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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지 이야기 - 전10권
무라사키 시키부 지음, 김난주 옮김, 김유천 감수 / 한길사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헤이안 시대를 대표하는 일본이 경외해 마지않는 두 명의 절대적인 인물들이 있다. [겐지이야기]의 주인공, 히카루 겐지와 여러 야사와 모노가타리에서 신화보다 더 많은 찬미자를 거느리는 음양사, 아베노 세이메이가 그들이다.
겐지와는 달리 실존인물이기도 한 음양사 아베노 세이메이는 진의를 알 수 없는 많은 전설적인 에피소드 속에서 불멸의 명성를 이어가면서 엄청난 미디어 믹스로 재탄생되고, 재해석되면서 현대인들에게 점차 친숙하게 다가오고 있다. 아베노 세이메이를 이렇게 대중적으로 고착시키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은 작가인 유메마쿠라 바쿠일 것이다. 유메마쿠라 바쿠의 [음양사]를 원작으로 하는 2001년의 NHK판 드라마에서는 SMAP의 이나카키 고로가, 1, 2편으로 제작된 CG가 총동원된 블록버스터 영화(특촬물 같은 느낌이 없는 것도 아닌) [음양사]에서는 일본 전통극 노의 배우인 노무라 만사이가 아베노 세이메이를 연기하면서 지지층을 더욱 확고히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운 아베노 세이메이는 유메마쿠라 바쿠의 원작을 바탕으로 코믹스화한 오카노 레이코 버전이다. 오카노 레이코의 펜 끝에서 탄생한 아베노 세이메이는 말갛게 비칠 듯한 투명하면서도 색기가 넘치는 미려한 이미지로 극대화된다. 지금은 TV 애니메이션판 세이메이의 손자가 주인공인 [소년음양사]까지 방영되고 있는데, 아베노 세이메이는 헤이안 시대에서부터 현대인에게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추종자를 양산해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어둡고 음습하면서도 귀족적인 헤이안 시대를 우아하고 정력적으로 살아간 허구임에도 한없는 근원성을 획득한 또 하나의 인물, 히카루 겐지를 만나보기로 하자.
겐지와는 달리 실존인물이기도 한 음양사 아베노 세이메이는 진의를 알 수 없는 많은 전설적인 에피소드 속에서 불멸의 명성를 이어가면서 엄청난 미디어 믹스로 재탄생되고, 재해석되면서 현대인들에게 점차 친숙하게 다가오고 있다. 아베노 세이메이를 이렇게 대중적으로 고착시키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은 작가인 유메마쿠라 바쿠일 것이다. 유메마쿠라 바쿠의 [음양사]를 원작으로 하는 2001년의 NHK판 드라마에서는 SMAP의 이나카키 고로가, 1, 2편으로 제작된 CG가 총동원된 블록버스터 영화(특촬물 같은 느낌이 없는 것도 아닌, 복고풍의)에서는 [음양사]에서는 일본 전통극 노의 배우인 노무라 만사이가 아베노 세이메이를 연기하면서 지지층을 더욱 확고히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운 아베노 세이메이는 유메마쿠라 바쿠의 원작을 바탕으로 코믹스화한 오카노 레이코 버전이다. 오카노 레이코의 펜 끝에서 탄생한 아베노 세이메이는 말갛게 비칠 듯한 투명하면서도 색기가 넘치는 미려한 이미지로 극대화된다. 지금은 TV 애니메이션판 세이메이의 손자가 주인공인 [소년음양사]까지 방영되고 있는데, 아베노 세이메이는 헤이안 시대에서부터 현대인에게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추종자를 양산해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어둡고 음습하면서도 귀족적인 헤이안 시대를 우아하고 정력적으로 살아간 허구임에도 한없는 근원성을 획득한 또 하나의 인물, 히카루 겐지를 만나보기로 하자.
헤이안 시대는 교토를 중심으로 천황과 후지와라 가문으로 대표되는 우아한 귀족문화가 꽃피우던 시기였다. 불교가 뿌리 깊게 자리했지만, 일본 고유의 신도도 숭상 받았으며, 모노가타리와 와카집의 편찬도 융성했던 문학적으로도 많은 성과가 있었던 중흥기였다. 11세기 초에 탄생된 [겐지이야기]의 저자는 쇼시 중궁을 모시던 문학적인 재기가 넘치는 궁녀, 무라사키 시키부이다. 헤이안 시대의 여자들은 이름을 가질 수 있는 극소수의 상류층을 제외하고서 대부분은 아버지의 관직에 따라 불리운 것 같은데, 무라사키 시키부는 [겐지이야기]의 주인공에서 따온 것이라니, 헤이안시대의 이름도 없는 여류궁정문인의 역작이 이토록 귀중하게 읽히고 있는 것에서, 그 시대의 미약한 여성의 사회적 입지에 반하는 더욱 빛나는 성과가 아닐까싶다. 세계최초의 장편소설이라는 위상에 연연할 것은 없지만, [겐지이야기]는 일본문학의 긍지가 아닌, 필수적인 세계문학으로 인정해야만 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기존의 [겐지이야기]는 방대하면서, 난해하기까지 해서 나 같은 초보 ‘겐지 입문자’에게는 너무나 벅찬 도전이었다.
한길사에서 세토우치 자쿠초가 무라사키 시키부의 원작을 현대일본어판으로 옮긴 텍스트를 번역해내기 전까지, 나남출판사의 전 3권으로 된 [겐지이야기]에 좌절감과 아쉬움을 느끼던 독자들은 만만치 않은 수였을 듯싶다. 대다수는 주인공들의 이름을 한자독음으로만 읽고 있는 이해불능의 번역투에 반감을 가지면서 오히려 [겐지이야기]에 대한 높은 벽을 공고히 하면서 수차례의 시도에도 절대 정복할 수 없던 껄끄러움으로 기억하고 있지 않았을까 예상해본다. 일본에서 세토우치 자쿠초의 순화된 각색판이 [겐지이야기]를 더 대중화되어 읽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는데, 한길사판의 [겐지이야기]는 극존경어와 관직명, 궁중용어, 쉴 새 없이 주고받는 와카들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되어 있었다. (‘세토우치 자쿠초’라는 이름이 낯이 익다 싶어 기억을 더듬어 보니, 홍백전에 심사위원으로 나온 것이 떠올랐다. 불가에 귀의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도 연말의 거대버라이어티에 출연하실 정도면... 헤이안 시대의 ‘출가’의 모습과도 그리 다르지 않아보였다. 세속과 완전히 격리되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속세에 머물며 신을 구하는...)
그간의 역주가 필요했던 번역물들의 대부분은 행간의 사이사이에 역주를 집어넣거나, 한 챕터 뒤에 역주를 모아두어 그때그때마다 찾아 읽도록 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때마다 역주의 해석에 연연해야하는 상황 속에서 받았던 책 읽는 흐름에 대한 방해 또한 상당했다. 한길사판의 [겐지이야기]가 수월하게 읽혔던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역주가 필요한 모든 부분을 아예 뒷장으로 분류해놓고, 인용되어있는 와카나 문학작품들의 해석도 굳이 찾아 읽지 않고 별개의 흐름으로 읽어도 무방하도록 배치한 것이 좋았다. 연표나 인물관계도, 세토우치 자쿠조의 해설판, 역주, 인용문들이 모두 사이사이가 아닌 뒷장에 배치되어 있어서, 소설로써의 [겐지]를 읽고, 헤이안시대의 풍속자료로써 역주와 해설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읽다보면 어느새 겐지의 복잡한 여성편력도와 복잡한 관직명의 상하관계에도 익숙해지는 것은 신기한 경험이었다.)
읽다보면 겐지의 행각에 대한 염증에 자신의 건실한 도덕성을 재차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극중 화자인 무라사키 시키부가 푸념처럼 말하는 겐지에의 체념적인 말들도 재치 있게 느껴진다. 헤이안시대의 남녀관계는 욕망을 감추기보다는 추구하는 것이 지탄받는 일이 아니었으며, 편지로 맺어지는 연분이 많은 탓에, 와카를 읊고, 한시를 짓고, 멋진 필체를 가지지 못하면 정사를 이어갈 수 없을 만큼, 풍류와 독특한 미의식이 발달했다. 원 나잇 스탠드 같은 관계도 많았지만, 동침한 후 편지를 주고받으며 부부의 연을 이어갔으며, 여자의 집에서는 사위의 모든 것을 돌봐주어야 하는 등, 정략결혼으로 맺은 인척관계를 이용한 출세가 너무도 당연했다.
천황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태어나 친왕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신하로 격하되는 황자였지만, ‘미나모토(原)’라는 성을 하사받고 ‘겐지(原氏)’라고 불리게 된 이 인물은 비할 데 없이 뛰어난 용모로 모든 이들의 추앙을 받는다. 무수한 여인들과 기념비적인 애정행각을 벌이고, 천황이 될 수 없었던 일개의 황족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지나치게 누리고 살다간다. 어머니를 닮은 선황의 후궁인 후지쓰보(자신의 새어머니격인)를 흠모해 인륜을 거스르는 불륜으로 훗날의 레이제이제(자신의 배다른 동생이 아니라 아들)를 낳고 최고의 권력자로 부상한다거나, 열 살을 넘긴 지 얼마 안 되는 후지쓰보의 조카인 무라사키 부인을 데려와 자신의 취향대로 양육한 뒤 부인으로 삼는다던가, 가정이 있는 여인을 유혹하고, 양녀로 삼으려는 딸에게 연정을 강요한다던가... 끝도 없는 애정행각에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걸 보면, 겐지를 읽는 것과 그 추종자가 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 듯하다. ‘어머니와 그 딸과는 동시에 관계를 맺지 않는다’, ‘출가한 여자와는 정사하지 않는다’라는 겐지식 애정관에 어떻게 찬사를 보낼 수 있단 말인가! 육조원이라는 거대 할렘을 만들어 자신과 관계했던 여자들을 불러 모아 살게 하는 듣도 보도 못한 행각을 무라사키 시키부는 ‘한 번 관계한 여자는 잊지 않고 뒤를 보아주는 보기 드문 미덕’이라고 추켜세우곤 있지만, 참 한숨이 나오는 대목이었다.
11세기의 소설이면서도, 복선과 반전이 참신했으며, 인과응보, 권선징악적인 요소들이 구태스럽지 않고, 탄탄한 구성으로 다가올 만큼 흥미진진했다. 겐지의 평생의 악업이 고스란히 되풀이 되어 나타나는 배신행위를 보고 있노라면 무라사키 시키부가 그리고 있는 ‘겐지’라는 인물은 인간군상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닌, 자신이 추구했던 세속적인 욕망만큼 번뇌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주인공이었다. 아베노 세이메이가 계속되는 미디어 믹스로 재창출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겐지이야기]는 그 원형에는 손상을 가하지 않으면서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한 여러 노력들이 결실을 맺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겐지는 완전무결한 존재가 아니라, 고대, 중세,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이라면 벗어나기 힘든 욕망으로 번민하면서도 삶과 죽음 사이의 간극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허물이 많아 더 흡입력을 가진 존재이다. [겐지이야기]는 일본 문학이지만 세계문학의 한 뿌리 속에 당당히 존재하고 있는, 허구이지만 허상이 아닌 크나큰 존재가 아닐까 생각한다.
불도를 추구하면서도 토속적인 신도에 열중하고, 선진적인 문화를 꽃피우면서도 미신적인 음양도에 심취해있고, 멋스러운 애정관계를 추구하면서도 세속의 욕망에 죄악감을 느끼며 살아갔던 헤이안 시대의 귀족문화의 최절정의 모습을 [겐지이야기]라는 시대를 담고, 시대를 넘어선 대작을 통해서 생생히 느끼게 되었다.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소설의 순기능을 11세기에 이미 이토록 충실히 그려낼 수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고전이지만 고리타분하지 않도록, 새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번역이 [겐지이야기]에 대한 네임밸류에 눌려 방해받았던 그간의 자유로운 감상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고전일수록 현대적인 가치들과 대등하게, 때로는 더욱 도전적으로 다가올 수 있도록 새로운 옷을 입히는 작업에 쉼 없이 매진하는 문학적 성취가 2007년에는 더욱 더 많아졌으면 한다.
한길사의 [겐지이야기]는 헤이안 시대의 풍속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장정과 번역의 중차대함을 멋지게 살려낸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전집이었으나, 10권으로 지나치게 늘려 구성했다는 생각이 든다. 300페이지를 넘기는 포켓 사이즈의 크기를 고려했을 때, 다소 고가의 세트였으나 '겐지 입문자'를 비롯해, 기존의 '겐지'와 새 번역으로 단장한 '겐지'를 비교해보고 싶은 독자라면 만족스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