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핑 뉴스
애니 프루 지음, 민승남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쿼일 : 밧줄의 한 사리

쿼일 : 우리의 주인공. 엄청난 거구의 비호감형의 사나이. 두드러기로 뒤덮인 피부에 흉측한 턱을 가졌고, 온몸은 털북숭이. 부모님의 골칫거리이자 학창시절 내내 왕따를 전전 함. 여러 임시직을 거쳐서 3류 신문사에서 3류에도 못 미치는 정치기사를 작성하고 있음. 요행히 바람기 많은 헤픈 미녀와 결혼했으나, 빈 침대를 지키는 신세로 전락. 간암과 뇌종양 선고를 받은 부모님의 자살에 이어, 어린 딸들을 성도착자에게 팔아 넘기고 애인과 도주하던 아내가 사고사. 장례를 도와주러 온 고모에 이끌려 쿼일 집 안의 고향인 뉴펀들랜드로 귀향을 결정.

   

    애니 프루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추레하다. 하나같이 패배의식에 젖어 누추한 일상에 아무런 반기도 없이 묵묵히 안착한다.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에서의 히스 레저와 제이크 질렌홀은 애니 프루의 묘사에 반하는 미스 캐스팅(뻐드렁니가 난 시골뜨기 카우보이가 아도니스로 변하는 마법의 와이오밍 게이 카우보이 픽쳐스!)이었지만, 원래 애니 프루를 영상화하는 것은 각색이 아닌 윤색이 필요하다는 암묵적인 변형작업을 거쳐야하는 것임을 이안 감독을 비롯한 독자들까지 알아채버리지 않았을까. 그래서 애니 프루는 영상화된 자신의 작품을 지독히도 악평하는 매서운 원작자의 낙인을 얻는다. 케빈 스페이시 주연의 영화 [시핑 뉴스] 또한 애니 프루에게 적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영화제와 관객의 조용한 호응을 얻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무대는 뉴펀들랜드. 뉴펀들랜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순백의 빙하와 오로라가 어우러지는 백야의 장관. 그리고 뽀송뽀송한 털과 까만 눈망울에 얼어붙은 마음이 스르륵 풀릴 것만 같이 사랑스러운 하프물범들. 세상의 오욕에 아직 물들지 않은 몇 남아있지 않은 순수의 땅.

     애니 프루는 코웃음을 친다. 뉴펀들랜드서의 나날은 억척스럽고 마지못한 구석이 많으면서, 도회지로 떠나지 못하는 바다에 미친 어부들만이 지키는 유조선 기름에 찌든 바다에서 날로 씨알이 잘아지는 고기를 잡으며 연명하는 고된 삶을 보장한다. 살아있는 인형 같이 천진한 뽀송뽀송 하프물범은 빙하를 붉게 물들이며 가죽과 목숨을 바꿔야하는 도살의 대상으로, 뉴펀들랜드를 환경단체의 저주서린 땅으로 탈바꿈되었으니, 애니 프루가 들이대는 메스는 그리 가혹한 것은 아니다.

    쿼일은 귀향한다. 모두들 떠나려 안달인 그곳을 연어처럼 거슬러 올라 회귀한다. 케이블로 꽁꽁 묵어놓은 온갖 군데가 뒤틀린 쿼일 집안의 몇 세대를 걸쳐 내려온, 44년간 버려졌던 귀기 서린 집. 유령 광고와 성범죄 란과 숫총각 노인이 쓰는 가정란이 휘황찬란한 지방 신문 ‘게미 버드(사교새라고 불리는 바다오리)’에 해양선박 사고란을 담당하게 된 쿼일. 그리고 이 지방의 원조 쿼일들에 대한 수군거림. 근친상간을 저지르고, 추잡한 범죄를 은폐하고, 죽은 아내의 시체와 정을 통하고... 돌아온 쿼일은 ‘쿼일들’과 자기 아버지(고모를 강간했던)의 죄와 단단히 매듭지어 있는 듯하지만, 『시핑 뉴스』의 잔잔한 반전은 그 매듭을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푸는 것을 보여주는데 대미를 할애하고 있다.

    ‘게미 버드’의 사주는 고기잡이에 미친 노인이지만, 쿼일이 바로잡으려는 저널리즘의 회복다운 기사들을 용인해준다. 편집장이 된 우리의 쿼일은 의미 있는 것을 생산해낼 줄 아는 가장 모범적인 ‘쿼일’이 되어 고향을 지킨다. 자학적인 사랑의 회한으로 붙들고 있었던 죽은 아내 대신 ‘키 크고 조용한 여인’을 만나 평온하고 호젓한 애정을 나누게도 되고, 기록적인 폭풍(허나 주기적인)에 꽁꽁 묶였던 쿼일가의 집이 날아가 버리면서 옛 쿼일들이 부여받은 악명들에서도 해방된다.

 

    "고통이나 불행이 없는 사랑도 가끔은 있으리라“

    가장 마지막 문장이 내뿜는 긍정의 에너지가 상처와 자학과 저주에 묶여있던 굴곡진 과거를 녹인다. 애니 프루의 작품을 [브로크백 마운틴]부터 읽었기에 이런 결말은 진심으로 감격적인 데가 있다. 일상을 더욱 추레하고, 보잘 것 없게 만드는 벼리고 별러서 빚어진 문체는 한 치의 긴장도 풀 수 없게 만드는 족쇄가 된다. 애니 프루에 다시금 묶인다. 상처 입어 모난 데 많은 인생들을 포장할 줄 모르는 그 비릿한 생명력을 숨김없이 내뿜는 패배자들의 삶에 동정이 아닌 매혹을 보내게 되는 흔치 않은 선고를 받는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부터 거슬러 올라 모든 초기작들이 전부 소개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기꺼이 애니 프루에 매듭지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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