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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갈망한 슈퍼스타 존 레넌 ㅣ 청소년평전 15
강백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1월
평점 :
어디 안 가는 집콕 명절을 보낸 썬양은 교과 복습도 많이 하고,
책도 읽으면서 슬기로운 연휴 생활을 즐겼답니다.
중등전집, 자음과모음 청소년평전 <평화를 갈망한 슈퍼스타 존 레넌>을 선택한 썬양은
"엄마, 존 레넌도 위인이야?"
우리가 어릴 적부터 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세종대왕, 간디, 헬렌 켈러 등 세계 사람들 누구나 인정하는 업적을 남김 사람들을 일컬었지만
요즘 시대에는 어느 분야에 한 획을 그은 사람들도 위인전집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요
위인은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서 다르게 평가되기 때문에
꼭 위인이라기보다는 그저 인물 이야기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특히, 중등전집 자음과모음 청소년평전은
청소년 시기에 꼭 만나야 할 훌륭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았는데요
업적 위주로 쓰인 보통의 위인전과는 달리 위인의 삶을 조명하며
그들의 성공적인 삶 이면에 서려있는 고통과 아픔, 심리적 혼란 등을 보여줍니다.
고통과 시련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삶을 살다간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청소년들은 자신의 성장을 이루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죠.
중등전집, 청소년평전 <평화를 갈망한 슈퍼스타 존 레넌>은
비틀스의 리더로 세계 록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존 레넌의 삶을
시인이자 싱어송라이터인 강백수가 소설처럼 풀어쓴 평전인데요
우리 부모들이야 다 아는 사람이지만
음악에 큰 관심이 없는 청소년이라면 모를 수도 있는 인물이지요.
썬양은 음악에 크나큰 관심은 없지만 그래도 비틀스의 존 레넌은 책으로 봐서 알고 있다고 하네요
존 레넌은 위대한 음악가이자 예술가이며 사랑과 평화의 전도사로 알려져 있는데요
중등전집, 청소년평전 <평화를 갈망한 슈퍼스타 존 레넌>에서는
불우한 가정사에 반항심이 가득한 청소년이자
가족을 돌보지 않은 가장, 거침없는 행동으로 추문을 몰고 다닌 음악가 등
결핍이 많았던 인간 존 레넌의 면모를 진솔하게 그려놓아서
인간 존 레넌에 대해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시간이 될 것 같네요.
20세기를 움직인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50인 중 1위에 꼽히기도 했던 존 레넌은
영국의 작은 어촌인 리버풀에서 태어났는데요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어머니는 새로운 가정을 꾸려 존은 이모네 집에서 자랐답니다.
4살 유치원 때부터 퇴학을 당할 정도로 사고뭉치였던 존 레넌은
엄격한 교육으로 다스렸던 이모와 살면서 더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재혼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된 어머니 줄리아를 자주 만나면서
공상에 빠지거나 엉뚱한 상상을 하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게 되었으며,
어머니가 알려준 엘비스 프레슬리의 로큰롤에 빠져 세계 최고의 로큰롤 스타가 되겠다는 꿈을 꾸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행복도 잠시, 어머니가 만취한 경찰이 운전하는 차에 치여 돌아가시자
사춘기였던 존은 난폭하게 술을 마시고, 각성제를 복용하고, 담배와 술을 훔치는 등
폐인에 가까운 상태가 되고 말았어요.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은 어머니께서 남겨주신 유산이자 어머니와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유일한 안식처인 음악으로 그 시기를 견뎠더라고요.
존은 친구들과 비틀스의 모태가 된 밴드 '쿼리멘'을 결성하여
친구들 집에서 열리는 파티나 동네 댄스파티 같은 곳에서 연주하곤 했는데요
쿼리멘의 멤버인 피트의 어머니의 주선으로 마을 축제가 열리는 교회의 정원에서 연주하게 되었고,
이때, 비틀스의 핵심 멤버가 되는 폴 매카트니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었으며,
폴의 소개로 비틀스의 세 번째 멤버이자 기타리스트로 명성을 떨치게 되는 조지 해리슨을 영입하게 되네요.
리버풀 예술 대학에 입학하여 반항아인 자신과는 상반되는 모범생인 스튜어트와 친해져 밴드에 영입시키고,
조용하고 예의 바른 여학생인 신시아 파월과 연인 사이가 되기도 하는 존 레넌~
밴드 내에서의 싸움으로 인해 드럼을 담당했던 멤버가 떠나자
밴드의 이름을 '비틀스'로 바꾸고 피트 베스트를 드러머로 영입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지요.
함부르크의 낡은 클럽에서 뒷골목의 거친 사내 손님들을 상대로 공연하면서
비틀스는 과감한 액션과 거친 욕설이 가미된 공연으로 인기를 끌어 무섭게 성장했지만
한 주에 32번의 공연을 한다는 것은 정신적, 체력적으로 무리가 되는 일이라
술과 마약, 여자로 스트레스를 풀기 시작했고,
공연에서 번 돈을 죄다 술, 마약, 매춘에 탕진하는 등 방탕한 생활을 했답니다.
그러던 중 멤버 조지 해리슨이 미성년자라는 것을 신고해버리는 바람에 다시 영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비틀스.
영국으로 돌아온 비틀스는 클럽에서 다시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예전과는 너무나도 발전한 그들의 실력에 모두 금세 빠져들었으며,
막내 조지가 성인이 되자 다시 함부르크에 가서 활동을 하게 되었고,
멤버 스튜어트의 연인이었던 아스트리드 덕분에 비틀스의 버섯 머리가 탄생되었답니다.
하지만, 스튜어트는 자신의 재능이 음악보다는 미술에 더 강하다는 생각으로
비틀스에서 탈퇴하여 우리에게 익숙한 4인조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죠.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 비틀스는 운 좋게도 뛰어난 젊은 사업가 브라이언 엡스타인과 정식 계약을 체결했고,
브라이언은 이제까지의 비틀스의 불량스러운 이미지를 완전하게 탈바꿈 시켜줍니다.
너덜너덜한 가죽옷 대신 깔끔한 정장으로 갈아입혔고,
무대에서 욕을 하거나 난동을 피우고, 술이나 담배도 금지를 시켰죠.
브라이언의 활약으로 다시 함부르크로 그것도 비행기를 타고 가는 호사를 누리는 비틀스.
하지만 전 멤버였던 스튜어트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슬픔에 빠지네요.
또한, EMI 산하의 레이블인 팔로폰과의 계약을 앞두고 오랜 멤버였던 드러머가
링고 스타로 교체되면서 전설의 4인조 밴드 비틀스는 완전체가 되었고,
오랜 시간 존의 곁을 지켜줬던 신시아와 부부가 되었답니다.
1962년 9월 비틀스의 첫 앨범 녹음을 하게 되었는데요
이때 발표한 존과 폴이 작사, 작곡한 타이틀 곡 <Love Me Do>가 처음으로 전파를 탔고,
시골에서 올라온 버섯머리의 귀여운 청년들이 정장을 맞춰 입고 달콤하게 노래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신선함을 느껴
<Love Me Do>는 발표되자마자 영국 앨범 챠트 17위에 올랐으며
비틀스는 유명한 밴드가 되기 시작했답니다.
두 번째 싱글 <Please Please Me>는 영국의 권위 있는 차트인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의 1위 곡이 되었고,
비틀스의 전국 순회공연 무대에 팬들은 열광했으며,
새로운 곡을 선보일 때마다 차트 순위표 꼭대기에 올라 이제 리버풀의 비틀스가 아닌
영국의 비틀스라고 부를 정도로 스타가 되었네요.
그뿐인가요?
비틀스는 힘들게 미국에 진출하게 되었는데 미국 차트 1위에 오르면서
전 세계의 언론이 들썩였고, 세계 각지에서 비틀스의 음악이 소개되었다는 사실~
미국의 유명한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하고 미국을 용광로처럼 달아오르게 만든 비틀스는
유럽과 오세아니아, 아시아를 아우르는 규모의 월드 투어를 성공시켰고,
방이 무려 27개나 되는 저택을 사들이고 운전기사와 가정부까지 고용할 만큼 부와 명예를 누리게 된 존 레넌.
영국 왕실은 국가의 명예를 드높인 비틀스에게 훈장을 수여했지만
눈부신 성공 이면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함을 느꼈던 존은
공연이 끝나면 술에 취해 여자들과 방탕한 시간을 보냈고,
인터뷰에서도 점차 반항적인 발언으로 위태로웠는데
급기야는 비틀스가 예수 그리스도보다 유명하다는 말을 하여
미국의 언론은 마치 존이 예수 그리스도를 깎아내리기 위해 내밭은
신성 모독 발언인 것처럼 곡해되어 파장을 일으켰고,
존은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퍼져 나간 말에 자존심을 굽히고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첫 앨범을 낸 이후 수년간 쉼 없이 달려온 비틀스는 잠정적으로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죠.
비틀스 활동 이외의 삶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겨를조차 없었던 멤버들은
각자 자신들에게 결핍되어 있던 것들을 찾아 떠났는데요
조지 해리슨은 가족과 인도 뭄바이로 여행을 가서 인도 전통악기인 시타르와
인도의 역사, 문화를 비롯해 철학에 대한 공부를 했고,
링고 스타는 그동안 소홀했던 가족과 고향으로 돌아가 가정에 충실했고,
폴 매카트니는 영화에 대해 공부를 하여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만들었고,
존 레넌은 전쟁에서의 죽음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를 알리기 위한 영화에 출연했으며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장르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전시회를 앞둔 인디카 갤러리를 방문하여 존의 영원한 연인이자 뮤즈,
예술적 동반자이자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던 여인, 오노 요코를 만나게 되죠.
9개월을 매달려 준비한 앨범 <페퍼 상사>는 흥행 여부보다는
비틀스 멤버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음악을 구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는데
훗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 잡지 <롤링 스톤>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500선' 중 1위에 오를 정도로 젊은 세대뿐 아니라
시대를 선도하는 아티스트로서도 인정받게 되었으며
전 세계 수많은 차트의 정상에 오르기도 했네요.
하지만 안타까운 소식!
비틀스를 세상에 내놓았고, 존의 부모와도 같았던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약물 중독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하나의 기업이나 다름없던 비틀스는 자신들의 앨범을 생산하고,
매니지먼트까지 담당할 레코드 회사 '애플 레코드'를 설립하여 첫 음반으로
일본인 예술가 오노 요코의 음반을 내놓았는데요
존의 아내 신시아가 친구들과 여행을 간 사이 존은 요코를 자기 집으로 불러
함께 며칠간 작업을 하며 같이 보내면서 신시아에게서는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설렘을 느껴
두 사람은 깊은 사랑에 빠지고 마네요.
일정보다 빨리 여행에서 돌아온 신시아는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랐겠지요?
그 이후 존 레넌은 공적이거나 사적인 자리를 가리지 않고 늘 요코와 함께 참석하였고
많은 사람들의 질타에도 의식하지 않고 사랑을 이어갔으며
당연히 신시아와는 이혼을 했겠죠.
근데 문제는 비틀스 멤버 사이에서도 불화가 생겼다는 사실~
비틀스가 모여 작품에 대한 회의를 할 때 요코가 꼭 함께 끼어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려고 하니 멤버들이 낮선 불청객의 참견으로 느끼게 되었고,
멤버들 간 갈등의 소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각자 소신대로 독립적으로 작업을 했다는군요.
그렇게 해서 발매된 앨범 역시 큰 성공을 거두다 보니
멤버들은 이제 비틀스를 떠나서도 얼마든지 자신들의 음악 세계를 펼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존 레넌은 오노 요코와 결혼식을 올렸지만 대중들로부터 축하보다는 비난을 많이 받네요.
암스테르담과 캐나다에서 두 사람이 진행한 베드 인 퍼포먼스는
'침대에서 평화를!', '전쟁 대신 사랑을!' 등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고,
이제 존 레넌은 단순히 유명한 음악가를 넘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 운동가가 되었던 것이죠.
'베드 인'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런던에 돌아간 존은 멤버들과 새 앨범을 만들어
좋은 작품이라는 평을 받긴 했지만 더 이상 무대에는 오르지 않았던 비틀스,
그리고 1970년 당대 최고의 스타이자 1960년대의 상징이라고도 이야기했던 비틀스는 해체하여
전 세계의 수많은 팬들은 슬픔과 충격에 휩싸였지요.
존 레넌,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네 사람은
이제 비틀스라는 이름을 내려놓고 각자의 길로 떠나게 된 것입니다.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로 마음의 병이 있었던 존은
러시아의 정신 분석학자 아서 야노프에게 엄마의 죽음과 사춘기 시절의 방황까지,
모든 것을 털어놓으며 치료를 받았으며
그러는 과정에서 과거의 아픔들을 그대로 써 내려가 30곡이 담긴 솔로 앨범을 만들었고,
당시 평론가들은 존이 생각하는 사랑에 대한 관념이 담긴 노래와
자신의 사회적 성향을 담은 노래에 대해 호평을 내놓았으며
현재까지도 꼭 들어봐야 할 명반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하네요.
존과 오노 요코 부부는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었는데요
존은 계급 의식이 강한 영국에서보다 미국에서의 운동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하여
자신과 비슷한 방식의 운동을 전개해 나가는 미국 내 정치 운동 세력들을 지원하게 되네요.
미국의 시인이자 급진적 정치 운동가인 존 싱클레어의 석방을 위한 자선 공연을 하여
미국의 사회 운동가들이 오랜 노력으로 이뤄내지 못한 존 싱클레어의 석방을
존 레넌이 무대에서 내려온 지 55시간 만에 석방하는 성과를 거두는 걸 보고
더 많은 집회 현장이 존을 원하게 되었답니다.
이런 현상은 미국의 사회 운동가들에게는 반가운 일이었지만
미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달잡지 않은 일이라 여러 구실로 존 레넌의 체류 연장을 승인하지 않았고,
신변의 위협까지 느낀 존은 더 이상 사회운동을 하지 않고 앨범 작업에 몰두했지요.
오노 요코와 잠깐 이별을 하긴 했지만 다시 재회하여 아들까지 낳은 존 레넌.
5년간이나 아무 작업도 하지 않고 오로지 아들과 가정을 돌보며 살다가
5년 만에 오노와 함께 앨범을 발표하고 <롤링 스톤>과의 사진 촬영이 있던 날
집 앞에서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이라는 청년에게 총을 맞고 사망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음악가 존 레넌이 40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니 안타깝네요.
비틀스라는 그룹을 책을 통해서만 알았던 썬양이 존 레넌의 일생을 담은
중등전집, 청소년평전 <평화를 갈망한 슈퍼스타 존 레넌>을 읽고
존이 음악적으로 대단한 사람인 건 맞지만 가정을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은 아쉽다네요.
자신이 어릴 때 부모로부터 상처를 받았으면서 자신도 신시아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에게
상처를 주면 어떡하냐고~
아직 어린 썬양이라 모든 상황에 대해 다 이해를 하는 것이 아니니
그런 생각과 비판을 하는 건 당연한 것 같네요.
존 레넌의 명성으로만 생각했을 땐 그저 좋은 일들만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특히, 어린 시절에 그런 상처가 있을 줄은 몰랐다며
지금 자신은 행복한 아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으며
음악과 평화를 사랑했던 존 레넌을 생각하면서 독후 활동을 하겠다는 썬양.
존 레넌의 어머니가 존에게 사주었던 기타를 소중하게 생각했던 존이
자신의 아들에게도 기타를 사줬다는 대목이 생각나서
기타 하나를 그렸다고 하네요.
오늘은 중등전집, 청소년평전 <평화를 갈망한 슈퍼스타 존 레넌>을 통해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로 꼽히는 뛰어난 음악가 존 레넌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사회적 불합리에 음악과 삶으로 맞서 싸우며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헌신했던
사회운동가로서의 모습도 알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던 것 같아요.
역사적 사실과 현실 문제에 대한 고민을 깊이 있게 다룬
자음과모음 청소년평전을 모든 청소년들에게 추천해 봅니다. ^^*