준다. 한바탕 난리를 겪고 돌아온 집에는 반쯤 넋이 나가버린 부모님이 계시지만 과연 아이들의 바람대로 가출 전의 부당한 일들은 전부다 사그러들까? 아니, 그런 불평불만으로 인생을 낭비하는 것보다, 더 흥미로운 일들로 인생을 가꾸는 비결을 찾아내는 몫을 아이들에게 맡기고 있지는 않은지.

 

미술작품과 미스테리와 사춘기의 아이들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에 능한 우리 시대의 작가, 코닉스버그의 <클로디아의 비밀>은, 킨케이드 남매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가출생활에서 맞닥트린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코드’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발견하는, 인생과 비밀의 멋드러진 상관관계를 얄밉도록 촘촘한 이야기 망 속에서 절대 뇌리에서 떨쳐지지 않을 만큼 탄탄하게 펼쳐내고 있다. 프랭크와일러부인과 클로디아 할아버지와의 은밀한 관계(?)를 떠올리면서 ('정말 못당하겠군!') 두 손을 들고 유쾌하고 기꺼이 항복하고 싶은 마음이다!   

 

 

"할머니는 돈 때문에 판 게 아니야. 정말로 큰돈을 원했다면 증거물을 보여주었을 거야. 할머니는 재미로 판 거야. 짜릿한 재미 때문에"(200p)

 

“일단 비밀이 생기면, 내가 비밀이 있는 줄 아무도 모르는 것이 재미없기 때문이야. 남들이 그 비밀이 뭔지 아는 것은 싫지만 내가 비밀을 갖고 있다는 것만은 알아야 돼.”(20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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