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핑 뉴스
애니 프루 지음, 민승남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쿼일 : 밧줄의 한 사리

쿼일 : 우리의 주인공. 엄청난 거구의 비호감형의 사나이. 두드러기로 뒤덮인 피부에 흉측한 턱을 가졌고, 온몸은 털북숭이. 부모님의 골칫거리이자 학창시절 내내 왕따를 전전 함. 여러 임시직을 거쳐서 3류 신문사에서 3류에도 못 미치는 정치기사를 작성하고 있음. 요행히 바람기 많은 헤픈 미녀와 결혼했으나, 빈 침대를 지키는 신세로 전락. 간암과 뇌종양 선고를 받은 부모님의 자살에 이어, 어린 딸들을 성도착자에게 팔아 넘기고 애인과 도주하던 아내가 사고사. 장례를 도와주러 온 고모에 이끌려 쿼일 집 안의 고향인 뉴펀들랜드로 귀향을 결정.

   

    애니 프루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추레하다. 하나같이 패배의식에 젖어 누추한 일상에 아무런 반기도 없이 묵묵히 안착한다.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에서의 히스 레저와 제이크 질렌홀은 애니 프루의 묘사에 반하는 미스 캐스팅(뻐드렁니가 난 시골뜨기 카우보이가 아도니스로 변하는 마법의 와이오밍 게이 카우보이 픽쳐스!)이었지만, 원래 애니 프루를 영상화하는 것은 각색이 아닌 윤색이 필요하다는 암묵적인 변형작업을 거쳐야하는 것임을 이안 감독을 비롯한 독자들까지 알아채버리지 않았을까. 그래서 애니 프루는 영상화된 자신의 작품을 지독히도 악평하는 매서운 원작자의 낙인을 얻는다. 케빈 스페이시 주연의 영화 [시핑 뉴스] 또한 애니 프루에게 적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영화제와 관객의 조용한 호응을 얻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무대는 뉴펀들랜드. 뉴펀들랜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순백의 빙하와 오로라가 어우러지는 백야의 장관. 그리고 뽀송뽀송한 털과 까만 눈망울에 얼어붙은 마음이 스르륵 풀릴 것만 같이 사랑스러운 하프물범들. 세상의 오욕에 아직 물들지 않은 몇 남아있지 않은 순수의 땅.

     애니 프루는 코웃음을 친다. 뉴펀들랜드서의 나날은 억척스럽고 마지못한 구석이 많으면서, 도회지로 떠나지 못하는 바다에 미친 어부들만이 지키는 유조선 기름에 찌든 바다에서 날로 씨알이 잘아지는 고기를 잡으며 연명하는 고된 삶을 보장한다. 살아있는 인형 같이 천진한 뽀송뽀송 하프물범은 빙하를 붉게 물들이며 가죽과 목숨을 바꿔야하는 도살의 대상으로, 뉴펀들랜드를 환경단체의 저주서린 땅으로 탈바꿈되었으니, 애니 프루가 들이대는 메스는 그리 가혹한 것은 아니다.

    쿼일은 귀향한다. 모두들 떠나려 안달인 그곳을 연어처럼 거슬러 올라 회귀한다. 케이블로 꽁꽁 묵어놓은 온갖 군데가 뒤틀린 쿼일 집안의 몇 세대를 걸쳐 내려온, 44년간 버려졌던 귀기 서린 집. 유령 광고와 성범죄 란과 숫총각 노인이 쓰는 가정란이 휘황찬란한 지방 신문 ‘게미 버드(사교새라고 불리는 바다오리)’에 해양선박 사고란을 담당하게 된 쿼일. 그리고 이 지방의 원조 쿼일들에 대한 수군거림. 근친상간을 저지르고, 추잡한 범죄를 은폐하고, 죽은 아내의 시체와 정을 통하고... 돌아온 쿼일은 ‘쿼일들’과 자기 아버지(고모를 강간했던)의 죄와 단단히 매듭지어 있는 듯하지만, 『시핑 뉴스』의 잔잔한 반전은 그 매듭을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푸는 것을 보여주는데 대미를 할애하고 있다.

    ‘게미 버드’의 사주는 고기잡이에 미친 노인이지만, 쿼일이 바로잡으려는 저널리즘의 회복다운 기사들을 용인해준다. 편집장이 된 우리의 쿼일은 의미 있는 것을 생산해낼 줄 아는 가장 모범적인 ‘쿼일’이 되어 고향을 지킨다. 자학적인 사랑의 회한으로 붙들고 있었던 죽은 아내 대신 ‘키 크고 조용한 여인’을 만나 평온하고 호젓한 애정을 나누게도 되고, 기록적인 폭풍(허나 주기적인)에 꽁꽁 묶였던 쿼일가의 집이 날아가 버리면서 옛 쿼일들이 부여받은 악명들에서도 해방된다.

 

    "고통이나 불행이 없는 사랑도 가끔은 있으리라“

    가장 마지막 문장이 내뿜는 긍정의 에너지가 상처와 자학과 저주에 묶여있던 굴곡진 과거를 녹인다. 애니 프루의 작품을 [브로크백 마운틴]부터 읽었기에 이런 결말은 진심으로 감격적인 데가 있다. 일상을 더욱 추레하고, 보잘 것 없게 만드는 벼리고 별러서 빚어진 문체는 한 치의 긴장도 풀 수 없게 만드는 족쇄가 된다. 애니 프루에 다시금 묶인다. 상처 입어 모난 데 많은 인생들을 포장할 줄 모르는 그 비릿한 생명력을 숨김없이 내뿜는 패배자들의 삶에 동정이 아닌 매혹을 보내게 되는 흔치 않은 선고를 받는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부터 거슬러 올라 모든 초기작들이 전부 소개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기꺼이 애니 프루에 매듭지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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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7   핑거스미스 / 세라 워터스 저 / 최용준 역 / 열린책들
(드라마를 먼저 보지 않았다면
반전의 반전의 반전의 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을텐데!)
 
058    시핑뉴스 / 애니 프루 저 / 민승남 역 / 미디어 2.0
(책을 덮자마자 다시 읽고 싶었다.
애니 프루가 다시 희망을 쓰게될까? [브로크백 마운틴]이 요즘의 경향일텐데-)
 
059    아더와 미니모이 3 / 뤽 베송 저 / 이희정 역 / 웅진주니어
(시리즈물의 한계. 빨리 끝나버려라!)
 
060    로빈슨 크루소 / 다니엘 디포 저 / 김영선 역 / 시공주니어
(읽을수록 로빈슨 크루소의 시대착오적 한재산 모으기 프로젝트가 낯설다.
문학세계사판의 완역본과 비교해서 읽었을 때 진가가 발휘된다.)
 
061    둘리툴 선생의 바다여행 / 휴 로프팅 저 / 햇살과 나무꾼 역 / 시공주니어
('돌리틀 선생님'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50번은 확실히 넘겼다.
네버랜드 클래식의 '둘리틀 선생'은
휴 로프팅의 원래의 삽화를 쓰지 않아 내게는 원성의 대상이 되었다!)
 
062    존 레논 대 화성인 / 다카하시 겐이치로 저/ 김옥희 옮김 / 북스토리
(85년작을 2007년에 읽으려니 온갖 자극적 기법들이 낡아있다.
10년 전에 나왔으면 뜨겁게 읽을 수 있었을 안타까운 전공투 이야기)
 
063    침대 밑 악어 / 마리아순 린다 저 / 유혜경 / 북스피드
(파트리크 쥐스킨스에 냉소와 악마성을 빼고,
상냥함과 해피엔딩을 첨가하면 마리아순 린다가 된다.)
 
064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 가르시아 마르케스 저 / 송병선 역 / 민음사
(마르케스의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를 읽기 전에 다시 한 번 읽었다.
가장 그와 닮은 이야기여서 읽을 때마다 치부를 들추는 기분.)
 
065    알고보면 매혹적인 죽음의 역사 / 기류 미사오 저 / 김성기 역 / 노블마인
(위선을 가장하지 않아서 내 스타일과 반할지라도 껄끄럽지 않게 읽힌다.
위악도 가장하지 않기 때문에 스캔들로 가득한 음습한 이야기가 술술 읽힌다.)
 
066    그저 쉽게 산다는 것 / 톨리 버칸 저 / 김지영 역 / 눈과마음
(진지하게 묻고 싶다.
이 책은 완성된 출판물인가?)
 
067    용 사냥꾼 이야기 / 마셔 파워스 저 / 김정일 역 / 가야북스
(이 책에 나오는 나를 바꾸는 주문이 기도서의 한 구절이라는 것을
[제 5 도살장]을 읽고서야 알게 되었다.)
 
068    착점 / 마수취안 저 / 차혜정 역 / 에버리치홀딩스
(저자가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인생에 대한 관점들이 읽을수록 거슬린다.
[삼국지]를 한 번 더 읽고, [은하영웅전설]로 마무리하면 깔끔해질 것 같은데-)
 
069    제 5 도살장 / 커트 보네거트 저 / 박웅희 역 / 갈라파고스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에서 계속 언급되는 책.
왜 이리 늦게 읽었을까, 보네거트의 사후에야 집어든 것이 서글퍼진다.
그렇게 가는거지.)
 
070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 / 에이단 체임버스 저 / 고정아 옮김 / 생각과느낌
(그 혼돈과 불확실함마저 생각해보면 교묘하고 매끄럽게 계산되어 있다.
핼과 배리의 관계는 더 사랑해버린 자의 숙명이다.)
 
071    홀로 앉아 금을 타고 / 이지양 저 / 샘터
(아끼고 누리지 않으면 문화가 아니다...라는 말이 되새겨진다.
한문학 속에서 생동하는 우리 음악이 이리 향취있을줄이야......)
 
072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 / 박경철 외 / 이미지박스
(식상하다. 전부 두 어번쯤 읽어본 내용들만 골라 모아두었다.
이 분들이 거의 담겨있는
[그 해 여름 책가방동화]와 [나는 무슨 씨앗일까]가 낫다.
동화책이여서 더 진솔했다!)
 
073    토론식 강의기술 / 모티머 J. 애들러 저 / 독고 앤 역 / 멘토
([생각을 넗혀주는 독서법]부터 읽으라는 말씀!)
 
074    정표이야기 / 이정표, 김순규 / 파랑새 
([1리터의 눈물]과 [생명의 나팔꽃]과 더불어 읽으면 좋은 책.
정표가 1월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정말 가슴아프다.
이 책은 3월에 나왔는데......)
 
075    세계사칵테일 / 역사의 수수께끼연구회 저 / 홍성민 역 / 웅진윙스 
(잘 알려진 역사의 이면을 자신들의 저서인양 방대한 분량으로 승부하는 책.
익히 알려진 오류까지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굳이 번역본을 널리 읽을 필요가 있는지 의심스러운 책)
 
 

             [ 곧 다시 읽고 싶을만큼 좋았던 책들 ]                             [ 여러모로 아쉬운 책들 ]

 

                   ------------------------------------------------------------ > 읽은 책은 19권

                   ----------------------------------------------------------> 리뷰 쓴 책은 14편

 

 [ 4월의 책 : 시핑 뉴스 / 제 5 도살장 ]

 

바지런히 읽고, 믿을 수 없을만큼 아득바득 썼다.

3월에 비해 권 수는 줄었으나, 두툼한 줄도 모르고 읽었던 책들에 흐뭇했다.

주어진 메뉴얼에 순응해 읽어야하는 책들 사이사이,

내가 집어넣은 책들이 활력소가 되어 4월의 독서는 즐거웠다고 자부한다.

굉장히 바빠서 틈틈히 읽었는데도,

그만큼 마음은 가라앉혀주는데 오히려 많은 도움이 되었고,

여전히 좋아하는 책에 치우친 편독을 하고 있지만,

일부러 의식해서 읽어야하는 책이라면

먼저 진심으로 좋아하는 뭔가를 발견해내야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4월의 책들은 묘하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책들이 있어서

5월에도 '찾아읽기'할 수 있는 밑그림이 되어주었다.

 

그간 내가 리뷰를 쓴 기간을 꼽아보니,

2006년 3월과 4월,

(2007년 1월까지 9개월 간 한 편도 안 썼다.)

그리고 2007년 2월, 3월, 4월, 이렇게 5개월 뿐이었다.

공백이 너무 길었고, 리뷰를 써야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는데,

이제야 내게 좀 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독자의 영역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  읽고 있는 책

 

[단테의 신곡 살인]

[내 입안에 들어온 설탕 같은 키스]

 [피츠제럴드 단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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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7-05-01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저렇게 다시 읽고 싶은 책과 아쉬운 책을 따로 놓으니 문차일드님의 마음이 보이는데요? ㅎㅎ 참고 하겠슴다.^^

문차일드 2007-05-01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가짓수에만 신경쓰는 독서가 아닌 5월 만들어보겠습니다. 다음달에는 어떤 성과가 있을지 지켜봐주세요.^^
 
존 레논 대 화성인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김옥희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일본의 거품경제가 그렇듯, 일본의 학생운동 또한 우리보다 20년쯤 앞서 일어났다. 80년대에 태어나 그 화염 자욱한 시대를 살아본 적도 없는 세대로서, 문학과 스크린으로나마 그 시절과 조우했을 뿐이다. 일본의 학생운동인 ‘전공투’는 60년 대 말에 들어서야 끝이 났고, 우리나라에서 겨우 ‘그 시절’을 말하게 되었을 무렵, 무라카미 하루키가 한국에 상륙했다. 전공투를 떠나보내기 위한 하루키의 ‘쥐 3부작([댄스 댄스 댄스]까지 4부작)’의 반향은 한국의 학생운동을 다룬 소설에서까지 섞여들어, 하루키 식으로 글을 쓰고, 음악을 인용하고, 심지어 문학상의 당선작마저 그대로 베끼는 일마저 있었다(정말 잊을 수 없는 기억, [양을 쫒는 모험]을 유치하게 다듬었을 뿐인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오늘의 작가상’수상작이었다!).


    하루키가 1인칭을 버리고 3인칭을 고수하고 있는 즈음, 주인공들이 이름을 얻고, 사회성을 부여받고, 노벨상 수상여부까지 점쳐지는 격세지변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전공투를 소재로 한 소설 한 편이 뒤늦게 소개되었다.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이미 소개되었던 전작들로 인해 파괴적인 형식미 속에 유쾌한 서사를 구축하는 작가로 저변을 확대하고 있는데, 가장 최근에 소개된 『존 레논 대 화성인』은 85년에 발표한 문제작이었으나, 시간의 역습에 무뎌지고, 희석된 채 아무런 문제제기도 없이 안착한 것이 아쉽기 그지없다.



    무라카미 하루키, 1949년 효고 현 출생. 전공투에 빠져 와세다대 연극과를 7년 만에 졸업.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다카하시 겐이치로, 1951년 히로시마 출생, 요코하마 국립대학 경제학부 중퇴. 전공투에 가담했다가 반 년 간 수감생활, 극심한 실어증을 겪음. 1981년 [사요나라, 갱들이여]로 군조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동시대에 태어나, 동시대에 마르크스와 곤봉과 화염 속에서 살아남아, 같은 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그리고 둘 다 야구광이다!) 하루키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 그리고 [댄스 댄스 댄스]에 이르기까지 등장시키는 ‘쥐’는 ‘나’가 학교를 졸업하고, 저급한 저널을 쓰면서 자리를 잡아갈 때, 학교를 그만두고, 거리를 떠나, 양과 사투를 벌이다 폭발음과 함께 사라진다. 그것은 후르츠 바스켓 게임, 즉 의자 뺏기 게임처럼 누군가는 버젓이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누군가는 절대 일상으로 복귀할 수 없었던 설명할 수 없는 ‘하루키스러운 청춘극’처럼 포장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그 가벼움 탓에 외려 더 애잔한 데가 있다.     


    하루키의 연작은 전공투를 벗어놓고서도 호소력을 얻으면서 표절작들을 양산해냈지만,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대응은 극한적으로 과격하고, 혼돈의 극치이며, 플롯을 파괴하고, 원색적인 포르노그래피을 표방하고 있는 탓에 쌍방향의 소통보다는 일방적인 자위적 부산물 같다는 느낌이 짙다. 『존 레논 대 화성인』을 그 자체로만 읽어내려는 것은 무의미하다. 작가도, 평론가도 후기에서 밝히고 있듯, 과격한 시대를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라는 해설에서 ‘전공투’는 한 차례도 등장하고 있지 않은데, 이것으로 그 시절을 겨우 떨쳐버리게 된 후련함이 느껴졌다. 겨우 ‘사요나라’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이 혼돈과 자위의 부산물은 작가가, 평론가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작품으로 남았을 거라 짐작해본다.


    문제는 시간이다. 85년 작인 이 소설이 2007년의 신세대 독자들에게 어떤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까? 적어도 10년 쯤 전에 ‘포르노그래피’논쟁이 지루할 줄도 모르고 산불처럼 활활 타올랐을 때, 국내에 번역되려다 몇 번이고 법정투쟁을 거치면서 이래저래 관음증적인 호기심에 혹할 수 있는 독자들을 다수 확보하면서 소개되었어야 마땅하다. 이미 우리는 세기말에 만난 하일지나 장정일, 유하 등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과 포르노그래피, 키치까지 다 섭렵했으니, 웬만한 자극에는 끄덕도 않을 수 있는 무덤덤함을 체내에서 키워오지 않았던가.

 


    존 레논과 화성인이 야구를 하는 것처럼, 85년도의 다카하시 겐이치로와 2007년의 한국의 독자들이 그라운드에서 만나는 격이다. 사인은 하나같이 기괴하고, 기대를 했다면 그것만을 골라 벗어나버린다. 10년 전에 나왔어야할 소설을 이제야 만나게 된 것에 통탄한다. 치열했던 어느 시대가 아이콘으로 남아버린 현실을 잠시 벗고, 십 수 년을 거슬러 오른다면 참을 수 없을 만큼 토해낼 것이 많은 승부가 되었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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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앉아 금琴을 타고 샘터 우리문화 톺아보기 2
이지양 지음 / 샘터사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몇 해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는 우울증에 빠지셨다. 무기력하고 자책하는 모습이 몇 달 동안이나 이어지셨고, 한 번 울음이 터지면 꼭 통곡으로 끝이 나는 일도 종종 있었다. 뭔가 외부의 도움이 필요했을 때, 아주 가까이에서 대안을 찾게 해주신 것은 돌아가신 외할머니셨다.


    할머니의 유품 가운데서 나온 몸통이 빨갛고, 덧대어진 가죽이 손때가 타 반질반질한 장구 하나. 어머니는 장구를 배우기 시작하셨다. 그전에 한 번도 장구채를 들어보신 적도 없으셨고, 뭔가를 배우시겠다고 열의를 가지신 적도 없었는데. 할머니의 장구는 남겨진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울지 말고, 신명나게 살아야지-”


    『홀로 앉아 금을 타고』는 금난새 씨가 해설과 지휘를 맞아 초보 입문자도 쉽고 편안하게 클래식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클래식팝스프로그램처럼, 최태지 씨나 문훈숙 단장이 해설하고 국내외 유명 솔리스트들이 짝을 지어 파드되를 추는 발레 갈라 프로그램처럼, 한문학 전공자인 저자가 우리의 옛 음악을 옛글 속에서 유래를 찾아 운치 있게 들려주는 책이다.


    옛 문헌 속에서 고아하고 유유한 선비정신을 일깨우는 해설서들이 줄을 이어 출간되고 있는 즈음에서, 우리 음악의 기원을 낱낱이 들춰주고, 조상들이 생활 속에서 음악을 어떻게 향유해왔는지 구수하게 풀어주고 있어, 읽는 내내 신명이 났다. “지키고 누리지 않으면 문화가 아니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국악을 듣고 즐길만한 귀를, 여유를 가져본 적 없는 나로서는, 오히려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는 기원과 향유하는 자세에 대한 번뜩이기도 하다가, 소소하게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네 전통에 대한 한 단면을 지루하지 않게 따라잡는 기분이 들었다. 


    할머니의 빨간 장구가 새로운 가죽으로 덧입혀져서 어머니의 발표회 때 제 몫을 다하는 있으며, 요즘은 이곳저곳으로 봉사활동을 다니시기도 하는 것을 보며, 할머니를 추억하는 시간에는 어느덧 신명이 깃들게 되었다. 어머니가 즐겨보시는 국악 TV프로그램을 함께 보며, 책에 나오는 유래나 에피소드들을 전해드리는 것도 살며시 꿈꿔본다.


    책을 읽으면서 제법 유명한 판소리 대목이나 잔잔히 들을 수 있는 피리 한 곡조, 절절하고 구성진 배따라기 민요, 돌아가신 부모님을 기리는 불교식 추모곡인 회심가 한 대목 정도는 부록으로 제공되었으면 더욱 가까이 누리며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따라 읽으며, 따라 듣는 적절한 배려가 옛 글 속에서 빠져나와 옛 음악에 지금의 시간을 새롭게 부여해주었다면 좋았을 것을. 저작권이나 여러 가지 제작상의 난항 때문이라면 책에 소개된 곡조들을 소개해주거나 들을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 정도라도 한 줄 들어가 있었으면 화룡점정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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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7-04-29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화룡점정이라...읽어보면 좋겠군요.^^

문차일드 2007-04-29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찾아 들어보려고 합니다. 뭔가 그 음악을 특별히 즐길 수 있는 초대장을 받은 기분이랄까요?^^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 - 그 순간이 없었으면 지금의 나는 없다
안철수.박경철 외 지음 / 이미지박스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유명 방송인, 강연자, 작가, 시인, 아나운서, 의사, 카피라이터, 평론가, 과학자, 종교인, 벤처 사업가, 경영인, PD, 배우, 성우, 다이어트 전문가-

눈길이 아니 갈 수가 없는 면면으로 이루어진 필자들이 들려주는 인생에 있어서 눈부시기도 했고, 눈물 나기도 했지만 하나같이 삶의 모습을 바꾸게 한 터닝 포인트를 모아 엮은 한 권의 책이 바로『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이다. 


    그런고로 이런 맞춤식 출판물이 가지는 식상한 한계와 여전히 솔깃한 기꺼이 읽고 싶은, 새로울 것보다는 다시 들을만한 가치가 있을법한 내용들이 잇따르는 책인 것이다.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이라는 타이틀을 공유하며 명사들이 들려주는 인생의 한 때는, 반쯤은 여기저기서 이미 읽었거나, 재연배우가 나오는 다큐멘터리로 본 적도 있고, 아침방송의 인기고정패널로 나와 들려주곤 하는 에피소드가 태반이라 신선한 자극이 되어주진 않았다.


    그네들의 터닝 포인트는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성공에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게 된 경위를 밝혀주는 것보다, 어떻게 밑바닥까지 좌절했고, 번번이 실패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자기고백들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대학입시에 실패하지 않았다면, 안락함을 멀리하고 떠나지 않았다면, 사업의 실패로 가장의 책임을 떠안게 되지 않았다면, 안락함에 길들여지는 것을 과감히 떨쳐내지 않았다면-


    앞서도 말했듯이 아무리 들어도, 그 사람의 열정과 자부심에 매혹당해 질리지도 않으면서 깊이 빠지게 되는 이야기가 몇몇 있었다. 먼저 조류 박사 윤무부 교수의 이야기. 평생 새를 쫓으며 살았고, 새를 연구하는 소명을 발견하고 밀어붙일 수 있는 주저 없는 자부심이, ‘업’을 짊어지고도 한없이 행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이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광채를 내뿜고 있는 듯하다. ‘후투티’라는 흔치 않은 새에게 반해 ‘새 박사’에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 내가 발견해놓고, 그대로 지나쳐서 이미 희미하게 만든 나의 ‘후투티’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했다.


    소설가 양귀자 씨의 그 많은 책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집은 <원미동 사람들>과 <지구를 색칠하는 페인트공>과 <희망>이다. ‘연애 소설’을 쓰기 전, 경영자가 되기 전의 ‘양귀자’가 그리웠던 나에게, 원미동에서의 잔잔한 일상들이야말로 ‘양귀자 월드’의 원점과도 같은 역할을 해준다는 고백은 참으로 황홀한 구석이 있다.


    자산가가 되고, 환영받은 방송인이 되고, 여러 분야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성공한 명사가 된다는 것은 ‘인생의 결정적 순간’을 어떻게 맞닥뜨리느냐에 달렸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좌절이 희망으로 전이되는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만이 성공하는 것이 아닐까. 내게 여러 번 날아와 주었지만, 언젠가 또 만나겠지, 하는 생각에 쉽사리 떠나보내고만 나의 ‘후투티’, 다시 내게 와준다면 놓치고 싶지 않다. 소명을 발견하고, 천직에 천작하는 이들은 성공의 여부를 떠나 모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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