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답게 산다는 것
안대회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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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 조정을 핏빛으로 물들게 한 4개의 사화를 거쳐 퇴계와 율곡에 뿌리를 둔 동인과 서인의 대립으로 시작된 붕당의 뿌리 깊은 당쟁, 예송논쟁으로 야기된 끝도 없는 숙청과 유배의 시간, 기사환국, 갑술환국으로 보는 택군마저 서슴치 않는 이권다툼... 영정조기의 태평성대를 지나 수많은 옥사사건과 세도정치로 몰락해가는 조선 후기의 암흑기 속에서 피어나는 유배문학들... 조선의 선비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상당히 암울하고 건설적이지 못한 기운들로 점철된다.

  ‘선비’라는 틀 안에 담긴 이미지들은 주류에 편입하지 못해 귀양길에서 완성을 이루는 회환 섞인 사상들, 시대를 바로 읽었지만 변혁을 이끌지 못해 불운한 선구자들로 뇌리에 남은 실학자들. 유학이라는 고루함 속에서도 임금과 나라의 자신을 바로세우기 위한 접점을 찾아내기 위해 분투했던 혁명가들, 하나같이 불운하고, 변방에서 분투하는 치열함으로 얼룩져 있는 것은 유독 나뿐일까?

  그러다 조선의 선비들을 만났다. 자신의 불행을 결코 자랑하지도, 근천스럽게 여기지도 않는 소박한 당당함, 자신을 결코 오점에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꼿꼿한 자존심, 때로는 장서와 예술과 골동과 명예에 집착도 하는 인간다움, 세간의 인정보다는 스스로의 높은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을 벼르는 진정한 학자로서의 고고함. 내 무지함에 탓에 덧입힌 불운의 병풍을 벗겨내니, 거기 조선의 선비가 묵향을 내뿜으며, 내 아둔한 마음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선비답게 산다는 것』은 옛 사람들의 예스러운 글과 혼에서, 오늘을 풍요롭게 살 수 있도록 진정한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드는 품격 있는 안내서 같은 한 권이다. 자신의 무덤에 스스로 쓴 묘지명인 자찬묘지명으로 시작하는 첫 번째 챕터부터 대담함과 참신함, 옛 사람을 말하는데도 왠지 모를 도전의식이 느껴질 만큼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13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지속된 일기쓰기, 극빈한 삶에 깃든 여유로움에 대한 예찬, 절식에 대한 귀담아 들을만한 충고, 역사의 심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위정자로서의 선비들의 모습이 1부에 담겨 있는데, 하나같이 밑줄 그으며 읽고 싶을 만큼 담백하고 그윽했다.

  조선의 선비들은 르네상스 맨이다. 시, 서, 화에 능해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작품의 진위판별부터 비평에 이르기까지 적절히 해내지 않을 수 없었다. 2부에 나오는 예술품과 장서, 골동에 수집벽을 가진 한 시대를 앞서간 선비들의 이야기는 매니아에서 오타쿠로 평가절하 되기도 하는 현대인들이 가진 어느 단면과도 상통한다. 무언가에 제대로 미쳐서 때로는 세간의 조롱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문화조류를 뒤바꿔버리기도 하는 컬쳐 쇼크의 시작일 수도 있는 의외의 일면까지, 거슬러 올라보면 조선의 선비들도 매한가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진짜 눈길을 끌었던 2부의 숨은 주역들은 늘 곁에 두는 문방구에 집착하며, 우아한 사치에 골몰하는 선비들이었다. 인생을 향기롭게 하는 비움과 집착의 그 아슬아슬한 경계를 숙고에 보게 된다.

  시, 서, 화에 두루 능해야하는 선비들이지만, 그 근간은 학문과 글에서 나온다. 선비라면 학문을, 글을 입신양명을 위해서 연마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바쳐 추구해야하는 필생의 업이 되어야 마땅한 것이 아니었을까? 읽으면서 생각지도 못한 벽에 부딪히기도 했다. 때로는 어느 개인의 글에 담긴 역량이 조선이라는 틀을 뛰어넘어 버릴 때, 버려지고 심판받는 데서 오는 좌절과 울분이 느껴지기도 할 만큼 감정의 파고가 한껏 고조된 3부는, 드라마틱한 에피소드가 많다. 폐쇄적이고 고답적인 조선의 선비들은 스스로가 엄정한 검열관이며, 감히 건드려서는 안 되는 불문율을 어길 때는 단순한 파문이 아닌 반역죄로 처단받기도 했다. 조선의 선비들은 옛 경전과 자신, 시국 등 겹겹이 갇힌 경계 안에서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글에 매진한 것은 아닐지.

  공부와 서책에 관한 4부는 이 책의 백미이다. 널리 알려진 조선의 선비들이 가득 등장하고 있으며, 읽을수록 더 경외하게 만드는 그네들의 인생과 그대로 포개지는 책 읽기와 학문함의 자세들은 아무리 다시 접해도 질리지 않는 선비혼의 정수 같다. 조선의 꽉 막힌 출판관행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노력들이 선비들로 하여금 책을 목숨보다 더 아끼게 만들었을 것이다. 간서치들이 넘쳐나고 책을 통해 교류하며 영혼을 살찌우는 붕당을 초월한 사귐들이 여전히 아름답게 각인되어 남는다. 공자와 주자에게서 뿌리를 두었으나 퇴계나 다산 같은 참된 스승을 여럿 가진 조선의 선비들은 얼마나 복된 자들이며, 그들을 되새길 수 있는 우리는 또 얼마나 큰 정신적 자산을 이어받았는가.

  『선비답게 산다는 것』은 조선의 숨은 선비들만큼이나 미덕을 많이 가진 책이다. 얼마든지 전문적이고 세세하며 현학적으로 다룰 수 있는 주제들을 대중을 위해 과시하지 않으면서 풀어나간다. 그리고 국문학의 큰 뿌리인 한학에 조예가 전무한 독자들에게 저자가 들려주는 물 흐르는 듯 유려한 해설들에 반하게 된다. 요즘 들어 완역되어 나오는 고전들(연암이나 다산)이 날로 방대해져가는 것은 참으로 흐뭇한 일이다. ‘선비’라는 옛 사람들, 그 거인의 어깨에 올라 더 높은 곳을 향할 수 있는 출발을 가질 수 있었던 우리가, 망각해버리고 만 몇 백 년 동안 응축되어 있는 치열하고 곧은 정신들을 되찾을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들을 더 많이 가져보고 싶다.『선비답게 산다는 것』은 소개되어 있는 저작들을 찾아 읽어보게 만드는 귀한 매개체가 되어줄 것 같은 한 권으로 남을 것 같다. 정갈한 서가에 앉아 의관을 바로 하고 낭랑한 소리로 글월을 읊조리는 맑은 시간 속에 잠겨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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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이나 정리한 책장입니다.
그 동안 책장의 수용용량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어느 순간 해탈... ㅡ ㅡ;;)
두 개의 책장으로 버텼더니만 저만 쏙 빼고 가족회의가 열렸습니다.
 
"이대로는 못살겠다. 쟤 방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다.
무슨 수라도 써야한다"
 
엄마와 언니가 모의한 결과...
책장을 구입(문차일드 발언권 없음, 결제권만 있음... ㅠ ㅠ)하고 가구 배치를 바꾸고...
겨우 완성된 게 이런 모습입니다.
 
 


 
책장정리 전에 언니가 빌려간
도스또예프스끼 양장본, 에코, 하루키, 폴 오스터....
돌려 달라고 했더니
"그 동안 사준거 다 내놔"라고 큰 소리칩니다... ㅠ ㅠ
야음을 틈타 13층 베란다를 넘어서 어떻게든 환수해와야...
 



 
문차일드가 동화에 남다른 애정(집착, 집착, 집착@_@)을 가지고 있다는 것,
다들 눈치채셨죠?
완역본이면 일단 덤벼들고 봅니다.
지금 노리고 있는 것은 <무민 전집>입니다. 
 

 
한국 문학입니다.
대하소설과 단편선집, 창작들이 주류고,
책장 한 칸 정도 더 꽂아놓은 책들은 주로 아빠가 보시는 고전물입니다.  

 

    

 


정말 뒤죽박죽...
육체적으로 너무 지쳐서 고만 마구잡이식으로 꽂아두었습니다.
개정 전의 책들이 뒤섞여 있지만, 오히려 더 정겹기까지 합니다.
유일한 코믹스... <데스노트>입니다.
 







 
로버트 사부다의 팝업북,
시공주니어레벨문고,
들쑥날쑥 그림책들,
갑자기 바뀐 책장풍경에 어리둥절해하실까봐,
동화/그림책 칸은 전부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전부 문차일드가 읽으려고 산 책들입니다.
가족들이 정말 질색합니다.
(그래서 동화를 너무 전투적으로 읽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ㅡ ㅡ;;)

                   

 

 

 


 


제가 가장 좋아하는 명작그림책 <도서관> 中에서...
책장을 정리하기 전에...
정말 저런 모습이었습니다.
엄마가 똑같다고 말씀하실 때 은근히 기뻤습니다.(>_<)
 
 
 
예전에는 오래 살아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지만,
요즘은 오래 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못 읽은 책들이 너무 많아서 억울해서라도 마구 읽어줘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리고 죽기 전에 평생 모은 책을...
엘리자베스 브라운처럼 마을도서관에 기증하는 것도 좋겠지요.
[문차일드 도서관]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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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연필 2007-03-24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같은 생각의 소유자이심을....진작 알아채버렸답니다. ㅋㅋㅋ
저도 이담에 도서관 차리려고 이름도 정해놓고 벌써 도장까지 파놨다지요.
근데...그 꿈이 언제쯤 실현되려나...
울신랑은 로또 외엔 답이 없답니다. ㅠㅠ

문차일드 2007-03-26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당연필님, 끝에 e자가 붙는 앤에 따르면 '동류'시군요. 저도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었답니다.^^

로또... 한숨이...
저는 로또라는 것을 한번도 시도해보려고 하지 않는 시대에 뒤쳐진 사람이라, 제 주변의 매주 로또에 목을 매는 지인에게 로또되면 출판사 3개만 사달라고 늘 말합니다. "뭐 해줄까, 말말해~"라고 뻐기거든요.
그래서 "열린0들, 시0사, 민0사"를 사달라고 했습니다. ㅡ ㅡ;;
아... 그러고보니 저도 로또에 영 무심하진 않네요...

몽당연필님, 꼭 꿈이 실현되시길... 제가 첫번째 대출희망자가 되어보는 것도 꿈꿔봅니다!^^

marine 2007-04-26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끔 너무 힘들어 죽고 싶다가도 못 읽은 책 때문에 억울해서 못 죽겠더라구요
"마의 산" 과 "나니아 연대기" 가 특히 눈에 들어 옵니다

문차일드 2007-04-27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정리한지 근 한달만에 책이 대체 몇 권이 늘어났는지.... 억울해서 못 죽는다는 그 말씀이 맞습니다... 이제는 읽어줘야할 때인겁니다...^^;;
 
빠지다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오유리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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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통 서툴다. 하나같이 가학적인 상대와 자학적인 짝을 이룬다. 자신의 감정의 정체도 알지 못한 채 체념하나만은 빠르다. 끈적거림이 없어 더 서글프고, 아둔하기까지 한 의미 없는 행위들이 첩첩히 쌓여 소통을 단절한다. 사랑한다는 말은 사소해지고, 아프다는 말은 전달되지 않으며, 삶과 죽음의 순환은 덧없고, 영혼의 회한조차 희미해져가는 시간 속에서 떠돌다 그저 그렇게 소멸만을 기다린다.

  가와카미 히로미의 단편집 <빠지다>에 등장하는 8편의 이야기를 읽어 내리고 나서 얻은 인상들이다. 뭐라 딱히 규정할 말을 찾을 길 없는 인물군상들이, 자신의 부정확한 존재감에 허덕이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서늘한 경험이다. 상처 입히는 것 말고는, 상처를 감내하는 것 말고는 자신을 내줄 수 없는 남자와 여자들이 뒤엉켜 있지만, 그런 행위들로는 서로의 경계에 절대 도달할 수가 없다. 결국 내닫게 되는 끝맺음은 "당신과 있으면 어디에도 갈 수 없다”는 파국뿐이다.

  최근의 일본 문학의 한국 출판계의 파급력은 지나치게 과열되어 있어, 최소한의 자체적인 정화과정도 없이 무분별하게 일정 수준 이하의 작품까지 앞 다투어 소개되는 면이 적지 않다. 자국의 신진 작가군이나 거대 상금규모를 자랑하는 일부 문학상을 제외하면 권위 있는 수상작들에 대한 관심도 미미한 반면, 일본 문학계의 크고 작은 문학상들의 수상작가의 전작들이 브레이크 없이 밀려들어 어느 순간 방대한 계보도가 완성되기도 한다.

  어느 순간 너무 많은 닮은꼴들(아쿠타카와상 수상작과 나오키상으로 대표되는 작가군들과 지금도 늘어만가는 원작소설들)을 만나게 되다보니, 일부의 감각들이 마비되어 습관 그 이상이 아닌 듯한 중독성에 물들어버렸다. 참신함보다는 매너리즘 속에서 옥석을 골라내는 무의식적 사이클을 갖게 되었다는 자각과 더불어, 뒤늦은 거리감을 두려고 해보지만 이제 일본문학은 우리문학보다 친근해져버린 일상의 편린으로 받아들이게 되곤 한다.

  가와카미 히로미의 작품은 <빠지다>가 처음이었지만, 그 서늘하고 무정형의 문체는 낯설지 않았다. 낯선 것은 그 문체로 빚은 부유하는 어지러운 존재감을 지닌 삶의 모습일지언정, 가와카미 히로미라는 중견 작가의 단편선은 (일본의 문학상 수상작가 작품선의)계보도 속에서 익숙하게 만날 수 있는 한 권이었다.

  사랑의 도피와 애욕의 현장에도 빠져보고, 죽어서도 아무 것도 변한 것 없는 박제된 시간에도 빠져보고, 몸이 녹아버릴 것 같은 정사의 순간들의 목도에도 빠져보고, 이별과 가학과 남겨짐에도 묵묵한 속 터지는 정물화된 삶에도 빠져봤지만, <빠지다>라는 단편집에 풍덩...... 허우적대기는 하지만 나를 내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무한대에 시간을 통틀어 언제인지 모를 접점을 찾기 위해서, 끝도 없는 평행선을 이루며 겉도는 감각을 가와카미 히로미가 표출하려 했다면, 그것은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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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0735 2007-03-07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끔한 지적이십니다. 요즘 일본 서적들.. 앞으로 더 이상 제 위시 리스트에 오를 일이 없을 것 같아요. 미안한 얘기지만... 새로울 것이 없는 문학에서 미래를 본다는 건 불가능하겠지요.
 
겨울 이야기 - Shakespeare's Complete Works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윤기 외 옮김 / 달궁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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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카리 후나토의 19세기 영국 귀족사회를 배경으로 한 음습하고 비밀스러운 코믹스 『언더 더 로즈』의 한 장면. 명문 공작가의 영애인 어머니가 백작의 정부로 미심쩍은 생을 마감한 것이 의심스럽기만 한 사생아 주인공에게, 첫 대면한 아버지가 연극 『겨울이야기』를 보여주는 컷. 물론 이 장면은 복선이자 암시이고 해결의 실마리를 던지는 장치이다. 내가 가장 최근에 만난 셰익스피어의 차용이었지만 읽는 내내 전혀 모르고 있었다. 『겨울이야기』가 내가 이미 읽었던 희곡, 그것도 여러 번 읽었던 작품이었단 것을.

  한국인이 자랑하는(존경과 흠모와 경탄과 드물게는 질책의 대상인) 우리 문단의 중견이신 이윤기 씨가 그리스·로마 신화로의 안내를 미뤄두시고(개정판을 기다리는 것은 본인만은 아닐 것이다) 셰익스피어를 번역해내신다고 했을 때, 그리 커다란 호응을 보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두 해가 바뀌고서야 이 책을 집어 들게 되었으나, 내 오만과 편견이 이제라도 무너지게 된 것에서 뒤늦은 시도였을지라도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한다.

  물론 이 책(과 후속작)은 전혀 새로운 셰익스피어의 재해석이 아니며, 출판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거대한 프로젝트 또한 아니다. 그러나 상징과 은유와 인용의 분분한 해석에 질식해버린 일반 독자들에게, 셰익스피어 원작의 미디어 믹스의 홍수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있는 친절한 가이드 정도는 될 수 있다. 이윤기 씨의 그간의 번역서들이 그랬듯, 해설과 주석 부분에 본편보다 더 깊은 인상을 받게 되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신화와 고대 비극과 동시대의 풍속극들이 뒤섞이고 얼버무려져 있는 원작의 묘미를 최대한으로 풀어 전하는 “대중을 예술적으로 만드는” 그 시도가 멋드러졌다.

  여러 차례 읽었음에도 1막의 몇 페이지를 넘기고서야 알아챌 수 있었던 것은, 메이저로 분류되는 극(4대 비극, 4대 희극, 4대 사극)들과는 달리, 여타의 셰익스피어 극들이 얼기설기 뒤섞여 타이틀과 내용이 바르게 짝지어지지 않을 때가 생기곤 한다는 변명을 해본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런 감흥 없이 ‘읽었다’는 것으로 『겨울이야기』를 ‘안다’고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이윤기, 이다해 씨의 번역이 셰익스피어 번역본의 완성판일 수도 없고, 새로운 대안일 리도 없지만, 옛 시대의 박제된 유물처럼 고루하기보다는 생기를 얻어 그 시대와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계기는 되어 줄 수 있지 않았나싶다.

   고대의 신화와 비극에서 시작되었지만(인류의 역사와 거의 동일한 출발점을 지닌) 간통하는 아내와 질투로 미쳐버린 남편의 모티브는 예술적 극치를 고양시키는 소재이기보다는, 아침드라마부터 프라임타임을 점령한 일일극, 주말극에서 고정적인 지지와 지탄을 동시에 받으며, 전파낭비 이면의 사회적 방향을 야기 시키기도 하는, 빤하지만 절로 빨려들어가고 마는 리플레이이다. 셰익스피어의 명성 탓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즐기지 못함을 쉬쉬해왔던 그간의 『겨울이야기』와는 달리, 거대한 직소퍼즐의 결정적인 한 조각을 우연히도 짜 맞추게 되어 후련했던 기분과도 닮았던 경험이 되었다.

   신화와 명화와 유물유적과 여러 주석본들을 실어 독자의 이해를 높이는 서문과 해설부문에 비해, 표지와 본문에 삽입된 일러스트는 조잡한 감이 없지 않다. 번역의 참신함과 삽화의 가벼움이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고, 극의 앞뒤로 실린 사진자료들에 비하면 그리 감각적이라고도 할 수 없는 팬시 일러스트 같아 대중적인 셰익스피어 읽기를 지나치게 가볍게 증발시키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작가와 역자의 네임밸류를 앞세워 과도한 가격으로 책정했다는 증거로 거듭되는 증정도서 이벤트를 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 외부적으로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외형적인 완성도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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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파는 외계인, 미친 초록별에 오다
웨인 W. 다이어 지음, 김보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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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당혹스럽다. 이 책은 설핏 보기엔 SF의 구조를 띠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설정 자체가 너무나 미약하고 표면적일 뿐이어서, 외계인의 시선으로 지구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분석해주고 있을 때, 설득당하는 지구인들에게 동정심이 느껴질 지경이다. 저자 웨인 다이버가 지구인들에게 설파하는 행복론의 창구로 내세우는 행성 우라누스에서 온 에이키스는, 매체를 익숙하게 다루는(에이키스는 우라누스의 ‘걱정지수’를 예보하는 TV 캐스터이다) 스타강연자의 모습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우라누스 행성은 지구와 꼭 닮은 쌍둥이처럼 보이지만 우라누스 인들은 지구인과 다르게 생존에 필수적인 여러 감정들을 외부자극으로부터 얻거나 방출시킨다. ‘걱정지수’가 TV에서 발효되면 ‘무고통’이라는 걱정 예방제를 비로소 사용하고, 죄책감 자극기를 사용해 과거로 돌아가 실수를 바로잡기도 하고, 기분 손상기로 타인의 기분을 악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며, 책임은행을 운영하여 포인트에 따른 상벌의 양이 결정되기도 한다. 지구인 어스본의 눈에 그들은 괴상하게도 비치지만 어딘지 모르게 효율적으로 지금을 영위하는 현실이상주의자들이다.


  우라노스인의 평균적인 현실감각을 가지고 지구로 온 에이키스는 어스본을 만나자마자 “당신들이 틀렸어요”라고 외치며 그녀가 한 달 동안(한 달? 지구의 속사정은 그렇게 표면적인 것인가?) 지구를 둘러보고 느꼈던 구제불능의 지구인들을 나열한다. 에이키스는 위선을 가장할 줄 모르는 천진성으로 무장한 잔인한 아웃사이더이면서, 진실을 너무 쉽게 건드리고 해체해버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고질적인 ‘지구병’들을 지적하는 에이키스의 이론들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지만, 또 가장 행동하기 어려운 원론적인 회귀이다.


  에이키스라는 외계인의 냉철한 분석이 과연 필요한 요소였을까? 전 세계적으로 호의적인 반응으로 기꺼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웨인 다이버가 설정한 장치들은 그리 효과적으로 비치지 않는다. 에이키스의 이론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지구인 어스본 마냥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현실을 바꿔나갈 수 없는 우리네 지구인들의 ‘사서 걱정’하는 뿌리박힌 본능화된 습관들이 자기계발서의 지속적인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2006년에 폭발적으로 성장한 자기계발서 붐이 2007년에도 광풍을 만들 모양인 듯싶다. 지구인들은 여전히 현실에 만족할 줄 모른 채 부정적 암시 속에 시달리며, 누군가 아주 당연하지만 그래서 더 귀한, 일상을 조금이라도 만족스럽게 변혁할 수 있는 자극들에 목말라 있으니.


  <행복을 파는 외계인 미친 초록별에 오다>는 손쉽게 읽히는 작은 소품 같은 우화이다. 에이키스가 어스본에게, 웨인 다이버가 지구의 동족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또한 쉽고도 명확하다. 새로운 개념의 자기계발서를 기대한 독자들보다는, 긴장감 없이 읽을 수 있는 급진적이지 않은 온건한(새로울 것은 없는) 한 권으로, 베스트셀러 작가의 평작으로 볼 수 있겠다.  




지구인들이여, 

이제 그만 단순하게,

지금에 만족하면서 눈앞의 행복을 잡으시면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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