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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쟁이 쳇 ㅣ 한솔 마음씨앗 그림책 6
미야자와 겐지 원작, 엄혜숙 글, 가로쿠 공방 그림 / 한솔수북 / 200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미야자와 겐지의 단편선 가운데 하나인 <쥐돌이 쳇>이 빛그림책으로 나왔다. 일반적인 그림책과 달리 빛그림책은 삽화나 그림이 아닌 입체물을 사진으로 찍어 완성하는 것을 말한다. <쥐돌이 쳇> 또는 <쳇쥐>라고 알려졌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하여, 나무로 깎아 만든 동물들과 배경들을, 따뜻하고 생기 있는 조명으로 비추어 촬영하여 만들어낸 책이 바로 <떼쟁이 쳇>이다.
쳇은 낡은 천장에 사는 사회성 제로의 이기적이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린 쥐이다. 친절하게 별사탕을 떨어졌으니 주워가라는 족제비에게, 개미가 방해한 탓에 줍지 못한 것을 “물어내”라고 떼쓰는 것을 시작으로 가공할 만한 떼 부리기가 펼쳐진다. 쥐들이며, 족제비가 상대를 해주지 않자 사귀게 된 기둥, 쓰레받기, 양동이들은 하나같이 쳇에게 베풀어주는 착한 친구들이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드는 일에 생기면 “물어내, 물어내~~~~~”를 수백 번 외치는 쳇에게 질려버린다.
가로쿠 공방에서 1년 반 동안 깎고 칠하고 요리조리 구성하여 만들어낸 앙증맞은 쥐, 쳇을 비롯해, 쳇에게 시달리는 난감한 표정이 일품인 피해자군단(?) 친구들까지, 그냥 귀엽기만 한 것이 아니라 찡그린 눈썹, 입 꼬리가 처진 입매, 걱정스러운 눈동자...하나하나 세심하게 표현되지 않은 곳이 없다. 쳇의 가느다란 팔뚝은 늘 상 공중을 헤매고 있다. 아이들이 징징대며 떼를 쓸 때 휘휘 내젖는 손사래를 떠올리면 딱 들어맞는다. 쳇이, 쳇과 꼭 닮은 아이가, 발을 동동 구르며 팔을 휘휘 내저으면서 “물어내~ 물어내~~~~”를 이백오십 번 쯤 해대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뒤통수가 쭈삣거릴 정도로 오싹해진다.
찡그리고, 성내고, 싫증내고, 닦달하고, 성화부리고, 보채고, 징징대는 모습의 미운 네살 박이부터 일곱 살 아이들에게 읽어주면 어떤 표정을 지을 지 궁금해진다. “쳇은 정말 못됐어”라고 섣불리 말하지 못할 만큼 나와 꼭 닮은 모습의 주인공이 친구들을 괴롭히고, 상처주고, 떠나게 하는 모습들을 하하 호호 웃으면서 보면서도, 왠지 겸연쩍은 미소가 얼굴에 걸려있을 듯하다. 늘 누군가의 탓으로 자신의 실패며 실수를 보상받으려는 아이들 속의 잠재의식을 끄집어내어 뚝딱뚝딱 모양을 빚고, 부스러기를 털어내고, 찰칵 사진을 찍으면 <떼쟁이 쳇>으로 완성되지 않을까?
거드름을 피우고, 으스대면서 “물어내~, 물어내~~~~”하며 남 탓하기 바쁜 쳇이 단단히 성이 난 쥐덫에 갇혀 훌쩍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자~알 됐다”, “쌤통이다”라고 섣불리 말할 수도 없을 만큼, 그 조그맣고 귀여운 녀석이 불쌍해서 그 자리에서 용서해주고 싶어지기도 한다. 과연 아이들은 쳇에게 어떤 결말을 주고 싶을까? 덫에 갇혀 “물어내”라고 말할 기운도 없는 쳇에게는 책을 읽는 아이들이 어떤 판결을 내려줄지 어린 솔로몬들의 결정이 궁금해져온다.
미야자와 겐지의 명성에 비해 별다른 감흥이 없어 난감했던 동화를, 절대적인 상상력 빈곤 탓에 궁색하게 읽어왔던 어른들과 시큰둥한 아이들에게, <떼쟁이 쳇>은 교훈이며 예절바름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웃고, 함께 생각해볼 거리를 유쾌하게 안겨주고 있다. 누르스름한 톱밥이 폴폴 날릴 것 같은 가로쿠 공방 같은 신선한 아이디어가 가득한 작업장에서 탄생될, 재기발랄한 빛그림책들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