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 - 제135회 나오키 상 수상작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들녘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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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심부름집'? 언뜻 스치는 생각은 배우자의 불륜 증거를 잡아주는 '흥신소'같은 곳인가 하는 이미지였다. 그러나 마호로 역 앞에 있는 다다의 심부름센터인 '다다 심부름집'은 '도움을 청하는 이들은 세대와 성별에 상관하지 않으면서, 법을 어기는 일만 아니면 뭐든지' 정말 뭐든지 도와주는 잡다한 일상문제를 해결해주는 곳이다. 그러다 알게 모르게 원하지 않는 인간관계가 늘어나고, 얽혀가는 과정에서 법을 등지는 일도 몇 차례 생겨나긴 하지만, 다다 심부름집의 내면적 사정은 왠지 전만큼 살풍경해보이지 않는다.

     『마호로역 다다심부름집』은 미우라 시온의 나오키상 수상작이다. 나오키상은 여타의 문학상에 비해 '그해 가장 많이 읽혔던' 소설이라는 느낌이 강한데, 국내에는 이즈음에 와서야 소개되었기 때문에 생소할지는 모르지만, 미우라 시온은 이미 대중성을 검증받은 작가라고 봐도 무방할 듯싶다. 그렇다면 그의 소설안의 무엇이 독자를 끌어당기고 있는 것인지, 그가 독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지, 첫 대면이긴 하지만 어디 한 번 들여다보기로 한다.

     마호로시는 행정구역상 도쿄 도에 포함되지만, 어딘가 모르게 경계선 상위의 변두리 지역이라는 인식이 강한 독자성과 세련되지 못한 구석이 많은 도시다. 번화가, 오랜 상점가, 학원가, 사창가 등등. 특별한 것은 없지만, 특별히 없는 것은 없는 장소. 마호로에서 나고 자란 다다는 이혼과 퇴직 후 심부름집을 운영하고 있다. 특별한 일도 없지만, 특별히 썩 나쁘지만은 않은 소소하고 잡다한 일상.

     다다의 일상에, 심부름집에 쿄텐이 흘러들면서 소소하고 잡다한 일상이, 비상식적이고 초법적인 모험의 양상으로 변한다. 쿄텐은 다다의 고교동창생으로, 학창시절 철저하게 침묵을 지키며 외떨어져 지냈던 인물이었으나, 노숙자 꼴을 하고 다시 나타난 그는 뻔뻔하고 서슴없는 행동으로 다다와 심부름집의 평온을 뒤흔들어 놓는다. 뼈아픈 실패를 겪고, 푼돈을 받고 남들이 꺼려하는 잔일들을 처리하는 심부름집의 일들과 꼭 닮은 그들. 다다에게 심부름집을 통해 맺는 최소한의 인간관계야말로, 사회 속에서 완전히 겉돌지 않으면서 안전거리를 지킬 수 있는 바리케이트가 되어준다는 것을, 쿄텐을 통해 다다는 불편하리만치 직시하게 된다. 친구도 아니고, 동업자도 아니면서, 그렇게 받아들여진 그를 통해.

     심부름집이란, 돈을 받으면 이유를 불문하고 신속하게 고객의 불편사항을 해결하면 그만일 텐데. 그 고객이 사창가의 아가씨이거나, 약을 파는 아르바이트에 이용당하는 초등학생이거나, 존속살해를 저지른 친구를 숨겨주고 싶어 하는 여고생이거나, 병원에서 뒤 바뀌어 친부모를 찾고 싶어 하는 남자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다다가 그토록 세상과의 안전거리를 반듯하고 질서 있게 두고 싶어 하는 것이, 단숨에 깨져버릴 수 있는지, 그리고 점점 그 관계성 속에서 구축되는 심상치 않은 교류들이 사실은 절실히 필요했었다는 것이 분명해져온다.

     그렇지만 미우라 시온은 마호로시의 하류 인생들을 그려내면서, 끈적거리는 애증 깊은 인간관계를 그린다거나, 의미심장하게 울리는 묵직한 주제는 다루지 않는다. 인물들은 하나같이 일그러진 채, 세상을 부유하는 외톨박이들이면서도, 결핍과 소외의 일상을 묵묵히 산다. 일본소설의 가벼움이 주는 청량하게 휘발되는 관계성 속에 깃든, 그들의 일상 너머의 진실들은 여전히 들려지지 않은 채, 이정도면 따스한 결말이지 않겠는가하는 안도감을 주려한다.

     쿄텐이 가진 '부모를 죽이고 싶은 것이 당연할 정도'의 과거지사가 존속살해를 저지르고 달아났다 돌아온 여고생 소노코를 통해 되풀이되는 것을 통해 부각되는 것은, 트라우마를 통해 지독하게 파괴된 인간의 참상이 아니라, 행복이란 여러 형태로 재생되어 돌아온다는 믿음이다. 살아있는 한 행복해질 기회가 아직은 존재한다고, 그러니까 어떤 인생이든 힘껏 살아내라고 말하고 있지만, 가벼움 속에 섞여든, 절대 가벼우면 안 될 것만 같은 인생사들이, 평온한 결말로 덮어버리려 한다는 인상을 준다.

     무거우면 안 되고, 질척이면 안 되고, 끝까지 산뜻해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본소설 다운 일본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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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갈래 미로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2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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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시 신이치의 '쇼트-쇼트(초단편 소설)'이라는 작품집을 본 것은 처음이지만, 이내 곳곳에서의 익히 보아 온 기시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본의 오랜 TV 시리즈인 '기묘한 이야기'에서 볼 수 있던 기발한 발상과 규정할 수 없는 일탈의 카타르시스의 원조를 보는 듯했다. 분명 호시 신이치를 원류로 한 미디어믹스가 얼마나 방대할 지, 짐작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활발히 전해 내려오고 있을 것이다.

    『여러 갈래 미로』는 호시 신이치의 초단편을 모아놓은 플라시보 시리즈로 명명된 라인업의 두 번째 책이다. 한 권만 집어 들게 되면, 닮은 듯 다른 듯 다른 단편들이 궁금해 연달아 보게 될 것만 같은 예감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 한 없이 빨려 들어버릴 것만 같은 우주적 진공관을 그의 초단편들에서 발견한 기분이랄까.


    SF의 선구자라고 하지만, 딱 어느 장르에 매인 작품을 선보이는 것보다, 모든 장르를 초월해 역발상의 신적 존재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한 줄도 너무 길다'라는 말이 있듯, 호시 신이치는 지극히 짤막한 분량 안에서 반전에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승부수를 던질 줄 아는 감각의 소유자임이 분명하다. 후대의 작가들에게 스며든 호시 신이치에의 오마주를 비로소 확인할 수 있게 되어 다행스럽다.

    일본인이 가장 아끼는 무사도 이야기인 '추신구라'를 패러디하거나(<마을 사람들>), 아돌프 히틀러가 젊은 시절 유태인을 빙자한 수전노에게 박대를 당하고 나서 복수를 다짐하기도 하고(<사건의 발단>), 동화 속의 해피엔딩으로 불멸을 꿈꾸는 철없는 공주님을 등장시켜 연출과 조작된 이미지를 한껏 비웃기도 하는 것(<행동한 공주>)을 보면서, 기존의 권위들을 전복시키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면서도, 어떤 방향으로도 경계 지어지지 않는 유쾌한 조소들에 매료당한다.

    빈번히 등장하는 지구를 방문하는 우주인이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에서, 지옥도의 나락으로 떨어져버린 지구의 실상을 한껏 꼬집으면서, 여전히 탐욕에 물들어 악마성을 잃지 않는 우리네 본질을 단박에 꿰뚫어 버리고 있다. 온 우주의 가장 사악한 무리들을 수용하는 별로 선택된 지구(<녀석들>)나, 온화한 우주인의 사절을 죽여 최선을 다해 은폐하려는 소동(<사자>)등, 지구에 사는 악다구니들을 능수능란하게 조롱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SF를 표방한 우주인, 로봇, 첨단기술, 환각제 등의 소재뿐만 아니라, 탐욕에 물들어 있는 욕망의 노예들이 벌이는 아수라장이 쉬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일부러 도깨비를 풀어놓아 치료비를 챙기는 정신과 의사(<작은 도깨비>)나, 살인을 은폐하기 위해 노상강도라고 자수한 범인(<작은 기사>), 지나치게 윤리적이어서 거대 상사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인물을 처리하는 방법(<기업 내의 성인>) 등, 인간 본성을 폭로하고만 있는데도, 어떠한 반전보다 소름끼치는 효과를 얻는다.

    인간을 꿰뚫어볼 수 있는 이만이 쓸 수 있는 글이기에, 분량의 혁신마저 당당한 선언처럼 느껴진다. 호시 신이치의 초단편의 미로 안에서 헤매다가 가까스로 출구를 찾았나 싶더니만, 그것이 환각이 일으킨 꿈속의, 꿈속의 꿈....은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한다. '기묘한 이야기'와 '환상 특급'의 품격 있는 원류를 만나게 되어 기꺼이 중독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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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건 사랑이야기
자크 스테른베르그 지음, 권수연 옮김 / 세계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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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란드 계 유대인으로 벨기에에서 태어나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작가'라는 기나긴 성향을 지닌 자크 스테른베르그를 단편집 『그렇지만, 이건 사랑이야기』로 처음 알게 되었다. 그의 태생이 중요한 캐리어처럼 쓰이는 이유는, 프랑스어를 객체화하여 폐부를 찌르는 거침없는 글들 속에서 인간 존재의 부조리함을 폭로하는데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었는지, 단편들을 탐험하면서 조심스레 결론을 내려 본다.

    사랑은 달콤한가? 사랑의 형태는 모두 아름다운가? 사랑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긍정적 에너지인가? 사랑은 어떠한 형태의 폭력, 악마성, 속임수, 강압, 강요 등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라는 이유로 용납할 수 있는가?

    적어도 스테른테르그의 단편 속에서는 사랑이란 더 반한 자의 망상으로 완성되는 성적 판타지의 완성 같은 것이다. 꿈에 그리던 이상적 여인에게 빠져든 남자는, 여자를 붙잡기 위해 온갖 불합리한 요구를 다 들어주고도, 아주 허술한 거짓말로 깨진 약속을 무마해버리는 여자에게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다, 결국은 약혼자, 정부, 남편 등이 이미 존재하는 그 여자에게 버림받는다. 그렇지만, 이건 사랑이야기가 아닌가? 더 반해버린 자가 홀로 망상하고, 판타지 속에서 거대하게 키워버린 욕망에 허덕이면서 누렸을 찰나의 만족감이야말로 사랑의 실상일 수도 있다는 일침을 완전히 부인해버릴 수도 없는 일이니.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일상이 마련할 수 있는 극한의 모험과도 닮았다. 그래서 모든 사랑이야기는 닮을 수밖에 없고, 그것이 생활의 영역으로 지속되는 관계가 된다면 권태로움과 동의어인 습관적 관계로 전락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라고 스테른베르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만 같다. 사랑에 빠진 이들은 그 모험적 관계에서 지상최대의 열락을 얻지만, 그것을 연장시키기 위해 일상적 관계를 맺는 순간부터, 이내 다른 사랑을 찾아 헤매게 되는 일탈을 추구하고 마는 것이라고.

    스테른베르크가 시나리오를 썼다는 영화 <사랑해, 사랑해>는 본 적 없지만, 그의 단편집에 나오는 사랑에 허덕이는 남자의 모습은 루이 브뉘엘의 영화 <욕망의 모호한 대상>을 떠올리게 한다. 정숙한 모습과 창부의 모습을 동시에 지닌 두 얼굴의 여자를 욕망하는 남자는 시시때때로 돌변하는 여자(영화에서는 한 여자를 두 여자가 연기한다)에게 육체와 정신을 모두 조롱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사랑과 욕망에서는 충만한 기쁨이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권력 관계의 서열이 생겨날 수도 있는 냉혹한 모습도 생겨나고 마는 것인지.

    이건 사랑이야기다. 그리고 사랑이란 달콤하고 인생을 아름답게 변주하는 감정이라고 믿는 이들의 안전장치를 해제하기 위한, 그런 사랑이야기이다.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하나같이 닮아있는 인간군상을 지켜보면서 내릴 수 있던 결론은, 판타지가 일상으로 돌변하는 과정에서의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게 되는 사랑의 모험을 주저하지 않는 세상에게, 비웃음을 보내기 보다는 그 아픈 결말마저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회피하지 않을 수 있는 담담함 일 수도 있다.

    각자의 사랑, 각자의 판타지, 각자의 결말이 있다. '그러니까, 이것도 사랑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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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Morning - 나를 바꾸는 아침
사토 덴 지음, 위귀정 옮김 / 지니북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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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뜨는 시간부터 전쟁이 시작된다. 서둘러 샤워하고, 아침 대신 마시는 주스 한잔을 제대로 들이킬 여유도 없다. 나가려고 보면 뭘 그리 많이 빠뜨리고 있는지, 방 안을 헤집으면서 찾느라 집을 나설 시간은 점점 지체되고 있다. 아침 시간부터 겪게 되는 데드라인과의 사투는 상쾌한 하루의 시작이기는커녕 자신의 모든 단점들이 집약되어 들어나는 괴로움의 확인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샤토 덴의 『굿모닝, 나를 바꾸는 아침』은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하는 이유를 시종 경쾌하고 평온한 어조로 조목조목 짚어주는 책이다. 읽다보면 "'그걸 누가 몰라?'하며 벌컥 짜증이 날만도 한데, 구구절절 바른 말만 하고 있는 관계로 일찌감치 꼬리를 내리고 경청하기로 한다. 야밤형 인간이 아침형 인간으로 거듭나려면 이 정도 일로 성깔을 부리면 안될 것 같기에......


    시끄러운 자명종 대신 햇살로 일어나는 것을 궁극의 목표로 삼으라지만, 어림도 없는 일인 줄 이미 알고 있는 저자는 힐링 음악이나 자연음을 가미한 빠르고 경쾌한 음악으로 깨어나기를 권한다. 화장실 시간을 작은 의식으로 삼아 긍정적인 자기 암시를 하고, 샤워할 때마다 자신에게 말거는 것도 주저하지 말라는 대목에선 '못한 건 또 무엇인가'하고 기특하게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 밖에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아침 일기를 써보라는 제안이다.


    아침 일기라니, 신문을 제대로 읽을 시간도 부족해 휘휘 넘기는 것이 고작인 사람에게 하루의 스케줄을 만연필로 적어가며, 일상을 여유 있게 대비하라니, 이 무슨 사치스런 소리인가 싶었다. 아침독서 10분 운동이라는 캠페인은 들어봤지만, 아침일기를 써야하는 긍정적 효과에 대해선 감히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는데, 의식의 전환이 되어주었다.


    숙면하지 못한 탓에 아침 시간은 언제나 전쟁 같다. 그러나 이왕이면 허브향이 감도는 침실에서 마음이 정화되는 피아노소품을 들으며 깨어나는 아침이, 두말할 나위도 없이 이상적인 것은 물론이다. 긍정적인 자기 암시에 인색해지지 말자고 마음먹으니, '아침의식'이 그리 말도 안 되는 조언으로 낯설어지지는 않는다. 야밤형 인간도 언제나 아침형 인간에 동경을 품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침에 쓰는 일기 한 자락에는 하루를 희망적으로 설계하는 설렘이 깃들 것만 같다. 허브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다이어리를 꺼내 하루를 시작하는 일기를 써보는 것이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는 해도, 해보기도 전에 지치지 않으려고 생각하는 마음만으로도 뭔가를 넘치게 선물 받은 기분이다.


    아침이 데드라인과의 전쟁이 아니라, 감귤향을 은미하며 뇌 속의 알파파를 충천하며 집을 나설 수 있는 청량한 시간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나만의 아침의식을 설계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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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사랑을 이야기하다 - 신화 속에서 찾은 24가지 사랑 이야기
최복현 지음 / 이른아침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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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편한 읽을거리가 넘친다. 원문을 읽는 것은 시간낭비처럼 취급되고 있기까지 하다. 곳곳에 책 읽어주는 이들이 책을 쓰고, 읽는 이들 못지않게 '성업'중이다. 대략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만 알면, 전부를 읽었다는 편안한 착각에 빠져들게 되는, 활자를 '소비'하는 독자층의 수요도 공급을 부추기고 있지 않을까 싶다.


    신화를 읽는 사람이 점점 줄어든다. 대신 신화를 읽어주는 책을 읽는다. 토머스 불핀치나 에디스 해밀턴 대신 이윤기라는 시대의 문장가가 들려주는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를 기점으로 신화를 소비하는 계층은 늘었을지 몰라도, 재단되고 해석된 신화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도 한 번쯤 되짚어나가고 싶다. 언제부터인지 책 읽어주는 이들이 해석해내는 신화가 원전의 자리를 무색케 하고 있다.


    최복현의 『신화, 사랑을 이야기하다』는 인터넷 세계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꼭지들을 엮은 '신화 읽어주는 책'이다. 그러나 신화를 제대로 읽기 위해 가져야하는 스키마를 풀어준다거나, 상징적인 암시 속에 숨겨진 신화의 진면목을 해독하려는 것이 아니라, 타이틀 그대로 신화 속의 여러 유형의 사랑이야기를 평이하게 풀어내고 있다.


    안 그래도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신화 속의 사랑들을 아침드라마를 보는 듯,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 무덤덤한 습관처럼 읽을 수 있는 정도의 해석들로 가득하다. 문장은 그리 참신할 것 없는 지루함이 감돌고, 사랑의 해석은 구태의연하다. 신화를 해석하고 있다기보다는, 유수의 신화 읽어주는 책들을 원문삼아 다이제스트의 다이제스트를 읽는 듯하다.


   기획연재물의 한계가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는 안이한 구성의 책이다. 거기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소재로 한 명화나 조각상들을 실고 있으면서도, 단 한 점도 저작을 표기하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다. '명화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류의 책들이 그렇게도 많이 나와 있는 것에 비해, 여러모로 안이함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책이다.


    신화 읽어주는 이들은 많지만, 궁극적으로 신화를 읽기 위한 안내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비슷한 부류의 책들에 비해 아주 희미한 정체성을 가진 신화 속의 사랑을 깊이 없이 통에, 신화의 원류에 빠져들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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