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레논 대 화성인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김옥희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일본의 거품경제가 그렇듯, 일본의 학생운동 또한 우리보다 20년쯤 앞서 일어났다. 80년대에 태어나 그 화염 자욱한 시대를 살아본 적도 없는 세대로서, 문학과 스크린으로나마 그 시절과 조우했을 뿐이다. 일본의 학생운동인 ‘전공투’는 60년 대 말에 들어서야 끝이 났고, 우리나라에서 겨우 ‘그 시절’을 말하게 되었을 무렵, 무라카미 하루키가 한국에 상륙했다. 전공투를 떠나보내기 위한 하루키의 ‘쥐 3부작([댄스 댄스 댄스]까지 4부작)’의 반향은 한국의 학생운동을 다룬 소설에서까지 섞여들어, 하루키 식으로 글을 쓰고, 음악을 인용하고, 심지어 문학상의 당선작마저 그대로 베끼는 일마저 있었다(정말 잊을 수 없는 기억, [양을 쫒는 모험]을 유치하게 다듬었을 뿐인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오늘의 작가상’수상작이었다!).


    하루키가 1인칭을 버리고 3인칭을 고수하고 있는 즈음, 주인공들이 이름을 얻고, 사회성을 부여받고, 노벨상 수상여부까지 점쳐지는 격세지변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전공투를 소재로 한 소설 한 편이 뒤늦게 소개되었다.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이미 소개되었던 전작들로 인해 파괴적인 형식미 속에 유쾌한 서사를 구축하는 작가로 저변을 확대하고 있는데, 가장 최근에 소개된 『존 레논 대 화성인』은 85년에 발표한 문제작이었으나, 시간의 역습에 무뎌지고, 희석된 채 아무런 문제제기도 없이 안착한 것이 아쉽기 그지없다.



    무라카미 하루키, 1949년 효고 현 출생. 전공투에 빠져 와세다대 연극과를 7년 만에 졸업.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다카하시 겐이치로, 1951년 히로시마 출생, 요코하마 국립대학 경제학부 중퇴. 전공투에 가담했다가 반 년 간 수감생활, 극심한 실어증을 겪음. 1981년 [사요나라, 갱들이여]로 군조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동시대에 태어나, 동시대에 마르크스와 곤봉과 화염 속에서 살아남아, 같은 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그리고 둘 다 야구광이다!) 하루키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 그리고 [댄스 댄스 댄스]에 이르기까지 등장시키는 ‘쥐’는 ‘나’가 학교를 졸업하고, 저급한 저널을 쓰면서 자리를 잡아갈 때, 학교를 그만두고, 거리를 떠나, 양과 사투를 벌이다 폭발음과 함께 사라진다. 그것은 후르츠 바스켓 게임, 즉 의자 뺏기 게임처럼 누군가는 버젓이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누군가는 절대 일상으로 복귀할 수 없었던 설명할 수 없는 ‘하루키스러운 청춘극’처럼 포장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그 가벼움 탓에 외려 더 애잔한 데가 있다.     


    하루키의 연작은 전공투를 벗어놓고서도 호소력을 얻으면서 표절작들을 양산해냈지만,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대응은 극한적으로 과격하고, 혼돈의 극치이며, 플롯을 파괴하고, 원색적인 포르노그래피을 표방하고 있는 탓에 쌍방향의 소통보다는 일방적인 자위적 부산물 같다는 느낌이 짙다. 『존 레논 대 화성인』을 그 자체로만 읽어내려는 것은 무의미하다. 작가도, 평론가도 후기에서 밝히고 있듯, 과격한 시대를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라는 해설에서 ‘전공투’는 한 차례도 등장하고 있지 않은데, 이것으로 그 시절을 겨우 떨쳐버리게 된 후련함이 느껴졌다. 겨우 ‘사요나라’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이 혼돈과 자위의 부산물은 작가가, 평론가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작품으로 남았을 거라 짐작해본다.


    문제는 시간이다. 85년 작인 이 소설이 2007년의 신세대 독자들에게 어떤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까? 적어도 10년 쯤 전에 ‘포르노그래피’논쟁이 지루할 줄도 모르고 산불처럼 활활 타올랐을 때, 국내에 번역되려다 몇 번이고 법정투쟁을 거치면서 이래저래 관음증적인 호기심에 혹할 수 있는 독자들을 다수 확보하면서 소개되었어야 마땅하다. 이미 우리는 세기말에 만난 하일지나 장정일, 유하 등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과 포르노그래피, 키치까지 다 섭렵했으니, 웬만한 자극에는 끄덕도 않을 수 있는 무덤덤함을 체내에서 키워오지 않았던가.

 


    존 레논과 화성인이 야구를 하는 것처럼, 85년도의 다카하시 겐이치로와 2007년의 한국의 독자들이 그라운드에서 만나는 격이다. 사인은 하나같이 기괴하고, 기대를 했다면 그것만을 골라 벗어나버린다. 10년 전에 나왔어야할 소설을 이제야 만나게 된 것에 통탄한다. 치열했던 어느 시대가 아이콘으로 남아버린 현실을 잠시 벗고, 십 수 년을 거슬러 오른다면 참을 수 없을 만큼 토해낼 것이 많은 승부가 되었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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